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第二十一章 환양(還陽:죽었다가 되살아나다) (5)
진평 무림이 또다시 들썩거렸다.
아걸에게 현상금 황금 천 냥이 걸렸다.
점원 한 달 세비가 은 한 냥, 호피 가죽이 은 열 냥이니 엄청난 현상금이다.
성검문은 아걸을 잡는 자에게 천전각(天典閣)도 개방한다고 약속했다.
성검문은 멸문한 문파의 무공을 수집해서 천전각에 보관한다. 성검문도가 창안한 무공도 기록해 놓는다. 조명천검을 제외한 모든 무공이 보관된다.
천전각에 보관된 비급은 무려 천여 권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어떤 무공이든 열람할 수 있고, 수련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평생토록 머물 수도 있다.
그야말로 획기적인 조건이다.
천전각에서 수련한다는 것은 무림 강자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아걸을 죽이거나 잡는 데는 비열한 수단까지도 전부 허용된다. 무조건 죽이기만 하면 된다. 아걸에게 자식이 있다면, 자식을 인질로 삼는 것도 허용한다는 말이다.
얼마 전에 성검문이 아걸을 잡으라고 통보해왔을 때와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그때는 성검문 통보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돈과 개인 혹은 문파의 영달이 걸렸다. 더욱이 살귀를 죽여서 무림 정의를 지킨다는 대의명분도 뚜렷하다.
혹여 아는가? 다 죽어가는 놈이 눈앞에 뚝 떨어질지.
당연히 진평 무림이 들썩일 수밖에 없다.
* * *
“벌써 빠져나갔을 리가 없는데.”
진개가 중얼거렸다.
“빠져나가진 못했어. 우리가 찾지 못하는 거지. 흠! 숨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는 건가? 일홀문도가 싸움을 피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초가평이 중얼거렸다.
“잠기일력타를 두 번이나 맞았는데, 쉽게 나올까? 이러다가 한 일이 년 묵히는 거 아냐?”
“그 정도까지 묵히겠어?”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자들이 이 잡듯이 뒤지고 있으니 빠져나가지 못했다면 곧 드러나겠지. 문제는 풍도곡인데, 저놈들이 일절 들은 척도 안 하니. 설마 풍도곡에……?”
“그건 저놈들도 감당하지 못해.”
초가평이 고개를 내둘렀다.
일홀문도는 풍도곡의 왕이다. 하지만 성검문이 쫓는 자를 숨겨주지는 못한다. 만약 그랬다가는 성검문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전달된다.
공부 허도기와 검을 섞겠다는 것이다.
공부는 무림에서 손을 뗀 지 오래다. 요즘은 정사와 군부에 더 열중한다. 본격적으로 권력을 맛봤고, 더 강한 권력을 쥐기 위해 황제 턱 밑까지 밀고 올라갔다.
그래서 풍도곡을 내버려 두고 있다.
풍도곡 일홀문도를 언젠가는 쓸 일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풍도곡이 반심을 품는다면 공부 허도기가 제일 먼저 앞장서서 잘라버릴 것이다.
지금은 마음에 쏙 드는 칼이지만 반대 상황이 되면 가장 위협적인 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풍도곡은 늘 조심한다.
조금이라도 눈길이 돌아올 것 같으면 즉시 행동을 멈춘다.
풍도곡은 절대로 아걸을 숨겨주지 않는다. 숨겨줄 이유도 없고, 위험 부담도 크다.
그렇다면 아걸은 풍도곡 밖에 숨었다.
“수색 범위가 이십 리지?”
“더 넓히려고?”
“아니. 더 넓혀야 한다면 이미 빠져나갔다는 거지. 우리가 놓친 곳이 있을 것 같아서.”
“멧돼지를 찾아보면 어떨까?”
“아냐. 죽었어도 벌써 뜯어 먹혔지. 멧돼지 같은 건 늑대 두 마리만 붙어도 하루면 사라져.”
소축십검 세 명은 진평을 떠나지 못했다.
네 명이 와서 한 명이 죽었다. 소축십검 한 명은 구파일방 장문인과도 비교된다. 이도창의 죽음은 대문파 장문인의 죽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빈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 * *
아걸은 숫돌에 반철도를 갈았다.
할배에게는 대장장이 핏줄이 흐르는 것 같다. 반철도를 기가 막히게 주조했다.
상당히 많은 싸움이 있었는데, 날이 고스란히 서 있다.
이 빠진 곳이 한 군데도 없다. 그러면서도 한지를 썰어낼 정도로 날카롭다.
겉보기에는 뭉툭하고 볼품없는데, 대단히 좋은 칼이다.
스읏! 슷! 스읏! 슷!
칼을 반복해서 문질렀다.
은신처를 벗어나면 얼마 가지 못해서 발각된다.
곧 많은 무인이 나타날 것이고, 진평 땅에서 벌어졌던 대살육이 재현된다.
끊임없이 피를 봐야 한다.
싸우고 싶지 않아도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너희는 상대가 안 되니 물러가라는 말은 필요 없다. 이미 저들 머릿속에는 죽이겠다는 생각 외에는 없다.
과거, 적랑대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 몰렸었다.
그 당시, 적랑대는 무적이 아니었다. 무인들이 말하는 살수 나부랭이였다. 적랑대를 찢어 죽이겠다고 이를 갈면서 쫓아다니는 무인도 많았다.
그래서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했다.
평상시에도 늘 몸조심해야 하는 게 살수다. 원한이 깊어질수록 더욱 조심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조심성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무림 공적으로 낙인찍힌 순간, 상황이 급변했다. 수많은 무인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때는 조심이고 뭐고 필요 없다. 무엇을 해도 발각되었고, 어디에 숨어도 찾아냈다. 밥을 먹을 때, 잠을 잘 때, 길을 걸을 때 등등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쳤다.
죽고, 죽이고, 또 죽고 죽였다.
아무리 많이 죽여도 끝없이 달려드는 무인들 앞에 한두 명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무림은 약한 듯하지만 강하다.
성검문이 이를 간다면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무림이 눈을 부라리면 살지 못한다.
이제 그 싸움을 자신이 해야 한다.
“이 정도면 적당히 날카로워. 후후! 솔직히 칼이 문제가 아니지. 너! 네가 문제야.”
아걸은 자신에게 말했다.
지치면 안 된다. 사람인 이상 지치지 않을 수 없지만, 최대한 기력을 회복하면서 싸워야 한다.
“됐어! 인제 그만 망설이고 가자!”
그는 반철도를 들고 일어섰다.
* * *
삐익! 삐이이익! 삐익!
여기저기서 요란한 호각 소리가 일어났다.
은신처에서 나와 겨우 백 장을 걸었을 뿐이다. 시간상으로는 반 다경도 안 된다. 차 반 잔, 겨우 두어 모금 마실 시간인데 벌써 모여든다.
이럴 것은 예상했다.
은신처에 있으면서 발걸음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어떤 소리는 바로 곁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은신처 주변에는 항시 십여 명쯤 서성거렸다.
그가 머문 장소는 하필이면 진령산맥에서 내려오는 길목이다.
멧돼지가 잡목 사이로 치달린 덕분에 산길에서는 벗어났지만, 바로 산길 옆에 있었다.
“혈도비자다!”
“혈도비자가 나왔다!”
난데없이 사방에서 혈도비자 타령이 쏟아졌다.
‘개망나니? 내가? 핏칼을 든 개망나니. 그거 좀 괜찮은 별호 좀 붙여주지. 개망나니가 뭐야?’
아걸은 피식 웃었다.
저들이 말하는 혈도비자는 자신이다.
진평에서 무인들을 대거 학살한 전력이 혈도비자라는 별호를 불러왔다.
쒜에에엑!
드디어 허공을 찢어발기는 소리가 울렸다.
‘시작인가?’
아걸은 허리를 살짝 숙여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했다.
타탁! 탁!
등 뒤로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화살을 날린다? 저들 중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진평 싸움에서 자신을 봤을 것이다.
쒜쒜쒜쒜쒜에에엑!
소낙비 퍼붓는 소리도 울렸다.
‘강침!’
스으읏!
아걸은 단숨에 이 장을 뛰어넘었다. 동시에 반철도를 거세게 휘둘러 몸을 보호했다.
이십오대 문주의 수신도가 펼쳐졌다.
칼 그림자가 몸 주위를 흘렀다. 물 샐 틈 없는 방어막을 펼쳐서 날아오는 강침을 퉁겨냈다.
까앙! 탕탕! 깡!
강침만 날아온 게 아니다. 단검, 수리검, 비표 등 온갖 암기가 벌떼처럼 날아들었다.
‘철저히 근접전을 피한다. 거리를 두고 암기로 승부를 볼 생각이야. 이러면 지치지 않을 수 없지.’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즉시 신형을 쏘아냈다.
길을 뚫는다. 앞을 막는 자는 없다. 대신 사방에서 암기를 날린다.
그중 가장 많이 날아오는 것이 비황석(飛蝗石)이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서 던진다. 다만 진기를 주입해서 강하게 던진다는 게 돌팔매와 구분된다.
타앙! 탕탕!
신법으로 피하고, 그래도 달려드는 암기는 반철도로 쳐내고.
아걸은 상대방이 누군지 얼굴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벌써 십여 합을 쏟아냈다.
‘일단 길로 올라서야…….’
아걸은 산길을 타고 내려갈 생각이었지만, 발을 떼어놓지 못했다.
타타타탁! 타타탁!
강시(强矢)가 연달아 날아왔다.
길이는 두 뼘 정도 되는데, 촉과 화살대가 전부 강철로 만들어져 있다.
강노(强弩)로 쏘는 강시다.
길이 없는 숲으로 도주하면 암기나 돌멩이를 투척하고, 길로 나서면 연노(連弩)를 쓴다. 그것도 몸을 날릴 수 있는 공간은 빠짐없이 타격한다.
최소한 열 명 이상이 연노를 쏜다.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준비된 무인들이 몰려들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처음 나타나면 어떻게 신호를 보내고, 누가 시간을 끌 것이며, 이차 공격은 어떤 식으로 가할 것인지, 무인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행동을 맞춰 놨다.
낯선 사람들이 손발을 맞춰놓을 정도라면 사람이 많은 문파는 더 치밀할 것이다.
‘이 싸움, 어차피 피를 안 보고는 끝나지 않는다.’
아걸은 탈출을 포기했다.
이들을 따돌리고 진평을 벗어날 생각이었는데, 아주 많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산길로 다시 올라섰다.
쒜엑! 쒜엑! 쒜에엑!
여지없이 강궁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순순히 피하지 않았다. 수신도를 펼쳐서 날아오는 철시를 모두 퉁겨냈다.
까앙! 깡깡! 까앙!
반철도가 강시를 퉁겨내면서 노란 불똥을 퉁겨냈다. 칼 든 손에서도 묵직한 통증이 울렸다.
강시는 사람이 시위를 당겨서 쏜 게 아니다. 확실히 용수철로 퉁겨서 날렸다.
‘연노는 한 사람이 대엿 대. 십여 개가 날아왔으니 두 명이 쏜 것. 저들은 대략 십여 명.’
아걸에 숲에 숨어있는 사람을 찾아냈다.
얼핏 봤지만, 저들은 확실히 열 명이 조금 넘는다. 모두 연노를 잡아당기는 중이다. 한꺼번에 쏠 요량, 연노가 동시에 발사되면 무려 오십 대가 날아온다.
쒜에에엑!
아걸은 산길을 튀어 나갔다.
“막앗!”
길 앞에 그물이 쫙 펼쳐졌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그물이 아니다. 사냥꾼이 맹수를 포획할 때 사용하는 그물이다. 밧줄을 엮어서 만든 그물이 소로를 꽉 막았다.
역수참도! 반철도를 거꾸로 잡고 하늘로 쳐올렸다.
쒜엑! 투두두둑!
아걸은 그물을 단숨에 잘라냈다.
타타타탁! 쒜에에엑! 타타타탁!
등 뒤로 강시가 벌떼처럼 달라붙었다.
아걸은 어쩔 수 없이 길옆으로 내려섰다. 마침 화살을 피할 수 있을 만한 바위가 보였다.
재빨리 바위 뒤로 신형을 날렸다.
타타타탁!
강시가 바위를 두들겼다. 바위가 강시에 두들겨 맞으면서 진동을 일으켰다. 뿌연 돌가루도 피어났다.
아걸은 그제야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은 철저히 접근전을 피한다. 도검을 들고 다가서려는 자들이 없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화살만 날린다. 상황이 급하지 않을 때는 비황석을 던지고.
이제 돌멩이가 날아올 것이다.
쒜에엑! 쒜엑! 탁! 타탁! 텅! 탁!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돌멩이가 날아왔다.
비황석 대부분은 신형을 비틀어서 피해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반철도로 쳐냈다.
“후우!”
입에서 한숨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들을 어떻게 제치고 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