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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76화 (76/600)

#76화. 第十六章 탈출(脫出) (1)

“내가 죽는다?”

삼군 산묘 신도파가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봐도 아걸이 불리한 상황이다.

아걸은 칼을 들기도 힘들 만큼 탈진했다. 다급하게 운공조식을 취해서 진력 일부를 회복한 모양이지만, 그 정도로는 천하가 알아주는 검객을 상대할 수 없다.

“훗! 싸우고 싶으면 싸우는 거지.”

아걸이 싱겁게 웃으며 반철도를 빙글 휘돌렸다.

휘릭!

반철도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이놈!’

신도파는 눈빛을 와락 찌푸렸다.

칼에서 일어나는 경풍이 매우 날카롭다.

날카롭기는 하되 난폭하지 않다. 지극히 정제되어서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날카롭다. 내력이 정순하지 않으면 펼치기 힘든 움직임이다.

고수는 숨 쉬는 모습만 봐도 상대방의 무공을 알아볼 수 있다.

아걸은 진력을 회복했다.

숨 몇 번 몰아쉴 시간밖에 주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탈진에서 벗어났다.

‘내가 질 수도…….’

삼군의 눈꼬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상대가 풍도곡 망나니들이었다면 망설일 이유도 없이 즉시 물러났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아걸이다. 아직 풋내기다. 이런 꼬마에게 겁을 먹는다는 것은 소축십검 위신 문제다.

스읏!

신도파가 아걸에게 검을 겨눴다.

“네 칼이 피 맛을 볼지, 내 검이 피 맛을 볼지…… 해보자고.”

슛!

검광이 번쩍 빛을 토해냈다.

순간, 세상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온 세상이 새카맣다. 검광이 너무 밝아서 세상이 어둡게 보인다.

슷! 슈각!

아걸이 상반신을 옆으로 비틀었다. 동시에 새파란 검날이 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조명천검 중 직사광류다.

직사광류는 ‘빛의 흐름’이라고 말할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조명천검 중 제일 빠른 검초는 아니다. 직사광류보다 두 배는 빠른 검초가 있다.

슛!

검초가 밑으로 뚝 떨어졌다.

아걸은 뒤로 반 보 물러섰다.

마음 같아서는 한 걸음 정도 물러서고 싶은데, 그만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슈각! 찌이익!

검이 옷을 찢으며 흘러갔다.

비조복개, 하늘을 나는 새조차도 방으로 갈라버린다는 쾌검 중 쾌검이다.

촤라락!

삼군의 검초가 현란하게 움직였다.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가 하면, 갑자기 머리를 노리고 훅 달려든다. 아니, 머리가 아니다. 가슴을 노리고 사선으로 내리긋는다.

검이 상상할 수 없는 각도에서 쳐온다.

터턱! 턱!

아걸은 재차 뒤로 물러섰다.

신도파가 검초를 전개한 이후, 계속 물러서기만 한다. 칼을 들어서 이렇다 할 반격조차 취하지 못한다. 삼군이 칼을 들어 올릴 만한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슛!

매우 강력한 힘이 가슴을 노리고 밀려왔다.

아걸은 칼을 들어서 즉각 반격했다.

이번에는 쾌검이 아니라 중검(重劍)이다. 그래서 요행히 칼을 들어 올릴 만한 시간을 찾았다.

까앙!

검과 칼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순간,

쉬릭!

검초가 칼날을 타고 쭉 미끄러졌다.

고동(古銅: 방패막이)을 깨트리고,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듯이 쏜살같이 흘렀다.

아걸은 즉시 칼을 밑으로 떨궜다.

검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다. 검신이 고동을 치지 못하게 옆으로 비틀어 올린다. 그 순간,

츄릿!

검이 칼을 반으로 갈라버릴 듯이 직각으로 꺾이더니, 칼날 밑으로 훅 파고들었다.

조명천검에는 조명십해라는 무리(武理)가 숨겨져 있다. 조명십해를 깨닫는 자만이 진정한 조명천검의 주인이다. 그래서 조명십해를 깨달은 자는 더는 조명천검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검은 조명십해라고 부른다.

은장재계이살(隱藏在溪裏殺)!

가벼운 검초 속에 진실한 검을 숨긴다. 상대방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매서운 검초인데, 사실 숨은 검이 더 매섭다. 칼날을 미끄러진 검은 허초다. 실초는 가슴을 베는 검이다.

“훅!”

아걸이 급하게 숨을 토해내며 물러섰다.

찌이이익!

신도파의 검이 가슴을 길게 그어 내렸다. 아걸의 웃옷을 쭉 찢어냈고, 가슴살까지 후벼 팠다.

“후후후! 내 검이 먼저 피 맛을 봤네?”

신도파가 웃었다.

신도파는 소축십검 사이에서 산묘라고 불린다. 살쾡이를 연상할 만큼 신법이 빠르고, 성정이 포악하다.

그는 찰나에 무려 십삼 초를 전개했다.

엄청난 빠름, 괴력, 잔인함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졌다.

아걸은 다섯 걸음이나 물러섰다. 옷이 걸레 조각으로 변했고, 가슴에서는 피가 흘러내린다.

“……놀라운 검이군.”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조명천검은 일홀도를 이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공 중 하나이…….”

“불행하게도.”

아걸이 신도파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넌 너무 느려. 너무 약하고, 너무 딱딱해.”

“뭐라? 지금 네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내가 말하는 것은 내 기준이 아니야. 일홀도 기준이지. 조명천검은 일홀도를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당신은 아냐. 당신은 조명천검을 욕되게 할 뿐이지.”

“그런 검에 죽어봐!”

쒜에에엑!

검초가 보이기도 전에 검풍부터 일어났다.

‘십칠연검!’

아걸은 즉시 수신도를 펼쳤다.

칼을 몸에서 한 뼘 정도 띄우고 휘돌린다. 칼이 만든 벽으로 철옹성을 세운다.

까깡! 깡깡깡! 까강!

아걸의 몸 주위에서 파란 불똥이 튀었다.

신도파는 검에 전력을 실었다. 아걸이 칼로 몸을 보호하는 순간, 검으로 짓뭉갤 생각을 했다. 검에 실린 힘이 칼에 튕길 수 있다. 아니면 칼을 뭉개고 놈을 찌를 수도 있다.

까앙! 깡!

검이 칼벽에 부딪쳐서 퉁겨졌다. 하지만 검은 연속적으로 타격을 가했다. 한 번 공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달아서 열일곱 번이나 타격을 가했다.

깡!

십칠연검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검은 드디어 칼벽을 깨트렸다.

아걸의 손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수신도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흐느적거렸다.

탈진한 내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최소한 하루 정도는 푹 쉬어야 회복될 정도로 심각하게 탈진했는데, 잠시 운공했다고 팔팔 날뛸 수는 없다.

퍽!

검이 또 살을 파냈다.

아걸은 휘청거리면서 물러섰다.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마지막 일검이 칼 벽을 뚫고 들어가서 가슴살을 저며냈다.

“아걸!”

몽설이 빽 고함지르며 다가서려고 했다.

아걸이 손을 들어서 그녀를 제지했다. 부릅뜬 눈을 신도파에게 고정한 채.

몽설은 다가오지 못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싸움에 가담하고 싶은데, 아걸이 오지 말라고 한다.

그녀는 아걸을 믿는다. 절대적으로 믿는다.

“방금 펼친 검은 조명천검이었다. 이제 십칠연검을 조명십해로 펼치려고 해. 그럼 어떤 검이 되는지 알아? 천검(天劍)! 천신의 검이 되는 거야.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스읏!

신도파가 검을 들었다.

그런데…… 환각일까? 검신에서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내기(內氣)와 공기가 마찰하고 있다.

신도파는 이번 일격에 아걸을 벨 심산이다. 검초는 중검이다. 무거운 검을 쓴다. 아걸이 내력에 한계를 보이니,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후욱!”

아걸이 숨을 토해냈다.

쉬잇! 슷! 쉬잇! 슷!

움직이고 있구나 하면 멈춘다. 멈추는가 하면 다시 움직인다. 움직이고 멈추는 행동을 반복하는데, 사실 무척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벌써 코앞이다.

쒜에에엑!

검풍이 일어났다. 검은 보이지 않고, 검에서 풍기는 예기가 살을 후벼 팠다.

성검문 십이보법 중 하나인 이환보에 이은 삼점동타(三點同打)다.

검으로 찌르는 직자검(直刺劍)인데, 상중하 세 곳을 같은 순간에 찌른다.

소축십검이 펼치는 삼점동타는 막기가 어렵다. 목표가 상중하로 완전히 벌어져 있는데, 어떻게 해서 ‘동(同)’이라는 말이 쓰이는지 너무 잘 보여준다.

아걸은 훌쩍 물러섰다.

신도파는 계속 아걸을 따라붙었다. 아걸이 물러설 것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츄릿! 츄리리릿!

삼점동타가 계속 이어졌다.

한 번 찌르고, 두 번 찌르고, 세 번째 찔러왔다. 상중하 세 곳에 세 번째 가격되었다.

머리, 가슴, 단전.

머리, 심장, 췌장.

머리, 폐, 하복부.

“이제 꺼져!”

신도파가 일갈을 내질렀다. 동시에 검초를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삼점동타가 아니라 머리 위에서 크게 휘둘러 사선으로 내리긋는 검초, 비연폭강(飛燕瀑降)이다.

검을 머리 위에서 크게 휘두르나, 움직임이 크지는 않다. 손목을 이용해서 휘돌리기 때문이다.

연후, 검을 내리그으면 속도 면에서 세 배 이상 빨라진다.

원호(圓弧)를 하지 않고 내리긋는 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빠름이 생긴다.

제비가 하늘에서 내리꽂혔다.

검이 폭포…… 물줄기를 따라서 뚝 떨어진다.

조명천검 중 제일 쾌검은 비조복개다. 하지만 비연폭강이 훨씬 빠른 것 같다.

이 순간, 아걸은 침묵했다.

일절 움직이지 않는다. 숨조차 쉬지 않는 듯 고요한 정적 속에 휘감겨 있다.

어떻게 보면 비연폭강을 보지 못한 사람 같다.

검을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검이 너무 바싹 다가왔다. 아걸과 신도파의 몸이 한 덩어리로 보인다. 순간,

팟!

반철도가 섬뜩한 한광을 뿌렸다.

신도파의 검을 막은 것이 아니다. 곧바로 신도파의 몸뚱이를 격타했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울리고…… 신도파가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신형이 금방이라도 앞으로 꼬꾸라질 듯 위태해 보였다.

복부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바지를 흥건히 적시고, 땅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 이런! 빌어먹을!”

신도파가 중얼거렸다.

그는 아걸이 전개한 도초를 보지 못했다. 칼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느끼지도 못했다. 아! 하고 느꼈을 때는 칼이 이미 복부를 긋고 지나간 후였다.

‘어떻게 비연폭강을 뚫었지?’

뒤늦게 회의가 밀려들었다.

비연폭강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복부에 일격을 당한 후에도 검로를 잃지 않고 쫓아갔다.

검로 끝에 아걸이 있어야 한다.

왼쪽 목을 노렸고, 살을 찢은 검력이 내처 가슴뼈를 가르고 오른쪽 폐까지 갈라내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빈 허공을 훑었다.

아걸이 어떻게 피했지? 아니, 언제 칼을 쓴 것인가? 피한 것이 먼저인가, 칼을 쓴 것이 먼저인가?

그는 손으로 찢어진 배를 움켜잡고 신형을 돌려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이 칼을 들어 올렸다.

“나와 싸우면 죽는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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