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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74화 (74/600)

#74화. 第十五章 일단승(一段昇) (4)

스읏! 스읏! 스으으읏!

강에서 둥그런 물체들이 떠올랐다.

물체는 곧 사람 형태로 변했다. 사지가 쭉 펴지더니 물살을 헤치며 강변으로 올라섰다.

한 명, 한 명…… 또 한 명.

거의 서른 명에 육박하는 수귀들이 강변을 디뎠다.

그들은 일남일녀가 사라진 숲을 노려봤다.

“쫓을까요?”

“됐다. 우린 여기까지야.”

수귀 중 한 명이 차게 말했다.

“형제들이 예상치 못하게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복수해야 합니다.”

“가슴에 새겨라.”

“…….”

“아걸, 몽설. 이 두 명은 영원히 수룡방의 적이다. 이 둘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 모든 물건들이 적이다. 이제 저놈들은 어떤 물에서도 편히 있지 못할 것이다. 피해는?”

“스물일곱입니다. 아걸에게 당한 형제가 스물다섯, 몽설에게 당한 형제가 둘. 황당하지만…… 미도미검(未刀未劍)입니다. 형제들의 시신은 수습했습니다.”

“미도미검. 음…!”

수귀가 침음했다.

물귀신이라는 그들이 상대방의 도법, 검법을 알아보지 못했다.

저 둘은 놀라운 무공을 펼친다. 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무공이다. 저런 무공과 흡사한 무공도 생각나지 않는다. 완전히 생소한 무공이다.

삼군의 손아귀를 빠져나왔다고 들었다.

그때부터 이번 추격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추격에 나서면서도 뒷간에 갔다가 밑을 안 닦고 나온 것처럼 찜찜했다. 그래서 둘을 만나면 지켜만 볼 생각이었다.

어쩌다가 싸움이 벌어졌다.

보고만 있으라고 했는데, 잡을 생각을 한 자들이 있다.

하기는…… 자신도 이 정도면 잡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한 자들이었다. 더욱이 사내는 심한 부상을 당한 듯 몸이 무거웠다.

잡겠다고 나선 수귀들이 충분히 이해된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자신의 생각대로 지켜보기만 했어야 한다.

그래서 더는 추격하지 않는다. 땅은 수룡방의 영역이 아니니 거리낄 것도 없다.

“전서를 띄워.”

“넷!”

“미도미검 부분을 집중적으로 적고 피해 사실도 그대로 적어. 예순이 왔는데 스물일곱이 죽었으면 할 만큼 한 거지. 우린 할 일 다 했다. 돌아간다!”

수귀가 뒤돌아서 다시 물속으로 걸어갔다.

* * *

숲에 관이 놓여 있다.

관이 한두 개가 아니다. 공동묘지도 아닌데 숲 곳곳에 관이 놓여 있다.

“상문객(喪門客)!”

몽설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몇 개?”

아걸이 불쑥 물어왔다.

“응? 뭐가?”

“지금까지 관이 몇 개 있었는지 헤아려봤어?”

“마흔일곱 개. 이제 이런 시험 그만하지? 이래 봬도 취화원 원주인데 시험이 너무 지나치지 않아?”

“하하, 그래, 이제 그만하지.”

아걸이 웃었다.

그러자 몽설이 방긋 웃으면서 아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말했다.

“고마워.”

“뭐, 뭐가?”

아걸은 몽설이 바짝 얼굴을 붙이자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몽설이 말했다.

“뭘 점검하는지 알아. 니환일검이 흩어지는지, 잘 고정되어 있는지 살피는 거잖아. 시험을 그만해 달라는 말은 그냥 한 말이고, 계속 지켜봐 줘. 든든해.”

“알았어. 알았으니까 얼굴 좀…….”

아걸이 자신의 머리를 뒤로 뺐다.

“호호호! 이 정도에 당황하는 걸 보면 여자를 만난 경험은 없다고 봐야겠네?”

“뭐, 뭣!”

“호호호! 호호호호!”

몽설이 깔깔거리면서 밝게 웃었다.

숲에는 관이 마흔일곱 개나 놓여있다. 관에는 상문객이라고 불리는 살인마들이 누워있다.

상문객은 사계(死界) 제일빈객(第一賓客)으로 불린다.

귀신들이 최고로 반기는 존귀한 손님이라는 뜻이다. 귀신들에게 먹이가 될 시신을 듬뿍 안겨주기 때문이다.

상문객은 하수, 중수, 상수가 있다.

구분하는 방법은 매우 쉽다.

십살(十殺)은 상기(喪旗)요, 이십살(二十殺) 인관(引棺)이며, 삼십살은 입관(入棺)이다.

열 명을 죽이면 상기가 주어진다. 상갓집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귀신을 영접할 자격이 없다. 깃발만 들고 다녀라. 죽음을 알려라.

이십살을 이루면 인관이다. 관이 주어진다. 하지만 관을 사용할 자격은 없다. 관을 질질 끌고 다녀야 한다. 죽음을 절실히 느끼면서 다닌다.

삼십살을 넘기면 비로소 입관이다. 관속에 드러누워서 쉴 수 있다. 잠도 관 속에서 잔다. 죽음과 더불어서 산다. 그만큼 죽음을 알아버렸으니까.

관이 마흔일곱 개, 입관 마흔일곱 명이다.

이들이 죽인 숫자를 모두 합하면 무려 천오백 명에 이른다. 입관부터는 수를 헤아리지 않으니 그보다 훨씬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덜컹! 덜컹! 덜커덩!

관이 열렸다.

안에는 사람이 들어있다. 물론 살아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처럼 뻣뻣하다. 안색도 창백하다 못해서 시퍼렇다. 햇볕을 전혀 보지 않은 얼굴이다.

관 뚜껑이 열렸는데,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눈을 꼭 감은 채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다.

“욱!”

갑자기 몽설이 구역질을 하며 물러섰다.

목관이 열리자 시신 썩는 냄새가 강하게 풍겨 나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곧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시독(屍毒)이야. 호흡정지.”

아걸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몽설은 이미 호흡을 정지한 채 시신들을 노려봤다.

“킥킥! 킥킥킥!”

목관 안에 누워있던 시신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면서 일어나 앉았다.

두 눈이 뱀눈처럼 녹광(綠光)이다. 입술은 너무 붉어서 인주를 묻혀 놓은 것 같다. 피부는 분을 바른 듯 새하얗고, 혀는 완전히 새카맣다.

이들이 수련한 공부는 음간접문공(陰間接吻功)이라고 한다. 죽음의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수련하는 공부다.

이들은 음간접문공을 수련하기 위해서 시신을 옆에 끼고 산다.

죽은 자와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시신이 부패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열중해서 시기(尸氣)를 받아들인다. 또한 시신으로부터 시독도 추출한다.

이들은 사도(邪道)다.

무림은 이들을 보면 즉시 척살한다. 음간접문공이라는 윤리를 벗어난 비상식적인 무공을 수련하기 때문이며, 음간접문공을 수련한 자는 정신상태도 사이해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떻게 성검문 추격에 동참한 것일까?

만일 이들을 성검문이 동원한 것이라면, 성검문은 무림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무림 동도가 성검문 현판을 떼어내도 할 말이 없게 되는 중대한 문제다.

“시독을 주의해.”

“호(好)!”

몽설이 낭랑하게 말하면서 신형을 띄웠다.

* * *

퍽! 퍽!

반철도로 가슴을 갈랐다. 하지만 갈라지지 않는다. 가슴이 갑옷을 입은 것처럼 단단하다.

음간접문공의 효과다.

육신을 시기로 가득 채워서 탄력을 죽인다. 피부를 딱딱하게 경직시킨다. 그러면 외가무공인 철포삼(鐵布衫)과 흡사한 단단함이 갖춰진다.

“오늘 정말 화나게 하네.”

쉬잇!

아걸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쉿! 쉿! 쉿!

신형을 띄워 올림과 동시에 구절편(九折鞭)이 따라붙었다.

칼도 따라붙었다. 등을 그으며 지나간다. 머리에도 예기가 느껴진다. 큰도끼, 대부(大斧)가 찍어온다.

파앗!

아걸은 흔들림 없이 반철도를 내리찍었다.

이십일대 일홀문주의 칼, 낙화도가 떨어졌다. 상문객의 정수리를 반으로 쪼개간다.

쉬릭!

등을 노리며 달려들었던 칼이 발밑을 스치며 지나갔다. 대부 역시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을 내리찍었다. 가장 먼저 달려들었던 구절편만이 반철도를 가격했다.

타앙!

구절편이 절반으로 싹둑 잘렸다. 그리고 이어진 칼에 상문객의 머리가 반으로 쭉 갈라졌다.

음간접문공도 낙화도에게는 베인다.

취릿! 취릿! 탕탕탕! 탕탕탕탕!

상문객의 공세가 거세게 몰아쳤다.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달라붙는다.

“후웁!”

몽설은 차분하게 니환일검을 펼쳐냈다.

그녀에게 여섯 명이 달라붙었다. 여섯 명이 합공 전문가처럼 맹렬하게 병기를 쳐온다. 그녀가 여섯 명에게 포위되어 있기 때문에 공격하기도 쉽다.

일단, 포위망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몽설은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도 빠르지만 상문객도 빠르다. 검 한 자루로 여섯 명의 급공을 간신히 받아냈다. 각기 삼십살 이상 살인 경력을 가진 살인마들을 힘겹게 상대했다.

하지만 조금 더 냉정하게 지켜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몽설의 숨이 거칠지 않다. 상문객의 공격은 그야말로 빛살처럼 빠른데, 매우 차분하게 상대한다.

그녀의 검은 공격의 맥을 끊어버린다.

상대방의 병기가 미처 다가오기 전에 길목을 끊어버리고 다음 병기에게 달려든다.

상문객은 요란하게 공격하는 듯하지만 실은 전혀 소득이 없다.

그 사이, 한쪽에서는 계속 상문객이 죽어갔다. 한 명씩…… 느리게 죽지만, 벌써 여덟 명이나 쓰러졌다.

아걸의 칼을 일격필살이다.

상문객이 음간접문공을 수련했기 때문에 패도(覇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바위도 쪼개버리는 강력한 칼!

상문객이 제아무리 단단해도 쓰러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 * *

‘……이놈 봐라?’

서리형개는 피식 웃었다.

아걸이 더 강해졌다. 자신에게 당했던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됐는데, 그사이에 부쩍 성장했다.

한 달 전에는 초식을 흉내 낸다는 느낌이 강했다.

지금도 미숙하다. 하지만 훨씬 나아졌다. 그래도 지금은 제 칼을 쓴다는 느낌이다.

‘후후! 사부가 고른 놈이라 다르긴 다르군. 사부의 실수는 동박 하나뿐이었나.’

서리형개는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싸움 구경을 했다.

상문객은 죽을 자리를 찾아왔다. 상문객이 입에 달고 사는 죽음이 아니라 진짜 죽음이 찾아왔다.

저들은 모두 죽는다.

성검문이 상문객을 썼으니 이겨도 죽고, 져도 죽는다. 지면 아걸 손에 죽는 것이고, 이기면 삼군 손에 죽는다. 모두 죽일 생각으로 저들을 쓴 것이니까.

삼군도 저들이 아걸을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일홀도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볼 생각으로 사도인을 동원한 것뿐이다.

“더 강해져라. 사실 너무 약했어. 더 강해진 후에 부딪혀야 진짜 맛이지.”

그는 아걸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

아걸이 팔군을 죽인 이상, 아걸은 성검문 몫이 되었다. 성검문에게 재차 협조를 구하지 않는 한 공격할 수 없는 입장이다. 허도기를 무시할 수 있다면 모르겠거니와.

그것보다…… 여자! 여자가 심상치 않다.

“혈검경을 사용한다…… 취화원 살수 몽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왜 네게서 죽은 현정부인의 무공이 나타난 건데? 후후! 성검문도 꽤 골치 아프게 생겼는데. 재미있겠어.”

서리형개가 웃었다.

그는 혈검경을 알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인 중 한 명이다.

젊은 시절 사부의 몸에 칼을 대기 전, 이초결검 허도강의 조명천검과 현정부인의 혈검은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당시, 일홀도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검이었다.

몽설의 무공이 급진전한 것은 이상하지 않다.

몽설 곁에 아걸이 있지 않나.

일홀문도는 무공을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 어떤 무공은 기수식만 보고도 장단점을 파악해낸다. 그 정도의 눈썰미는 지니고 있어야 일홀문도다.

아걸이 수련을 도와줄 수는 없다. 하지만 십 년에 걸쳐서 깨달아야 할 무리(武理)를 단박에 깨우쳐 줄 수는 있다. 운이 좋으면 기연도 만날 수 있을 터이고.

몽설을 보니 기연을 얻은 것 같다.

임독맥타통(任督脈打通)?

내력이 수배로 강해지고, 초식도 정교해진 것을 보면 상당한 기연을 얻었다.

혈검!

“후후후!”

서리형개는 아걸과 몽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흥미로운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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