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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70화 (70/600)

#70화. 第十四章 탈태(奪胎) (5)

수적들은 외딴 마을 몇몇 곳을 상시 관리한다.

일종의 여우굴이라고 할까? 그들에게 파멸이 일어나면 잠시 몸을 피할 장소가 필요하다. 그때를 대비해서 임시 거처 몇 곳을 골라놓고 지켜본다.

수구진은 수적이 관리하는 마을이다.

언제든 수적들이 들이닥쳐서 살육을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저들에게 탈이 생기지 않는 한, 수구진도 안전하다. 수적은 관리하는 마을은 건들지 않는다.

수적들은 마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현재 상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물론, 마을에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사람 사는 마을인데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나. 하지만 그런 때에도 반드시 수적에게 보고해야 한다.

회족 아낙이 몽설에게 신혼부부냐고 물은 것은, 두 사람에게 신혼부부 행세를 하라는 말이다. 마을에 온 지 일 년이 됐으니, 딱히 새로운 변화도 아니다.

수적들에게 특별히 보고할 것이 없다.

“우리가 올 걸 어떻게 알고 신혼부부가 있다고 했을까? 적어도 일 년 전에 말했다는 거잖아.”

“일 년이나 이 년 주기로 사람을 만들어내.”

“아!”

몽설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취화원 살수이기 때문에 즉시 알아듣는다.

일 년에서 이 년 주기로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내고…… 지금처럼 수적이 들이닥치면 얼마 전에 떠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낸다.

가공된 사람은 한 명에서 두 명일 테고…… 이번에는 운 좋게 두 명이다. 몽설, 아걸 두 사람과 딱 맞아떨어진다. 아니, 가공된 사람들 중 한 명은 반드시 아걸과 비슷한 청년일 것이다. 수구진을 이용할 사람은 아걸이니까.

“적랑대 사람들, 꽤 의리 있네. 적랑대가 사라진 지 꽤 오래됐는데도 아직 이렇게 하는 걸 보면.”

“적랑대가 정말 멸문했을까?”

“아냐?”

“후후!”

아걸이 웃었다.

‘적랑대가 멸문하지 않았다면… 여기가 적랑대 본거지란 거야? 그런데 이 사람들 무공을 모르는 것 같던데. 만약 무공을 알면서도 숨기고 있는 거라면….’

몽설은 적랑대의 강인한 생명력에 새삼 놀랐다. 아니, 이렇게라도 생존해야 하는 적랑대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또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취화원이 사뭇 걱정되었다.

* * *

탕탕! 탕!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몽설은 즉시 경각심을 돋웠다. 아직도 바깥에서는 수적들끼리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수구진이 수적 관리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수색을 가볍게 할 수는 없다. 만일, 이곳에 찾고자 하는 사람이 은신해 있다면 나중에 아주 큰 곤욕을 치를 수 있다.

그 어떤 조직도, 어떤 문파도 성검문과 맞서지 못한다.

단순히 무림 문파였을 때의 성검문과 공부라는 말이 보태진 성검문은 완전히 다르다.

수적들이 작은 마을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리고도 아직 돌아가지 않는다.

“나가도 돼.”

아걸이 말했다.

“수적들이 아직 남아있는데?”

“혹시나 해서 남겨둔 자들이야. 세 명밖에 없는 데다가 곧 떠날 거야. 나가자. 부축 좀 해줘.”

아걸이 손을 내밀었다.

몽설은 놀란 눈으로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은 진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당연히 감각도 보통 사람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그는 몽설이 보지 못한 것을 본다.

바깥 동정을 살필 뿐만 아니라 몇 명이 남았는지, 그들이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도 안다.

몽설은 아걸을 부축했다.

아걸에게는 하도 많이 놀라서 이제 웬만한 것쯤은 잠깐 놀란 것으로 그칠 수 있다. 눈 한번 동그랗게 뜬 후 흘려버리는 일이 잦아진다.

* * *

몽설은 온종일 수련만 했다.

아걸이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해서, 좁은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련을 했다. 운공을 하는 데는 더없이 적당하지만, 초식 수련이 문제다. 검 대신 손을 사용해서 초식을 수련하고 있지만, 신법이 받쳐주지 않으니 흐름이 끊어진다.

“밤에 잠깐 나가면 안 될까?”

“안 돼.”

“설마 밤에도 지키고 있으려고. 날 너무 무시하는데, 웬만한 자쯤은 상대할 수 있어.”

“저놈들 중에 네 상대가 될 자는 없어. 하지만 무공을 사용하면 그것으로 끝이야. 장담하건대 한 시진도 안 되어서 삼군과 마주 서야 할 거야.”

“그냥 은밀한 데서 신법만 수련하면…….”

“넌 예뻐서 안 돼.”

“……!”

“누가 봐도 이곳 사람이 아니잖아. 회족이기를 하나, 피부가 거칠기를 하나.”

“방금…… 뭐라고 했어?”

“뭘?”

“나, 예쁘다고 했지?”

“시골에서 거친 바람과 싸운 여자 같지 않다는 소리야. 새겨들을 필요 없어.”

“호호! 이상하게 듣기 좋아? 예쁘다는 말도 처음 들었고.”

아걸이 눈을 감았다.

아걸은 온종일 눈을 감고 있다. 운공 중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떤 공부를 운용하는지는 모른다.

두 사람은 좁은 집, 같은 공간에 있지만 말은 거의 나누지 않는다.

무공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살기 위해서라도 무공을 수련해야 한다.

몽설도 절실하고, 아걸도 절실하다.

아니, 말을 하지 않는 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아는 사람 같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하고…… 눈만 마주치면 어색하고…… 그래서 무공 수련에만 전념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가? 아걸의 몸이 무척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동승에서 몽설이 치료받을 때처럼 상처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아물었다.

녹선마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운공만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데, 회복력이 매우 놀랍다.

* * *

집에 머문 지 십여 일이 지나갔다.

똑똑!

누가 문을 두들긴다.

회족 아낙이다. 다른 사람은 일절 방문하지 않는다. 오직 회족 아낙만 찾아온다.

그녀가 하루치 먹을거리를 넣어주곤 한다.

몽설이 문을 열어줄 필요도 없다.

문을 두들긴 것은 자신이 왔다는 신호이고,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그러니 문을 열고 먹을거리를 밀어준 다음 슬그머니 옆집으로 돌아간다.

회족 아낙이 먹을거리를 가져오면 몽설은 작은 소반에 주먹밥과 반찬을 올려서 아걸에게 갖다주곤 했다.

십 여일 동안 항상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먹을거리에 손을 대지 못한다. 회족 아낙이 문을 열고 음식을 넣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츠으으읏!

진기가 전신을 휘돈다.

* * *

일반적으로 단전에서 흘러나간 진기는 독맥(督脈)을 타고 움직인다. 회음혈(會陰穴)을 거쳐서 등줄기를 타고 정수리까지 치솟는다. 백회혈(百會穴)에서 외기(外氣)와 교감한 후에는 임맥(任脈)을 타고 쏜살같이 내려온다. 단전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것이 소주천(小周天)이다.

운공이라고 하면 기경팔맥을 두루 휘도는 대주천(大周天)을 말하지만, 임독 양맥만 이용한 소주천을 쓰기도 한다.

몽설도 평생 이런 운공을 해왔다.

혈검경 상권을 습득한 후에도 진기의 중심은 단전이었다. 머리에 둥지를 튼 상궁에서 니환일검이 드러나지만, 여전히 단전을 중심으로 진기가 운용되었다.

“도와줄까?”

막 새벽 운공을 시작하려고 할 때, 아걸이 선뜻 나섰다.

“아니, 괜찮아. 날 도와줄 기운이 있으면…….”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앉아.”

아걸이 다짜고짜 등 뒤에 앉았다.

몽설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었다.

아걸이 어떻게 도와준다는 것일까? 무엇을 도와주려는 거지? 지금 아무 이상이 없는데. 운공이 잘 진행되어서 내력이 증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하는 중인데.

지금이 딱 좋다.

이대로 몇 년만 수련하면 혈해검신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몽설은 정말로 도움이 필요 없었다. 더욱이 아걸은 몸도 성치 않아서 진기 운용이 힘들다. 요즘은 깊은 운공도 취하는 것 같은데, 오래 끌지 못한다.

아직은 내력이 운공법을 받쳐주지 못하는 것이다.

츠으으읏!

단전에서 진기를 일으켰다. 거센 힘으로 밀려 나온 진기가 독맥을 타고 힘차게 솟구쳤다. 척추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백회혈을 점거했다. 그 순간!

척!

단전에 낯선 손바닥이 닿았다.

아걸이 그녀의 하복부, 단전에 손바닥을 바짝 밀착시켰다.

등 뒤에 앉아있던 사람이 불쑥 전면으로 돌아온 것도 놀랍거니와 명문혈이 아닌 단전에 손을 댄 것도 기이하다.

‘흑!’

그녀는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진기를 놓칠 뻔했다. 그랬다면 당장 주화입마다. 작게는 내상을 입을 것이고, 크게는 반신불수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츠읏!

손바닥을 통해서 아걸의 진기가 밀려들었다. 아니, 단전을 타격했다. 외기로 그녀의 단전을 봉쇄해 버렸다.

이렇게 되면 백회혈에 머문 진기가 임맥을 타고 내려오더라도 갈 곳이 없게 된다.

결국은 단전에서 아걸의 진기와 격돌할 수밖에 없다. 몽설의 진기가 강한지, 아걸의 진기가 강한지는 따질 필요가 없다. 전장이 그녀의 몸이다. 어떤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그 여파는 그녀의 오장육부를 파괴해 버릴 것이다.

치명적인 공격이다.

적이라고 해도 이처럼 절묘한 기회를 잡기는 어렵다.

‘이익!’

몽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백회혈을 벗어나려는 진기를 꽉 눌러 앉힌 채 쩔쩔맸다.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걸은 몽설의 상황은 잘 안다. 몽설의 진기가 백회혈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그녀의 진기가 독이 되어서 뇌에 충격을 가한다는 사실까지 안다.

어쩌자는 것인가!

진기를 소멸시켜야 한다.

백회혈을 통해서 뿜어내는 방법도 있고, 진기를 손가락에 운집시킨 후에 아걸을 타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그녀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진다.

단전을 아걸이 붙들고 있다.

그녀의 진기는 아걸의 진기를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진기의 대부분은 백회혈에 운집되어 있지만, 전신에 퍼져있는 잔기(殘氣)가 아걸의 진기를 꽉 누르고 있다.

어쨌든 그녀의 몸이지 않나. 아걸이 쏟아낸 진기보다 그녀의 진기가 훨씬 많다.

한데 백회혈 진기를 쏟아내면 상황이 역전된다.

아걸이 의도하지 않아도 그가 집중시킨 진기는 그녀의 오장육부를 통째로 무너트린다.

‘손 치워!’

아걸이 손을 치울 리 없다.

머릿속으로 한 말은 들리지도 않겠거니와 말로 해서 들을 사람 같으면 처음부터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몽설은 식은땀만 줄줄 흘렸다.

뭘 어떻게 해야겠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다. 그러다가!

‘아!’

몽설은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그렇다! 진기를 보관할 장소가 한 군데 더 있다! 굳이 단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츠으으읏!

몽설은 백회혈에 운집된 진기를 움직여서 상궁, 니환궁, 상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하단전을 포기하고 상단전을 운용한다.

촤아아아악!

들끓던 진기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진기가 상궁으로 들어서자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하단전에 들어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잔잔해졌다.

그때, 아걸이 봉쇄하고 있던 진기를 느닷없이 확 풀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단전에 남아있던 잔기가 임맥을 타고 솟구쳐 올라왔다.

역행(逆行), 역류(逆流), 역기(逆氣)다.

임맥은 내려가는 길이지 올라오는 길이 아니다.

‘안 돼!’

몽설의 평정심이 한순간에 흩어지려고 했다.

순간 아걸이 일갈을 내질렀다.

“정신 차려!”

꽈아앙!

아걸이 일갈을 쏟아낸 것과 임맥으로 역류한 잔기가 상궁을 들이친 것은 동시였다.

자신의 진기로 자신의 상단전을 공격한다? 딱 그런 상황이다. 독맥을 흐른 진기와 임맥으로 솟구친 진기가 충돌하는 모습이다. 양갈래 진기가 한 곳에서 격돌한다.

파아앗!

상궁을 들이친 임맥 진기는…… 사라졌다!

독맥 진기와 마찬가지로 임맥 진기 역시 상궁에서 잔잔한 물결이 되어 가라앉았다.

양맥 진기가 합일되었다. 아니, 상궁에서 교차했다.

독맥진기는 임맥으로 흐르고, 임맥 진기는 독맥으로 흐른다. 하단전에서 두 진기는 또 교차했고, 역시 가던 길로 계속 움직인다. 그리고 상궁에서 운집된다.

‘아!’

몽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을 느꼈다.

마치 육신을 물들이고 있던 찌꺼기가 모두 빠져나가서 몸도 마음도 깨끗해진 느낌이다.

하나였던 진기가 두 개로 늘어났으니 당연히 내력은 배가되었다. 내력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 아니다. 두 진기가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세 배, 네 배로 늘어났다.

‘벌모세수(伐毛洗髓)! 벌모세수야!’

무인이라면 꿈에서도 바라는 일이 그녀에게 일어났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이루어진다는 벌모세수 아니던가.

그녀는 운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새로운 운공법에서 헤어나올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계속 활기찬 운공을 즐기고 싶었다. 상쾌함을 만끽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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