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95화 (95/600)

#95화. 第十九章 사도(死刀) (5)

“후욱! 후욱!”

아걸이 연신 거친 숨을 뿜어냈다.

“얼굴색이 좋지 않군.”

진개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걸은 피부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다. 누가 봐도 독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알겠다.

아걸은 독침에 맞지 않았다. 만약 찔렸다면 벌써 사지가 마비되어서 쓰러졌을 것이다. 흑거미의 독은 너무 지독해서 의지로 버텨낼 수 없다.

독침이 스쳐 지나가면서 살갗을 약간 할퀴었다.

그 정도 독만으로도 아걸을 힘들게 한다. 몸을 덜덜 떨리게 만들고, 사지를 무력화시킨다.

지금 아걸 모습은 손가락으로 툭 밀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다.

초가평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본문으로 압송하겠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가서 말하도록 해라. 지금부터 팔 하나, 다리 하나를 자르겠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야 압송하기 편할 테지. 물론 거부해도 무방하다. 네 몸뚱이 중에서 필요한 건 주둥이뿐이니까.”

“큿……!”

아걸은 초가평이 말을 끝내자마자 실소를 흘렸다.

“이봐. 어망에 갇힌 물고기한테도 그런 말은 안 하겠다. 그게 지금 성검문 소축십검이라는 사람이 할 말이야? 이거야 원, 시정잡배만도 못해서.”

“후후!”

스릉!

초가평이 검을 꺼냈다.

아걸이 무슨 말을 하든 자신이 한 말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검 끝에 묻어나왔다.

“잠깐 기다려. 남이 다 잡아놓은 물고기를 주워 먹으려고 왔으면서 뭐가 급해? 나 이틀을 굶었다. 밥이나 먹고 하자.”

아걸은 품에서 육포(肉脯)를 꺼내 입에 넣었다.

우물! 우물!

아걸은 바싹 말린 고기를 침으로 녹여서 먹었다.

초가평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움직였다. 아걸이 도주하지 못하게 사방을 틀어막았다.

스릉! 스릉!

진개가 검을 뽑았다. 호금연도 뽑았다.

이도창은 검집이 없이 날카로운 검을 그냥 허리에 꽂고 다닌다.

검을 뽑지는 않았지만, 손잡이를 잡고 있으니 뽑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어떤 팔? 오른팔, 왼팔?”

아걸이 초가평을 보며 말했다.

“어떤 팔이 좋나? 원하는 팔을 잘라주지.”

“그것참 선택하기 곤란하네. 뭐 멀쩡한 팔을 자르겠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자, 그럼 내 팔을 자를 수 있는지 실력이나 보자고. 실력 없으면 말짱 꽝이잖아.”

아걸이 반철도를 짚고 일어섰다.

앉아있을 때는 굉장히 힘들어 보였는데, 칼을 들고 일어서자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단단하다.

휘이잉!

바람이 아걸을 훑고 지나갔다.

아걸은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든 말든 숨조차 쉬지 않고 고요하게 서 있다.

소축십검 네 사람도 검을 겨눴다.

소축십검 같은 무인에게 사 대 일의 승부는 가당치도 않지만, 일홀도는 모든 것에서 예외다.

신분이나 지위 같은 허식은 돌아볼 필요도 없다. 아걸이 하찮은 벌레처럼 보여도 최선을 다한다. 일홀문도라면 기르던 강아지조차도 경계해야 한다. 망설임을 버린다.

“간다!”

소리는 초가평이 질렀는데, 검은 이도창이 더 빨랐다.

쒜에엑!

아걸의 왼쪽 어깨를 노리고 검이 떨어진다.

한 줄기 빛살, 직사광류다.

타앙!

직사광류는 수신도에 막혔다. 어깨를 찌르기 직전에 반철도가 휘돌려졌다.

쒜에엑!

검이 왼쪽 옆구리와 등을 노린다.

왼쪽은 진개가, 등은 호금연이 맡았다.

모두 쾌검 일색, 빠르기가 번갯불이다. 검이 번뜩였는가 싶었는데, 벌써 몸에 닿고 있다.

까앙! 깡!

반철도가 간발의 차이로 검 두 자루를 밀어냈다.

이십오대 문주는 오직 수신도만 가지고 무림을 종횡했다.

칼로 만들 수 있는 완벽한 방패가 무엇인지 보려면 수신도를 보면 된다. 창, 철추, 철시, 암기 등등 어떠한 병기도 수신도가 일으킨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아걸이 수신도를 이십오대 문주만큼 수련했다면 소축십검 네 명은 결코 수신도를 뚫을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걸은 두 검을 밀어낸 후 신형을 휘청거렸다.

수신도에 반탄력을 실어야 하는데, 온전히 힘 대 힘으로 부딪쳤다. 내력 대 내력으로 부딪치면 결과가 뻔하다.

쉬잇! 쉿! 쉿!

호금연이 기회를 잡고 계속 공세를 펼쳤다.

아걸은 수신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계속 수세에 몰려서 방어만 취했다.

호금연의 검은 대산방 무인들의 공격과는 차원이 다르다. 맹수처럼 달려들기 때문에 순간도 방심하지 못한다.

쉬잇!

초가평도 쾌검을 펼쳐왔다.

사실, 소축십검 중에서 초가평의 검이 제일 빠르다. 오죽하면 번개라고 불리겠나.

까앙! 퍽!

호금연의 검은 막았고, 초가평의 검에는 어깨를 내줬다.

대산방과 치렀던 격전이 또다시 펼쳐지고 있다. 개싸움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번에는 효과가 있다. 아걸이 공세를 받아내지 못하고 소소한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일검에 숨을 끊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살갗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처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결정타를 얻어맞게 된다.

쒝! 쒝! 쒝! 쒝!

빈틈이 드러나자 검 네 자루가 동시에 들이닥쳤다.

순간, 반철도가 멈췄다. 수신도조차 펼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멀거니 서서 다가오는 검을 구경만 한다.

“팔!”

초가평이 왼팔을 향해 검을 쭉 그었다.

진개는 다리를 노린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다리를 노리고 검초를 펼쳤다.

하지만 그들 검을 상대할 시간이 없다.

호금연이 척추를 노린다. 이도창이 겨드랑이 밑을 찔러온다. 막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이며, 검에 사정을 담지도 않았다. 막지 않으면 정말 찌르겠다는 투다.

두 검을 막으면 두 검을 놓친다.

어떤 검을 막고 어떤 검을 놓치느냐는 아걸이 선택할 문제이지만, 어떤 검도 용서가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걸은 모든 검을 놓았다.

쒝! 쒝! 쒝! 쒝!

검이 육신을 난자한다.

순간, 아걸의 신형이 지극히 미미한 경련을 일으켰다.

공격한 소축십검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짧은 순간에 일었다가 사라져버린 떨림이다.

푹! 푹! 푹! 푹!

소축십검의 검은 아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하지만 원래 그들이 공격하고자 했던 곳이 아니다. 옆으로 조금 빗겨 난 곳을 벴다.

소축십검이 실수를 저질렀다.

눈 감고 펼친 검도 목표를 놓치지 않는다. 검으로 모기 날개를 잘라낼 수도 있다. 하물며 팔다리를 잘라내고자 했는데, 옆구리를 스쳐 가고 허벅지를 찌른다는 게 말이 되나.

호금연과 이도창도 마찬가지다.

척추를 노린 검은 어깨뼈 밑을 찌르다가 말았다. 계속 찌르면 심장이 꿰뚫리기 때문에 중간에서 멈춰야만 했다. 살려서 데려가야 하지 않나.

겨드랑이는 치명적인 요혈이다. 그곳을 꿰뚫리면 심장과 폐에 구멍이 뻥 뚫린다. 하지만 검 끝을 위로 쳐올리면 빗장뼈를 뚫고 나갈 수 있다.

이도창은 자신 스스로 검을 회수해서 옆으로 돌렸다.

마지막 순간, 검 끝을 위로 쳐올리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정확하게 검을 쳤는데, 이상하게도 간발의 차이로 손목을 움직여야 할 시간을 잃었다.

쒜에엑!

아걸이 반격을 해왔다.

모두 몸이 찰싹 달라붙다시피 밀착되어 있어서 짧은 칼로 공격하기가 쉽다.

네 검수는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그때, 아걸이 느닷없이 진개와 호금연 사이를 뚫고 숲속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엇!”

초가평이 의외의 상황에 기가 막힌 표정으로 도주하는 아걸을 쳐다봤다.

상처 입은 몸으로 도망가면 어디까지 가겠다고.

“일홀도는 맹수인 줄 알았는데, 쥐새끼였군. 도망? 후후후!”

초가평이 실소를 흘리면서 막 추격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때,

“우……! 우!”

이도창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모두 그를 쳐다봤다. 이도창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이도창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당했는데……?”

이도창이 흔들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뭐?”

초가평이 즉시 되물었다.

이도창은 대답하지 못했다.

초가평이 되물을 때, 끈 떨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힘없이 쿵 쓰러졌다.

“엇!”

호금연이 급히 달려가 이도창을 일으켜 안았다.

이도창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멀쩡했는데, 이제는 ‘이건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펑펑 쏟아져 나왔다.

“야! 정신 차렷!”

호금연이 이도창을 힘껏 흔들었다.

이도창은 의식을 찾지 못했다. 이미 절명했다. 가슴을 파고 들어간 칼이 심장을 갈라냈다. 그런데도 당한 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야 쓰러졌다.

이게 어떤 칼인가!

“……여기 있어라.”

초가평이 호금연의 어깨를 꽉 눌렀다. 그리고 진개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자!”

진개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일어섰다. 하지만 두 눈은 여전히 이도창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분노를 가득 담고.

* * *

일홀도를 수련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든 사람, 역대 일홀문 대다수가 선택한 방법이다.

서리가헌이나 형개처럼 지옥 수련을 한다. 실전도 경험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칼을 찾는다.

이 방법이 전통적인 수련이다.

서리가헌과 서리형개는 이 방법으로 일홀도를 얻었다.

사부도 제자들의 칼을 인정했다. 그래서 서리 성을 기꺼이 내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일홀문주가 되는 것이다.

서리가헌과 서리형개가 칼을 섞어서 최종 승자를 가려낸다.

이긴 자는 일홀문주가 되고, 진 자는 죽는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을 가지고 칼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로 엇비슷한 무공을 지녔다면 죽을힘을 다해서 싸워야 한다. 그러다 보니 죽게 되는 것이다.

일홀문도끼리의 승부는 늘 간발의 차이로 결정 난다.

서리가헌과 형개는 마지막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일홀문주가 되면 만인의 존경을 받는다. 아주 강한 칼로 인정된다. 지금도 성검문은 서리가헌과 형개를 무시하지 못한다. 두 사람의 칼만은 인정한 상태다.

다른 방법으로도 얻을 수 있다.

무림에서는 얻을 수 없고, 전쟁터처럼 수많은 죽음이 일어나는 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죽음의 칼, 사도(死刀)다.

전쟁터에서는 초식을 쓸 시간이 없다. 내리긋든, 찌르든 한 번의 칼질로 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반대로 내가 죽을 위험도 항상 도사리고 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인다.

끝없이 죽이다 보면 인정이 없는 칼,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는 칼, 쓸데없는 움직임이 배제되고 오직 죽음만 일으키는 칼, 일격에 뼈까지 갈라버리는 칼이 완성된다.

전쟁터에서 실전을 통해 최극강의 칼을 얻는 것, 일홀도를 얻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으로 일홀도를 얻은 일홀문도는 없다.

말 그대로 두 번째 방법은 사도가 된다. 핏물 속에서 뒹굴며 수련한 칼에는 귀신이 달라붙는다.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한다. 존경은커녕 오히려 두려움을 일으킨다. 정도보다는 사마외도에 가까운 칼이 된다.

아걸은 후자를 선택했다.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면 인근 지역 무인들이 대거 달려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독한 싸움이 되리란 것도 예상했다.

그렇기에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인정을 버려야 한다. 사람임을 포기해야 한다. 짐승처럼 싸워야 한다.

소축십검이 달려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사고라면 일단은 피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싸웠다. 죽음을 끌어안고 수련하는 것이 일홀도다. 저승사자가 목줄을 움켜쥐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싸운다.

“하악!”

아걸을 뒤돌아봤다.

초가평과 진개가 쫓아오고 있다. 포기할 사람들이 아니다. 이제 이도창까지 죽었으니 더욱 사납게 공격할 것이다.

툭!

그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나무에 등을 기댔다.

조금이라도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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