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86화 (86/600)

#86화. 第十八章 청부 외 살인 (1)

“읍!”

누군가가 등에 올라탔다.

한쪽 팔은 목을 꽉 조였고, 다른 팔로는 입을 틀어막았다. 두 발은 몸과 손을 동시에 엮었다.

“우웁!”

무인이 위급함을 느끼고 발버둥 쳤다. 그때,

스읏!

목을 감았던 손이 풀렸다. 아니, 손에 든 단검으로 목을 쭉 그어버렸다.

“흡!”

무인은 눈을 부릅떴다.

그의 영혼은 이미 육신에서 벗어나 저승길을 달려가는 중이다.

무인을 죽인 자는 즉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다. 본 사람이 없고, 기척에 놀란 자도 없다. 앞쪽에 적어도 십여 명이 있지만, 누구도 기척을 듣지 못했다.

스읏!

그는 죽은 자를 치우고 그가 은신해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여덟 곳 모두 정리했습니다.”

팔 장로가 말했다.

전각 주위에 있는 무인들은 아걸이 처리했다. 하지만 제이선에도 무인들이 있다. 그들은 호신육위처럼 강하지 않다. 단순히 경계만 서는 무인들이다.

취화원 살수는 그들을 제거하고, 그들 위치를 차지했다.

이로써 귀문 문주 거처로 짐작되는 전각은 온전히 취화원 수중에 떨어졌다.

“가장 먼저 연락체계부터 파악해야 해요.”

“벌써 파악 중입니다. 두 명을 잡아놨으니 내일 아침까지는 세부 사항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팔 장로가 자신 있게 말했다.

취화원 형당은 너무 혹독해서, 형당에 끌려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까지 있다.

하지만 형당보다도 더 잔혹한 곳이 있다.

침옥(沈獄)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장로 이상 되는 사람들을 고문하기 위해 만든 장소다. 장로나 문주, 혹은 무림 유명인사를 고문하기 위한 장소라는 뜻이다.

침옥에서는 고문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의자에 앉히고, 쇠밧줄로 몸을 꽁꽁 동여맨다. 그리고 침루액(浸漏液)이라는 약물을 복용시킨다.

침루액은 전신 신경을 가닥가닥 끊어놓는다.

오장육부가 불에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까? 눈이 빠지는 고통, 심장이 꽉 조이는 고통, 단도로 전신을 쪼아대는 듯한 고통 등 온갖 고통이 일시에 몰려온다.

침루액을 한 번 견뎌내면 바보가 되고, 두 번 견디면 백치가 된다고 한다.

그만큼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이 크다.

대다수 사람은 한 번도 견디지 못한다.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게 되어 있다.

팔 장로가 바로 침옥 옥장이다.

몽설은 팔 장로를 믿는다. 내일 아침이면 귀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세히 알아 올 것이다.

몽설이 말했다.

“수고해 주세요.”

몽설은 낯선 전각을 쳐다봤다.

세상이 전혀 모르고 있는 귀문 문주의 거처가 이렇게 생겼구나 싶었다.

취화원은 뻐꾸기처럼 다른 새의 둥지로 들어왔다.

취화원과 더불어서 양대 살맥으로 불리는 귀문 본문을 침입해서 최고 중심처에 자리를 잡는다.

이것이 몽설의 계획이다.

귀문은 머리가 바뀐 것을 몰라야 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귀문은 아무 일도 없다.

귀문 문주 대신에 몽설이 지시를 내린다. 그러면 귀문 살수들이 명령을 수행한다. 여전히 귀문 문주 마구영이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귀문 문도조차 모르게 마구영을 죽여달라고 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귀문에는 문주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없나? 하다못해 문주가 남자라는 사실만 알아도 당장 발각될 일인데,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

맞다. 귀문은 문주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귀문 문도는 문주가 몇 살인지, 성별은 어떻게 되는지,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지 전혀 모른다.

귀문은 철저한 점조직이다.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바로 윗선만 안다. 그 외에는 전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머리 바꿔치기를 계획할 수 있었다.

또 하나, 구절곡 입구부터 문주의 전각까지는 무려 오백여 명에 이르는 살수들이 깔려있다.

이들은 살행을 하는 살수가 아니다. 오직 구절곡에서 감시만 하는 집 개다.

살행 명령을 내리는 살수는 따로 있다.

그들은 세상 속에 섞여 있다.

취화원처럼 어려서부터 입문시켜서 무공을 가르치지 않는다. 무인 중에서 고른다. 세상사람 중에서 살수가 될 법한 자를 추려낸다. 그리고 포섭한다.

이런 살수는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그만이다.

살수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청부가 수십 건이 들어와도 하루에 처리할 수 있다.

귀문의 살행 방식은 취화원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도 전문적으로 귀문 명령을 받고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살수를 포섭할 사람, 자금을 운용하는 사람, 또 이들을 관리하고 때로는 죽이는 전문 살수.

이들 중 일부가 구절곡에 있다.

먹이사슬 상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구절곡에 모여서 일을 처리한다.

상위층? 그렇다. 상위층이다. 상위층 위에 최상위층이 또 있고, 그들은 세상 속에 숨어 있다.

진짜 머리들은 구절곡 밖에 있다.

귀문 살수들은 귀문이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안위 보존에 상당히 신경 쓴다. 될 수 있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몽설이 차지한 것은 그중 일부, 문주의 전각이다.

“도초문주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설마 문주까지 이런 식으로 세워놨을 줄은 몰랐네.”

몽설이 난감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밖은 다 정리됐어?”

“알……았어?”

몽설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내색하는데 모를 수가 있나. 우리 귀문 안에 들어가서 자리 잡게 해달라고 사정했잖아.”

“어멋! 사정까지는 아닌데?”

몽설이 활짝 웃었다.

누가 생각해도 미친 짓인데, 어차피 일은 저질러졌다.

여기서 물러나면 취화원은 귀문이라는 적을 만들게 된다. 어떻게든 안에 틀어박혀서 귀문을 장악해야 한다.

아걸은 점혈된 무인을 가리켰다.

“혹시나 해서 살려놨는데, 알아낼 게 있으면 알아내 봐. 별로 알아낼 게 없을 것 같기는 한데.”

몽설은 사내에게 다가가 눈꺼풀을 뒤집어 봤다. 입도 벌려서 혓바닥을 살피고, 손톱도 들여다봤다.

“약에 중독됐네. 얘네들 약 없이는 못 살 거야. 몇 가지는 알아낼 수 있겠네. 그런데, 왜 그랬어?”

“……?”

“오면서 죽은 사람들을 살펴봤어. 삼군을 죽일 때 쓴 칼이 아니더라고? 왜 칼을 바꿨어?”

“이젠 그것도 알아보나?”

“이거 왜 이래? 아무래도 정랑은 정혼녀를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니까. 이래 봬도 취화원주인데 칼이 변한 것 정도도 알아보지 못할까?”

“칼이 변한 게 아니라 다듬어가는 중이야.”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니환일검을 다듬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아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우선 이곳을 철옹성으로 바꿀 거고…… 적에 대해서도 알아봐야지? 귀문을 통해서.”

“훗!”

아걸이 웃었다.

“또 그 웃음. 기분 나쁘게 왜 자꾸 그런 식으로 웃어?”

“이렇게 웃으면 기분 나쁜가?”

“뜻을 알 수 없는 웃음은 어떻게 웃어도 기분 나빠.”

“이런 생각을 해봤다. 원주가 되지 않았으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아직도 철없는 살수였을 것 같은데? 원주와 장로에게 철없는 소리나 하는.”

“그래서 웃은 거야?”

“지금은 취화원주라는 자리가 딱 어울려.”

“좋아. 봐줬다. 그런 뜻에서 웃었다면 웃어.”

몽설도 환하게 웃었다.

* * *

침루액을 견뎌내는 인간은 없다.

신경을 건드리는 치명적인 독액이라서 복용하는 즉시 지옥을 맛보게 된다.

“모든 연락은 전통을 통해서 합니다. 날짜에 따라서 전통에 찍히는 낙인이 달라지는데, 매월 초하루에 회합해서 낙인찍히는 곳을 알려줍니다. 그때도 문주님은 나서지 않고 대리인이 참석했다고 하네요. 편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겠어요.”

팔 장로가 자신 있게 말했다.

“진짜 문주는 어디 있대요?”

“모르고 있었습니다. 가끔 연락을 취해 오는데, 인편과 전서구를 고루 사용하는 것 같아요. 그 부분도 추궁해 봤는데, 연락이 오기 전에 이쪽에서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답니다.”

“음!”

몽설은 침음했다.

귀문 문주만 쓰러트리면 간단히 접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복잡하게 되었다.

‘귀문 문주가 이렇게 조심성 많은 사람이었나? 본문을 버려두고 다른 곳에서 움직여?’

몽설은 마구영에 대한 생각을 접고 귀문 장악에 나섰다.

“다른 곳은 몰라도 구절곡에 있는 귀문은 확실히 장악해야 해요. 여기 어떤 것들이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 권한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세요. 아! 그리고 밖에 있는 동석도 데려오세요. 모두가 인정하는 방법으로.”

전통이 내려갔다.

여촌(餘村)에서 동석이라는 자를 잡아 오라는 명령이다.

이번 명령은 귀문 방식대로 처리했다. 명령을 적고, 스무하루에 해당하는 낙인을 찍었다.

전통은 제일곡(第一谷)으로 전해졌다.

전통이 전해지고 정확히 반 각이 지났을 때, 제일곡에서 두 사람이 출타했다. 그리고 반나절쯤 지나서 혼절한 동석을 어깨에 걸머메고 돌아왔다.

명령이 통했다.

동석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염라전(閻邏殿)으로 압송되었다.

동석을 잡아 오라는 명령이 염라전 직접 명령이기 때문에 동석을 손대지 않았다.

몽설은 동석을 보자 쓴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마구영을 잡지 못했어요.”

“약속은 약속이니까. 언제까지 잡아줄 겁니까?”

“기한은 약속 못 해요. 하지만 꼭 잡을 거예요.”

“그 말을 하자고 날 여기 데려온 것은 아닐 것이고…… 왜 데려왔습니까?”

“여길 만져줘요.”

“……?”

“구절곡에 함정을 매설해줘요. 기관을 만들면 더 좋고요. 단, 비밀로 작업을 진행해야 해요. 많은 사람을 쓰면 비밀이 누설되니까, 최소한의 인원으로 작업해줘요.”

“작업이 끝나면 모두 죽일 겁니까? 마구영처럼?”

“제가 그렇게 보여요?”

“사람 뱃속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어이, 당신. 당신이 약속해주면 일을 하지.”

동석이 아걸을 쳐다보며 말했다.

“훗! 내 뱃속은 보이나 보군.”

“당신 뱃속을 봐서 뭐 해? 보나 마나 똥이나 잔뜩 들어있겠지. 뱃속이 아니라 형색이 보여. 당신은 우리 같은 종류야.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놓은 음식상을 받아본 적이나 있나? 없을걸? 음식상은 고사하고 소고기나 제대로 먹어봤어?”

“풋!”

아걸은 피식 웃었다.

할배와 다닐 때는 늘 사람을 피했다.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이 있어도 일부러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런데 사람들……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다.

동석이란 자도 재미있다. 같은 종류? 목공과 도부(刀夫)가 같은 종류인가? 아니다. 비천한 곳에서 굴러먹은 게 같다는 뜻이다. 그것도 종류로 치나?

아걸이 말했다.

“장담하지. 공사가 끝나도 죽이지 않겠다고.”

아걸이 다짐하기 무섭게 몽설이 말했다.

“새로운 직책을 만들 거예요. 귀문 목장(木匠). 거기서 목장(木長)을 맡아줘요. 제가 있는 한 당신과 함께할 거예요. 제가 여기서 물러설 때는 같이 물러설 것이고.”

동석이 또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난 왜 미덥지 못한가? 내가 열 마디 하는 것보다 고개 한 번 끄덕이는 게 더 낫다 이거네?”

몽설이 기분 상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동석이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원주님은 우리와 같은 종류가 아니니까. 우리 같은 놈들은 시궁창 냄새가 몸에 배서 눈감고도 찾아낼 수 있어요. 어떻게 해도 못 숨지. 킥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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