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87화 (87/600)

#87화. 第十八章 청부 외 살인 (2)

팔 장로가 드디어 구절곡에 관한 모든 사항을 파악했다.

구절곡에는 아홉 개의 계곡이 있고, 귀문은 각 곡(谷)에 곡주를 두었다.

귀문은 곡(谷) 단위로 움직인다.

제일, 제이, 제삼, 제사곡에는 공의(工蟻:일개미)가 있다.

네 명의 곡주는 공의라고 해서, 직접 중원에 나가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관리한다.

포섭, 납치, 협박 등등에 관한 일을 체계적, 조직적으로 진행한다.

제오곡은 정보를 취합한다.

청부가 들어오면 청부자의 말이 맞는지 파악해야 한다. 청부대상자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총괄적으로 도맡아서 진행한다.

제육곡은 청부를 받는다.

문주의 거처인 염라전을 중심으로 청부에 대한 모든 지시사항이 취합되고, 전달된다.

제칠곡은 재화를 관리한다.

칠곡에는 큰 동굴이 무려 사십여 개나 있는데, 동굴마다 재화가 가득하다.

당연히 재화를 지키는 무인도 있다.

귀문은 칠곡 무인들을 오직 명령을 쫓아서 사람을 죽이는 살인 도구로 만들었다. 약물로 정신을 통제해서 백치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주인의 명령만 쫓는다.

구절곡에서는 이런 자들을 혈치검사(血痴劍士)라고 부른다.

제팔곡과 구곡은 한 마디로 구절곡 곳간이다.

먹고, 마시고, 자는 데 필요한 제반 물품을 제공한다. 각 곡에 쌀과 반찬을 조달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귀문은 상당히 조직적이다.

취화원도 장로마다 맡은 일이 있고, 조직이 있었지만, 귀문처럼 크지는 않았다.

‘이건 뭔가 이상해!’

몽설은 눈살을 찌푸렸다.

취화원과 귀문은 무림 양대살맥이라고 한다. 두 문파가 같은 선상에서 거론된다.

잘못되었다. 귀문이 훨씬 크다.

당장 구절곡에 있는 자들만 해도 취화원을 능가한다.

한데, 아직 보지 못한 자들이 있다. 청부사자를 죽였을 때 나타나는 살수들!

진짜 문주가 따로 관리하는 구절곡의 최고수, 곡주와 호신육위가 빠졌다.

이들 열다섯 명은 무척 강하다. 취화원 장로와 싸웠을 때 서로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다.

‘여긴 살얼음판이야. 언제 깨질지 몰라.’

몽설은 귀문에 대해서 정말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팔 장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구곡주와 호신육위는 사이가 좋지 않다.

구곡주는 공의 중에서 발탁되었다.

호신육위는 문주가 중원에서 직접 발굴하여 데려온 자들이다.

서로 출신이 다르고, 무공도 다르며, 자부심도 다르다. 귀문에 대한 입지도 차이가 난다.

시기심과 질투도 섞였다.

주로 호신육위는 구곡주를 무시하는 편이고, 구곡주는 비협조로 맞선다.

이들은 서로 왕래도 하지 않는다.

호신육위는 염라전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염라전을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구곡주는 염라전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서로 만날 일이 없다.

아걸은 갈색 무복을 입었다.

염라전 호신육위가 입고 있던 옷이다.

병기도 검으로 바꿔서 찼다. 호신육위는 모두 검을 쓴다.

몽설이 활짝 웃으면서 다가왔다.

“이렇게 입으니까 멋있는데? 이제 좋은 옷 좀 입어. 가슴에 이 귀신 머리만 없으면 딱 보기 좋을 텐데. 잔백마검은?”

“대충.”

“대충 가지고 안 될 텐데? 구곡주들 눈치가 빠르지 않을까?”

“알아보지 못할 거야.”

“그냥 문주의 명령으로 처리하면 안 돼? 괜히 갔다가 일이 커질까 봐 그래.”

아걸은 몽설을 향해 피식 웃었다.

아걸은 종이 뭉치가 아니라 제오곡의 느낌을 보고 싶었다. 당대 제일문파인 성검문과 미지의 무인이 존재하는 풍도곡을 어떤 입장에서 다루고 있는지 파악할 생각이었다.

“정말 알아볼 게 있어서 그래.”

“그래, 그럼 다녀와. 저녁때까지는 오지? 이따 저녁 같이 먹어.”

몽설이 손을 슬쩍 잡았다.

몸이 붙어있다 보면 정도 드는 법이다. 정혼을 했다는 특이한 인연도 있다.

아걸도 다녀온다는 뜻으로 몽설의 어깨를 만졌다.

* * *

아걸은 제오곡을 찾았다.

“잠깐!”

아걸은 곡구에서부터 제지를 당했다.

아걸은 영패를 꺼내서 가로막아서는 무인에게 던졌다.

슛!

영패가 경기(勁氣)를 담고 날아갔다.

무인은 영패를 받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급하게 허리를 꺾어서 물러섰다.

영패를 손으로 받았다가는 손가락이 잘려 나갈 것 같았다.

순간, 아걸이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달려들어서 무인의 복부를 걷어찼다.

쒜엑! 퍽!

“크윽!”

무인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있는 힘껏 비명을 토해냈다.

제오곡은 즉시 비상이 걸렸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제오곡 무인들이 일제히 병기를 움켜잡고 달려 나왔다.

저벅! 저벅!

아걸은 쓰러진 무인에게 걸어가서 발로 머리를 짓밟았다.

“감히…… 문주님의 영패를…… 버려?”

“버, 버린 게 아니라…….”

“버린 게 아니면 왜 받지 않은 건데? 문주님 영패 같은 것은 받기 싫다는 건가?”

주위에 몰려든 제오곡 무인들도 아걸이 하는 말을 들었다.

시비 내용이 심상치 않다. 감히 문주님의 영패를 땅에 버렸다면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 호신육위와는 사이도 좋지 않으니 용서를 바랄 수도 없다.

그때, 계곡 안쪽에서 염소수염을 한 중년인이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만하지. 왜 애들 가지고 그래?”

‘오곡주.’

아걸은 한눈에 중년인이 누구인지 알아봤다.

양 손 손끝이 새카맣다. 독장(毒掌)을 수련했다는 증거다. 눈빛은 평범하다. 퇴빙의 일종으로 기광(奇光)을 안으로 갈무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상당한 고수다.

제오곡에서 이만한 무공을 지닌 사람이라면 곡주밖에 없다.

아걸은 무인의 머리에서 발을 치웠다.

오곡주는 성큼성큼 걸어와서 아걸이 던진 영패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슬쩍 흘겨본 후, 아걸에게 내밀었다.

“문주님 영패를 함부로 던져서야 쓰나?”

“풋!”

아걸은 피식 웃었다.

오곡주가 내민 영패에 독이 스며 있다. 어느새 쇠로 만들어진 영패에 독을 담았다.

하지만 손을 내밀어서 영패를 받았다.

파팟! 파앗!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오곡주는 방금 단장독(斷腸毒)을 썼다. 아걸이 영패를 받는 순간, 손을 통해서 체내로 흡수되었다. 한데 독 기운이 다시 밀려 나왔다. 몸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었다.

“독을 꽤 많이 아시네?”

“정보를 찾을 게 있어서 왔는데, 언제까지 노닥거리고 있어야 할지?”

오곡주가 옆으로 비켜서며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을 벌렸다.

“이건 예의가 아니지. 주인 먼저.”

아걸도 오곡주 먼저 들어가라고 손을 벌렸다.

“당신, 날 벨 생각이었지?”

“…….”

“후후! 눈에서 살기를 읽었지. 내가 계속 막아섰으면 문주의 이름으로 베었을 거야.”

“…….”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호신육위가 언제 이렇게 강해졌냐는 거야. 솔직히 나와 비등한 정도였지, 내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거든.”

“사람이 바뀌었으니까.”

아걸은 이 부분만큼은 사실대로 말했다.

정보를 관장하는 자라면 눈치도 훨씬 빠르다. 사람을 보는 안목도 남다르다.

예전의 호신육위였다면 이토록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맞다. 아까 아걸은 살기를 뿜어냈다. 오곡주가 느끼라고 매우 강한 살기를 띄웠다.

순간적이지만 오곡주는 움찔거렸다.

싸움이 시작되면…… 비등하지 않다. 일검에 나가떨어진다.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길을 비켜준 것이다.

“사람이? 언제? 왜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까? 문주님한테 어떤 언질도…….”

“한마디만 하지.”

아걸이 말을 잘랐다.

“문주님께 내 검을 맡길 때,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은 누가 되었든 베어버리겠다고 했어. 난 한 놈만 죽이면 돼. 두 놈, 세 놈 죽이고 싶지 않아.”

오곡주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누군가를 죽이려고 문주에게 온 놈이다. 검을 맡기는 대신에 누군가의 정보를 알 생각이다. 귀문을 통해서. 그 일에 협조하지 않으면 누구든 죽는다.

아걸이 하는 말은 분명했다.

오곡주가 말했다.

“여기가 우리 보각(寶閣)이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지. 감히 장담하는데 중원에 떠도는 모든 이야기, 모든 사실이 취합되어 있다. 처음 왔으니 우리 관계도 새롭게 하자고.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오곡주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는 아걸을 적이 아닌 친구로 선택했다.

문주는 아걸에게 구곡주마저 벨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검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것이다.

오곡주는 자신보다 훨씬 강한 자를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염라전을 호신육위가 아니라 호신칠위가 감싼 것 같은데, 이 자는 다른 호신육위도 깔볼 자다.

어쩌면 벌써 호신육위들을 손봐주었는지도 모른다.

이쪽저쪽을 다 들이받는 놈이라면 적으로 두는 것보다 친구로 남겨두는 것이 낫다.

“천천히 살펴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고. 하하!”

오곡주가 가볍게 포권을 취한 후, 물러갔다.

오곡주를 일부러 겁박했다.

앞으로 오곡을 자주 이용해야 한다. 오곡을 통해서 세상을 봐야 한다. 세상 소식을 들어야 한다.

오곡주는 어설픈 연기로는 속이지 못한다.

그가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복장(腹藏)을 한 몽설도 위태로워진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귀문을 떠나야 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경우는 귀문이 성검문 명을 받고 취화원을 추격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

원래 아걸은 호신육위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면 될 것 같아서. 한데 오곡주가 새로 온 사람으로 착각해 버렸다.

‘이 정도면 하나는 풀어냈고…….’

아걸은 오곡주가 보각이라고 부른 장서굴(藏書窟)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없다!’

아걸은 눈살을 찡그렸다.

다른 문파에 대한 정보는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성검문이나 풍도곡에 대한 사항은 전혀 없다. 어떤 종이를 펼쳐 봐도 그 글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귀문은 성검문이나 풍도곡에 대한 정보는 아예 수집하지 않는다.

‘뭐지?’

아걸은 고민을 거듭했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어떤 문파든 다 가지고 있다.

제일 먼저 부딪쳤던 활검문조차도 성검문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다.

알아야 아부도 하고 친목도 다진다.

알아야 방어도 하고 공격도 한다.

그런데 귀문은 어떤 정보도 수집해 놓지 않았다.

성검문 문주는 공부 허도기다. 중원인 중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귀문은 이런 기본적인 사항조차 적어놓지 않았다.

성검문 소축십검은 근래에 큰일을 겪었다. 열 명 중 두 명이나 죽었다.

무림이 발칵 뒤집힐 만큼 큰일이다.

귀문 보각 정보 속에는 그런 사실을 기재한 글귀가 한 글자도 보이지 않는다.

설마 성검문에 대한 정보는 다른 곳에 보관하나?

“이곳 말고 다른 데 보관한 정보도 있나?”

아걸은 보각을 지키는 무인에게 물었다.

“아뇨. 여기가 전부입니다. 이미 멸절된 문파나 죽은 사람에 대한 것은 뒤쪽에 모아놓긴 했습니다만…… 현재 중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는 이게 전부입니다.”

무인은 오곡주에게 특별지시는 받은 듯 무척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걸은 성검문에 대해서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들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다는 것은 모종의 사연이 있다는 뜻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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