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第十七章 장복(腸伏) (1)
귀문은 취화원과 함께 중원 양대 살맥이다.
두 문파는 살행에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취화원은 살행이 발각되어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못할 인면수심 인간을 청부대상으로 한다.
반면에 귀문은 청부대상자를 가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살행한다. 살행이 발각되어 공격당하는 일쯤은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거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철저한 은폐!
귀문은 몇 겹에 걸쳐서 문파를 감추고 있다. 그래서 공격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이 새끼들! 나와!”
울분을 참지 못하고 검을 들어도 상대할 대상이 없다.
귀문은 청부대상자를 살해한 후에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귀문? 중원 사람이라면 모두가 안다.
귀문 문주가 누구인가? 마구영이라는 사람이다. 그러면 귀문 문주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나이는 어떻게 되고, 어떤 무공을 사용하나? 병기는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부터는 완벽하게 숨겨져 있다.
취화원 원주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귀문 문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이 부분은 취화원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몽설이 아걸에게 귀문 문주를 감쪽같이 제거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취화원은 귀문 문주를 잡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아걸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백사장에 떨어진 바늘을 찾아달라는 주문이지만, 아걸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면 귀문이 어디에 있나? 상량산 오곡 섬암에 있다.
정말 상량산 오곡 섬암에 있나? 아니다. 그곳에 있지 않다. 섬암에는 청부를 받는 사람, 청부사자(請負使者)만 있다. 그 외에는 어떤 사람도 없다.
귀문이 어디에 있으며, 문도가 몇 명이며, 어떤 식으로 생활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귀문은 비밀스럽게 감추어진 살수 문파다.
스읏! 슷!
아걸과 몽설은 두꺼비 바위가 보이는 나무 위로 내려섰다.
“저기가 섬암이야.”
몽설이 커다란 바위를 가리켰다.
아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섬암은 높이가 족히 백 장은 될 법한 큰 바위다.
바위 앞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바위 윗부분만 살짝 두꺼비 형상을 띄었다.
두꺼비 바위라고 부르니 두꺼비 모습이 보일 뿐, 그냥 큰 바위다.
“저기 바위 밑에서 ‘귀문’이라고 세 번 외치면 청부사자가 나와.”
그리고 거래가 이루어진다.
청부자는 청부대상자의 신상 명세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거주지, 가족관계, 재산, 무공 여부까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답은 다음 날 듣는다.
귀문은 하루에 걸쳐서 청부대상자를 조사한다. 청부자의 말이 맞는지, 여타 다른 변수는 없는지, 청부 가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판단한다.
다음 날, 청부 가격을 말하고 청부자가 이에 응하면 거래는 이루어진다.
청부를 거절할 때도 있다.
청부자의 말이 너무 틀리거나, 변수가 너무 많을 때는 즉시 거절한다.
그런 것만 제외하면 대체로 모든 청부가 받아들여진다.
“쟤네는 청부금을 선급으로 받아. 그래서 살행이 끝나면 청부자를 만날 필요도 없이 사건 종결이야. 달리 말하면 청부자가 마음이 변해서 청부를 거둬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거둘 수 없다는 거지. 이미 살행은 진행되고 있으니까.”
“살행에 실패하면?”
“재실행. 재실행도 실패하면 선급금 두 배 지급.”
“약속은 잘 지켜?”
“몰라. 반환금을 줬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그럴 경우, 청부자도 몸을 사려야 하거든.”
“훗!”
아걸은 피식 웃었다.
살수 문파는 배신이 난무한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족속들이 만든 집단이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살수 문파는 쓰레기 집단이었다.
청부를 넣어서 해주면 좋고, 안 해줘도 뭐라고 할 말이 없는…… 그러나 워낙 억울하고 하소연할 곳도 없어서 마지못해 돈을 떼인다는 생각으로 청부를 넣던 곳.
그런 세상 인식을 확 바꿔놓은 문파가 취화원과 귀문이다.
이 두 살수 문파는 청부받은 일은 명확히 처리한다. 청부자가 청부를 넣는 순간, 청부대상자는 이미 목숨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린다.
지금 세상에서 취화원과 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취화원처럼 귀문도 약속을 지킨다.
“돌아가. 난 여기서 청부사자를 지켜봐야겠어.”
아걸이 큰 나무에 편히 누울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며 말했다.
“청부사자는 우리도 지켜봤어. 귀문과 연결된 유일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얻은 게 전혀 없어. 며칠을 지켜봐도 마찬가지일 거야. 달리 생각한 거라도 있는 거야?”
“두고 봐야지.”
“같이 있어 줄까?”
“됐어. 나 혼자 있어도 돼. 할 일이라고는 사람 지켜보는 것뿐이니까. 하나 물어봐도 될까?”
“뭐?”
“귀문 문주하고 원한이라도 있어? 왜 문주를 치려는 거야?”
“우리가 어떤 사정인지 알잖아. 풍도곡이 나섰을 때도 우린 설 자리가 없었어. 지금은 성검문까지…… 이렇게 되면 우린 정말 있을 곳이 없어.”
“그게 귀문 문주를 죽이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야?”
“계속 지켜봐. 그럼 내가 한 말을 알게 될 거야. 호호!”
몽설이 활짝 웃으면서 신형을 뽑아냈다.
청부사자는 일정한 거처가 없다. 상량산에 있기는 한데,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스읏!
섬암에 한 사람이 내려섰다.
그는 매우 조심스러운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귀문!”
그가 소리쳤다.
“귀문! 귀문!”
세간에 알려진 대로 섬암 앞에서 귀문을 세 번 외쳤다.
잠시 후, 섬암 위쪽 계곡에서 키 작은 사내가 나타났다.
키는 작지만 근육이 단단하고 울퉁불퉁해서 힘은 꽤 쓸 것 같은 사내다.
그는 청부자를 빤히 쳐다보면서 계곡을 내려왔다.
“귀문이오. 누굴 죽여줄까?”
“지, 지금 여기서 말합니까?”
“그럼 여기서 말하지 어디서 말해? 왜? 누가 들을까 봐 그러쇼? 겁은 되게 많네. 정 그렇다면 저기 안쪽에 은밀한 곳이 있는데, 거기 가서 말하든가.”
“아, 안쪽에 가서…….”
“그럽시다.”
청부사자가 청부자를 이끌고 섬암 구석으로 갔다.
아걸은 청부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많다. 호기심에서, 혹은 귀문을 공격하기 위해서.
청부자는 관심 없다. 청부사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주시한다.
휘익!
청부사자가 움직였다.
청부자가 떠나기 무섭게 내려왔던 바위 계곡을 따라서 산 위로 올라갔다.
스읏!
아걸은 조용히 뒤따랐다.
청부사자는 조그만 동굴에 머물렀다.
그는 하루에 두 번 신호를 보낸다. 모닥불을 피우고, 불길에 분(粉芬)을 뿌린다. 그러면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에 색깔이 입혀진다. 청색일 때도 있고, 붉은색일 때도 있다.
무작위로 선택된 색깔 있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간다.
생존 신호다.
만약 청부사자에게 변고가 생기면 당장 연기 신호가 끊긴다.
누군가는 청부사자를 지켜보고 있는데, 관찰 범위가 무려 십 리 이상 떨어져 있다.
귀문이 섬암을 청부 장소로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어서다.
상량산 주위는 광활한 평지다. 섬암에서 연기를 띄우면 십여 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청부사자를 지켜보는 사람은 분명히 있는데, 그를 찾아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청부사자는 청부자에게서 청부를 받았다. 그리고 가부(可否)를 내일 알려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쯤 청부자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어야 한다.
청부사자는 동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찾아온 사람도 없다. 전서구도 날지 않았다. 화살을 쏘아서 전통을 보내지도 않았다.
청부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귀문에 청부 내용을 전달했을 텐데,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전한 것일까?
‘귀신이 곡할 일…….’
아걸은 고개를 내둘렀다.
취화원이 귀문에 대해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한 게 이해된다.
아니, 취화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귀문은 적이 매우 많은데, 그들 모두가 섬암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모두 이곳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알지 못하겠다면 바로 부딪치는 방법도 있지.’
아걸은 일어섰다.
청부사자는 아걸이 불쑥 나타났어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야생 새끼 고양이에게 밥그릇을 내밀었다.
“먹어. 부지런히 먹어야 다른 놈들에게 안 잡아먹혀. 어서 먹어.”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뒤로 물러나서 지켜봤다.
고양이가 청부사자를 겁내지 않고 천천히 다가와 걸죽한 죽을 쩝쩝거리며 먹었다.
“귀문이 궁금해서 왔다. 얼굴 붉히는 것은 서로 싫을 것이고, 말로 풀어갈까?”
“큭큭큭…!”
청부사자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아! 널 건드리면 귀문의 적이 된다는 것쯤은 알아. 죽을 때까지 쫓아다닌다며? 그런 건 걱정하지 마. 난 아주 자연스럽게 죽이는 법을 알거든. 귀문 놈들, 널 보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생각할 거야. 그만한 재주는 있으니까 믿어.”
아걸은 말을 하면서 석굴을 뒤지기 시작했다.
청부사자가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기습을 가해오거나 도주할 수도 있는데, 어떤 행동도 신경 쓰지 않았다.
청부사자는 청부자를 돌려보낸 후, 바로 석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석굴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니 바로 이곳에 귀문과 소통할 수 있는 연락 방법이 있다.
툭!
쌀이 들어있는 가마니를 발로 찼다.
“큭큭! 이놈아, 음……식에…… 발길……질이냐?”
청부사자가 이죽거렸다.
그런데…… 발음이 영 이상하다. 혀가 꼬인 듯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아걸은 청부사자를 쳐다봤다.
청부사자의 입가로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동자는 이미 풀어졌고…… 그를 보고 있는 동안에 코피도 주르륵 쏟아냈다. 아! 귀에서도 핏물이 흘러내린다.
청부사자가 독단을 삼켰다.
귀문은 이런 일에 대비해서 이미 대응책을 세워놓았다.
청부사자가 이런 식으로 죽는다면 자연사로 위장할 수가 없다. 연기 신호는 보내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 한두 시진 정도 지나면 귀문 살수가 들이닥친다.
“경험 부족이군. 자진할 걸 생각하지 못했어. 충분히 이러고도 남는데.”
아걸은 풀썩 쓰러지는 청부사자를 힐끔 쳐다본 후, 석굴을 계속 뒤졌다.
그리고 드디어 귀문의 연락 방법을 찾아냈다.
석굴 한구석에 죽통(竹筒)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죽통은 서신을 집어넣을 수 있게 안을 비워놨고, 겉면에는 기름을 발랐다.
밀지를 죽통에 넣고, 뚜껑을 닫은 후, 밀랍으로 틈새를 봉한다.
이렇게 전통이 만들어지는데, 그럼 전통을 전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걸은 석굴 한구석에 있는 작은 물길을 주시했다.
석굴 천정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위틈으로 들어간다.
이상한 점은 전혀 없다. 물이 있는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물길이다.
하지만 물길이 들어가는 바위틈에 밀랍이 묻어있다.
아직 완전히 굳지 않은 전통을 흘려보냈고, 바위틈으로 들어가면서 초가 약간 묻어나왔다.
전통을 물길을 통해서 전달된다.
“이런!”
아걸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바위틈에 왕죽(王竹)이 묻혀 있다.
물길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귀문이 대대적으로 공사했다. 수십 리, 혹은 수백 리가 될지도 모를 기나긴 길에 왕죽을 연결해 놨다.
물길은 땅 위로 솟구치지 않는다. 땅속에 물길이 있다. 전통은 매끄럽게 다듬어 놓은 왕죽을 따라서 흘러가다가 귀문 문도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것이다.
추격의 실마리가 완전히 끊어졌다.
왕죽이 묻혀 있는 땅을 파헤치면서 꼬리를 물고 찾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왕죽이 얼마나 길게 연결되었는지, 어떤 땅에 묻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니 캐내기도 겁난다.
“훗! 청부사자를 죽이는 선에서 꼬리를 완전히 잘랐네. 철저한 점조직이라 이거지. 좋군.”
아걸은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