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82화 (82/600)

#82화. 第十七章 장복(腸伏) (2)

“역시! 꼭 찾을 것 같았어.”

“운이 좋았지.”

“운이 아니라 실력이야.”

“마침 밀랍 묻은 자국을 발견했을 뿐이야. 시간이 조금만 지체되었어도 물에 씻겨 내려갔을 거고.”

아걸은 그 누구도 찾지 못했던 귀문 청부사자의 전통 전달 방법을 찾아냈다.

본인은 운이라고 말하지만, 엄연히 실력이다.

많은 무인이 청부사자를 죽였다. 그리고 눈에 불을 켜고 석굴을 뒤졌다. 그들도 아걸이 봤던 죽통을 봤고, 석굴 한쪽에 흐르는 물길도 봤다. 하지만 땅속에 왕죽이 대대적으로 묻혀 있다는 사실은 찾아내지 못했다.

아걸이 말했다.

“여기서 단서가 끊겼어.”

“아니, 아직 단서가 남았어. 전통은 수로를 통해서 귀문에 전달된다 치고…… 청부사자를 지켜보는 자들이 있잖아. 그들을 찾는 방법이 남았어.”

“그자들이 어디서 지켜보는지도 모르는데……?”

아걸이 몽설을 빤히 쳐다봤다.

몽설이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때로는 아둔하게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나가는 게 더 좋을 때도 있어. 지금이 그때야.”

“사방 십 리가 될지 이십 리가 될지 모르는데, 그걸 다 뒤진다고?”

“살수는 살수의 감이 있잖아. 살수가 숨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거든. 그리고 수색 범위가 백 리, 천 리가 되더라도 꼭 찾아야 해. 우리가 살길은 그것뿐이니까.”

몽설이 팔 장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들으셨죠? 지금 당장 수색해주세요. 아주 조용히, 흔적을 남기지 말고 수색해줘요.”

“모두 네 명 찾았습니다.”

팔 장로가 말했다.

청부사자를 감시하는 자, 안전을 확인하는 자!

귀문 제이선(第二線)을 찾아내기 위해 열흘에 걸쳐서 인근 삼십 리를 샅샅이 뒤졌다.

“네 명? 너무 많아요. 그렇게 많으면 움직임도 커지죠. 계속 지켜봐야겠어요.”

“그러잖아도 계속 지켜보라고 했습니다.”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자 중 두 명이 떨어져 나갔다.

한 명은 평범한 나무꾼이었고, 다른 한 명은 세상을 등지고 산에 들어와서 사는 산 사람이었다.

남은 의심자는 두 명이다.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지켜본다.

취화원 살수가 두 사람을 지켜보는 기준은 딱 하나, 느낌이 좋지 않아서다.

저 사람은 들고 있는 지팡이 대신에 칼을 들면 언제든 살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이 깨지면 나무꾼이나 산 사람처럼 보통 사람이 된다.

몽설은 서두르지 않았다.

“우리가 크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여기 조금 더 머물러도 될 것 같아요. 시간 구애받지 말고 조금 더 지켜보죠.”

두 명이 살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취화원 살수 아홉 명이 번갈아 가면서 두 명을 감시했다. 아홉 명 모두가 두 사람을 봤다.

그 결과, 판단은 한결같다.

“칼만 들면 무인이에요. 살수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인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최종적으로 팔 장로가 두 사람을 감시했다.

팔 장로의 판단도 같다.

“두 놈, 맞습니다. 귀문 놈들이에요.”

취화원 살수들이 찾아낸 땅꾼과 토굴을 파고 들어가서 면벽 수련하는 스님은 아걸 몫이 되었다.

“두 사람이 교차 감시하는 것 같아.”

“두 명이 귀문과 연락한다는 거지?”

“청부사자는 바로 왔지?”

“응.”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부사자가 자진한 다음 날, 다른 청부사자가 와서 석굴을 차지했다.

물론 그 전에 귀문 살수들이 들이닥쳤다.

아걸은 귀문 살수들을 추격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이들은 귀문으로 귀환할 것이다. 그러면 이들만 뒤쫓으면 귀문 본문이 어느 구석에 있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

그는 충동을 꾹 눌러 참았다.

귀문 살수들은 언제든지 뒤쫓을 수 있다. 청부사자만 죽이면 당장 이들이 나타난다.

그 전에, 은밀히 귀문 본문을 찾아야 한다.

몽설이 요구하는 것은 ‘감쪽같이 귀문 문주를 죽여달라’는 것이다.

요란스럽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 모르게 죽이라는 뜻이다.

‘세상 그 누구도’ 속에는 귀문 살수들도 포함된다.

몽설이 왜 이런 주문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에게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것은 내막을 알게 되면 틀림없이 반대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래도 몽설은 이 길이 아니면 달리 사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단, 그녀를 믿고 일을 진행해 볼 생각이다.

귀문 살수들은 내버려 둔다. 그들을 쫓는다고 해서 귀문 본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완전 점조직인 귀문 성격으로 보면 다른 변수가 있을 것 같다.

땅꾼과 토굴에 있는 스님을 뒤쫓는다.

“장로님이 땅꾼을 지켜보고 계셔. 한쪽은 장로님이 추격할 거니까, 정랑(情郞)은 스님을 맡아줘.”

“정랑?”

“왜, 듣기 싫어? 달리 부를 말이 없는데.”

“……아걸이라고 불러. 그게 듣기 편해.”

“그럴까 했는데, 싫어. 우린 남다른 관계니까 호칭도 달라야지. 그냥 정랑이라고 부를래.”

“고집 안 꺾을 거지?”

“응. 이제 이런 건 좀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그냥 받아들여.”

몽설이 점점 변해간다.

마구간에서 처음 봤을 때는 철없는 소녀였는데, 이제는 어느새 살수 문파의 원주가 되었다.

직책이나 직위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가?

생각을 깊게 하고, 칼로 끊듯 단호하게 결정하고, 거침없이 몰아붙인다.

“훗!”

아걸은 피식 웃으며 일어섰다.

* * *

“아이고! 이런 데 사람이 있었네! 스님, 이런 데서 살면 부스러기 같은 건 안 납니까?”

“아미타불!”

“부처님을 봤으니 그냥 갈 수는 없고…… 이거 나중에 쌀로 바꿔 드시오.”

방물장사가 옥비녀 하나를 꺼내서 조그만 부처상 앞에 놓았다.

“아미타불!”

“어휴!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텐데. 이런 데서 불도 없이 어떻게 겨울을 나나.”

방물장사가 등짐을 지고 일어섰다.

스님은 토굴에 앉아서 오직 부처상만 쳐다봤다. 방물장사가 귀한 옥비녀를 시주해도 불호 한 마디 외우는 것으로 그칠 뿐, 돌아보지도 않았다.

방물장사는 갈 길이 멀다는 듯, 바쁘게 떠나갔다.

방물장사는 약방(藥房)에 들렸다.

“전에 부탁한 가락지 구해왔소. 이거 구하느라고 애깨나 먹었으니까 값이나 후하게 주쇼.”

방물장사가 점주에게 옥가락지를 건넸다.

점주가 옥가락지를 불빛에 비춰보며 유심히 살폈다.

잠시 후, 점주의 입이 옆으로 쭉 찢어지면서 활짝 웃었다.

“맞아! 이거야. 잡티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백의 옥환(玉環). 이걸 용케도 구했군.”

“값이나 넉넉히 달라니까.”

“알았네. 알았어.”

점주가 아주 기쁜 듯 두툼한 전낭을 꺼내 방물장사에게 건네주었다.

“하하! 오늘은 코가 삐뚤어지게 술 한잔 걸쳐야겠네. 심심하면 이다가 주루로 오슈.”

방물장사는 약방에서 잠깐도 머물지 않았다.

들어서는 즉시 옥가락지를 꺼내서 건네주었고, 전낭을 받아들고는 떠나갔다.

약방 점주는 죽통에 옥가락지를 넣었다.

‘또 저거야?’

아걸은 눈살을 찌푸렸다.

약방 점주가 만지는 죽통을 상량산에서 봤다. 청부사자가 사용한 죽통과 같다.

그렇다면 이들도 청부사자처럼 지하수로를 통해서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거다. 물길이 바로 옆집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십 리를 흐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땅을 파고, 땅속에 묻혀있는 왕죽을 쫓아가는 방법 외에는 본문을 알아낼 방도가 없다.

귀문, 도대체 어떤 문파인가?

이만한 공사를 하려면 대단한 재력이 있어야 한다. 또 귀문을 창건하기 이전에 공사를 마쳐야 하며, 공사 사실조차도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아주 간단한 부탁인 줄 알았는데, 알아갈수록 복잡해지네. 이런 건 딱 질색인데.’

아걸은 머리를 내둘렀다.

그에게는 풍도곡이나 성검문 같은 문파가 어울린다. 강한 힘으로 들이치는 게 좋다. 귀문이나 취화원처럼 암암리에 움직이는 것은 성질에 맞지 않는다.

어쨌든 귀문을 추격할 수 있는 단서는 완전히 끊겼다.

청부사자 쪽도 끊겼고, 청부사자를 지켜보는 자들 또한 껍데기에 불과했다.

수로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알 길이 없다.

“흠!”

아걸은 약방 천장 대들보에서 팔베개하고 누웠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수로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청부사자를 다시 죽여야 한다. 그리고 즉시 달려올 귀문 살수들과 부딪쳐야 한다. 이제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그 방법밖에 없다.

* * *

“저깁니다.”

팔 장로가 말했다.

“용케 찾으셨네요. 고생하셨어요.”

“제가 고생한 게 있나요. 저희 취화원을 잊지 않고 도와준 사람들 덕분이지.”

팔 장로가 웃었다.

취화원은 살수 집단이다. 취화원을 죽음의 꽃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취화원을 고마워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취화원에 은혜를 입은 사람들, 취화원이 아니면 원한을 부탁할 곳이 없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취화원의 힘이다.

취화원에 살행을 청부했던 청부자들이 지금은 취화원을 위해서 힘을 보태준다.

사내는 동석(銅晳)이라고 불린다.

강 끝 비탈진 곳에 움막을 짓고 사는 가난뱅이 어부다.

나이는 쉰 중반이지만, 혼인은 하지 않았다. 워낙 가난한데다가, 몰골도 꿈에 나타날까 두려울 정도로 추괴해서 가까이 다가가는 여자조차 없다.

강에서 고기를 잡아 헐값에 팔고, 그 돈으로 하루나 이틀 정도 버티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부지런히 일할 생각도 없고, 돈을 모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생활력이 없고, 무능하며, 끔찍할 정도로 못생긴 못난이.

대체로 이 정도로 못나면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인근 주민 중에서 동석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가까이 다가오려는 사람도 없다.

동석은 건드리면 터지는 고슴도치다.

싸움을 잘하지는 못한다. 싸움만 벌어지면 주로 얻어맞는 쪽이다. 하지만 워낙 악착같이 달려든다. 피가 나고, 머리가 깨져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물고 늘어진다.

누구든 동석과 시비가 붙었던 사람은 두 번 다시는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삐걱!

몽설은 사립문을 열고 들어섰다.

“누구야!”

마당에 앉아서 그물을 손질하던 동석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몽설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물을 만지고 있는 동석에게 말했다.

“내가 죽여줄까요? 이렇게 살아서 뭐해. 이미 죽었어도 오래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인데, 너무 용기가 없는 거 아네요?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건가?”

“뭐야?”

동석이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서며 몽설을 쏘아봤다.

일순, 그의 눈빛이 꿈틀거렸다.

몽설은 아름답다. 또 인근 마을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기운을 드러낸다. 한눈에 봐도 무인이다. 동석이 만났던 숱한 사람들과는 아주 다르다.

“누, 누구냐!”

동석이 승냥이처럼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몽설이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백자형(柏煮鎣). 선친이죠? 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어서 왔는데요.”

순간, 동석이 와락 달려들었다. 하지만 몽설에게 다가서지도 못하고 주춤거렸다.

몽설이 이미 검을 뽑았다.

검 끝이 동석에게 겨눠졌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다. 검에 실린 살기는 진짜다. 아주 강한 살기가 섬광처럼 피어나서 동석의 육신을 강타했다.

몽설이 웃음기를 싹 지워버렸다. 눈빛을 차게 굳혔다. 말투에도 한기가 풀풀 날린다.

“백자형은 귀문 수로를 만들었어요. 덕분에 귀문이 숨을 수 있었으니, 죽어 마땅한 사람이에요. 귀문 손에 죽지 않았어도 누군가에게는 이미 죽었을 거예요. 자, 선친의 죽음에 대해서 말해볼래요? 아니면 지금 죽여줄까요? 난 아무래도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