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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80화 (80/600)

#80화. 第十六章 탈출(脫出) (5)

미산은 바위산이다.

어린애도 한 시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산이며, 나무보다도 바위가 더 많아서 온 산이 하얗게 보인다고 하여 백산(白山)이라고도 부른다.

바위산에 굴을 파면 수련하기 딱 좋은 석굴이 된다.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벌레나 해충들이 꼬이지 않는다.

미산 전체가 도인들 수련 장소로는 딱 좋다.

태청궁이 산을 올라가는 산자락에 세워진 것은 당연하다. 미산 석굴이 무려 삼백여 개나 되니, 그들이 머물 공간도 있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지금도 미산에는 수련하는 도인들이 많다.

삼백여 석굴 중 이백여 개 정도는 임자가 있다. 길게는 이삼십 년 전부터, 짧게는 엊그제 입문한 도인까지 석굴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수련한다.

당연히 참배객은 미산에 오르지 않는다.

미산은 도인에게 제공된 수련 공간이다.

‘이 많은 석굴을 다 뒤져야 하나?’

몽설은 난감한 표정으로 하얀 바위산을 쳐다봤다.

미산에는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석굴 안에 틀어박혀 있어서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은 있어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속에 취화원 살수들이 섞여 있다.

아걸은 취화원 살수들이 은신해 있는 곳을 안다. 그가 밀실 위치를 적어 주었으니 모를 리 없다.

당시, 태청궁 밑에 밀실을 뚫어놨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로 태청궁 밑에 밀실을 만들어 놓은 줄 알았다.

이곳에 와서 보니 아걸이 어떤 뜻에서 한 말인지 알겠다.

태청궁 밑에 밀실이 있다.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지하 통로를 파야 한다. 그리고 통로는 미산 석굴까지 이어진다.

일단 밀실을 찾는다. 그리고 지하 통로를 쭉 따라간다. 그러면 취화원 살수들이 은신해 있는 석굴에 이른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데, 아걸은 그녀를 미산으로 데리고 왔다.

‘어떻게 찾지?’

그녀는 바위 위에 앉아서 바위산을 유심히 쳐다봤다.

처음에는 보지 못했는데, 뚫어지게 지켜보니 작은 동굴들이 보인다.

바위가 갈라진 틈을 이용해서 석굴을 팠다. 바위가 겹쳐진 부분, 약간 움푹 들어간 부분도 이용했다. 무작정 정을 들이댄 것이 아니라 굴이 될 만한 곳에 만들었다.

‘왜 나를 이곳에 데려온 거지?’

눈으로 동굴을 하나씩 탐색해 나갔다.

당연히 진기도 일으켰다. 멀리 떨어져 있는 석굴을 살피려면 매서운 안공(眼功)이 필요했다. 그런데,

“앗!”

몽설은 부지불식간 경악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희끄무레한 기류가 석굴 사이로 흐른다.

안개가 뿌옇게 일어났다가 싹 사라진다. 그을음처럼 검은 연기가 일어나기도 한다. 물론 연기는 자세히 관찰할 틈도 주지 않고 금방 사라진다.

“사, 사생락!”

몽설은 아걸이 자신을 석굴이 보이는 넓은 바위로 데려온 이유를 알았다.

취화원 살수들의 사생락을 보라는 뜻이다.

그러면 아걸은 취화원 살수들의 사생락을 언제 봤나? 사생락이 저 정도 경지에 이른 것을 어떻게 알았나? 저들이 어떻게 수련하는지 보고라도 받았나?

그럴 리 없다. 만약 보고를 한다면 원주에게 했다.

아걸은 미산에 발을 디디는 순간, 이미 사생락을 봤다. 자신이 태청궁을 볼 때, 그는 바위산에 흐르는 연기들을 봤다. 일부러 보려고 했기 때문에 보인 것이다.

아걸은 취화원 살수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문득, 몽설은 아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특히 고맙다고 느껴졌다.

진기를 상궁에 모으고, 니환일검을 일으킨다.

이제 걸음을 걷는다. 니환일검에게 사주경계를 시키고, 천천히 걸음을 뗀다.

스스슷! 스스스슷!

취화원 절기인 귀영보가 펼쳐진다.

니환일검과 귀영보가 상호 협력한다. 니환일검의 촉감이 귀영보에도 담긴다. 그래서 땅을 밟아도 흔적이 남지 않고, 풀을 밟아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좌측!’

니환일검이 좌측을 향해 검날을 곤두세웠다. 좌측에 적이 있다는 뜻이다.

파앗!

몽설은 망설이지 않고 신형을 띄웠다.

동시에 신검합일(身劍合一), 몸과 검이 일체가 되어서 좌측 연기를 후려쳤다.

까앙!

검과 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순간, 몽설의 검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리고 좌측 연기의 복부를 후려쳤다.

아걸이 삼군을 벨 때 사용한 수법이다.

아걸은 일홀도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니환일검이 감각으로 배웠다. 아! 저렇게도 칼을 쓸 수 있구나! 길을 오는 동안 부단히 수련했다.

어떤 병기가 되었든 후려쳐오는 공격에는 아주 효과적인 도법이다.

일단 병기와 병기가 부딪쳐야 하니 내력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 그리고 병기가 충돌하는 순간, 즉각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상대의 병기는 묶어두고, 검만 살짝 돌려야 한다.

수련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만약, 예전의 그녀였다면 초식을 자세히 알려주어도 수련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상궁이 열렸다. 어떤 무공이든 보기만 하면 머릿속에 각인된다. 각인된 무공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살펴보면 초식 흐름이 보이고, 수련할 수도 있다.

퍼억!

“큭!”

둔탁한 소리와 짧은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원주님!”

검등으로 배를 격타당한 팔 장로가 오히려 활짝 웃으면서 몽설을 반겼다.

“사생락을 수련해내셨네요?”

몽설도 반가움이 와락 치밀어서 팔 장로의 팔을 움켜잡았다.

“사생락을 수련해서 원주님을 이길 줄 알았는데, 역시 안 되네요. 혈검이 무섭긴 무서워요. 호호!”

팔 장로가 매우 유쾌한 듯 활짝 웃었다.

취화원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장로 중 오직 팔 장로만 남았다. 억지로 끌어 모은 살수들…… 몽설의 동기들은 이제 아홉 명만 남았을 뿐이다.

“모두 어때요?”

몽설은 동료 살수들의 무공 진전이 궁금했다.

“오성에서 육성 정도?”

“그렇게나요? 좋네요.”

“좋기는요. 아직 멀었어요. 저런 무공으로 무림에 나가면 다 죽습니다.”

팔 장로가 고개를 내둘렀다.

그렇다. 이제 취화원의 적은 일반 무인들이 아니다. 무림 최강파 성검문이 적이다. 무림 최강의 칼이라는 일홀문도가 적이다. 그러니 지금 나가면 모두 죽는다.

“가요. 모두 보고 싶어요.”

몽설이 팔 장로의 팔을 잡아끌었다.

* * *

검대(劍臺)가 보인다.

성검문주의 검대가 있고, 그 옆에 소축십검의 검대가 놓여 있다.

상좌검대(上座劍臺)에는 오직 검 열한 자루만 얹어놓을 수 있다. 다른 검은 일체 얹지 못한다.

현재, 검대에는 검 두 자루가 얹혀있다.

신도파와 조추한의 검이다.

죽은 자, 혹은 은거한 자, 파문당하거나, 살아있어도 검을 쓰지 못하는 자만이 검대에 검을 풀어놓는다.

그래서 상좌검대에는 산 사람이 올라서지 못한다. 문주도 올라설 수 없고, 소축십검도 올라서지 못한다.

이것은 열한 명의 약속이다.

- 가능한 검을 올리지 마라

전가성은 자신의 검을 풀었다.

“검을 얹겠습니다.”

성검문 무인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전가성은 묵묵히 검을 내밀었다.

무인이 그의 검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리고 검대에 올라 소축십검 검대 제일 상단에 검을 얹었다.

그리고는 끝이다.

이제 전가성에게는 검이 주어지지 않는다. 검을 다시 잡을 날이 언제인지는 오직 문주만 안다.

검대에 검을 얹은 무인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바람 드는 방을 청소해 두었습니다. 좁은 곳으로 모셔서 죄송합니다.”

전가성은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이층 뇌옥에 바람 드는 방이 있었던가? 깨끗이 청소해 놨다니 곰팡내는 나지 않겠군.

“오랜만에 쉬겠군. 정말 오랜만이야.”

전가성이 피식 웃었다.

* * *

아걸을 찾지 못했다.

밀각과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보전이 하루가 멀다고 전서구를 날렸다.

하북 무림 예순여덟 문파가 전서구에 화답을 해왔다.

수색에 동원된 무인이 이만여 명이다. 성검문, 그리고 하북 무림과 연관된 사람들까지 합하여 거의 삼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두 명을 쫓았다.

그런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소축십검 네 명은 온종일 숫돌에 검만 갈면서 세월을 보냈다.

삼군이 당한 곳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나온 게 없다.

그전에, 일군이 먼저 빈손으로 돌아왔다.

일군이 전력을 다해서 추격했는데도 찾지 못하고 허탈하게 돌아온 것이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증발할 수는 없는데.

‘……남은 곳은 풍도곡.’

이군 초가평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퐁도곡 살귀들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찾아간다.

풍도곡도 예전 모습이 아니다.

성검문 무인을 맞이하던 장소에는 사람이 없어서 을씨년스럽게 변해 버렸다.

아무도 맞이하는 사람이 없다.

사군은 풍도곡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일홀문도의 안내를 받지 않고, 임의로 풍도곡 금역을 걸어보기는 처음이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가로막는 사람이 없다. 풍도곡 전체가 텅 빈 것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풍도곡이 비어 있을 리는 없다.

일홀문도는 풍도곡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문주의 명령이 있을 때만 외출할 수 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지어진 초가가 보였다. 흙으로 만든 벽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지붕은 갈아주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옅은 회색빛이다.

현(現), 일홀문주 서리가헌의 거처다.

“섬뇌 초가…….”

“들어와.”

초가평이 말을 꺼내자마자 불쑥 차가운 음성이 말허리를 잘라버렸다.

‘기분 나쁜 놈!’

초가평은 초가 안으로 들어섰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서리가헌은 한참을 웃었다.

그가 너무 배꼽을 잡고 웃는 바람에 초가평이 오히려 머쓱해졌다.

‘내가 이렇게 웃긴 말을 했나?’

초가평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서리가헌은 문주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무시한다. 하지만 면전에서 무시당하는 게 기분 좋을 리 없다. 더욱이 이번에는 문주의 이름으로 명을 내리고 있는데…… 웃어?

“못 해.”

서리가헌이 짧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못 해?”

“그놈, 일체잠행을 아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흔적 없이 빠져나갔다는 거지. 무슨 말이냐면, 내가 가서 조사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야.”

“일체잠행이 뭐야.”

“그런 게 있어. 일홀문주만 아는 못된 버릇. 하하하! 하하하하!”

서리가헌이 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웃음이 가시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그놈을 죽여주려고 해도 찾아야 죽이지. 찾을 수 없는데 어떻게 죽여.”

“그럼 방법이 없다는 건가?”

“본인 스스로 기어 나오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지. 그전에는 안 돼. 누구도 못 찾아. 황궁에서 백만대군을 풀어도 찾지 못해. 하하하하!”

서리가헌이 웃는다.

하지만 오직 한 군데, 눈만은 웃지 않는다.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눈은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 옛날, 사부를 대할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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