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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94화 (94/600)

#94화. 第十九章 사도(死刀) (4)

“후욱! 훅! 훅!”

아걸은 거친 숨을 내뿜었다.

일홀문주 중에 마도(魔刀)로 불린 문주가 있었나? 광도는 있지만, 마도라고 불렸던 분은 없다.

이 싸움이 끝나면 일홀문에서 마도가 탄생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악귀, 마귀, 혈귀 등등 온갖 지독한 말을 전부 붙일 것이다.

또 이 싸움이 끝나면 세상은 성검문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검문은 무림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중원 무림에서 성검문의 말은 곧 법이다. 그 누구도 성검문에 대항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십여 년 전에는 꽤 많은 사람이 성검문에 도전했다.

비록 도전의 결과가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성검문의 결전장인 혈무대에 올랐다.

지금은 도전하는 사람이 없다.

무림은 죽었다.

성검문주가 공부 허도기가 되는 순간, 무림에는 최초로 평화로운 시기가 찾아왔다.

어떤 사파 무리라도 성검문에게 아부만 잘하면 존속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그런 경우는 없지만, 실질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걸은 대산방과 싸운다. 인근 지역에 터전을 둔 무인들과 혈전을 벌인다.

하지만 이 싸움은 분명히 성검문에 대한 도전이다.

“후욱!”

거친 숨이 뿜어지지만, 팔뚝에는 힘이 꽉 들어갔다.

“겨우 이 정도인가!”

버럭 내지른 일갈에 그를 둘러싼 무인들이 움찔거렸다.

그들 눈에는 아걸이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인간이 이틀 동안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싸울 수 있나.

“타앗!”

아걸은 힘차게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몸을 빙글 돌리면서 회선도를 펼쳤다.

서른여섯 가지의 칼은 녹아들 대로 녹아들어서 생각만 일으키면 저절로 펼쳐진다.

그런데도 뭔가 부족하다.

몸에 붙은 도법만 전개하기에는 뭔가 밋밋하다. 그래서 보상 동작을 하나 더 넣는다.

파르르릉!

칼이 떨린다. 부르르 진동을 일으킨다.

“아아악!”

“커억!”

무인 두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가떨어졌다.

무공을 펼칠 때, 보상 동작이 일어나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칼이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제 길을 찾기 위해서 다른 동작이 필요한 것이다. 제대로 칼을 썼다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동작이다.

부수적인 움직임이 생겼다면 즉각 도법을 돌아봐야 한다.

아걸은 회선도를 능숙하게 펼쳤다. 전혀 거침이 없었다. 칼이 부드럽게 흘렀고, 막히는 부분도 없었다. 그런데 왜 한 번의 움직임이 더 필요했을까?

‘내 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앗!”

아걸은 칼을 고쳐 잡았다.

“저거, 저거, 저거……!”

대산방주는 할 말을 잃었다.

문도 중 사백여 명이 쓰러졌다. 한 문파가 한 명에게 도륙당하는 중이다.

대산방 하면 진령 이남 천 리 안에서는 가장 막강하다.

중원에 성검문이 있다면 진령 이남에는 대산방이 있다.

다른 문파는 문도가 겨우 이삼십 명인데, 대산방은 오백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런 문파가 한 명에게 무너지는 중이다.

‘아! 잘못 건드렸다……!’

때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성검문 지명수배자를 찾은 것은 아주 좋은 기회처럼 보였다. 시골 촌구석에 있는 문파가 중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지 않은가.

그래서 전력을 이끌고 왔는데, 이게 뭔가?

아걸은 미친 듯이 칼을 쓰고 있다. 약에 취한 듯 비몽사몽간에 도법을 펼친다.

아걸에게는 죽는 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죽이는 자도 아니다. 칼을 휘두르는 자일뿐이다. 죽이는 사람과 죽는 사람은 없고, 행동하는 사람만 있다.

삶과 죽음을 생각했다면 저렇게 칼을 쓸 수 없다.

“문도를 물려야 할 것 같습니다.”

부방주가 신중하게 말했다.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한 고수일지라도 개싸움으로 끌어들이면 이길 수 있다. 숨은 끊어놓지 못해도 아주 심한 상처까지는 입힐 수 있다.

독, 암기…… 모든 암수를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아걸은 그 많은 독침을 모두 피해냈다. 하지만 온전하게 피한 것은 아니다. 몸을 스치고 지나간 독침이 몇 개 있다. 쓰러졌어도 벌써 쓰러졌어야 한다.

검에 베이고, 칼에 스치고, 창에 찔렸다.

그런데도 멀쩡하게 서 있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거세게 난리 치는 중이다.

개싸움이 안 된다.

문도들이 등을 노리지 못한다. 줄기차게 등을 노려야 하는데, 노리는 족족 쓰러진다.

어떻게 된 게 아걸의 반응이 이틀 전보다 훨씬 빠르다.

“물려. 물려!”

대산방주가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방도가 전멸하기 전에 싸움판에서 빼내야 한다. 이건 완전한 개죽음이다.

저벅! 저벅! 저벅!

아걸이 반철도를 축 늘어트린 채 걸어갔다.

그는 혈인이다. 온몸이 피투성이다. 자신의 피, 그리고 남이 쏟은 피로 악귀가 되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반철도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휘청!

아걸은 불편한 데가 있는지 몸을 크게 휘청거렸다.

순간, 갈등이 치밀었다. 아걸 모습을 보면 한 번만 더 공격하면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걸을 공격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산방은 물론이고, 인근 문파에서 달려온 무인들도 눈만 끔뻑일 뿐이다.

저벅! 저벅!

아걸이 힘들게 걸었다.

그가 들고 있는 칼이 반 토막 칼이 아니라 장도였다면 땅에 질질 끌렸을 것이다.

“막지 마라.”

대산방주가 말했다.

아걸이라는 인간은…… 막으면 펄펄 날뛴다. 금방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은 속임수다. 저 모습에 속아서 달려들면 어느새 마도가 날아든다.

휘적! 휘적!

아걸은 진령산맥을 향해 걸어갔다.

* * *

혈도비자(血刀痞子)!

아걸을 일컫는 말이다.

진평에서 대산방 무인 사백십칠 명, 여타 무인 이십일 명을 죽인 대살인귀의 별호다.

사백삼십팔 명!

단일 싸움으로는 무림사에 기록될 만큼 아주 심한 살육이었다.

아걸에게는 ‘피투성이 칼을 든 개망나니’라는 별호가 안겨졌다.

비자라는 말은 개망나니를 일컫는 많은 말 중에서도 특히 정도가 심한 비속어다. 그런데도 아걸이 행한 살육을 생각하면 한참 부족해 보였다.

사람들은 비로소 성검문이 왜 그를 지명수배했는지 이해했다.

어지간한 사람, 웬만한 문파는 건드려볼 생각도 할 수 없는 대악귀다.

“놓아주었단 말입니까!”

초가평이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보냈습니다.”

“어디로 갔습니까?”

“진령산맥 쪽으로.”

대산방주는 나이 예순이 넘어서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가 더 많다. 그런데도 자신보다 스무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초가평에게 연신 머리를 숙였다.

“저 산이 진령입니까?”

“그렇습니다.”

“지도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야! 지도 가져와!”

대산방주는 문도를 태반이나 잃고도 마치 죄인이 된 듯이 머리를 들지 못했다.

그때, 주변을 살펴보던 이도창이 돌아왔다.

“저 산으로 흔적이 이어져 있습니다. 아직 피가 굳지 않았으니 바로 따라잡겠어요.”

“지도.”

초가평이 대산방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야! 지도 빨리 가져와! 굼벵이를 삶아 먹었어! 왜 이렇게 행동이 굼떠!”

대산방주는 방도를 재촉했다.

* * *

핏물은 산으로 쭉 이어졌다.

아걸은 굳이 핏물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흔적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다친 것 같다.

“흑지주(黑蜘蛛) 독에 중독되었다고 하니까 기절하기 일보 직전일 거야. 아무 정신도 없겠지.”

진개가 말했다.

“쉿!”

초가평은 즉시 말문을 막았다.

추격시, 대화는 금물이다. 적이 도주하다가 사람 음성을 듣고 몸을 숨길 수 있다. 또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중요한 단서도 놓친다.

“사형, 너무 조심하는 거 아니우? 우린 넷,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싸움이우. 핏자국도 선명하니 놓치고 싶어도 놓칠 수 없지. 더욱이 놈은 독에 중독되고, 지치기까지 했잖우?”

이뢰가 초가평을 보며 웃었다.

“느낌이 안 좋아.”

“또 느낌이오? 사형 느낌이란 게 뭔 맞은 게 있어야 말이지. 옛날에, 허도강을 칠 때도 안 좋다고 하지 않았나?”

“정말 안 좋다. 조용.”

“……알았수.”

그들은 핏자국을 쫓아서 진령산맥으로 들어섰다.

진령에는 풍도곡이 있다. 한데 아걸은 풍도곡으로 가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향했다. 풍도곡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니 당연히 헤맬 것이다.

“아!”

초가평은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진령까지 들어온 후에야 느낌이 안 좋은 이유를 알았다.

문주 이름으로 풍도곡 칼귀신들을 눌러 앉혔다. 절대로 풍도곡을 벗어나지 말라고 명령했다.

칼귀신들은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진령 부근에서 사백여 명이나 죽는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도 칼귀신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걸이 제 발로 걸어서 풍도곡으로 들어서는 것은 다른 문제다.

풍도곡은 일홀문 세상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소축십검은 검을 들지 못하고, 도귀들은 마음껏 칼을 휘두를 수 있다.

이것은 문주가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깨지 못한다.

아걸이 풍도곡으로 들어서면 잡지 못한다. 그 전에 잡아야 한다.

“서둘러야겠다!”

그들은 재빨리 핏방울을 쫓아갔다.

아걸은 핏물 외에도 많은 흔적을 남겼다. 발자국이 뚜렷하게 박혀 있고, 피 묻은 손으로 나무도 만졌고, 어떤 곳은 털썩 주저앉은 흔적까지 보였다.

아걸은 빨리 걸을 수 없다. 비록 한두 시진 정도 앞서서 진령으로 들어왔지만, 무척 느리게 이동하기 때문에 따라잡을 수 있다. 더욱이 진령은 험산이다. 두 발 가지고는 안 되고, 두 손까지 이용해서 산을 타야 하는 곳이 많다.

쉬잇! 쉿! 쉿!

그들은 산줄기를 비호처럼 치달렸다.

“저기!”

호금연이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찾았다!

아걸이 큰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다.

악명 높은 반철도는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핏물이 말라서 검붉게 보인다.

“후후! 사형, 앞으로는 그 느낌 말하지 마쇼. 뭐 아무 일도 없구만 그래.”

진개가 히죽 웃었다.

초가평도 웃었다. 진개가 놀리는 것은 마뜩잖지만, 아걸을 잡지 않았나.

아걸이 풍도곡으로 넘어가면 어쩌나 싶어서 마음이 무척 바빴다.

“이거 괜히 넷이나 온 것 같은데. 저놈 칼 들 힘도 없어 보이는데, 안 그래요?”

호금연이 말했다.

아걸이 사람 음성을 들었는지 푹 숙였던 고개를 쳐들었다.

얼굴도 핏물 범벅이다. 그에게 혈도비자라는 별호가 붙었는데, 딱 피 묻힌 망나니 모습이다.

저벅! 저벅!

그들은 아걸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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