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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04화 (104/600)

#104화. 第二十一章 환양(還陽:죽었다가 되살아나다) (4)

푸욱!

반철도가 멧돼지 앞다리 밑에서부터 심장을 찔렀다.

멧돼지가 풀썩 쓰러져서는 바르르 떨었다. 칼이 너무 정확해서 멱따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멧돼지 등에 업혔던 아걸은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쿵!

멧돼지에게서 튕겨 나가 큰 바위에 부딪혔다.

등이 얼얼하다. 아니, 바위에 부딪힌 충격이 오장육부를 저려 울린다. 전신에 고통을 일으킨다.

“크으윽!”

아걸은 신음을 토해냈다.

일홀도를 얻은 대가는 매우 컸다.

서리가헌에게 당한 부상이 아물기도 전에 또 온몸이 망가졌다.

‘이러다가는 제 명에 못 죽지. 후후!’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겼다.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도 ‘겨우 이 정도야?’라는 만용이 치민다.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었다.

마른 나무를 구해 와서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벽을 둘러 세웠다. 구덩이 안에서 불을 피울 수 있도록 화로도 만들었다. 연통이 빠져나올 자리에는 뭉친 흙으로 기둥을 만들었다.

소꿉놀이를 할 때처럼 구덩이에 집을 만들었다.

서두르지는 않았다. 대신 차분하고 꼼꼼하게 집을 지었다.

부상이 심해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

구덩이 안에 나무집이 완성되었다.

나무집 안에 연기가 잘 나지 않은 싸리나무, 청미래덩굴, 때죽나무, 붉나무들을 가져다가 쌓았다. 생나무는 줍지 않고 바싹 마른 나무만 골랐다.

이제 죽은 멧돼지를 질질 끌고 왔다.

멧돼지는 매우 커서 장정 두 명보다도 무겁다. 더욱이 상처까지 입은 몸으로는 끌기가 힘들다.

그래도 이를 악물면서 끌었다.

지금처럼 위급한 경우, 멧돼지는 목숨을 부지시켜 줄 수 있는 구명줄이다.

멧돼지를 구덩이 안에 들이밀고, 나무로 지붕을 덮었다.

물에 흙을 개어서 지붕을 꼼꼼히 덮었다. 비가 와도 물이 새지 않도록 촘촘하게 채워 넣었다. 그리고는 낙엽을 끌어 모아 평평한 땅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이런 집을 만드는 데 능숙했다.

할배와 다니다 보면 산에서 잠을 잘 일이 많은데, 하루를 자더라도 편히 자야 좋지 않은가.

한두 시진이면 산에 임시 거처를 만들 수 있다.

한 시진이면 대충 만들고, 두 시진이면 꼼꼼하게 지어서 두어 달 묵을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할배에게 임시 거처 만드는 법을 배울 때는 몰랐는데, 이것도 적랑대가 습득하는 기술이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폭풍이 불든, 한 시진이면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불편하게 쉬는 것도 아니다. 아예 두 발 쭉 뻗고 눕는다. 편히 쉰다.

개를 풀어도 냄새를 맡지 못한다.

물에 흙을 갤 때 말오줌때나무를 부러트려서 섞었는데, 덕분에 흙에서 말오줌 냄새가 풍긴다. 구덩이 안에 숨은 사람을 숨겨줄 정도는 충분하다.

아걸은 맨 마지막으로 입구를 좁혔다.

한 사람이 간신히 기어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구멍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메웠다.

‘됐어!’

집은 짓는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

도주하고 한두 시진이 제일 중요한데, 다행스럽게도 소축십검은 수하를 데려오지 않았다.

상처 입은 몸을 치료도 하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힘을 썼기 때문에 그야말로 기진맥진이다. 임시거처를 만드는 동안 혼절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아걸은 죽은 멧돼지를 베고 축 늘어졌다.

* * *

타닥! 타닥! 타닥!

구덩이 안에 만들어 놓은 화로가 제 역할을 했다.

마른 나무에 불이 붙자 구덩이 안은 금방 따뜻해졌다. 열기가 작은 구덩이도 따뜻하게 해주고, 안의 공기를 바깥으로 빼 줘서 공기도 순환시킨다.

아걸은 멧돼지 뒷다리를 잘라서 한 주먹 정도만 불에 구웠다.

타닥! 타닥! 화르르륵!

불길에 멧돼지 기름이 떨어지면서 검은 연기를 피워냈다.

이 정도 연기는 매우 연해서 괜찮다. 연기를 보고 쫓아오는 일은 없다.

고기가 익는 동안 상처를 치료했다.

얼마 전, 서리가헌에게 베인 게 그야말로 천만다행이다.

그때 녹선마황을 들이붓다시피 쏟아 넣었는데, 그 약효가 아직도 핏속에 남아 있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상당히 나았다.

쩍 벌어졌던 피부가 저절로 좁혀졌다. 피가 줄줄 흘러내리던 곳에는 얇은 딱지가 앉았다. 물론 살짝만 건드려도 다시 터질 상처이긴 하지만.

금창약을 바르고, 맛있게 구워진 고기를 먹었다. 아니, 고기를 먹는 중에 스르륵 고개를 떨궜다. 잠이 너무 쏟아져서 고개를 떨구는 줄도 몰랐다.

잠을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땅굴 속에 들어와 있어서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되지 않았다. 동굴 입구에 막아놓은 돌멩이를 치우면 바깥을 볼 수 있지만, 그것조차도 귀찮았다.

‘불이 꺼졌군.’

아걸은 다시 불을 피웠다.

마른 나무는 충분히 준비해 놨다. 한쪽 벽이 빼꼭할 정도로 쌓아 놨다.

잠기일력타에 두 번이나 당한 몸으로 어떻게 이런 거처를 만들었을까? 지금에서야 생각난 것이지만, 정말 어떤 힘으로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그 덕분에 아주 편히 쉬긴 한다.

타닥! 타닥! 타닥!

타들어 가는 불을 쳐다봤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갓 만들어낸 일홀도도 역시 떠올리지 않았다.

‘머릿속을 비우고, 조용히…….’

배가 고프면 멧돼지 고기를 먹고, 시간이 나면 불을 멍하니 쳐다보고,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잠을 잤다.

너무 무료해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푹 잤다.

어느 정도 몸이 나았다고 느껴졌다.

몸을 움직이면 여전히 고통이 뼈를 아린다. 하지만 팔과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사실 배 속은 장기 손상만 없으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기가 손상되면 대책이 없다. 하나가 터지면 두 개, 세 개가 연달아 터진다. 염증이 생기고, 몸 전체가 쇠약해진다. 그러면 끝이다. 살 방법이 없다.

무인은 운공으로 염증을 줄인다.

창자 같은 부위는 할 수만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바늘로 꿰맨다. 그것이 가만히 놔두는 것보다 훨씬 좋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운공을 취한다.

녹선마황은 갈라진 장기를 이어준다.

일홀문은 무인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영약을 찾아냈다 사실, 녹선마황이 일홀문도를 훨씬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걸은 녹선마황 효과를 톡톡히 봤다.

서리형개에게 당했을 때, 서리가헌에게 당했을 때, 그리고 지금도.

일홀문도는 상처를 치료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녹선마황이 없어도 찢기고 할퀸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일홀문도는 어려서부터 맹수를 사냥해야 한다.

무공에 대해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 맹수와 만나면 오로지 힘과 지혜로만 승부를 벌어야 한다. 당연히 죽을 정도로 심하게 다치기가 일쑤다.

그런 상처는 녹선마황 없이 스스로 치유한다.

부상은 많이 경험한다고 해서 적응이 되지 않는다. 천 번 다치면 천 번 다 죽을 만큼 아프다.

하지만 치유력은 높아진다.

보통 사람은 몇 달 동안 끙끙 앓아누울 부상도 십여 일이면 툴툴 털고 일어선다.

그러니 웬만큼 찢긴 상처는 부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각기 자신에게 맞는 운기요상법(運氣療傷法)을 찾아냈다.

이렇게 다쳤을 때는 이런 운공법이 좋더라.

무공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고, 아는 무공이 많아지고, 경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운기요상법도 발전했다.

아걸도 자신만의 운기요상법이 있다.

그의 모든 무공은 오체진감(五體震撼),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오체진감은 상황에 따라서 간착아(看着我), 감각망기술(感覺忘棄術), 몰안(沒眼)으로 진행된다.

간착아, 나를 보는 것으로 진행하면 내공심법이 된다.

감각망기술과 몰안은 동시에 일어난다. 육신의 감각을 잊어버리고, 모든 신경을 눈에 모은다. 그 순간, 육신이 사라진다. 밖을 보고 있는 눈도 사라진다.

도신일체(刀身一體)가 일어난다.

어떤 식으로 싸우고, 어떤 초식을 펼치든 간에 가장 기본은 이것이다.

지금은 오체진감에서 간착아로 간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명을 듣는다. 고통과 분노의 울림을 듣는다. 말을 하지 못하는 장기가 내지르는 통곡을 듣는다. 그리고 진기를 이동시킨다. 고통을 달랜다.

“후우우우!”

아걸은 일주천(一週天)을 마치고 눈을 떴다.

진기를 한 바퀴 휘돌렸을 뿐인데, 훨씬 낫다. 모든 것을 다 잊고 푹 쉰 보람이 있다.

* * *

몽설은 숨 가쁘게 전해져 온 밀서를 천천히 읽었다.

밀지는 팔 장로가 보내온 것이다.

전서구를 사용할 수 없고, 귀문도 움직일 수 없는 일이라서 아주 비싸게 외부인을 샀다.

아걸, 그 사람…… 염탐만 하고 올 리 없다. 말로는 염탐만 하고 온다고 했지만, 그 말을 곧이들을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분명히 아주 큰 사달을 벌인다.

그래서 팔 장로를 붙였다. 절대로 아걸이 하는 일에 개입하지 말라고 말했다. 설혹 아걸이 죽는다고 해도, 팔 장로가 움직이면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해도 지켜보기만 하라고 말했다.

지켜보자. 어떻게 하는지 보기만 하자.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전해오는 소식이 하나같이 불길하다.

아걸은 혈도비자라고 불린다. ‘피투성이 칼을 든 개망나니’라는 뜻이다.

그는 진평에서 무인 사백삼십팔 명을 죽였다.

거의 사백오십 명, 살인귀 중 살인귀다. 중원 전 무인이 이유 불문, 수단 방법 불문하고 반드시 죽여야 할 혈귀, 무림 공적(公敵)으로 낙인찍었다.

아걸에게는 독살도 허용된다.

합공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암계나 함정을 사용할 수 있다.

아직 성검문이 현상금을 내걸지 않았지만, 최소한 황금 백 냥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다면 실력이 안 돼도 달려들 사람이 많다.

아걸은 풍도곡도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렇게나 염탐만 하라고 했는데, 기어이 일홀문 살인귀들과 부딪쳤다.

그가 살아나온 것은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 후에 소축십검 네 명과 싸웠단다.

그 와중에 또 십군 이도창을 죽였고, 아주 심하게 다쳐서는 간신히 도주했단다.

‘풋! 이럴 줄 알았어.’

몽설은 웃었다.

아걸이라면 충분히 이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걸 알면서도 따라가지 않았다. 어쩌면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꾹 눌러앉았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림은 칼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몽설은 아걸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녀의 무공으로는 오히려 짐만 될 뿐이다.

냉정하다 못해 비정한 현실이다.

무공이 약하면 죽음이 일어나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막을 수 없다. 같이 움직일 수도 없다. 같이 죽자는 말조차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비참해진다.

무림은 이렇다.

그래서 더욱 무공 정진에 몰두했다.

무공이라는 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확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쩌면 십 년이나 이십 년 후쯤에야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일홀문도는 고사하고 소축십검조차 이기지 못한다.

이기는 게 무엇인가? 그들 앞에서는 검도 들지 못한다. 검을 들기도 전에 죽는다.

하지만 이제는 아걸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혈검을 제일식조차 습득하지 못했다. 겨우 흉내만 낸다. 하지만 예전에 잘난 척하면서 혈검을 쓸 때보다는 훨씬 강해졌다고 자부한다.

‘그 사람 곁에는 아무도 없어.’

몽설은 밀지를 촛불에 태웠다.

* * *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여기만 지켜.”

“네.”

살아남은 취화원 살수 아홉 명이 대답했다.

“청부가 들어오면 모두 허락해. 사달이 생기면 밑에서 해결하게 하고. 여기는 꿈쩍도 하지 마. 밖에 나가면 귀문이 오히려 지옥이 될 거야.”

“잘 알고 있어요. 다녀오세요.”

취화원 살수들이 믿음직하게 말했다.

그녀들은 사생락을 수련하는 중이지만 진척이 여의치 않다. 극단의 방법을 취해야 하는데, 몽설조차도 사생락을 잘 알지 못하니 도와줄 수가 없다.

“수련은…….”

“하아!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그렇게 염려되면서 어떻게 귀문은 들어온 거예요? 여긴 우리가 알아서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취화원 살수들이 오히려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그녀들도 아걸에 대한 소식을 들은 까닭이다. 누군가는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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