#68화. 第十四章 탈태(奪胎) (3)
스읏! 툭! 툭!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아걸은 양손 엄지손가락을 탈골시켰다. 그리고 그토록 야물어 보이던 망승을 풀었다.
망승은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점점 더 좁혀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만약 녹선마황마저 없었다면 지금쯤 상처가 오염되어서 고름이 잔뜩 맺혔을 거다.
그래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지 않았다.
최대한 묶인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발목이 묶인 것은 상관없지만, 손목 망승에는 절대로 힘을 가하지 않았다.
엄지손가락을 탈골시키면 딱 그만큼 공간이 생긴다. 망승에 힘을 가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다. 어떤 결박도 풀어내는 비법 중의 비법이다.
툭! 툭!
망승을 벗어난 후에는 탈골된 손가락을 다시 맞췄다.
발목에 있는 망승도 풀어낸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오장육부가 쥐어짜진다. 엄청난 고통이 몰려온다. 아직도 몸속에 칼이 틀어박혀 있는 것 같다. 아니, 계속해서 쑤셔댄다.
“하아!”
아걸은 고통을 참기 위해서 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강골도 이 정도의 상처를 입으면 반년 이상은 요양을 할 것이다. 하물며 아걸은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내버려졌다. 발로 밟히기까지 했다.
다행스럽게도 녹선마황이 상처 부위를 돌아다니면서 염증을 제거해주고 있다. 만약 녹선마황마저 없었다면 지금쯤 상처가 오염되어서 고름이 잔뜩 맺혔을 거다.
한 마리라도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다.
“끄응!”
힘들게 손을 움직여서 몽설의 팔목을 잡았다.
그는 진기를 일으키지 못한다. 아직 끊어진 경맥이 복구되지 않았다. 피가 흐르는 것처럼 진기도 흐르고 있지만, 의지로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힘이나 진기로 몽설을 도와줄 방법은 없다.
하지만 몽설을 깨워야 한다.
탁!
누군가가 일부러 소리를 냈다.
진기를 휘돌리지는 못하지만 몰안으로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들었다.
신도파는 그 소리를 듣고 단숨에 쫓아갔다.
아걸이 판단하기에는 유인책이다. 신도파를 끌어내려는 소리다. 한데도 신도파는 쉽게 넘어갔다. 의심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소리가 터졌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신도파를 유인한 것인가?
누군지 모르겠다. 짐작가는 인물이 없다. 취화원에는 신도파를 따돌릴 만한 사람이 없고…… 중원에 아는 사람도 없으니, 누군가의 도움이 썩 달갑지 않다.
‘귀식대법은 한 시진이 필요해. 그 시간을 계산하고 유인했을 것이니…… 그럼 그 안에 깨어나야 해.’
몽설에게 미산 태청궁으로 가라고 했다. 한데 정말 말을 듣지 않는다. 신도파를 상대할 수도 없으면서 기어이 쫓아왔다. 그리고 대범하게 일까지 벌였다.
몽설이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관도가 폭파되고, 말이 함정에 걸려서 죽을 때에도 일을 벌인 사람이 몽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삼군에게 시비 걸 사람은 많지 않다.
몽설은 무공으로나 강호 경험으로나 삼군의 상대가 안 된다. 두 사람이 겨루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백전노장과 풋내기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녀가 따라왔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낚아채고 허리를 잡을 때…… 그때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몸 안에 있던 녹선마황이 자극을 받고 꿈틀거렸다.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마취액까지 뿜어내는 놈이 무엇엔가 크게 자극받아서 요동쳤다.
녹선마황이 동종 개체를 만났다.
다른 녹선마황을 찾아냈다. 녹선마황 두 마리가 만났으니 즉시 번식하려고 꿈틀거린다.
사실, 녹선마황이 만난 것은 가짜 녹선마황이다.
몽설은 녹선마황 치료를 받았다. 녹선마황의 즙액을 몸 안에 흠뻑 받아들였다.
그 냄새, 그 향기가 풍겼다.
아걸의 몸에 틀어박힌 녹선마황은 동종 개체의 냄새를 맡고 자극당했다.
다시 말해서, 아걸 몸에 들어있는 녹선마황을 꿈틀거리게 만들 사람은 딱 두 명뿐이다. 한 명은 몽설이고, 다른 한 명은 먼 곳에 있는 할배다.
할배가 왔을 리는 없으니 몽설이 온 것이다.
그때부터 몰안에서 벗어나 몽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의 혼혈을 쳤다. 혹여 무의식중에 헛소리를 할까 봐 우려한 것이다.
그녀의 점혈은 먹히지 않았다.
그녀가 찍은 혼혈은 손상된 경맥에 위치한다. 혈자리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을 찍었다.
그리고 그녀는 귀식대법을 펼쳤다.
아걸은 그녀의 뜻을 알았기에 침묵했다. 소리를 흘리지 않았다. 진기를 이끌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히 본인 의지로 흘러나오는 숨소리마저 막았다.
이제 신도파가 떠났고, 그를 유인해 간 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으니…… 그 전에 몽설을 깨워서 떠나야 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귀식대법을 풀어내나.
진기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고 해도 현재 상태의 몽설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귀식대법은 본인 스스로 헤쳐나와야 한다. 다른 사람이 섣불리 진기를 주입하면 오히려 주화입마 당한다. 몸을 흔들어서 깨우는 것도 위험천만하다.
하물며 아걸은 진기마저 운용하지 못한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깨울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무엇을 할 필요도 없다. 지금처럼 그녀의 손목만 잡고 있으면 저절로 깨어날 방도가 생긴다.
츠으으읏!
아걸 몸 안에 있던 녹선마황이 상처를 통해서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리고 꾸물거리면서 몽설에게 기어갔다. 동종 개체의 냄새를 쫓아서 기어간다.
아걸은 녹선마황이 몽설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됐어.’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그러자 긴장이 풀리면서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툭 떨어졌다.
그는 손을 들어 올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 * *
녹선마황은 귀식대법을 매우 빠른 속도로 깨웠다.
녹선마황은 혈맥을 따라 기어가면서 마취액을 뿌렸을 뿐이다. 하지만 녹선마황이 흘린 녹선은 몽설의 몸 안에 남아있던 마황의 잔기(殘氣)를 흔들었다.
경맥이 심하게 떨렸다.
나쁜 의미로 떨린 것이 아니다. 잠자고 있던 경맥을 조용히 흔들어 깨운다.
파르르르르!
호수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처럼 파문이 넓게 번져나갔다.
진기가 흘러서 상궁에 운집했다. 니환궁의 정중앙에 검이 우뚝 곤두세워졌다.
몽설은 귀식대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보통 한 시진 정도 걸쳐서 풀리는 해법이 일다경(一茶頃)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풀렸다.
팟!
니환일검이 움직였다.
상궁에서 일어난 혈검은 빠르게 경맥을 따라가다가 몸 안에 있는 이물질, 녹선마황을 단숨에 제거했다.
팟! 화르르륵!
녹선마황은 한 줌 혈류가 되어서 핏물 속에 스며들었다.
몽설은 좋은 보약 한 첩 먹은 것처럼 기운이 팔팔 솟았다. 니환일검도 자유롭게 움직였다. 서리형개의 수족에게 입었던 내상이 말끔히 치유되었고, 삼군을 쫓느라 극심하게 일어났던 피로감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녹선마황은 아주 좋은 내상약이다.
‘아걸!’
그녀는 즉시 옆을 돌아봤다.
귀식대법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대법을 펼치고 있는 중에도 주위 상황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삼군을 유인한 것, 삼군이 누군가를 쫓아간 것, 그리고 아걸이 자신에게 녹선마황을 넘겨준 것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아걸은 축 늘어진 채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혼절하지는 않았다. 눈을 뜨고 있다.
“몸은…… 좀 어때?”
오랜만에 만나서 할 말이 이것뿐이다.
진심으로 미안했고, 고맙다. 서리형개가 그토록 강한 고수인 줄 전혀 몰랐다. 아걸은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보호해주었다.
“괜찮아. 오늘 하루만 더 쉬면 신법도 펼칠 수 있어.”
아걸이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을 했다. 허언이라고 해야 하나? 농담인가?
“그래. 그럼 내일부터는 혼자 움직이고, 오늘은 내가 부축해줄게.”
그녀가 아걸을 안아서 일으켰다.
“어디로 가려고?”
아걸이 몽설 등에 업히며 물었다.
“글쎄…….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아봐야 해.”
“고수(高水).”
“고수? 무슨 말이야?”
“여기서 북쪽으로 오 리만 가면 고수가 나와. 폭이 이백 장 정도 되는 큰 강이야.”
“여기 지리를 알아?”
“고수를 건너면 수구진(水口津)이라는 마을이 나와. 그곳에 빈집이 서너 채 정도 있을 거야. 당분간 거기 있자.”
“마을로 가자고? 위험하지 않을까?”
“수구진은 무인이 없는 마을이야. 나루터 때문에 만들어진 마을이기는 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인근 주민밖에 없어. 수구진 밖으로 나가는 곳이 없거든.”
“외딴 마을이구나.”
“가. 시간이 없어.”
아걸이 재촉했다.
“끄응!”
몽설은 힘주어서 일어섰다.
아걸은 상처를 입어서 몸에 힘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다.
몸이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무겁게 느껴진다.
“간다.”
몽설이 나무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때, 아걸이 또 말했다.
“신법은 펼치지 말고, 관도로 천천히 걸어가. 소축십검은 신법 흔적만 찾을 거야.”
“알았어.”
몽설은 아무렇지도 대답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다. 속으로는 매우 놀랐다. 아걸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는 중원 지형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소축십검의 움직임도 세세히 안다.
싸움 준비를 오래전부터 해 왔다는 소리다.
문득,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아걸의 적이 일홀문도 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어쩌면 소축십검, 나아가서는 공부 허도기까지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꼭 그럴 것 같다.
“다음 싸움은 어떻게 할 거야? 이번에는 사형을 피했지만, 어떻게든 끝을 봐야 하잖아.”
“…….”
아걸은 대답하지 않았다.
“묻지 마?”
“다른 생각을 좀 했어. 삼도일살이 저 정도인데, 일탄십검은 어떨까 하는.”
“일탄십검?”
“대사형 서리가헌의 무공이야.”
“…….”
이번에는 몽설이 침묵했다.
일홀문도는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모른다고 했다. 사형과 사제가 구분되지만, 무공에서는 우열을 알 수가 없다. 그런 관계는 사제지간에도 일어난다. 사부가 제자에게 무공을 가르쳤는데, 누가 위인지 알지 못한다.
서리가헌이 서리형개보다 강하다고 단정 짓지 못한다.
그러나…… 아걸의 말을 빌리면, 서리가헌이 한 수 위다. 어떤 근거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한 수 위라고 단언한다. 마치 무공을 눈으로 본 듯이 확신한다.
일탄십검이 삼도일살보다 강하다면 상대할 방법이 없다.
삼도일살조차도 막지 못하고 형편없이 무너졌는데, 일탄십검을 어떻게 상대할까?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 순간, 아걸은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 답답한 생각을. 그리고 몽설은 아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대사형이나 이사형이나…… 공부에게는 도전조차 못하고 있어.’
아걸은 사부를 베어내던 검을 떠올렸다.
조명천검! 조명십해!
소축십검이 펼치는 조명십해는 대사형을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공부는 같은 조명십해로 대사형을 찍어누른다. 대사형이 숨조차 쉬지 못한다.
산 넘어 산이다. 강 건너 강이다.
서리형개, 서리가헌, 허도기.
이건 짐작인데, 공부 허도기라면 서리형개를 일 검에 벨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신(武神)!
무신을 어떻게 상대하나? 어떤 일이 있어도 상대해야 하는데, 무슨 수로.
이래서 싸움을 시작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할배는 이런 이유로 망설인다면 평생 망설이기만 하다가 늙어 죽는다면서 일을 벌인 것이고.
어쨌든, 일을 벌였으니 싸우기는 해야 하는데…… 참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