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第十六章 탈출(脫出) (2)
일홀도는 적을 살려주지 않는다. 칼을 들었으면 반드시 둘 중 한 명은 죽는다.
일홀도가 잔인한 탓인가? 아니면 일홀도 초식이 알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반드시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는 전통 때문인가?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올린 이유는 명확하다.
아걸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와는 전혀 다른 뜻에서 칼을 들었다.
삼군 신도파는 싸울 능력을 잃었다.
아걸은 두 번이나 베였지만,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다. 상처도 크지 않고 피도 심하게 흘리지 않는다.
신도파는 딱 한 번 당했는데, 움직이기 힘들어 보인다.
갈라진 복부를 통해서 창자가 삐져나왔다.
왼손으로 내장을 꼭 붙잡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왈칵 쏟아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일홀도는 매우 치명적이다.
하지만 신도파는 여전히 검을 들고 있고, 진기를 끌어올리려고 애를 쓴다.
무인의 본능이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한다.
정신을 잃고, 혼이 빠져나가도 육신은 여전히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죽이려고 한다.
저벅!
아걸이 왼발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더 움직이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슈링!
그는 반철도를 휘둘러 등에 받쳤다.
뒤에서 공격하는 자를 막으려는 심산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인가?
“큭! 큭큭!”
신도파가 웃었다.
아걸이 공격하지 않는다. 검까지 등 뒤로 숨겼다.
신도파는 아걸이 공격하지 않자, 더는 싸울 뜻이 없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큭!”
그가 피식피식 웃으면서 몸을 움직였다.
신도파는 사리 판단을 하지 못했다. 아걸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혼이 반쯤 빠져나갔다.
복부에 당한 일격이 너무 치명적이라서, 잠시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당장 급한 게 지혈인데,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휘적! 휘적!
신도파가 비틀거리면서 걸어갔다.
아걸은 신도파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눈썹 한 올 움직이지 못했다.
‘살기!’
매우 강한 살기가 뻗어왔다.
누가 내뿜는 살기인지 모르겠는데, 자신 정도는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는 살기다.
악마가 내뿜는 숨결을 맡았다.
‘후우!’
아걸은 차분히 큰 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진기는 팽팽하게 끌어올리고, 감각은 예리하게 살기를 쫓아갔다.
어디에 숨어 있는가? 누구인데 이토록 강한 살기를 뿜어내는가?
‘신도파보다 강한 자!’
상대를 보지 않았는데도 어떤 자인지 읽힌다. 신도파와 자신을 합친 것보다 강한 자다. 살기를 접하니 사슴이 호랑이를 감지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상대가 공격해 오면 막지 못한다.
‘서리가헌, 형개, 허도기.’
무림에서 이만한 살기를 뿜어낼 수 있는 자, 당장 세 사람이 생각난다.
허도기가 이런 척박한 땅에 올 리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허도기는 무림에 혈검경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현정부인, 죽은 형수의 무공이 나타났으니, 이 사실은 삼군이 보고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보고한다.
다른 일이라면 무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정부인의 무공이 나타났다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당장 어떻게 된 일인지 사실 여부를 확인할 것이다.
서리형개는 얼마 전에 마주쳤고…… 서리가헌이 왔나?
‘……사형이 왔다면 죽는다.’
아걸은 살기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예의 주시했다.
아걸이 반철도를 등에 대고 방어태세를 취하자, 몽설은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는 걸 즉각 알았다.
“왜? 무슨 일이야!”
몽설은 황급히 아걸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곧 신형을 멈췄다.
아걸이 무섭게 긴장하고 있다. 몸을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눈빛이 핏빛으로 붉게 충혈되어 있지 않은가.
‘집중을 방해하면 안 돼.’
그녀는 오히려 숨까지 죽였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분명히 누군가가 있는 거야!’
그녀는 진기를 일으켜서 니환궁에 있는 검을 일깨웠다.
니환일검은 자각 능력이 있다. 니환일검이 깨닫는 자각능력 또한 그녀의 감각이지만, 그녀가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부분을 보게 해준다.
파앗!
니환일검을 강하게 일으켜서 적이 있는지 느껴봤다.
‘없……는데?’
적은 없다. 적어도 니환일검이 가리키는 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적은 있다. 그러니 아걸이 저토록 긴장하고 있지 않나. 삼군과 싸울 때도 이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았는데, 그때보다 훨씬 더 긴장한다.
‘누구지?’
그녀는 진기를 풀고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진기를 터질 듯이 이끌어 올린 채 기류를 살핀다.
몽설은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기다렸다.
아걸을 방해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 * *
‘강해졌네. 정말로. 후후!’
서리형개는 웃었다.
자신과 마주쳤을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그때는 살기를 쏘아 보내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지금은 살짝만 흘려보냈는데도 당장 알아채고 방비한다.
물론 아직은 어린 풋내기다.
‘뭐였지? 십삼대 문주가 사용했다는 단도격타와 흡사했는데…… 그것보다 짧았어.’
서리형개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아걸을 쳐다봤다.
그는 지금 아걸이 전개한 도법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삼군이 펼친 비연폭강은 매우 절묘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각도에서 매우 빠르게 덮쳤다. 날아오는 빛살을 쪼갤 만한 쾌도가 아니라면 감당하지 못한다.
유일한 방어는 물러서는 것뿐.
아걸이 물러서지 않고 버텼을 때, 남은 일은 죽음뿐이었을 것이다. 아걸이 칼을 쓰겠지만 비연폭강을 막지는 못한다.
죽었군. 개죽음인데?
서리형개는 아걸이 왜 개죽음을 선택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비연폭강이 몰려오기 전에 몸을 빼낼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 있었고, 일홀문도라면 그런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런데 아걸은 놓쳤다. 본인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때, 도광이 퍼졌다.
매우 짧은 단타였다.
손가락 한 마디를 툭 튕겨서 만들어 낸 초식처럼 짧고 빠르다.
형식은 없다. 칼날만 아주 짧게 움직였다. 정확하게 비연폭강이 만들어 낸 검로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가장 가까운데 있는 살을 베어냈다. 복부!
서리형개는 칼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분명히 봤다.
형식이 없는 칼, 자유분방한 칼, 오직 감각으로 펼쳐낸 칼!
일홀도!
역대 일홀문주는 모두 자신만의 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칼에 이름을 붙였다.
십이살환도, 유성비도, 회륜도 등등.
하지만 역대 문주의 칼을 초식이나 무공으로 대하면 아주 큰 오산이다.
일정한 형식이 있는 듯하지만 없다. 초식 자체가 없다. 오직 감각으로 펼친다. 내 마음대로, 칼이 가는 대로 궤적을 그려내는 것이 일홀도다.
제일대 일홀문주는 환부살도 십육식 백이십팔초를 구사했다.
그것이 초식인가? 아니다. 초식으로 생각하고 환부살도를 보면 오직 초식밖에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백이십팔초밖에 구사하지 못한다.
일홀도의 관점에서 환부살도를 보면 초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십육식이 아니다. 천식, 만식도 될 수 있다. 마음 가는 대로 펼치는 도법인데, 초수에 제한이 있을 리 없다. 칼을 들어 올리는 것도 일초, 내리는 것도 일초다.
아걸이 그런 우(愚)를 범했다.
자신과 싸울 때까지만 해도 아걸은 역대 일홀문주들의 칼을 초식으로 봤다.
아걸은 매우 능숙하게 초식을 펼쳐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이다. 당할 자가 거의 없다. 동박도 그런 칼에 당하지 않았나.
하지만 자유롭게 흘러 다녀야 할 칼을 초식으로 규정하고 수련했다. 본인 스스로 철창을 만들고, 우리 속으로 기어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사부가 일홀도를 전수하면서 가장 경계한 점이 이것이다.
절대 초식에 갇히지 마라. 초식을 수련하려고 하지 마라. 몸을 칼로 만들어라.
우리에 갇힌 자가 자유분방한 자와 싸우면 어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랬는데…… 아걸은 신도파와 싸우면서 매우 자유롭고 활발한 칼을 구사했다. 역대 문주들의 칼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터득한 칼인 것 같다.
터득? 아니다. 허울을 벗어버리고 일어섰다.
딱 한 번, 멀리서 잠깐 본 것만으로는 정확하게 일홀도인지 단정 내리기 힘들다.
그래도 서리형개는 일홀도라고 확신한다. 아걸의 칼을 보는 순간에 ‘일홀도!’라는 느낌이 확 일어났다.
‘후후! 사부가 살아계셨다면 서리 성을 주었겠군. 정식으로 이름을 받았겠어. 드디어 일홀도의 주인이 된 건가? 그럼 일홀문도가 세 명이군. 하하하!’
서리형개는 소리 없이 웃었다.
일홀문도가 세 명이라도, 일홀문주는 오직 한 명이다.
일홀문도는 세 명, 네 명, 다섯 명일지라도 일홀문주는 언제나 한 명이었다.
다른 일홀문도는? 죽었다. 사형, 사제 손에 죽었다.
일홀도는 오직 하나뿐이어야 한다.
죽기 싫으면 일홀도라는 말을 쓰지 말고 일홀도의 주인에게 충성하면 된다. 서리 성을 버리고, 일홀도라는 말을 꿈꾸지 말고, 서리가헌에게 충성하면 목숨을 부지한다.
하지만 일홀문 역사상 그런 전례는 없었다.
일홀도를 얻은 자는 모두 최강이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다른 자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서리가헌, 서리형개, 아걸!
셋 중 둘은 죽어야 한다.
‘너는 살려주지. 혈검경에 일홀도라. 너를 잘 이용하면 허도기를 끝낼 수 있겠어. 네 놈이 풍도곡을 벗어날 기회를 만들어 주는군. 하하하! 이런 기회는 흔치 않지.’
서리형개는 소리 없이 웃었다.
* * *
‘사라졌다!’
아걸은 비로소 등에 댔던 반철도를 풀었다.
삼군 신도파는 보이지 않는다. 미지의 살기에 신경을 쓰는 동안 휘청거리며 사라졌다.
“휴우!”
아걸이 비로소 묶은 숨을 토해냈다.
쉬익!
바람 소리가 일어나며 몽설이 달려왔다.
“뭐였어?”
그녀가 미처 신형을 세우기도 전에 질문부터 던졌다.
“살기.”
“살기……?”
“공격해 왔다면 이길 수 없는 살기.”
“살기로 그렇게까지 판단할 수 있어? 아무리 살기가 매섭다고 해도…… 하! 난 아직 멀었구나.”
몽설이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아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웃었다. 사실 그녀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는데.
신도파는 멀리 가지 못했다.
누군가의 봉분에 등을 기대고, 고개는 푹 떨군 채 앉아있다.
죽었다.
굳이 맥을 잡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복부를 움켜잡았던 손이 풀어져 있다. 갈라진 복부에서는 내장이 삐져나왔다. 한시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었을 검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생기는 사라지고 사기만 넘친다.
“그래도 살 줄 알았는데, 죽었네.”
몽설이 신도파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제부터 우린 정말 쫓길 거야.”
“지금까지는 가짜로 쫓겼고?”
“성검문, 아니, 전 무림이 우릴 쫓는다는 거지. 나도 쫓겠지만 주요 목표는 너야.”
“나? 내가 왜?”
“혈검. 혈검경은 성검문 전대 문주의 부인인 현정부인의 무공이야. 그걸 네가 사용하는 거고.”
“전부터 물어보려고 했는데, 혈검경이 왜 내 정혼 선물이 된 거야? 너와 성검문, 어떤 관계야?”
“나중에, 나중에 알려줄게.”
“아니, 지금 말해 줘.”
“지금 처한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해. 알아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나중에 말하자.”
아걸이 정말 말하기 싫다는 듯 먼저 앞서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