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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73화 (73/600)

#73화. 第十五章 일단승(一段昇) (3)

검이 움직인다.

바람이 땅을 쓸면서 지나간다. 땅에 납작 엎드려서 나아간다. 그러다가 퍼뜩 일어선다. 검은 네 개로 분화해서 네 곳을 동시에 격타한다.

세 개는 허초이며, 하나만 실초다.

허초를 받아낸 자는 빈 허공을 칠 것이고, 실초와 만난 자는 피를 흘리거나 강검과 마주칠 것이다.

‘현풍사월(玄風四月)!’

현풍사월은 혈검경 중권에 기재된 검초다.

아걸과 수검할 때, 가장 자신 있게 펼쳤던 검초 중 하나다.

슈우웃!

검을 떨쳐냈다.

물속에서 펼친 검초라서 상상 이상으로 느리다. 현풍사월의 비법은 쾌속함인데, 비법을 살리지 못한다. 하지만 니환일검이 사용하라고 하지 않나!

슈우우웃!

검이 물살을 헤치며 나아갔다.

이런 검으로 수피(水皮)까지 입은 수적들을 격타할 수 있을지 의문인데, 어쨌든 니환궁에서 말해준 것이니 펼친다. 아걸과 수검 수련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슛! 슛! 슛! 슛!

저들이 검을 막아왔다.

이상하다? 매우 느린 검인데 왜 반응하지? 이렇게 느린 검인데도 실초와 허초를 구분하지 못하나?

몽설은 저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누가 봐도 실초와 허초가 분명한데, 마치 장님이라도 되는 듯 한결같이 병기를 부딪쳐온다.

저들이 사용하는 병기는 철삭 달린 겸(鎌)이다.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원거리에서 사용할 수 있고, 바짝 붙었을 때는 짧은 낫이 검이나 칼보다 유용하다.

슛! 슈웃! 슛!

검 세 개가 헛되게 물살만 갈랐다.

저들은 비로소 허초를 직감한 듯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허초 뒤에는 반드시 실초가 따라붙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검초는 목숨을 빼앗아가니까.

허초를 실초로 착각한 결과는 매우 비참하다.

하지만 몽설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그녀가 펼친 현풍사월은 실초 대 실초의 싸움이다. 다수의 적과 싸울 때, 다른 자들을 일시 뒤로 물러서게 하고 오직 한 명만 상대한다.

슛! 푹!

검이 수피 입은 사내의 가슴을 찔렀다.

‘아!’

몽설은 수적 한 명을 거꾸러트린 다음에야 이들이 누군지 생각해 냈다.

강호 문파 중에는 아예 본문 기치를 던져버리고 성검문에 투신한 문파들이 있다. 성검문의 수족이 되어서 움직이는 대신에 안전과 풍족함을 보장받는다.

투신했다고 해서 하찮거나 무시해도 좋은 문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 문파는 성검문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성검문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인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더러움을 대신 닦아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수룡방(水龍幇)이 그런 문파 중에 하나다.

한때는 장강(長江)을 장악하다시피 했던 거대문파였지만 내부 갈등으로 분파(分派)된다. 무려 다섯 개로 분파된 수룡방은 결국 골육상쟁 끝에 공멸한다.

이들이 수룡방이다.

모두 멸문한 줄 알았는데, 성검문에 투신해서 안위를 보장받고 있었다.

물귀신, 수귀(水鬼)들!

‘비응투심(飛鷹偸心)!’

니환궁에서 다음 명령이 떨어졌다.

니환일검이 움직인다. 몽설도 움직인다. 생각은 없다. 니환궁과 몽설의 몸이 동시에 움직인다.

현풍사월과 비응투심은 동떨어진 초식이다. 결코 같이 이어지지 않는다. 비응투심을 펼치려면 아주 강하게 지면을 박차야 한다. 날아가는 매의 심장을 훔치자는 초식이 아닌가.

물속에서는 비응투심을 펼칠 수 없다.

제아무리 거세게 물을 박차도 지면을 박차는 것만큼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

팟!

몽설은 심장이 꿰뚫린 자의 몸통을 박찼다. 그리고 힘차게 솟구쳤다.

한 명이 눈에 보인다.

현풍사월을 펼칠 때, 세 명이 물러섰다. 그러니 보이려면 세 명이 보여야 한다. 하지만 다른 두 명은 보이지 않고, 오직 한 명만 눈에 들어온다.

‘투심!’

푸우우우웃!

검이 상대방의 복부를 꿰뚫었다. 명치를 뚫고 들어간 검이 등 뒤로 삐져나왔다.

몽설은 검력을 놓지 않았다. 검에 실린 힘을 풀지 않고 계속해서 비응투심을 펼쳤다. 상대방을 이미 격살했는데, 아직 격살하지 않은 것처럼 거칠게 밀고 올라갔다.

상대방을 물 위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녀도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푸악!

맑은 공기가 일시에 폐부를 채운다.

‘다른 자들!’

몽설은 즉시 경각심을 돋우었다.

상대는 네 명이었다. 물 위로 솟구쳐서 숨을 돌리는 바람에 다른 두 명을 놓쳤다. 그들이 지금 자신을 공격해오고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어디, 어디지?’

몽설은 그들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물귀신, 수귀들이 소리 없이 공격해오는가? 수전 공격처럼 느낌도 없이 다가서나?

푸욱!

그녀 옆에서 물이 크게 튀었다. 그리고 한 사람, 아걸이 머리를 내밀었다.

“좋은데? 검이 많이 날카로워졌어.”

몽설은 마음이 확 풀렸다.

아걸이 나타났다는 것은 다른 두 명이 죽었다는 뜻이다.

“수룡방 맞지?”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몽설은 즉시 경계심을 높이고 주위를 훑어봤다.

수룡방이 나타났다는 것은 성검문이 직접 이차조사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성검문 고수가 지척에 있다.

현재 무림에 나온 성검문 고수 중 최고수는 단연 삼군이다. 몽설이 아는 한도에서는 그렇다.

“삼군 이길 수 있어?”

몽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물었다.

아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가 묻는 말도 듣지 않았다. 그는 이미 물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스으읏! 꾸루루루룩!

아걸은 미끄러지듯 물살을 헤쳐나갔다.

수룡방 수귀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자신이 죽인 자만 이미 일곱 명이다. 몽설이 죽인 두 명까지 합치면 아홉 명이다.

수귀 한두 명이 나타났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아홉 명이나 된다면 작심하고 몰려온 것이다.

수룡방 잔존자는 백삼십 명.

내부 골육상쟁이 벌어질 당시, 세의 불리함을 깨닫고 성검문에 몸을 의탁한 제삼분파 잔존자들이다.

당시 투신을 반대했던 자들은 동문 손에 참살되었다.

성검문은 이들을 받아들이면서, 장강을 말끔히 청소해버렸다.

수룡방은 골육상쟁으로 멸문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수룡방에 투신하는 조건으로 청소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다른 분파를 모두 없애고, 자신들이 패권을 쥘 생각이었다.

물론 이들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장강을 돌려받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성검문을 위해서 이렇게 피를 흘려야 한다.

백삼십 명 중 아홉 명이 이곳에서 죽었다.

몇 명이 더 왔을지는 모른다. 아마도 절반 이상은 몰려왔을 것이다.

‘적랑대가 노출되었다!’

수적들은 바보가 아니다.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그래도 어딘가 틈이 보였던 듯하다.

그들이 성검문에 연락했고, 성검문은 이들을 보냈다.

삼군도 곧 온다.

삼군에게 연락이 늦게 취해진 것은 아니다. 모르기는 해도 수룡방보다 삼군에게 먼저 연락이 취해졌을 것인데, 삼군보다 수룡방이 먼저 왔다.

삼군은 적랑대를 몰살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남의 손을 빌린다. 성검문 무인이 검을 든 게 아니라 수적들에게 당한 것이 되어야 한다.

적랑대는 이로써 완전히 사라진다.

지금쯤 수룡방도 대부분은 수구진에 올라섰을 터이다. 미친 듯이 낫을 휘두르고 있을 것이다.

적랑대는 염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존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겠지만, 그래도 탈출할 수 있는 여우굴이 있다. 무려 반백 년을 도망만 다닌 사람들이다.

문제는 자신들이다.

‘삼군.’

잠수하기 직전, 몽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삼군을 이길 수 있어?

다른 때 같으면 이길 수 있다고 말하겠다. 소축십검은 조명십해를 십분 깨우치지 못했다.

팔군 조추한과 싸워본 후 알게 된 사실이다.

소축십검이 조명십해를 깨우쳤다면 죽은 사람은 조추한이 아니라 자신이었을 게다.

소축십검, 이길 수 있다.

다만, 몸이 완전히 낫지 않았다. 진기를 쓸 수 있고, 싸울 수 있지만 최상의 상태는 아니다. 손과 발을 묶어놓은 듯 몸이 무겁게 움직인다.

그때, 물속에서 동그란 물체를 찾아냈다.

바위와 흡사하기도 하고, 보자기를 뭉쳐놓은 것 같기도 하다.

아걸은 망설이지 않고 반철도를 쳐냈다.

슈우우웃!

아걸이 공격하자, 둥그런 물체가 꿈틀거렸다. 급히 웅크리고 있던 곳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쓔우우우욱!

반철도가 막 움직이려던 물체를 갈라냈다.

피가 뿜어진다. 안으로 꽉 웅크렸던 사지가 활짝 펼쳐진다. 놀라서 부릅뜬 눈도 보인다.

‘여덟!’

수룡방도 한 명을 또 저승으로 보냈다.

* * *

느낌이 좋지 않다. 뒤통수가 간지럽다. 기분 나쁜 사람이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스읏!

몽설은 불쾌한 느낌이 일어나는 순간, 즉시 몸을 휘돌렸다.

몸이 급하게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먼저처럼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침착하게 숨부터 들이켠 후, 물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슈우우우웃!

수전이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갔다. 조금만 늦게 몸을 움직였어도 수전에 꿰뚫렸을 것이다.

퍼억!

수전이 수면에 다다르자 거세게 폭발했다.

몽설은 즉시 수면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이번에도 그녀를 가로막는 자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쳐다보지 않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

푸왁!

물 밖으로 나오면서 맑은 공기를 들이켰다.

수룡방 수귀들이 공격을 해왔어야 한다. 그런데 공격하지 않는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주위로 붉은 피가 확 번졌다.

아걸이 물속에서 싸우고 있다.

그녀가 가는 길을 안전하게 보호해준다. 수귀들의 공격을 철저하게 차단한다.

아걸이 있는 한, 수귀 공격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 * *

“아!”

물 밖으로 나온 몽설은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수구진이 불타고 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불덩어리가 되어서 활활 타오른다.

수구진은 집과 집이 연이어있다. 마을 전체가 지붕 하나로 엮여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서너 집이 지붕 하나를 쓰기도 한다.

제일 먼저 회족 여인이 생각났다.

마을에 머물면서 유일하게 접촉했던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있는 곳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사할까?

스읏!

물결이 출렁거리더니 아걸이 머리를 내밀었다.

“마을이…… 불타.”

몽설은 아걸을 보자마자 아픈 마음을 드러냈다.

“걱정하지 마. 바퀴벌레가 몰살되는 한이 있어도 적랑대는 몰살당하지 않아.”

“몰살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죽는게 문제지. 더욱이 저 사람들, 우리 때문에 당하고 있잖아.”

아걸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적랑대가 멸문된 지 무려 반백 년이야. 까마득한 전 세대 이야기지. 그런데도 아직 적랑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고, 모두 없애려고 해. 왜 그런지 알아?”

“……?”

몽설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걸을 쳐다봤다.

“적랑대가 한창 전성기일 때, 무림 반이 아작났다는 말이 있어. 그만큼 살행이 짙었어. 말만 들어도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잖아. 그러니 치가 떨리는 거야. 지금의 적랑대는 그때의 적랑대가 아닌데도 마찬가지. 한 번 나쁜 놈으로 낙인찍히면 영원히 이 꼴이 돼. 무림에 적랑대 자리는 없어.”

아걸이 불타는 수구진을 쳐다봤다. 그리고 말했다.

“곧…… 나도 취화원도 적랑대처럼 낙인찍힐 거야. 우리가 설 자리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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