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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72화 (72/600)

#72화. 第十五章 일단승(一段昇) (2)

수구진은 강변 마을이다. 당연히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로(水路)가 여러 곳 있다.

깊은 밤, 회족 여인이 앞장서서 걸었다.

달빛이 너무 밝아서 길을 걷는 것은 불편하지 않았다. 작은 등불을 켜고 걷는 것처럼 주변이 환히 보였다.

“잘 계십니다.”

여인이 문득 말했다.

촌 여인의 음성이 아니다. 아주 절제된 음성이다.

“깨어나셨답니까?”

아걸이 물었다.

“아뇨. 아직.”

“……쯧! 너무 잠이 많아.”

아걸이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에게는 문주이지만, 내게는 할배인 걸. 피붙이가 피붙이 구한 걸 뭐가 고맙다고. 그런 인사는 됐고…… 할배나 잘 봐줘요. 탈 나지 않게.”

“잘 보고 있습니다.”

“할배를 이렇게 넘기고 나니까 마음이 훨씬 편해지네. 이젠 마음껏 움직여도 되겠어.”

아걸이 활짝 웃었다.

“다 왔습니다. 여깁니다.”

회족 여인이 두 사람을 수로로 안내했다.

그녀가 안내한 수로에는 빨래할 때 사용하는 디딤돌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마을 공통 빨래터인 듯하다.

“여기서 나가면 바로 발각될 겁니다. 차라리 상류 쪽으로 가심이 어떠실지?”

“그쪽도 막힐 겁니다.”

“그래도 위로 가시면 이십 리 정도는 안전합니다. 인가가 전혀 없습니다.”

여인이 말한 상류는 수로 상류를 말한다. 작은 물길을 거슬러서 수구진 위쪽으로 올라가라는 말이다. 물길은 이십 리 정도 이어지고, 그 후로는 산을 타고 넘어야 한다.

다른 길은 매우 위험한 반면, 이 길은 잘 움직이면 숨을 수 있을 듯했다.

삼군이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쳤다. 성검문에 협조하는 모든 문파가 동원되었다.

적랑대가 파악한 바로는 백이십여 개 문파가 수색에 참여했다. 동원된 무인만 무려 삼만 명이다. 각 문파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까지 합치면 거의 오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빠져나가기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어쩌면 회족 여인이 말한 길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일지도 모른다.

무인들은 대부분 산을 수색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만 수색한다. 산을 이용해서 생존하는 사냥꾼이나 약초꾼, 땅꾼, 벌목꾼 등등만 조심하면 된다.

그 정도는 조심할 수 있지 않나?

당연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산을 이용해서 도피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함정이 있다.

산은 산사람 것이다. 무인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사냥꾼이나 약초꾼, 땅꾼보다 산을 더 잘 알지는 못한다. 싸우는 것도 아니고 단지 감시만 하는 것이라면 저들이 훨씬 낫다.

산으로 도주하면 저들 눈을 피하지 못한다.

그래서 천라지망이다. 도주할 곳이 꽉 막혔기 때문에 잡힐 수밖에 없다.

그러면 천라지망이 풀릴 때까지 수구진에 머물까?

이것도 곤란하다. 첫 수색은 수적들이 했다. 그들 역시 집단의 안위가 걸린 일이라서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뒤졌지만, 여전히 보지 못한 것이 많다.

그래서 성검문이 직접 이차 수색을 한다.

이들은 동원된 문파가 보지 못한 것까지 샅샅이 뒤진다. 워낙 포위망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지금도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다.

저들 발길이 수구진에 닿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걸이 말했다.

“배는?”

“휘익!”

회족 여인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갈대밭 속에 숨어있던 장한 두 명이 재빨리 작은 배를 들고 나왔다.

“간신히 강만 건널 수 있는 배입니다. 멀리 가지는 못해요.”

장한들이 배를 물에 띄우며 말했다.

* * *

끼익! 끼익!

배가 움직일 때마다 나무조각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몸은 정말 괜찮아?”

몽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서리형개의 칼은 매섭다. 인정이라고는 한 올도 담기지 않아서 매섭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칼을 사정없이 얻어맞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십중칠팔은 즉사한다. 용케 살아남는다고 해도 반년 넘게 요양해야 한다.

아걸은 단지 한 달을 쉬었을 뿐이다.

상처는 많이 아물었다. 몽설이 보기에도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다.

몽설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동승에서 활검문도에게 당했을 때, 녹선마황의 힘을 빌려 사흘 만에 일어선 적이 있다.

하지만 아걸에게는 녹선마황도 없다. 치료약이라는 것도 적랑대가 건네준 구급약 정도가 전부다. 중한 치료는 할 수 없고, 가벼운 검상 정도만 치료할 수 있다.

아걸은 그 정도의 치료를 받고 일어섰다.

운공은 보름 정도 지나서부터 했다. 그러니 보름 넘어서부터는 본인 스스로 자가 치료를 했다고 봐야 한다.

“괜찮아. 시험해 봤잖아.”

아걸이 강물에 시선을 두었다.

밝은 달은 강에도 떠 있다. 강물 깊은 곳에서 노란 달이 일렁거린다. 달이 두 개다.

“수영 잘해?”

아걸이 문득 물었다.

“수영? 잘하지는 못하고…… 조금?”

“이 정도 강은 건너가겠지?”

몽설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그리고 차게 굳어진 눈빛으로 사방을 쓸어봤다.

보이는 것은 없다.

강물이 출렁거린다. 강물 위로 바람이 쓸고 지나간다. 사위는 어둡고, 달빛은 고요하다.

하지만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아걸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적어도 몽설보다 두 호흡 전에 기척을 읽었다.

적은 물속에 있다.

물에 능한 자, 물속에서 공격할 수 있는 자…… 수적이다.

수구진을 떠난 지 겨우 반다경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꼬리가 달라붙었다.

“달밤에 수영하기 싫은데…….”

몽설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풋!”

아걸이 몽설의 표정을 보며 웃었다.

몽설의 얼굴에서 걱정이 사라졌다. 긴장감도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평온함, 잔잔함, 침착함만이 돋보인다.

몽설이 ‘절정’이라는 맛을 보기 시작했다.

상황이 좋아서 편안한 것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적과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이것이 혈검경의 진가다.

아걸은 혈검경에 기재된 무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혈검경 하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용을 살펴보지는 않았다. 혈해검신의 무공이 적힌 절정검법이지만,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련하지 않았다.

혈검경에 대해서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할배가 말해준 것이다.

혈검경은 일홀도나 조명십해에 버금가는 최고 검법이다. 다만 상권이 없어서 무공 명칭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중권과 하권만으로도 능히 천하를 울린다.

그 기세가 몽설에게 깃들기 시작했다.

스읏!

몽설이 삿대를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린다 싶은 순간 힘껏 내리찍었다.

푹!

땅을 치는 소리가 아니다.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소리다.

쿨럭! 뽀그르륵!

물속에서 물방울이 격하게 쏟아져 올라왔다.

“벌써? 조금 더 가서 해도 되는데. 지금 여기서 하면 꼼짝없이 수영해야 해.”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안 해.”

쉬잇! 푹!

그녀는 즉시 삿대를 뽑았다가 다시 찔러 넣었다.

이번에는 파육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동료를 해치자, 다른 자들이 즉시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났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리 곤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퍽!

느닷없이 배 밑바닥에서 큰 충격이 터졌다.

배가 심하게 뒤뚱거린다. 뱃전은 구멍이 뻥 뚫렸다. 그리고 강물이 샘솟듯이 솟구친다.

“거봐. 너무 일찍 시작했잖아.”

“이게……?”

몽설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뱃전을 쳐다봤다.

분명히 배 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구멍이 뚫렸다. 누가 언제 어떻게 뚫었나?

“이놈들이 자주 사용하는 화살이 있어. 수전(水箭)이라고. 물속에서 사용하기 딱 좋아.”

“화살 한 대로 배가 뚫렸다고?”

내력이 강한 무인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보통 화살이 아니라 철시(鐵矢)를 써야 한다. 보통 화살로는 배 밑바닥을 뭉텅 뜯어낼 수 없다.

“수전에 폭약통이 달려있거든.”

“아!”

“수영해야지?”

“폭약통 이야기는 왜 안 했어?”

“설마 취화원 살수가 그 정도도 몰랐다는 건 아니지?”

“산서(山西)에서는 산서 방식으로.”

“그래.”

“다음부터는 이런 거 말로 해줘. 이렇게 직접 몸으로 겪지 않아도 알아들을 나이거든.”

몽설이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산서는 산악지형이 많다. 그래서일까? 산서 사람들은 두 다리가 강건하다. 발을 잘 사용한다. 무공에서도 권법(拳法)보다는 퇴법(腿法)에 치중한다.

반명에 광동(廣東)은 평야 지대다. 다리보다는 손을 더 잘 쓴다. 퇴법보다는 권법, 조법(爪法)이 발달했다.

이 대표적인 말이 남권북퇴(南拳北腿)다. 남쪽에는 권법이 발달했고, 북쪽에는 퇴법이 발달했다는 뜻이다.

지형에 따라서 무공도 특성을 달리한다.

광동 사람이 산서 땅에서 싸우려고 하면 반드시 퇴법을 고려해야 한다. 산서에서 싸우면서 광동에서처럼 권법 위주로 싸우자고 하면 힘들어진다.

수적들의 영역에서는 수적들의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수적들이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알아야 하고, 대비책까지 세워야 한다.

아걸은 수적들이 폭약통이 매달린 수전을 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사람…… 무공 수련하기도 바빴을 텐데, 수적들에 대해서도 연구했나?’

몽설이 눈빛을 반짝이며 아걸을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든든해진다.

믿음직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고픈 마음이 생긴다.

몽설도 살수다. 수적들의 싸움방식을 알고 있다. 하지만 수전을 사용하는 수적은 거의 없다. 사실, 아걸이 말한 것과는 정반대다. 물속에서는 화살이 제 속도로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방금 경험한 수전은 매우 위력적이다. 능히 범선조차도 침몰시킬 수 있다.

이런 수전을 사용하려면 특수하게 제작된 활이 필요하다. 일반 활은 아닐 것이고, 석쇠에 걸어서 발사하는 노궁(弩弓) 형태의 활일 것이다.

이자들, 보통 수적이 아니다!

* * *

스읏! 스으으읏!

몽설은 물고기처럼 부드럽게 유영했다.

그녀는 수영을 매우 잘하는 편이다. 취화원에는 물속으로 잠입해서 공격하는 살법이 있다. 귀식대법을 펼쳤을 때처럼 물속에서 오래 머무는 수련도 한다.

슈우우웃!

무엇인가가 날아온다.

오감으로 감지한 것이 아니다. 상궁에 둥둥 떠 있는 니환일검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킨다.

‘위험!’

스으으읏!

몽설은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그리고 두 발에 천근추(千斤墜)를 매단다.

몸이 물속으로 뚝 떨어졌다.

슈우웃!

떨어지는 몸 위로 강시가 흘러갔다.

강시가 일으킨 물결이 몸을 뒤흔든다. 조금만 늦게 움직였다면 여지없이 꼬치가 되었을 것이다.

퍼어억!

강시에 매달린 폭약통이 수면 바로 밑에서 터졌다.

몽설의 몸이 또 한 번 흔들렸다. 폭약통이 터지면서 물결을 밀어냈고, 흘러나온 물결이 몽설도 밀어냈다.

몽설은 강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재빨리 두 발로 바닥을 후려 찼다.

슈웃! 타악!

그녀는 빠르게 쏘아졌다.

하지만 멀리 가지는 못했다. 수면 위로 솟구치지도 못했다. 그녀 앞을 가로막는 자가 무려 네 명이나 나타났다.

‘실수! 너무 급해서 숨 조절을 못 했어.’

몽설은 사내들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숨을 쉬지 못한 탓에 가슴은 이미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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