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第十九章 사도(死刀) (1)
서리가헌은 풍도곡에 있다.
그를 만나려면 특정한 장소로 찾아가면 된다. 그리고 그 장소를 조추한이 말해주었다.
몽설이 공격당한다고 해서 발길을 돌렸지만, 원래는 곧바로 서리가헌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추한을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추한을 죽이면 성검문 추격을 받는다. 하지만 성검문이 달려들 때는 이미 자신은 서리가헌에게 죽은 후일 것이니 뭐가 걱정되나.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
그렇다. 죽을 생각이었다.
이 싸움은 어차피 그런 결론에 이른다.
자신이 지금에 와서 일홀도를 얻는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나. 서리가헌과 형개는 이미 십오 년 전에 일홀도를 얻었다. 그리고 십오 년을 부단히 수련했다.
그들을 어떻게 이기나.
할배가 벌여놓은 싸움이니 끝까지 달려가기는 한다.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일어나든 할 바는 한다.
만약 그때 서리가헌을 찾아갔다면 지금쯤 시신이 되어서 썩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 일 년, 이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달라지지 않는다.
일홀도를 얻은 다음에 싸우겠다는 것은 싸우기 싫다는 핑계에 불과하다.
싸우려면 지금 싸워야 한다.
할배는 준비가 안 된 것을 알면서도 싸움을 붙였다. 불씨를 확 당겨버렸다.
지금이 아니면 싸우겠다는 의지마저도 꺾인다고 본 것이다.
풍도곡은 섬서성(陝西省) 진령산맥(秦嶺山脈)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다.
진령산맥은 워낙 산이 높아서 북쪽과 남쪽 날씨가 확연하게 다르다. 북쪽은 춥지만, 남쪽은 따뜻해서 땅도 비옥하고 동식물도 다양하게 서식한다.
진령산맥은 험산으로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아주는 자연 성벽이기도 하다.
풍도곡은 진령산맥 남쪽에 있다.
성검문은 일홀문에게 사방 오백 리라는 거대한 땅을 주었다.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 땅이 아무리 넓은들 무엇을 하겠나. 오백 리 안에서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다.
성검문은 일홀문을 무려 십오 년이나 유배시켰다.
그래도 일홀문은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풍도곡이 매우 마음에 드는 듯 깊이 안주했다.
아걸은 진령산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숨을 필요는 없겠지.’
아걸은 세상 앞에 당당히 나서자는 생각을 했다가, 또 피식 실소를 흘렸다.
이런 생각도 몽설 때문에 일어났다.
그녀가 있는 귀문이 안전하려면, 세상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살수문파, 귀문을 주시하는 문파는 없다.
어지간한 문파는 귀문을 찾지도 못한다. 청부사자에서부터 귀문을 찾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나.
아걸은 성검문과 풍도곡을 염려한다.
그중에서 특히 풍도곡이 마음에 걸린다. 사곡 부곡주가 보여주었던 무공이 아무래도 찜찜하다.
자신이 받으려는 시선은 엄밀히 말하면 사형의 눈길이다.
사형들이 귀문을 보지 못하게끔 유인한다. 오로지 자신만 쳐다보게 한다.
* * *
진평루(鎭平樓)!
평범한 객잔이다.
대략 방이 서른 개쯤 되어 보인다. 술은 팔지 않고, 오직 숙식만을 위한 객잔이다.
아걸은 객잔으로 들어갔다.
“며칠이나 주무시게요?”
객잔에 들어서자마자 점원이 쪼르르 달려와서 물었다.
“하루.”
“하루요. 네, 방 있습니다. 열문, 선지급이고요. 저녁하고 내일 아침은 제공됩니다. 저기에서 드시면 돼요.”
점원이 손으로 식당을 가리켰다.
“목욕할 수 있나?”
“넵! 저기 욕탕이 있으니까 언제든 사용하시면 됩니다. 여기 물이 아주 좋아요.”
점원이 욕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점원은 침대 하나, 탁자 하나가 전부인 조그만 방으로 안내했다.
아걸은 창가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이 층이다. 밑으로 뛰어내리는 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하필이면 떨어지는 곳이 객잔으로 들어서는 입구여서 몇 사람만 틀어막으면 꼼짝없이 갇힌다.
앞은 툭 터졌다.
양옆으로 다른 객잔이 두 개 더 있다. 손님은 절반쯤 찼고, 무인은 한두 명 정도밖에 안 보인다.
특별히 경계할 게 없어 보인다.
아걸은 끈을 꺼내서 소매와 발목을 단단히 묶었다. 반철도를 꺼내 날도 살펴보았다.
성검문은 중원 모든 객잔에 눈을 심어두고 있다.
그러니 성검문에 추격을 당하는 자는 절대로 객잔에 투숙하면 안 된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객잔이 있는 마을에는 얼씬거리지도 말아야 한다.
진평루도 마찬가지다. 벌써 오래전에 용모파기가 전해졌다.
소축십검을 죽인 자이니 특급 죄인으로 수배되었을 것이고, 현상금도 꽤 두둑할 것이다.
또르륵!
찻잔에 물을 따라서 마셨다.
독 같은 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객잔은 고변만 할 뿐,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무인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멀리 큰 산이 보인다.
나는 새도 넘지 못할 정도로 큰 산들이 꽉꽉 몸을 붙이고 있다.
얼핏 봐서는 반나절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산맥이 커서 한눈에 들어올 뿐, 어른 걸음으로 최소한 칠 주야 이상은 걸린다.
‘진령.’
후루룩!
진령산맥을 쳐다보면서 뜨거운 차를 마셨다.
저곳 어딘가에 풍도곡이 있을 것이다.
조추한의 말을 빌리면 성검문은 항상 마차를 이용해서 풍도곡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찾기는 어렵지 않다. 험산에서 마차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인근에 사는 마부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빨리 찾는 길인데, 서슬 퍼런 풍도곡과 관련된 일이니 말해줄 리가 없다. 피해를 주기도 싫고.
직접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진령을 뒤져야 한다.
진령은 한 바퀴 도는 데만 두 달 이상 걸리는 큰 산맥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풍도곡을 찾는데 대략 한 달 정도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후루룩!
찻물을 또 한 모금 들이켰다.
그때, 아래층에서 ‘삐걱!’하고 신경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훗! 빨리도 왔군.’
아걸은 찻잔을 탁자에 올려놨다.
점원과 이야기를 할 때 옆구리에 찬 반철도를 세 번 이상 건드렸다. 칼을 만들다가 만 것처럼 반쪽만 남아있는 철도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도 점원은 반철도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반철도를 봤다.
점원이 보라고 일부러 반철도를 건드린 것이지만, 굳이 건드릴 필요도 없었다.
창문 너머 바깥 상황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무인들이 손에 병기를 들고 주위를 에워쌌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포위망을 펼치고 있는데, 기세가 매우 흉포하다.
‘지금부터는 잠잘 시간도 없겠군.’
아걸은 반철도를 들고 일어섰다.
휙! 퍼억! 크아악!
일도에 문짝이 잘려나가며 비명이 터졌다.
방문 가까이 접근하던 무인이 느닷없는 일격에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스읏!
아걸은 부서진 문을 밀쳐내며 복도로 나갔다.
대략 십여 명쯤 되는 무인들이 이 층에 올라와 있다. 일 층 넓은 마당에도 스무 명가량이 서 있다. 객잔 밖에는 그보다 많은 오십여 명쯤 되는 자들이 포위했다.
거의 백 명에 육박한다.
툭! 뚜둑!
아걸은 나무로 만든 복도를 걸었다. 순간,
푸악!
발밑에 있던 나무가 산산이 부서지며 창 한 자루가 불쑥 솟구쳐 올라왔다.
아걸은 발로 차서 창대를 부러트렸다. 그리고 부러진 창을 또다시 발로 차서 다른 무인에게 쏘아 보냈다.
퍽! 푹!
무인은 날아온 창을 피하지 못하고 가슴 정중앙이 꿰뚫렸다.
그가 뒤로 삼 장이나 날아가 떨어졌다.
“으아아악!”
그는 땅에 떨어진 후에야 비명을 내질렀다. 사실은 창에 맞는 순간에 비명을 토해냈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땅에 떨어진 후에야 소리를 지른 듯했다.
아걸의 발길질에는 강한 경기가 실렸다. 칼에 운집시키면 일홀도가 되었을 경기가 발에 모여서 터졌으니 막아내기 어렵다.
툭! 스스슷!
아걸이 할 걸음 다가서면 무인들은 한 걸음 물러섰다.
그렇다고 겁을 집어먹은 표정은 아니다. 저들의 눈길은 더욱 사나워졌다.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살기가 가득 풍겼다. 정면 싸움만 피할 뿐이다.
‘개싸움.’
무인들은 개싸움을 하려고 한다.
개떼처럼 우르르 달려들 생각이다. 철저하게 정면 싸움은 피하고 다수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해서 빈틈만 공격한다. 주로 등 뒤만 노린다.
이런 싸움은 치졸해 보일지 모르지만 강한 적을 무너트리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다.
당연히 정도 문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문파 체면이 있지, 어떻게 여러 명이 한 명에게 우르르 달려들어서 합공을 펼치나.
합공을 펼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진법에 맞춰서 정당하게 무공으로 겨룬다. 슬슬 도망 다니면서 허점만 파고드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이들은 문파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파락호나 사파 무인이라는 이야기인데…… 진령 부근에 정사 중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문파가 있다. 정도를 표명하며 사파나 할 짓을 은근히 한다.
대산방(大山幫).
대산방은 자체적으로 무인을 양성하지만, 강한 무인을 포섭해서 문도로 만들기도 한다.
병기가 제각각이고, 사용하는 무공도 각기 다른 이유다.
아걸은 마루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슬금슬금 물러서는 무인 두 명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십칠대 문주의 도령전체를 떨쳐냈다.
몸이 빙글 휘돈다. 팔에 붙어있는 반철도가 몸을 따라서 휘돈다. 몸과 칼이 하나가 되어서 휘돈다. 순간,
파앙!
공기가 압축되었다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슬금슬금 물러서던 무인 두 명이 앞으로 확 끌려 나왔다. 아니, 휘도는 칼을 향해 몸을 들이밀었다. 당연히 가슴에 일격을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퍼억! 쿵!
“으아악!”
“커억!”
비명이 객잔을 쩌렁 울렸다.
아걸은 이들을 단숨에 죽일 수 있다.
빠른 칼은 고통 없이 목숨만 끊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혼절한 것처럼 피식 쓰러지니 어쩌면 복 받은 죽음이다.
지금은 난폭하게 칼을 썼다. 빠른 칼이 아니라 성난 칼이다.
무자비하게 살을 헤집고 들어가는 도법이다.
신경을 끊지 않고 장기와 뼈만 갈랐기 때문에 고통이 매우 극심하다. 피는 빗물처럼 펑펑 쏟아져 나온다. 몸부림칠 때마다 피가 콸콸 쏟아진다.
이런 모습을 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도 극심해진다.
슷!
반철도가 한 사내를 겨눴다.
순간, 아걸의 신형이 반철도가 가리킨 사내를 향해서 화살처럼 쏘아졌다.
“크아아악!”
무인은 가슴에 일격을 맞고 뒤로 훌훌 날아가 떨어졌다.
반철도가 사내의 가슴을 꿰뚫는 순간, 아걸은 발을 들어서 사내의 배를 걷어찼다. 반철도를 몸에서 빼냄과 동시에 사내의 몸을 빌려서 길을 뚫는다.
순식간에 네 명이 쓰러지자, 비로소 무인들의 얼굴에 공포가 일렁거렸다.
‘이거 뭐 하는 놈이야?’
그들은 아걸을 괴물 쳐다보듯이 봤다.
아걸과 대산방은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포위했고, 무작정 칼을 휘둘렀다.
솔직히 대산방은 아걸이 누군지 잘 모른다.
성검문이 아걸을 지명수배했고, 점원이 수배자가 나타났다고 하기에 잡으러 온 것뿐이다. 다만, 성검문이 직접 지명수배한 자이기에 뭔가 대단할 것 같아서 우르르 달려왔을 뿐, 이토록 강한 자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읏!
아걸이 칼을 들었다.
무인들은 불에 뎄을 때처럼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