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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92화 (92/600)

#92화. 第十九章 사도(死刀) (2)

“싸워!”

일 층 한쪽 구석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지금까지 주춤주춤 물러섰던 무인들이 일제히 병기를 고쳐 잡았다.

무공으로 상대할 수 없는 고수다. 그런데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것이 개싸움이다.

스읏! 촤앗!

아걸이 다가서면 무인들은 물러섰다.

아걸이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무인들은 떠밀리듯이 우르르 밀려 내려갔다.

무인들은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물러선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는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투지가 일렁거린다. 병기를 잡은 손에도 힘이 꽉 들어가 있다.

‘너무 많아.’

상당히 많은 무인이 몰려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낮이고 밤이고 쉬지 않고 싸우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막상 백 명이 넘는 사람과 만났고, 이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해진다.

‘기왕 피를 흘려야 한다면!’

스읏!

반철도를 쳐들었다.

한두 명이 떨어져 있는 곳보다 대여섯 명이 뭉쳐 있는 곳을 공격한다.

쒜엑!

아걸은 성난 비호처럼 달려들었다.

“온닷!”

무인들이 일제히 병기를 쳐냈다. 일부는 싸우는 척하다가 뒤로 쭉 물러섰다.

촤라라락!

반철도가 허공을 휘저었다. 십이대 문주의 유성비도가 병기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컥!”

“크으윽!”

무인들이 답답한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네 명을 격살했다.

단지 몸에 상처를 입히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도, 일도가 모두 치명적이다. 칼에 맞는 즉시 즉사할 수밖에 없는 사혈 중 사혈만 베어냈다.

뒤로 물러선 자는 두 명.

그들은 즉시 아걸의 등 뒤로 돌아갔다. 또 등 뒤에 있던 자들은 재빨리 검을 쳐왔다.

아걸이 뒤돌아서자, 달려오던 자들이 다시 물러섰다.

슷!

아걸은 그들을 향해 칼을 들었다. 그러자 등 뒤에 있는 자들이 슬그머니 달려들었다.

등을 본 자는 즉시 달려든다. 아걸이 돌아서면 재빨리 물러선다. 그리고 등을 본 자가 달려든다.

물러서는 쪽이 있으면 달려드는 쪽도 있다.

복도나 계단처럼 좁은 공간에서는 개싸움을 하기 힘들었다.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 층 넓은 공간에서는 빙 둘러설 수 있다. 아걸이 어떻게 움직이든 등을 보는 자는 생긴다.

촤착! 촤앗!

다가서는가 하면 물러서고, 물러섰나 싶으면 다시 달려들었다.

‘철저하게 싸움을 피하고 허점만 노린다. 꽤 귀찮은 전법이야.’

아걸은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서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그들이 물러서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섰다. 그리고 이십일대 문주의 칼, 낙화도가 떨어졌다.

꽈직!

무인은 검을 들어 올렸다. 떨어지는 칼을 검으로 막았다. 하지만 검이 싹둑 잘렸다. 그리고 떨어진 칼이 머리를 감자 쪼개듯이 갈라버렸다.

“싸워!”

느긋하게 팔짱을 켠 채 싸움을 지켜보던 자가 싱긋 웃으면서 명령했다.

수하들에게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을 독려한다?

얼핏 보면 그렇다. 하지만 아걸은 칼을 쓸 때마다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는 대산방 무인들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강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만큼 진기 소모가 많다. 지금 당장은 우세를 보일지 모르지만, 하루만 지나면 동작이 무뎌진다.

원래 개싸움은 지구전이다.

휘릭! 쉬이잇!

등을 노리고 몇 명이 달려들었다.

아걸은 그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질주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자보다 빨리 달린다. 달리면서 거치적거리는 자들을 베어낸다. 이것이 일일이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때,

휘잇!

무엇인가가 뒷머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암기!’

아걸은 머리를 살짝 젖혀서 피했다.

쓋!

쇳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홱 지나갔다. 무엇인지 너무 작고 빨라서 눈에 띄지도 않았다.

쒜엑! 쒝!

그 사이, 무인 두 명이 검을 쳐냈다.

물론 그들이 떨쳐낸 검은 아걸에게 닿지 않았다. 그들도 반격을 받을 정도로 깊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검을 쳐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상대도 안 되던 자들이 점점 날뛰기 시작했다.

쒜에엑! 쒝!

후배도가 날아갔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반철도를 등 뒤로 휘둘렀다.

“컥!”

검을 쳐냈던 자 중 한 명이 목을 움켜잡고 비틀거렸다.

반철도가 목을 그어버렸다. 제이대 문주의 목도일참 팔십일 참도 중 후배도가 정확하게 터졌다.

휘익!

암기가 또 날아왔다.

암기통을 입에 문 자들이 십여 걸음 떨어진 곳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입으로 발사되는 암기, 독침이다.

스읏!

아걸은 무인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최소한 독침을 쓸 기회는 주지 말아야 한다. 독침을 사용해도 맞지 않겠지만, 매우 신경이 거슬린다.

쉬릿! 쉿!

단도격타가 터졌다. 반철도가 단도로 변해서 주위에 있는 무인들을 훑었다.

“크윽!”

“컥!”

무인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몇 명이나 베었는지 모르겠다. 대략 스무 명 정도는 쓰러트린 것 같다.

“철구(鐵鉤)!”

명이 떨어지자 쇠갈고리를 든 자들이 쑥 나섰다.

휘이잉! 휘잉! 휘이이잉!

멀리 떨어져서 쇠갈고리를 휘두르는 소리가 맹렬하게 들렸다.

철구를 든 자들이 빙빙 선회한다. 아걸을 중심에 놓고, 조심스럽게 옆걸음질을 한다.

쉿!

철구가 날아왔다.

아걸은 살짝 몸을 비틀어서 피했다.

이들은 여전히 개싸움을 하고 있다. 승부를 내려는 것이 아니다. 지치게 만들려는 것이다. 마음대로 칼을 쓸 수 없는 곳, 등만 전문적으로 노린다.

쉿! 쉿쉿!

철구가 대담하게 던져졌다. 아걸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겠다는 듯 쉴 새 없이 허점을 찔러왔다.

등, 다리, 허리 등등 주로 즉시 방어를 할 수 없는 부위만 노렸다.

“철구를 사용한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지.”

슷!

반철도가 쳐들었다. 순간, 반철도가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고, 현란하다. 허공에 도광 수십 개를 그려놓는다. 마치 칼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위협적이지도 않다. 철구를 노리고 쳐낸 도법이 아니다.

“미친놈!”

무인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러잖아도 힘 빼기 작전을 펼치고 있는데, 본인 스스로 힘을 빼고 있으니.

파앗!

허공에 마구 그림을 그리던 반철도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아걸이 반철도를 던졌다. 손에 꼭 잡고 사용해도 부족할 판인데, 병기를 놓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팟!

허공으로 솟구치던 반철도가 갑자기 연기처럼 꺼져버렸다.

“앗!”

반철도를 쳐다보면 무인들은 칼이 느닷없이 사라져버리자 깜짝 놀라서 경악성을 흘렸다. 순간,

“크윽!”

“커어억!”

비명들이 연신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철구를 든 자들이 쓰러졌다.

한 명만 쓰러진 것이 아니다. 다섯 명 모두가 거의 동시에 풀썩 꺼꾸러졌다.

혈도는 계속 이어졌다.

“아아아악!”

무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쓰러졌다.

시선들이 허공에 떠 있는 칼을 주시할 때, 반철도는 허리를 베고 있었다.

그가 그려낸 칼춤은 허상, 환상이다. 환도의 결정체다. 이를 일컬어 십이살환도라고 한다.

대산방 무인들이 중원을 떨쳐 울리던 절정도법을 어떻게 상대하겠나. 칼이 번뜩일 때마다 목숨을 내놓는 방법밖에는 없다. 오직 죽음만 선택할 수 있다.

“피해!”

대산방주는 수하들이 스무 명 가까이 쓰러졌을 때에서야 다급하게 외쳤다.

* * *

해가 졌다. 그리고 다시 날이 밝아왔다.

무인들의 숫자는 훨씬 늘어났다.

처음 객잔을 포위한 자는 백여 명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오백 명 가까운 자들이 겹겹이 둘러섰다.

반철도에 쓰러진 자만 쉰 명이 넘는다.

아걸도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이토록 많은 사람을 죽이기는 처음이다.

객잔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숫자가 너무 많다.

이번 싸움에 가담한 무인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죽일 숫자가 너무 많다.

아걸의 손과 발도 많이 무뎌졌다.

처음처럼 경쾌하게 신법을 날리지 못하고 기회가 포착될 때만 번뜩번뜩 신형을 쏘아냈다.

반철도가 목표를 놓치는 경우도 잦아졌다.

무인들은 반철도로 겨누기만 해도 물러섰다. 어떤 자는 아걸이 방향만 틀어도 뒤로 빠졌다.

등을 노리는 자는 더욱 신속해졌다.

암기를 쏘아내는 자가 제일 신경이 쓰였다. 워낙 작은 침을 쏘아내기 때문에 아걸도 방심하지 못했다.

실제로 독침 몇 개는 살을 찢으며 지나갔다.

그 정도 상처만으로도 행동이 둔해졌다. 정통으로 찔리지 않았는데, 발에 납을 달아놓은 듯 무겁다. 호흡도 얕아져서 숨을 크게 들이쉬어야만 한다.

독기가 대단히 지독하다.

“비폭(飛瀑)!”

대산방주가 끊임없이 명령했다.

단병을 든 자들이 뒤로 빠지고 장창을 든 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인원은 모두 열 명. 창을 겨누고, 찌르고, 거두는 동작이 일사불란하다.

이들은 정통무가에서 창법을 제대로 배웠다. 열 명이 펼치는 연수합격술도 능하다.

쉬리리릭!

아걸을 수신도를 펼쳐서 창대를 잘라냈다.

타앙! 탕탕!

거센 충돌이 일어났다.

창대는 잘리지 않았다. 쇠로 만든 창은 아닌데, 반철도를 이겨낼 만큼 탄성이 강하다.

‘응?’

아걸은 눈살을 좁히며 창수들을 쳐다봤다.

스읏! 슷!

다섯 명이 창으로 아걸을 견제한다. 그 사이, 다른 다섯 명이 일제히 아걸을 찔렀다.

공수합격이 완벽하다.

창을 겨눌 때는 움직일 수가 없고, 창을 찔러올 때는 꿰이는 것밖에 달리 움직일 공간이 없다고 생각된다.

쒜에에엑!

아걸은 반철도를 몸에 붙인 채 빙글 한 바퀴 원을 그렸다.

반철도와 장창이 부딪쳤다. 장창이 힘없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이들은 장창을 떨쳐낼 때 힘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반철도로 타격하면 여지없이 퉁겨진다. 오로지 창을 찌르는 속도만으로 공격하고 있다.

이런 창법은 안전을 극대화한다.

설혹 창을 놓쳐도 창수는 안전해진다. 창에 진기를 넣어서 찌르는 데 사용하고, 창이 찔러가면 즉시 진기를 회수한다. 그러니 창수는 아무런 반격도 받지 않는다.

창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아걸은 처음으로 틈을 잡아내지 못했다. 십창진을 벗어나야 하는데, 벗어날 방법이 없다. 창 열 개 중 다섯 개는 항상 아걸의 움직임을 가로막는다.

아걸은 반철도를 가슴 앞에 세웠다.

오른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는 칼등을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파앗!

신형을 허공으로 띄웠다.

순간, 창 열 개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 일제히 허공을 찔러왔다.

아걸은 제일대 문주, 광도라고 불렸던 일홀문주의 미친 칼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십육 식 백이십팔 초의 도법!

타앙!

반철도가 창대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는 창과 칼이 부딪치는 탄력을 이용해서 왼쪽에 있는 창수에게 확 달려들었다.

허공에서 신형을 비트는 반공중황(半空中晃)이라는 도법이다. 환부살도 제이식이다.

“엇! 컥!”

창수가 이마에서 피를 쏟으며 뒤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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