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第十六章 탈출(脫出) (3)
“이런!”
독안혈검 전가성은 아연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살쾡이가 죽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낯선 봉분에 등을 기댄 채 축 늘어져 있다.
‘말도 안 돼!’
전가성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사실인가 싶어서 눈을 끔뻑거렸다.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살쾡이가 죽었다.
“음!”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신도파가 아걸을 압송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아걸은 자신이 압송해야 한다.
소축십검 간에 소소한 암투가 벌어졌었다.
그렇다. 소소한 암투다. 아주 작은 암투다. 만약 누군가가 소축십검을 위협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암투보다 훨씬 진하고 강한 암투일지라도 당장 멈춘다.
암투 때문에 삼군이 죽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런데 지금…… 결과만 놓고 보자. 삼군 신도파는 암투 때문에 죽었다. 자신이 삼군 곁에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애송이에게…….”
할 말이 탁 막혔다.
신도파와 나눌 말이 많다. 살아있을 적에는 ‘재수 없는 놈’이었는데, 죽고 나니 정말 할 말이 많다. 한데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저벅! 저벅!
전가성은 신도파에게 걸어갔다.
무인은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죽었으니 인제 그만 땅에 묻어줘야 한다는 생각은 일반인에게만 해당한다.
삼군 신도파의 시신은 본문까지 호송된다.
이곳에서 자신이 사인을 살피고, 방부 처리를 한 다음에 본문에 보낸다.
그곳에서 다른 사형제들이 시신을 살필 것이다.
신도파를 죽인 칼이 어떤 것인지 모두가 똑똑히 보아야 한다.
신도파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인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전가성이 아니라 무공을 모르는 어린애도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사인이 분명했다.
“……일도.”
한 칼에 절명했다.
심장, 폐, 목, 머리 등 단칼에 죽일 수 있는 부위가 많다. 그런데 복부를 갈랐다.
‘신도파 정도 되는 무인의 복부를 벤다?’
매우 위험한 공격이다. 칼이 조금만 벗어나도 ‘사력을 다한 마지막 일격’을 당할 수 있다.
상대가 고수일수록 일격에 즉사할 수 있는 치명적인 부위를 노려야 한다. 기회가 닿지 않아서 즉사하지 않을 곳을 노려야 한다면 반격에 대비해야 한다.
아걸은 사력을 다해서 일도를 쳐냈다.
복부를 가른 힘에 망설임이 없다. 여력 같은 것은 남겨두지 않았다. 반격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건!”
전가성은 눈을 부릅떴다.
그는 즉시 허리를 굽혔고, 갈라진 복부를 손가락으로 쓸어가면서 상처를 감지했다.
살이 안으로 오므려져 있다.
살이 갈라지면 밖으로 찢어져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안으로 오므라들었다. 무척 빠른 칼이 지나간 흔적이다.
살이 벌어질 틈도 없이 수축하였다. 칼날에 스민 기운이 살을 움츠리게 했다.
“맞아! 그때 그 칼!”
이런 칼을 본 적이 있다.
활검문에서 일홀문의 흔적이라며 시신을 보내왔는데, 그때 가슴을 가른 칼과 도법이 똑같다.
활검문도의 가슴을 가른 병기는 작두였다.
신도파의 복부를 가른 병기는 칼이다.
병기가 다른데 흔적은 같다. 도법도 같다. 그리고…… 상대도 같다.
인간에게는 닭을 죽이는 일이나 오리를 죽이는 일이나 똑같은 일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죽인다. 돼지를 도살할 때와 소를 도살할 때도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죽이는 도구는 다를 수 있지만, 방법은 같다.
아걸이라는 인간에게는 전에 벤 활검문도나 신도파나 똑같은 하수였다.
소축십검 신도파가 활검문도와 같은 취급을 당했다.
아니, 활검문도를 죽일 때가 너무 과했었나?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았던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활검문도를 벨 때, 아걸은 돼지 잡는 칼을 사용했다. 닭을 베기에는 조금 과하지만,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도구는 아니었다.
활검문도의 시신을 보고 긴장한 소축십검은 없었다.
팔군 조추한의 시신을 보고는 다소 긴장했다. 하지만 팔군이 방심해서 당했다고 생각한 측면이 많았다.
삼군을 벨 때는 도구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호랑이 잡는 칼을 사용했다.
예전의 아걸이 아니다.
놀랄 만큼 발전해서 그 누구도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흉포한 칼이 되었다. 팔군을 죽였을 때는 하늘이 도왔는지 모르겠으나, 삼군을 죽인 것은 온전히 실력이다.
‘수룡방을 벗어나고, 상문객을 처리하고…… 삼군까지. 나라도 그렇게는 못 해.’
전가성은 긴 서신을 작성했다.
아걸을 압송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을 소상하게 적었다.
몽설이 아걸을 빼돌리는 데 도움을 준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그때, 자신이 삼군을 유인하지만 않았어도 삼군은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혈검에 관한 부분도 기재했다.
서신은 일종의 유언장이다.
지금부터 바로 아걸을 추격한다. 그리고 싸운다. 삼군처럼 죽을 수도 있고, 아걸을 잡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가 벌어질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긴 편지를 썼다.
사실, 이 서신에는 모종의 결의가 담겨 있다.
보고는 사실을 전하는 선에서 그칠 수 있었다. 그런데 암투 같은 개인적인 일까지 소상히 기재해서 벌을 자초했다. 암투를 절대적으로 금하는 문규를 소축십검이 깼으니, 어떠한 징계라도 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전가성은 파문 혹은 근신을 예상한다.
어떠한 벌이든 달게 받겠다. 하지만 그 전에 아걸을 찾아서 임무를 완수하고자 한다.
서신이 본문에 도착하고, 사실 여부가 확인되고, 징계가 떨어지기까지는 대략 보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 안에 아걸을 잡을 생각이다.
‘됐다. 후회는 없다.’
전가성은 서신을 밀봉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 * *
삼군 신도파의 시신은 비밀리에 이송되었다.
시신 한 구가 성검문에 들어오고, 소축십검이 전부가 개별적으로 사인을 살펴봤다.
사인을 같이 살피지는 않는다.
그럴 경우, 막연한 추측이 중론(衆論)에 휩쓸려 진실로 둔갑할 수도 있다.
시신을 따로따로 보면서, 자신만의 판단으로 사인을 분석한다. 그리고 종이에 자신이 분석한 판단을 적는다.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이유도 소상히 적어야 한다.
그런 일을 마친 후에는 토론을 해도 무방하다.
“산묘는 비연폭강을 즐겨 썼어. 비스듬히 후려치는 검인데…… 어떻게 배를 가르지?”
물음을 던진 자는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이 있다. 다만 확신이 서지 않아서 모두에게 물은 것이다.
“나는 검에 난 자국으로 판단을 내렸는데.”
“역시 그거지?”
모두 같은 생각이다.
검에 칼자국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칼이 한철(寒鐵)로 만든 검에 자국을 새겼다. 엄청난 내력, 혹은 굉장한 빠름으로 훅 긋고 지나간 것이다. 그런 방식이 아니고서는 보검에 흠집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연폭강이 떨어질 때, 검을 쳤다. 아니, 칼로 검신을 쳐서 밀어냈다. 검은 옆으로 밀렸을 것이고,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복부가 드러났다.
깡! 퍽!
검을 치고, 배를 벴다.
삼군의 검과 배를 보면 그가 어떤 식으로 당했는지 그림처럼 뚜렷하게 그려진다.
비연폭강을 능가하는 빠름!
기가 질린다. 역시 일홀도인가?
* * *
황궁(皇宮)에서 막 퇴청한 허도기는 관복도 벗지 않은 채 서신부터 읽었다.
“일홀도?”
일홀도는 언제나 말썽이다.
일홀도가 세상에 모습을 보인 이후,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 않은 적이 없다.
하지만 허도기의 눈길은 곧 다른 글귀에 틀어박혔다.
혈검!
이 순간, 허도기의 머릿속에는 일련의 흐름도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혈검경은 현정부인의 독문 무공이다. 그러니 무공 유출자는 현정부인이다. 다른 사람은 절대로 혈검경을 유출할 수 없다. 남편 허도강조차도.
현재, 혈검을 사용하는 몽설은 일홀도의 주인인 아걸과 함께 있다.
그렇다면 현정부인이 혈검경을 일홀문주에게 건네주었다. 일홀문주는 그것을 아걸과 몽설에게 나눠주었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아걸과 몽설이 누구냐? 어떻게 해서 일홀문주와 연관을 맺었느냐? 궁금한 점 역시 많다. 하지만 아걸과 몽설이 일홀문주와 관계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형수, 무슨 짓을 한 거요? 혈검경을 넘겨줄 때는 이미 누가 수련할지도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그러면 아걸과 몽설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뜻. 무슨 일을 꾸민 거요?’
허도기는 똑같은 의문을 일홀문주에게도 던졌다.
‘네 번째 제자. 아걸. 무슨 일을 꾸민 거요? 그러면 죽봉에서 내게 당할 것도 예상했다는 말? 아니지. 일홀도는 패배를 생각하지 않는 칼이니까.’
허도기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몇 번 톡톡 두들긴 후, 서신을 화로에 던졌다.
툭! 화르륵!
서신이 불이 붙었다. 순식간에 불길이 일어나더니 하얀 종이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후후후….”
허도기는 웃었다.
일홀문주를 참 쉽게 제거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무언가를 남겨놨었다.
“그래. 이게 맞지. 그냥 죽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어. 당신…… 참 끈질긴 사람이야.”
허도기는 일어섰다.
무림이 다소 시끄럽기는 하지만 자신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 * *
‘황색!’
이군(二君) 섬뇌(閃雷) 초가평(楚家平)은 들고 있는 서신의 무게를 가늠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황색 서신은 사부가 줄 수 있는 최고 명령서다.
어떤 명령보다도 우선하며, 이의제기나 거부를 허락하지 않는 ‘무조건 복종’ 명령이다.
‘이게 왜 나에게……?’
황색 명령서는 대형 전가성을 제치고 그에게 하달되었다. 대형조차도 부릴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소축십검 모두를 일시에 휘몰아칠 수 있다.
지금까지 성검문은 대형과 삼군의 각축장이었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성검문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삼군이 정말 어이없게 죽었다. 대형은 여전히 아걸을 추격 중이다.
상식적으로 사부는 대형에게 전권을 위임했어야 한다.
‘사형이 눈 밖에 났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사부가 사형을 옆으로 밀쳐놨다.
황색 서신에는 ‘충직(忠直)’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번 일에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아걸과 몽설을 잡는 데 전력을 다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대사형은 묘법제일이라는 말을 듣는다. 계책이 많다는 뜻인데, 달리 생각하면 잔꾀가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사부가 사형을 후자로 보기 시작했다.
‘이번 임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후계자가 정해지겠군. 성검문은 당연히 대사형이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좋지 않아.’
초가평은 고개를 흔들며 서신을 품에 넣었다.
“사제(四弟), 오제(五弟), 구제(九弟). 나와 같이 간다. 명령은 하나, 아걸과 몽설을 죽인다. 생포는 필요 없다. 무조건 죽인다. 이 명령을 제외한 어떠한 명령도 배제한다.”
“알겠습니다.”
“그러죠.”
사제 세 명이 검을 들었다.
육제와 칠제는 군대에 파견 나가 있고, 십제는 성검문 월직이다.
데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데려가는 셈이다.
“무조건 죽이라는 명령, 맞죠?”
구제가 되물었다.
“맞다. 무조건 죽인다. 지금부터 성검문이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물자를 총동원해서 추격한다. 이미 무림 전역에 공문이 나가 있을 것이다. 검을 단단히 잡아라. 곧 놈과 부딪칠 거야.”
초가평이 잔잔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