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第十六章 탈출(脫出) (4)
농군들이 뜨거운 햇살을 피하려고 만들어 놓은 농막에 사람이 누워있다.
“저거 창이지?”
몽설이 말했다.
대답할 필요도 없다. 사내 옆에 창이 놓여 있다.
“쳇! 여기도 막혔네.”
몽설이 중얼거렸다.
길이란 길은 모두 막혔다. 관도 같은 버젓한 길에서부터 작은 시골길까지 모두 차단되었다.
길을 막은 사람들은 토속 무인들이다.
무림에 적을 둔 사람이라면 모두 병기를 휴대한 채 밖을 활보하고 있다.
농막에 누워있던 자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길가는 일남일녀를 불러 세웠다.
“저기 잠깐!”
“네? 왜요?”
“동네에서 못 보던 분들이라서. 어디서 오셨소?”
“소촌(召村)에서 왔어요. 집에 환자가 있어서 창남(昶藍)으로 가는 길이에요. 의원님 모시러요. 의원님이 몇 번 우리 집에 오신 적이 있어서, 의원님만 만나면 신분을 증명해 주실 거예요.”
일남일녀는 검문을 꽤 많이 당한 듯 자연스럽게 말했다.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길이고, 신분을 증명해 줄 사람은 누군지 명확하게 말했다.
“이해해주쇼. 지금 무림이 발칵 뒤집혀서. 어서 가보슈.”
농막에 있던 자가 빨리 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는 일남일녀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 절반만 새겨듣는다. 나머지 절반은 의심한다. 하지만 저들에게서 무공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길을 열어준다.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공손히 묻는다.
의문이 해소되면 길을 터준다.
여전히 수상쩍으면 다시 공손히 말한다. 무림 문파, 관청, 군부 등 어디든 좋다. 가서 신분을 확인해 보려고 하는데, 협조해 줄 생각이 있느냐?
신분 확인을 요청받은 사람은 당연히 따라간다.
거부는 곧 싸움이다. 말은 공손하게 해도 뜻은 분명해서 신분을 확인받지 못하고는 떠나지 못한다.
이런 일이 하북성(河北省)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미 길목이란 길목은 모두 차단됐어.”
“예상했잖아?”
“예상은 했는데, 너무 빨라.”
“아니, 내 예상보다는 사나흘쯤 늦었어. 더 빨리 막혔어야 해.”
몽설은 기가 막힌다는 듯 아걸을 쳐다봤다.
“사나흘이 늦다고? 그럼 우리가 무림 공적이 될 것도 예상했다는 거야?”
“성검문과 싸우는 순간부터 무림 공적이야. 왜, 무서워?”
“치잇! 이미 서너 번도 넘게 저승길을 다녀온 사람입니다. 뭐가 무서울까요?”
“하하!”
“저번처럼 변장할까?”
“그 정도로는 어림없어.”
저들은 변장도 염려하고 있다. 그래서 매우 유심히 살핀다.
“그럼 어떡할까? 내 생각에는 그냥 닥치는 대로 뚫고 나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쫓아오는 속도보다 더 빨리 뚫고 나가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처음에는 통하지만, 나중에는 막혀. 무림을 우습게 보면 안 돼.”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 답답하니까 하는 말이지. 그럼 어떻게 해?”
“돌아가자.”
“돌아가? 어디로? 여기서 돌아갈 길이나 있어? 모든 길이 다 꽉 막혔는데.”
아걸이 손을 들어서 멀리 있는 산을 가리켰다.
“산을 넘어가자고? 그럼 닷새 정도 더 걸려. 아주 멀리 빙 돌아가는 거야.”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지금부터 밀행(密行)할 거야.”
아걸은 이미 멀리 있는 산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길로.
* * *
우우웅! 우웅!
산에서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거…… 곰이지?”
아걸은 주위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꾼이 곰을 잘못 건드렸다. 창으로 찔렀거나 화살을 꽂았는데, 숨을 끊어놓지 못했다.
곰이 매우 성난 상태다.
“하필이면 이 산에 곰이 있을 게 뭐야?”
‘우연이 아니야. 성검문에서 내린 명은 무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거든.’
사냥꾼들이 산을 헤매다가 곰을 발견한 것이다. 사냥할 생각으로 산을 더듬은 것은 아니지만 기왕 눈에 띄었으니 사냥하자는 생각에서 공격했다.
우우우웅!
곰이 맹렬히 울부짖었다.
“웃! 이쪽으로 와. 맞지?”
“위로!”
아걸은 즉시 몽설의 어깨를 낚아챈 후, 나무 위로 신형을 솟구쳤다.
두 사람은 나무 위에서 곰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상처 입은 곰이라면 죽이는 게 더 낫지 않아? 어차피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을 것 같은데.”
“우리 흔적을 남기면 안 돼.”
“곰을 죽이는 것도 흔적이 남아?”
“어떤 단서도 안 돼.”
“너무 몸 사리는 거 아냐? 이 정도는 해도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우리 취화원 살수들보다 더 몸을 사려?”
아걸은 숲을 쳐다봤다.
우우웅! 우우우우웅!
곰이 세차게 울부짖으며 달려 나왔다.
창이 가슴에 틀어박혀 있다. 화살도 두 대나 맞았다. 검에 베인 상처도 있다.
핏자국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앞발이 핏물 속에 푹 담갔다가 꺼낸 듯 시뻘겋다. 주둥이와 얼굴에도 핏물이 가득 묻어있다.
곰이 흘린 피는 아니다. 사람을 물어뜯은 흔적이다.
사냥꾼 중 일부가, 혹은 전부가 당했다.
우우웅!
곰이 나무 위를 쳐다봤다.
사람 냄새를 맡았다. 아걸과 몽설을 보는 눈에 소름 끼치는 살기가 번뜩인다.
곰은 이미 사람 맛을 알아버렸다.
“이 곰, 식인 곰이 되어버렸어. 놔두면 보는 사람마다 잡아먹을 거야.”
몽설이 검을 뽑으려고 했다.
아걸은 몽설을 막았다. 한 손으로는 검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어깨를 꽉 눌러 앉혔다.
“이 곰에 손대면…… 아마도 내일 저녁쯤에는 애꿎은 사람들 수십 명을 죽여야 할지도 몰라.”
몽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아걸만 쳐다봤다.
우우웅! 우우웅!
곰이 거칠게 소리 지르며 나무를 타오르기 시작했다.
“가자!”
쉬잇!
아걸은 신형을 띄워 다른 나무로 건너갔다.
몽설은 손을 들었다.
몽설을 잡겠다고 나무를 기어오르는 곰의 눈동자가 지독할 만큼 흉포하다. 지금 당장 곰의 숨통을 끊지 않으면, 애꿎은 사람들이 많이 당할 것 같다.
“휘우우! 너 참 운 좋은 줄 알아.”
몽설은 아걸을 뒤쫓아서 신형을 띄웠다.
아걸이 왜 이토록 몸을 사리는지 모르겠다. 식인 곰 한 마리쯤 죽여도 괜찮지 않나? 사냥꾼 손에 죽은 줄 알겠지.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니 손을 쓰지 않는다.
쉬이이잇!
그녀의 신형이 날렵하게 허공을 갈랐다.
길을 걷는 동안 아걸은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다. 두 발로 밟는 땅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만지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산 감자를 캐서 먹었다. 물론 산 감자를 캐낸 자리는 깨끗하게 정리했다. 살아있는 짐승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흔적이 남는다고.
잠은 편히 누워서 잤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무려 반 시진에 걸쳐서 꼼꼼히 정리했다.
“토끼 한 마리 잡아먹자. 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정리하면 되잖아.”
“짐승은 표시가 나.”
“뒤처리를 깨끗이 하는데도?”
“비린내라도 풍겨.”
몽설은 아걸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토끼에게서 비린내가 풍긴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우리도 도주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이렇게까지 치열하지는 않아. 오히려 산같이 험한 곳으로 들어가면 체력을 잘 보충해야 하니, 꼭 고기를 먹으라고 하거든.”
“내 방식은 아냐.”
“이런 거 아삼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거야?”
“훗!”
아걸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할배가 가르쳐준 것은 맞다. 하지만 할배 방식도 아니다. 적랑대 도주술도 아니다.
아걸은 일체잠행(一切潛行)을 펼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해서 전부 건드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몽설 말대로 때로는 고기를 먹기도 한다. 토끼도 잡아먹고, 꿩도 구워 먹는다.
모든 판단은 본능에 따른다.
곰을 죽이면 꼭 발각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건드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고기를 잡아먹으면 매우 피곤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먹지 않는다.
잠을 자는 것도 마찬가지다. 몽설이 보기에는 날이 저물어서 잠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는 해 질 무렵부터 잠자리를 찾았다.
이곳은 안 돼. 그러면 계속 간다.
여기는 괜찮겠어. 안전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 비로소 잠자리를 마련한다.
이런 잠행법에는 이름조차 붙어있지 않다. 하지만 일홀문도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일홀문도는 생사를 넘나들며 칼을 수련한다.
서리가헌도, 서리형개도 어려서부터 험한 산에 혼자 떨궈져서 살았다. 그러면 당장 맹수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체잠행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한다.
“푹 자. 내일은 강을 건널 거야.”
“강? 여기 강이 있어?”
“있어. 물 냄새가 나.”
“물 냄새
……
? 하!”
몽설이 기가 막혀서 입을 쩍 벌렸다.
과연, 아걸 말대로 큰 강이 나타났다.
“수영으로 건너기에는 너무 멀다. 배를 구해야겠어.”
“뗏목을 만들면 돼.”
“그런 말을 할 줄 알았어. 생나무는 무거워서 물에 뜨지 않을 텐데…… 그래도 나무를 잘라 올까?”
“아니, 잔가지를 모아 줘.”
아걸은 주위를 어슬렁거리면서 작은 나뭇가지를 줍기 시작했다.
통나무 뗏목도 아니고, 나뭇가지를 모아서 뗏목을 만들 생각인 것 같다.
“이런 거로 뗏목을…… 뗏목이 만들어져?”
몽설은 불쏘시개로 쓰면 딱 좋을 작은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말했다.
덩굴을 칼로 째고, 그 사이에 나뭇가지를 밀어 넣는다. 굴비 말리듯이, 곶감 널듯이 나뭇가지를 쭉 꿴다.
한 줄, 두 줄, 세 줄…… 나뭇가지를 꿴 줄이 만들어졌다.
아걸은 덩굴을 사용해서 줄을 이어 붙었다.
“이렇게 하면 물에 뜨기는 하겠는데, 사람이 타지는 못해. 앉자마자 푹 가라앉을걸?”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아걸은 나뭇가지 엮은 것을 스무 개나 만들었다. 그리고 한 개씩 포개서 엮었다. 스무 겹을 겹쳐놓으니 거의 무릎 높이까지 올라오는 두툼한 뗏목이 만들어졌다.
스읏!
뗏목은 물에 넣자마자 둥실 떠올랐다.
“빨리 타. 부지런히 건너가야 해. 묶은 게 약해서 곧 풀어질 거야.”
“중간쯤 가다가 풀어지는 건 아니지?”
“그럴 수도 있고.”
“뭐? 물만 먹여 봐!”
몽설이 뗏목에 올라타자, 아걸이 장대를 강에 쑤셔 넣고 힘차게 밀었다.
뗏목을 만드는 데 닷새가 걸렸다.
뗏목을 분해해서 하나씩, 하나씩 강에 띄워 보내는 데 다시 사흘이 걸렸다.
강 하나 건너는 데 열흘을 소모했다.
“우리 너무 느리게 움직이는 거 아냐? 이러다가 정말 포위망에 갇힐지도 몰라.”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알아. 아는데…… 너무 늦게 가서 하는 말이지.”
“시간은…….”
“하! 진짜 답답하네. 안다니까!”
몽설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아걸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이토록 답답하고 미치는 일인 줄 처음 알았다.
아걸은 마지막 잔가지까지 물에 띄워 보낸 후에야 일어섰다.
“우리가 너무 늦게 가나?”
“그래. 늦게 가도 너무 늦게 가고 있어.”
“덕분에 난 거의 다 나았고.”
“아!”
몽설이 놀란 눈으로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이 워낙 고통을 잘 참아서 알지 못했는데, 서리형개에게 받은 상처가 씻은 듯이 나았다. 수구진에서 어느 정도 요양을 하고 나왔지만, 지금은 내상까지 완전히 회복한 모양이다.
“정말 잘됐다. 몰랐어. 진작 말하지. 그럼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 않았을 텐데.”
몽설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느리게 온다고 왔지만, 미산이 하루거리야. 내일이면 미산에 도착해.”
“뭐, 뭣! 정말?”
몽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아걸에게 어디로 가고 있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 역시 지금은 무조건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묵묵히 도주만 했다.
아걸은 미산으로 가고 있었다.
취화원 살수들이 수련하는 곳, 미산 태청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