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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00화 (100/600)

#100화. 第二十章 서리(徐離) (5)

쒜엑! 쒜에에엑!

부자연스러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인데,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걸은 몸을 굽혀서 계곡물을 꿀꺽꿀꺽 맛있게 마셨다.

달려오는 사람이 누군지 안다.

동박의 거처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따라붙은 것을 보면 누가 알려줘서 쫓아온 것이다.

“사형이란 사람들이 참 야박하네.”

아걸은 반철도를 힘 있게 꾹 눌러 잡았다.

서리형개는 자신을 살려준 이유를 노골적으로 말했다. 성검문과 피 터지게 싸우라고.

그러니 저들에게 위치를 알려준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아걸은 서리형개의 행동을 다른 측면에서 이해했다.

자신이 일홀사도에 들어선 것을 안다.

일홀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안다.

그래서 저들을 붙였다.

싸워서 죽으라는 말이 아니다. 이기라는 말도 아니다. 무조건 싸우라는 말이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싸우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도주하면 된다. 도주라는 것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한숨 돌린 후에는 또 싸운다.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목숨이 위태로운 싸움일수록 일홀도가 드러난다.

자꾸, 자꾸, 자꾸…… 계속해서 일홀도를 드러내야 한다.

서리형개는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해지기를 바란다. 상대도 안 되는 하찮은 자가 아니라 목숨을 걸 만한 호적수가 되어서 나타나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지만, 일홀문도는 확실하게 이해한다.

‘이해할 수가 없어. 일홀도를 가진 사람이 허도기에게 눌려 지냈다는 게. 그것도 십오 년이나. 칼을 들었어도 몇십 번은 들었을 시간인데.’

아걸은 백석골을 걸어 내려갔다.

급하게 걷지 않는다. 저들을 피할 생각이 없다.

싸우기 좋은 장소를 고르지도 않는다. 칼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 모든 곳이 싸움터다.

“서라!”

등 뒤에서 쩌렁 일갈이 터져 나왔다.

‘……진개.’

아걸은 음성만 듣고도 상대가 누구인지 알겠다.

벌써 그만큼 서로를 알게 되었다.

얼굴을 본 것은 손속을 섞는 잠깐뿐이었는데도 진개라는 무인을 기억한다.

아걸은 무표정한 얼굴로 뒤돌아섰다.

세 명이 급히 달려와서 아걸을 포위했다.

한 명은 아걸을 지나쳐서 밑에 자리를 잡고, 나머지 두 명은 달려오다가 멈췄다.

계곡에서는 위쪽에 자리를 잡는 게 훨씬 유리하다.

아래는 아걸이 내려가지 못하도록 막기만 하고, 정작 공격은 위에서 펼쳐진다.

스읏! 슷!

장검이 그를 겨눴다.

아걸은 반철도를 거꾸로 잡았다. 칼날을 팔 뒤로 숨긴 형태다.

역수검(逆手劍)이라고 해서 검법에서도 꽤 많이 보이는 파지법이다.

“풍도곡 살귀들에게 걸려서 네놈 인생도 끝났다 싶었는데, 용케 살아나왔군.”

초가평이 싸늘하게 말했다.

“소축십검 손에서 빠져나간 건 ‘용케’가 아닌가? 용케도 몇 번 겹치면 그건 용케가 아니야. 실력이지.”

“실력으로 살귀들 손에서 벗어났다? 후후후! 풍도곡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아걸은 대꾸하지 않고 왼손을 펼치더니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그리고 다시 소지부터 펴졌다.

아걸은 약지까지 편 다음에 행동을 멈췄다.

“일곱.”

“……?”

“너희들 검을 일곱 번은 막겠어. 그러고도 내가 쓰러지지 않았다면 너희를 죽였다는 뜻일 거고, 그렇지 않으면 여기 어디 코 박고 쓰러져 있겠지.”

“그걸 센 거냐?”

“전에 봤던 검초를 떠올리면서 초수를 헤아려 봤는데, 칠 초까지는 막는다니까.”

아걸이 눈으로 웃었다.

“확인해 보지!”

쒜엑!

밑으로 내려간 호금연이 십칠연검을 펼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검벽(劍壁)이 형성되었다. 검 수십 자루가 일시에 곤두선 것 같다.

호금연은 십칠연검을 한 번으로 끝내지 않을 생각이다.

아걸이 계곡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몇 번이고 연달아서 펼쳐내려고 한다.

대체로 성검문도는 십칠연검을 세 번 정도 펼칠 수 있다.

소축십검은 십칠연검을 연달아 백이십 회까지 펼친다. 거의 반 시진 넘게 검초를 유지할 수 있다.

팟! 파앗!

초가평과 진개가 동시에 신형을 띄웠다.

초가평은 우중광류를, 진개는 검극지월을 펼쳤다.

우중광류의 빠름으로 압도하고, 바로 뒤를 이어서 검극지월의 정확함으로 승부한다.

아걸은 십구 대 문주의 역수참도(逆手斬刀)를 사용했다.

역수참도는 살기가 매우 짙다.

일단 상대방의 병기를 뚫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 후, 몸을 밀착시킨 상태에서 역수도를 그어낸다.

승부는 반드시 갈린다.

병기를 뚫고 들어가는 동안, 내가 당할 수 있다.

병기를 뚫었다면 상대방을 죽일 수 있다. 몸이 바짝 밀착된 상태에서 팔 뒤에 감춰진 칼을 쓴다. 상대방은 알고 있으면서도 급작스러운 일격에 당황한다.

까앙!

초가평이 역수도를 쳐냈다.

아걸이 병기를 뚫고 들어가는 동안, 초가평은 검을 변화시켜서 팔을 쳤다. 역수도를 알고 있어서 팔을 공격한 것은 아니고, 숨겨진 칼을 노린 공격이었다.

순간, 진개의 검이 목젖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아걸은 허리를 낮추고, 즉시 역수도로 진개의 다리를 쓸어갔다.

그러자 호금연이 달려들었다. 쭉 이어지던 십칠연검이 등, 엉덩이, 다리를 일시에 노린다.

아걸은 몸을 비틀어서 옆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양쪽 모두 움직인 것은 한 번인데, 초수는 사 초나 교환했다.

“일 초.”

아걸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뭐라!”

“일 초로 치겠다고. 내가 말한 초수는 충돌이야. 일곱 번은 칼을 섞을 수 있어.”

아걸은 소축십검을 자극했다.

그들은 세 명이 연수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거에 제압하지 못한다. 망신이다.

스읏!

아걸은 여전히 역수도를 잡고 허리를 낮췄다.

“훗! 네가 자존심을 건드리네. 세상에는 일홀도만 있는 줄 아는 놈. 우물 안 개구리.”

초가평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진개와 호금연이 뒤로 물러섰다.

철컥!

초가평이 왼손으로 방패막이를 쳐서 검날을 바르게 고쳤다.

초가평은 검을 천천히, 천천히, 매우 천천히 들어 올렸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온 정성을 다해서 검을 받쳐 올렸다.

‘조명십해!’

아걸은 단박에 검도가 일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가평이 전개하는 검은 급한 검이 아니다. 매우 차분한 검이다. 검법 속에 수많은 변화가 섞여 있어서 막상 찔러오면 방비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슷!

아걸도 반철도를 고쳐 잡았다.

역수도를 풀고 직수도로 잡았다. 도초로는 목도일참을 떠올리고 있다. 초가평의 검을 모르니 팔십일 참도 중 하나를 쓰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스으읏!

초가평이 검을 가슴 높이까지 올렸다. 순간,

파앙!

갑자기 잔뜩 부풀어 오른 돼지 오줌보가 팍!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웃!”

아걸은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검이 코앞에 와있다. 피하거나 반격하기는 늦었다. 검이 보이지 않고 손잡이만 보인다.

아걸은 몸을 빙글 돌리면서 반철도는 등 뒤로 올렸다.

목도일참 중 후배도다. 다시 칼을 움직여서 회선도로 바꾸어 허리를 친다. 그때,

푹!

검이 가슴 정중앙에 틀어박혔다.

“헉! 헉! 헉!”

초가평이 거친 숨을 뿜어냈다.

그는 서 있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 하얀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초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오직 단 한 번만 공격할 수 있는 잠기일력타(潛氣一力打)를 구사했다. 전신 진기 모두, 잠력(潛力) 일체가 검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쏟아졌다.

아걸은 비틀거리면서 물러섰다.

아걸의 복부에 초가평의 검이 꽂혀 있다. 등 뒤까지 관통하지는 않았다. 검이 복부에 붙어서 달랑거렸다.

“웃!”

진개가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일부러?”

진개가 초가평을 보며 말했다.

초가평은 말할 기운도 없는지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잠기일력타는 가슴 정중앙을 노린다. 가슴에는 살 밑에 무엇이 있나? 뼈가 있다. 살갗을 찢자마자 뼈가 나온다. 그러나 검은 뼈를 뚫을 수밖에 없다.

뼈를 뚫고 들어간 후에는 사정없이 찢어버린다. 몸을 관통한다.

조명십해 중 하나인 잠기일력타는 반드시 상대방을 죽이고자 할 때만 사용하는 살초다.

소축십검은 잠기일력타를 눈감고도 펼칠 수 있는 지경까지 수련했다. 실전에서처럼 진기를 모두 쏟아내지는 않지만, 초식만은 매일 수련한다.

결코, 목표를 놓칠 수 없는 검이다.

그런데 아걸은 가슴이 아닌 복부를 찔렸다.

분명히 가슴을 격타당했는데, 비틀거리면서 물러선 후에 보니 가슴이 아니라 복부다.

이런 기가 막힐 노릇이!

검은 몸을 관통하지도 못했다. 초가평이 전신 진력을 모두 쏟아냈는데, 겨우 찌르는 선에서 그쳤다. 아걸이 갑옷을 입고 있어도 관통해야 했는데.

스읏!

아걸이 복부에 꽂힌 검을 뽑아내 개울에 던졌다.

“이 초.”

“……이놈!”

철컥!

이번에는 진개가 일갈을 내지르며 방패막이를 쳤다. 우선 검날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초가평처럼 천천히, 매우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초가평과 똑같은 검을 구사한다.

“후웃!”

아걸은 한 번 경험한 검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서 칼을 들었다.

굉장히 빠른 검이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그 후에는 막지 못한다. 검을 보지 말고 발을 봐야 한다. 발이 떨어지는 바로 그 찰나에 피해야 한다.

패애애애앵!

칼이 손안에서 팽그르르 돌았다.

전차 바퀴에 달아놓은 칼날이 맹렬하게 휘돌 때처럼 반철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휘돌았다.

스읏!

진개가 검을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지금!’

아걸은 즉시 신형을 띄웠다.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최대한 옆으로 비켜섰다. 한데,

팟!

검이 눈앞에서 번뜩인다. 먼저처럼 검날은 보이지 않고 손잡이만 보인다. 진개의 얼굴이 두 배, 세 배 커 보인다. 땀구멍이 보일 만큼 가까이 왔다.

패앵!

회륜도가 진개를 후려쳤다. 하지만 늦었다. 회륜도가 터져나가려던 순간, 검이 가슴 정중앙에 틀어박혔다.

퍼억!

아걸의 몸이 허공에 붕 띄워졌다. 그리고 끈 떨어진 연처럼 훨훨 날아갔다.

“이런!”

호금연이 어처구니없어서 혀를 내둘렀다.

아걸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나고 있다.

진개의 검은 이번에도 복부에 박혀 있다. 분명히 가슴을 찔렀는데, 왜 검이 이동했을까?

다행히 이번에는 검이 좀 깊이 틀어박혔다. 검이 배에 단단히 붙박여 있다.

적어도 절반 이상은 파고들었다.

“크윽!”

아걸이 비칠비칠 일어서면서 무척 힘든 듯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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