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第二十一章 환양(還陽:죽었다가 되살아나다) (3)
팟!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방에 불이 밝혀졌다. 불 밝힌 등잔이 방 한가운데 우뚝 솟았다.
‘환해!’
순간, 몽설은 매우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평안, 아늑함, 즐거움 등 온갖 행복한 감정이 밀려왔다.
반면에 불안하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는 유쾌하지 못한 감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머릿속에서 밝혀진 불은 매우 밝고 선명했다.
몽설은 예전에도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혈검경 하권을 수련하고, 상궁을 본격적으로 열었을 때 지금과 똑같은 경험을 했다.
상궁에서 니환일검이 우뚝 솟았다.
비록 머릿속에서 일어난 상상 속 검이지만, 손에 잡은 듯 너무도 뚜렷했다. 검의 형태, 재질, 날카로움, 손에 닿는 손잡이의 부드러움까지 낱낱이 전해졌다.
니환일검은 보검이다.
검신이 티끌 한 점 없이 맑다. 검을 들여다보면 검신에 얼굴이 비친다.
혈검경의 구결을 운용하면 니환일검이 움직이고, 즉시 몸이 따라붙었다.
그때 매우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에게 어떤 불행이 일어나도 니환일검이 굳건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머릿속에 불이 밝혀진 지금도 니환일검을 봤을 때처럼 안온하다.
세상이 평화롭다. 불쾌한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맑고 명랑한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전에는 사방이 캄캄한 가운데 오직 니환일검만 밝게 빛났다면, 지금은 방 전체가 환해졌다. 밤에 불 밝힌 니환일검을 보는 것과 대낮에 니환일검을 보는 차이다.
검이 춤춘다.
검이 땅에 눕는다. 검자루, 검신 다 눕는다. 검을 지켜보는 사람에게 큰절을 올리는 것 같다.
검 끝이 땅을 툭 치고 일어선다. 검이 곧추세워진다.
검자루가 옆으로 슬쩍 움직인다. 검이 사선으로 눕는다. 검신을 움직이는 게 아니다. 검 끝은 제자리에 못 박아두고, 검자루를 움직여서 사선을 만든다.
‘손목을 움직여…….’
몽설은 지금까지 검을 움직여서 사선을 만들었다.
혈검이 무극(無極)을 향해 나아간다.
- 몰유기준(沒有基準). 불지능불능작위기준(不知能不能作為基準).
기준이 없다. 기준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혈검은 모두 칠식(七式)으로 이루어졌다.
제일식이 혈검무극(血劍無極)이다.
무극은 우주 조화를 이루는 근원이다. 가장 기본 자리다. 한데 기본이 없다고 한다. 기준이 없는 게 기본이며, 종래에는 기본조차도 없어진다.
좋고 나쁘고, 잘하고 못하는 기준이 없다.
제일식 혈검무극은 기본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검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구속당한 적이 없는 사람은 자유를 알지 못한다.
일정한 검법, 검형(劍型)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검형을 깨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한다.
두 살배기 어린아이에게 검을 쥐여 주고 ‘검형을 깨라!’하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뭘 깨야 하며, 검을 어떻게 휘둘러야 할까? 도대체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그래서 제일식은 검형을 제시한다.
검무가 이어진다. 사선으로 움직인 검이 어깨 위에서 '탁' 치고 올라간다. 검 끝이 머리 위에 있는 가죽 북을 툭 친다. 길게 찢는 게 아니다. 검 끝으로 살짝 톡 건드린다.
절하듯이 허리를 숙이고 검을 땅에 놓는다. 아니, 놓지는 않는다. 놓을 듯하면서 지면을 휩쓴다. 검을 뒤로 쑥 당기면서 방향을 비튼다. 뒤로 돌아선다.
탁!
검 끝이 땅을 치면서 하늘로 솟구친다.
제일식 혈검무극은 백이십칠 동작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검무를 연출한다.
일단은 검무를 수련한다.
검무에 따라서 움직이고, 움직이면서 서서히 자유를 느껴간다. 춤을 추되 몸도 마음도 영혼도 자유롭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검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춤을 추게 된다.
혈검무극은 검형의 총체다.
검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수련하게 해주고, 또 정형적인 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아!”
몽설은 탄식했다.
혈검경을 어려서부터 수련했다. 항상 옆에 끼고 살았다. 하권은 얼마 전에 접했지만, 중권 검경은 검이라는 것을 알 무렵부터 몸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제일식 혈검무극의 진의를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펼친 검법은 어린애 장난이었다. 도대체 어떤 검법을 펼치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혈검경을 그렇게 수련했는지 한심하다.
검무는 혈검무극에서 제이식 혈검무진(血劍無盡)으로 넘어갔다.
무진(無盡)이라고 하면 무진장(無盡藏)을 생각하기 쉽다. 무진장이란 ‘다함이 없이 매우 많음’을 말한다. 맞다. 무진은 ‘끝남이 없다. 다함이 없다. 그침이 없다’라는 뜻이다.
혈검경에서 무진이라는 말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 원융무애(圓融無碍)라는 뜻까지 이른다.
서로 융화되어 방해하지 않는다!
혈검무진은 이십사 초(二十四招)로 이루어진다.
혈검무극에서 일으켰던 백이십칠 초가 이십사 초로 변형된다. 줄어들고, 합쳐진다. 군더더기를 빼고 최우선적인 움직임만 추려서 스물네 가지 공격 형태를 만든다.
혈검무극과 혈검무진은 전혀 다른 초식이다.
몽설은 혈검무극과 혈검무진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우선 초식이 너무 많다. 혈검무극만 백이십칠 초다. 그런데도 특별하다 싶은 초식이 없다. 혈검무진은 이십사 초다. 여기서는 매 초식이 중요하다. 살인적이다.
그래서 혈검무진을 사용했다.
제일식과 제이식이 연달아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굳이 제일식을 수련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알겠다.
실전에서는 제일식, 제이식이 함께 사용된다.
제일식을 완전히 수련해야 제이식의 오의를 깨달을 수 있다. 제일식에서 제이식으로 융합된다. 더불어서 제일식은 ‘움직임’이란 형태로 남아 있게 된다.
검으로 펼칠 수 있는 모든 행동이 제일식에 포함된다.
사실, 제일식만 사용해도 충분하다. 한데 왜 제이식까지 이어졌을까? 왜 검의 움직임을 융합, 축소했을까? 제일식에서 검형을 깨고 자유분방한 검이 되었는데, 왜 또 제이식 이십사 초라는 검형을 내놓았을까?
제일식에서 자유분방함을 알게 되면 원융무애가 된다.
제이식 이십사 초는 각 초식 간에 연결이 매우 까다롭다. 고도의 숙련을 요구한다.
그래서 몽설은 제이식을 이어서 사용하지 못하고 뚝뚝 끊어진 채로 사용했다.
제이식 십 초를 사용했다가 십일 초 혹은 십육 초, 이십 초 등으로 잇지 못하고 물러선다. 호흡을 가다듬은 후, 다시 다른 초식을 펼친다는 식이다.
그러니 ‘어떤 초식을 사용해야지!’라는 마음이 생긴다.
스물네 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제일식에서 무극을 깨달으면 제이식 무진이 자유롭게 사용된다.
검초를 펼침에 거침이 없다. 각 초식 간 방해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줄줄 흐른다.
살초 스물네 개가 연이어서 터진다.
연결이 방해되지 않으면 속도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다. 백이십칠 초를 이십사 초로 줄인 것은 폭발적인 검초만 추려냈다는 뜻이다.
인간이 육신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움직임 중 가장 빠른 움직임이 검초로 전개된다. 빠름은 파괴력으로 이어진다. 느리게 살살 친 것과 빠르게 힘껏 것의 차이, 가장 빠른 검이 가장 파괴적인 검이 된다.
니환일검은 제이식 혈검무진까지 펼친 후, 제 자리에 멈췄다.
제삼식 혈검무성(血劍無聲)으로 들어서기 전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건 무적이야!”
이런 공격을 누가 받아낼 수 있을까? 몽설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제이식까지만 펼쳤는데도 무적에 가깝다. 하물며 혈검경은 무성(無聲), 무적(無敵), 무회(無悔), 검묘무극(劍渺無極)이라는 사식을 남겨두고 있다.
혈검경 심공을 수련하면 피부색이 붉은색을 띠다가, 자색이 되었다가, 검게 변한 후, 다시 붉은색으로 돌아온다. 이로써 혈검경 수련 정도를 알 수 있다.
검경은 또 다르다. 검경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제일식을 수련한 것과 제이식을 수련한 것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다.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얇은 차이가 하늘과 땅의 구분을 불러온다.
심공이 있어서 검경을 봤다.
자신에게 천하를 오시할 수 있는 검경이 있었는데,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몽설은 다시 검을 일으켜 세웠다.
제일식에서 제이식까지 수련한다. 제삼식은 만져볼 단계가 아니다. 사실은 제이식도 만질 단계가 아니다. 제일식으로 돌아가서 기본부터 다시 다진다.
* * *
상궁(上宮)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
니환일검만 보고 있었는데, 불쑥 낯선 장소가 그려지더니 전혀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등장했다.
한데, 그 사람들…… 무척 반갑다.
“아!”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풍경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새로운 풍경 속에서 그녀는 이방인이다.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 노인과 현숙한 중년 부인과 잘생긴 꼬마가 있다. 꼬마 등에는 꼬마보다 두어 살 정도 어린 여자애가 매달려 있다.
“오빠, 이름 뭐야?”
“오빠는 어디 살아?”
“오빠, 이제부터 우리랑 사는 거야?”
“오빠, 이리 와봐. 뱀이 하늘을 나는 거 보여줄게. 정말이야. 내가 똑똑히 봤다니까!”
“오빠!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오빠, 오빠, 오빠, 오빠……
꼬마 계집아이는 정말 사내 꼬마를 좋아했다.
손가락으로 헤아려도 될 만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항상 사내 곁에 붙어 다녔다.
꼬마는 노인을 무시했다. 노인에게는 어떤 짓을 해도 무방했다.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줄 것을 알고 있었다. 수염을 뽑거나 간지럼을 태워도 괜찮았다.
“나 다리 아파.”
그러면 노인은 냉큼 등을 내줬다.
“배고파.”
노인은 즉시 주변을 살펴야만 했다. 산딸기 같은 것을 먹고 싶어 하는지, 정말 배고파서 토끼 같은 것을 먹고 싶어 하는지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노인은 목을 꼭 끌어안아 주면 그렇게 좋아했다.
중년 부인은 매우 예뻤다.
셋 중에서 꼬마에게 가장 무심한 사람이기도 했다. 가끔 야단도 치고, 싫은 소리도 했다. 억지로 씻기고, 졸린 데도 글을 읽게 하고…… 하지만 맛있는 것도 많이 해줬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몽설은 상궁에서 만난 사람들이 누군지 안다.
아버지다. 노인이었구나. 이렇게 나이가 많았었구나.
노인에 비하면 어머니는 딸처럼 어려 보인다. 견약반공이라는 주안공을 연마한 탓이다.
‘예뻤네. 엄마.’
꼬마 사내, 아걸.
‘귀여워.’
몽설은 피식 웃었다.
지금 아걸은 다소 퇴폐적이다. 비관적이고 무심하다. 곧 죽을 사람처럼 우울하다.
꼬마 아걸은 초롱초롱하다. 꼬마이면서도 눈빛이 살아있다. 냉정한 편이랄까?
아걸이 무공을 수련한다고 되지도 않는 몸짓을 한다.
우습다. 아걸에게도 저럴 때가 있었나?
몽설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처음 보는 풍경, 처음 보는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즐겼다.
“흑!”
운공을 풀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운공 속에서 옛 기억을 끄집어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영원히 묻혔을 기억인데, 혈검경이 바닥을 긁어냈다.
아버지를 봤다. 일홀문주!
어머니를 봤다. 취화원 살수 남소!
두 분을 똑똑히 봤다. 가슴 깊은 곳에 묻혀있던 얼굴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흑흑흑…….”
몽설은 한참 동안 울었다.
눈물을 참으려고 하지 않았다. 주변에 지켜보는 사람도 없어서 실컷 울었다.
기억 속에서 많은 얼굴을 봤다.
아걸도 봤지만, 서리가헌과 서리형개, 동박도 봤다. 취화원주와 만나던 광경도 봤다.
이런 기억은 잊는 게 좋은데, 다 기억났다.
옛 기억이 전부 되살아난 것은 아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만 살아났다.
막연하던 것이 뚜렷해졌다.
‘부모님의 복수’라고 하면 막연했는데, 이제는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검을 들어야 하는지 알겠다.
‘오빠는 이 기억을 다 갖고 있었네? 그 오랜 시간 동안 아삼 할아버지하고 둘이……. 참 힘들게 살았구나. 난 내가 힘든 줄 알았는데, 난 편했네.’
몽설은 한참 동안 운 끝에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