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第二十一章 환양(還陽:죽었다가 되살아나다) (1)
진개가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입에서 거친 숨이 뿜어져 나왔다.
잠기일력타를 사용하면 진기가 일시에 모두 빠져나간다. 몸에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서 있을 힘도 없고, 오죽하면 숨 쉴 힘조차 없다고 느껴진다.
일차로 찾아오는 증상은 무력함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털썩 주저앉는다.
그다음에 찾아오는 것이 식은땀이다.
어지럼증도 치민다. 구토도 올라온다. 속이 메슥거리면서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이때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잠을 잘 수 있으면 좋다. 연무장이든 어디든 사지를 축 늘어트리고 편히 잔다.
운공을 취하기도 하지만 운공 자체가 힘이 필요한 것이라서 무조건 쉬는 것보다 못하다. 운공을 취할 때 필요한 힘까지도 모두 쏟아냈지 않은가.
잠기일력타는 무인이 숨 쉬는 데 필요한 힘까지 모두 끌어낸 공격이다.
그러니 잠기일력타를 사용한 후에도 상대가 살아있다면 절망이다.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살아서 움직인다면 병기를 들 수 있을 것이고, 그만한 힘만 있다면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초가평은 반듯하게 누워 운공을 시도하는 중이다.
어떻게든 텅 빈 육체에 힘을 불어넣고자 애쓴다.
진개도 하늘을 보며 벌렁 드러누웠다.
이제는 속수무책이다. 아걸이 칼을 쓴다면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한다.
“후후!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군.”
호금연이 비틀거리는 아걸을 향해 걸어갔다.
아걸은 검 두 자루를 꽂고 있다. 초가평의 검은 뽑아냈지만, 진개의 검은 여전히 박혀 있다.
아걸은 꽤 심한 상처를 입었다.
검에 찔린 외상보다도 검을 통해서 스며든 진기가 더 큰 타격을 안겨 주었다.
잠기일력타는 검에 집중된 진기를 상대방의 몸 안에서 폭발시키는 일도 한다.
초가평, 진개의 내공이 아걸의 몸 안에서 폭발했다.
모르긴 해도 지금 아걸은 죽기 일보 직전일 것이다.
“잠기일력타에 두 번이나 당하고도 서 있어? 대단한 의지력이야. 인정.”
쒜에에엑!
호금연이 검을 쳐냈다.
검 끝이 인중을 노린다. 아래에서 위로 곧장 쳐온다.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확 달려든다.
조명천검 직사광류다.
일직선으로 뻗어내는데도 피하지 못한다. 화살보다 더 빨리 날아온다.
‘피할 수 없다!’
아걸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분명히 검을 피해야 한다고 느꼈고, 몸을 움직였다. 한데 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발이 얼어붙었다.
사실은 진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흩어졌다고 해야 하나? 초가평이나 진개처럼 그도 한 올의 진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 꼼짝도 할 수 없지.
‘한 번만 피하자.
순간적인 생각이다.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두 눈이 움직였다. 몰안(沒眼)이 일어나면서 육신이 사라졌다. 머리도 없다. 생각도 없다. 오직 눈만 살아서 검을 본다.
호금연의 직사광류는 번갯불처럼 빠르다.
아걸도 한순간에 생각을 일으켰다. 몰안도 팟! 하는 순간에 튀겨지듯 일어났다.
쒯! 피윳!
직사광류가 종이 한 장 차이로 지나갔다.
쒜엑! 쒝! 쒝! 쒝! 쒝!
검광이 다시 터졌다.
호금연은 직사광류가 빗나가는 순간, 검을 다시 돌렸다.
삼점동타, 검광이 세 번 번뜩였다. 비연폭강, 낮게 날던 제비가 폭주한다. 우중광류, 빗줄기를 뚫고 섬광이 쏘아진다. 비조복개, 나는 새의 배를 가른다.
퍽! 퍽퍽! 퍽!
아걸은 난타 당했다. 몸에 틀어박힌 검이 한두 개가 아니다.
“크윽!”
기어이 신음을 흘리며 풀썩 쓰러졌다.
“뭐야, 아직도 살아 있다고?”
호금연이 놀란 표정으로 아걸을 쳐다봤다.
잠기일력타를 정통으로 두 번 맞고, 조명천검을 최소한 대여섯 차례는 맞았다.
누구라도 살아남지 못한다.
하지만 아걸은 아직도 숨이 붙어있다. 일어서지는 못하지만, 피를 철철 흘리면서 헐떡거린다.
“상종하지 못할 괴물이군.”
호금연이 검을 고쳐 잡았다.
일격필살, 반드시 머리를 잘라낸다. 웬만하면 심장을 찌르는 선에서 그칠 수 있지만, 아걸은 확실히 죽여야 한다. 죽음을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된다.
“하아!”
아걸이 처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하늘을 보며 묶은 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아걸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꽉 쥐고 있는 반철도만 봐도 안다.
반철도가 꽤 무거워 보인다.
한 손으로 들고 휘휘 내저을 수 있는 칼인데, 아걸은 너무 무거워서 들어 올리지를 못하고 있다.
힘이 다 빠졌다.
스으윽!
아걸이 몸에 박힌 장검을 뽑아냈다. 아주 힘겹게 꼼지락거리면서 뽑아냈다.
진개가 찌른 검이 이제야 몸 밖으로 나왔다.
“하아!”
아걸이 다시 한번 큰 숨을 토해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 큰 숨을 토해내는 의미가 꼭 포기처럼 보였다.
호금연은 이런 행동에 속지 않는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 병기를 든 자는 언제든지 반격할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스읏!
검을 들었다. 그리고 즉시 신법 선풍추자를 펼쳐서 등 뒤로 훌쩍 다가섰다.
쒜에엑!
목 뒤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물론 아걸이 반격할 것도 충분히 예상했다. 어떤 행동을 취하든 반보쯤 물러설 수 있게, 왼발 뒤꿈치를 살짝 열어 놨다.
퍼억!
검이 등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우연히? 아니면 일부러? 검이 내리쳐질 때, 아걸은 힘을 잃고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그 시차가 아주 절묘하다. 아걸이 앞으로 꼬꾸라지는 것과 검을 내리는 게 딱 맞아떨어졌다. 두 사람이 짜고서 한 행동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웃!”
호금연은 헛손질에 깜짝 놀라서 반 보 뒤로 물러섰다.
아걸이 힘을 잃고 쓰러진 것일 수도 있지만, 호금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걸이 검을 피하려고 신형을 숙인 것으로 생각했다. 과연,
슈웃!
호금연이 물러서기 무섭게 반철도가 하반신을 쓸었다.
아걸이 땅으로 쓰러지면서 마지막 일격처럼 반철도를 휘두른 것이다.
‘이놈!’
호금연은 그제야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초가평과 진개가 잠기일력타를 놓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참 운이 좋은 놈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전력을 다한다는 말은 힘을 집중시킨다는 뜻이다. 힘에는 완력이나 진기만 포함된 게 아니다. 정신집중도 포함된다. 파괴력뿐만이 아니라 정확도도 높아진다.
평소에 검으로 참새 정도 찌를 수 있는 실력이었다면, 잠기일력타를 쓰면 파리도 찌를 수 있게 된다. 눈이 두세 배 정도 밝아져서 놓칠 수가 없다.
잠기일력타는 비장의 무기다.
평소, 소축십검은 일홀문도에게 십분 양보한다. 칼을 겨눌 일이 생기면 알아서 피한다. 서리가헌이나 형개의 무공은 소축십검보다 한 수 위다.
하지만 소축십검도 나름대로는 자신 있었다.
잠기일력타를 사용하면 그들도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 아걸이 잠기일력타에 쓰러지지 않았을 때, 그것을 온전히 무공으로 피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천운도 일정 부분 따라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온전히 무공으로 피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초가평에게 검을 쓰면 피할 수 있을까? 피하지 못한다. 초가평은 손가락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다. 당연히 검을 맞는다. 진개도 마찬가지다.
아걸도 똑같다.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이지 않나. 그런데도 조명천검을 피했다.
강호 무인 중 조명천검을 피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나.
이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검을 맞기는 하지만 원래 노렸던 곳을 치지 못하고 있다. 검이 정확하게 가격했다면 벌써 즉사해야 했는데, 아직도 움직인다.
“후우우웁!”
호금연은 초집중했다.
그는 잠기일력타를 쓰지 못했다. 자신마저 초가평이나 진개처럼 무너지면 뒷감당이 안 된다. 그때도 아걸이 살아서 꿈지럭거린다면 셋 다 죽은 목숨이다.
일격필살! 이번에는 방금처럼 이상하게 치지 않는다. 겨냥한 곳을 정확하게 친다!
조명십해 은장재계이살을 검초에 섞는다.
아걸이 눈치채지 못하게, 구렁이가 담을 넘듯이 슬쩍 뻗어낸다. 검을 맞아도 죽지는 않겠다 싶을 정도로 타격한다. 하지만 안에는 살초를 담는다.
‘십칠연검!’
타타타탁! 타타타탁!
검초가 전광석화처럼 뿌려졌다. 아주 가벼운 검초, 맞아도 깊게 파고들 것 같지 않다. 검 자체가 지닌 날카로움만 벗어나면 크게 위험하지 않다.
터엉! 텅! 텅! 터엉!
아걸이 간신히 반철도를 들어서 막았다.
‘확실히 힘이 빠졌어!’
이 정도 가벼운 검초면 반격을 노릴 만한데, 그저 힘없이 막는 것에 급급하다.
쒜에엑!
은장재계이살, 개천같이 얕은 물이 전개된다.
누구도 경계하지 않는 얕은 물에 잔혹한 살법이 담겨서 조용히 흘러나간다.
팟! 타앙!
병기부터 제거한다. 반철도를 힘껏 쳐올린다. 아걸의 겨드랑이부터 옆구리까지 뻥 뚫린다.
쒜엑!
연속으로 이어진 십칠연검이 옆구리를 훑는다. 일면 가벼운 것 같다. 하지만 검 끝에 진기가 실렸다. 검이 살에 닿는 순간, 몸통을 단번에 반으로 갈라버린다.
쒜에에엑! 찌이익!
호금연이 전개한 살초가 옷을 찢으며 지나갔다.
‘이런!’
호금연은 멍청해져서 아걸을 쳐다봤다.
이게 벌써 몇 번째지? 왜 계속 공격이 먹혀들지 않는 거지? 사법을 쓰는 것처럼 간발의 차이로 피하잖아. 검을 아예 피하는 것도 아니고 살짝살짝 맞으면서.
“허억! 허억!”
아걸이 급한 숨을 토해냈다.
이제는 이것도 믿을 수 없다. 아걸이 진짜 지치기는 한 건가? 이것도 가식 아냐? 일부러 힘 빠진 척하면서 속으로는 진기를 회복하는 중인가?
그럴 수도 있다. 잠기일력타를 맞았으니 진기 회복이 급선무다.
“끄응!”
등 뒤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초가평이 몸을 일으켰다. 온전히 진기를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검을 쓸 정도는 된다.
진개는 아직도 운공 중이다.
잠기일력타를 사용한 후, 운공을 하는 것은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일단 내력 손실은 피하지 못한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내력에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전장에서 병기를 들고 적과 맞섰는데, 언제까지 누워만 있을 것인가.
“아직도 못 잡았어?”
초가평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쥐새끼처럼 빠져나가네.”
스읏!
초가평은 한쪽을 맡았다.
이제 양쪽에서 협공한다. 이래도 빠져나갈 수 있을까?
“헉! 헉!”
아걸은 숨이 턱까지 차서 헐떡거렸다.
잠기일력타에 당한 충격이 아직도 전신을 휘젓고 있다. 진기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큭! 빌어먹을! 이제…… 알 것 같아.”
아걸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