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第二十二章 정마(正魔) 구분(區分) (2)
쒜에에에엑!
아걸은 맹렬하게 치달렸다.
지금까지는 달려오는 사람을 피해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반대로 마중 나갔다.
달려오는 여인의 눈에 화색이 감돌았다.
분명히 무공도 모르고, 원수를 진 일도 없는데, 아걸과 함께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있다.
매우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타타타탁!
여인이 더 급하게 달려왔다.
여인의 얼굴이 보인다. 공포에 질린 얼굴이다. 그러면서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걸과 함께 죽겠다는 결의가 읽힌다.
쒯!
아걸은 허공으로 신형을 솟구쳤다.
반철도가 하늘 한가운데, 천중(天中)을 찔렀다.
일홀문 사대 문주의 절학, 일초무적도 탄궁도의 기수식이다.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가 반철도로 흘러들었다. 순간, 아걸과 칼이 하나가 되었다. 아걸이 사라지고, 칼만 남아서 흐른다. 여인을 향해 뚝! 떨어졌다.
쒜에에엑!
반철도가 여인을 갈랐다.
아니, 아니다. 여인을 베지 않았다. 여인이 등에 메고 있는 화약 더미를 갈랐다.
심지가 잘려 나갔다.
‘됐어.’
아걸은 심지를 자른 데서 멈추지 않았다. 여인을 지나쳐서 언덕 쪽으로 치달렸다.
여인은 아는 것이 없다.
여인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은 언덕 뒤에 있다. 그러니 그들을 쳐야 한다. 그런데,
꽈앙! 꽈아아아앙!
갑자기 등 뒤에서 벼락이 터졌다. 소리가 너무 커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한순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멍했다.
“크윽!”
한참만에야 아걸은 정신을 수습했다.
자신이 땅에 엎어져 있었다. 쓰러진 줄도 몰랐는데, 관도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었다.
뜨거운 불이 등을 지지는 듯 계속 화끈거렸다.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나무 파편 조각이 어깨에 박혀서 욱신거렸다.
폭발에 휘말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떻게 폭발했을까? 분명히 심지를 잘랐는데. 여인이 안전한 것을 보고 지나쳤는데.
“우욱!”
신음을 흘리면서 어깨에 박힌 나뭇조각을 뽑아냈다.
어깨보다도 등이 심각하다. 팔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등이 아프다. 폭발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 같다.
쒜에엑! 쒜엑!
맹수가 땅을 박차고 도약하는 소리도 들렸다.
상처 입은 먹잇감을 노리고 맹수들이 달려들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단숨에 숨통을 물어뜯을 것이다.
‘칼!’
아걸은 반철도를 찾았다.
칼이 길옆 나무 아래 떨어져 있다. 대략 대여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이다.
쒜에에엑!
맹수는 벌써 공격해 온다. ㄱ자 창날을 부착한 과(戈)로 등을 힘차게 내리찍는다.
터엉!
일홀도가 움직였다.
아걸의 신형이 스르륵 옆으로 미끄러졌다. 등을 노리고 내리친 과가 땅을 찍었다.
탁! 퍽!
둔탁한 소리가 터졌다.
아걸은 어느새 과를 밟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상대방의 턱을 무릎으로 걷어찼다.
턱뼈가 으스러졌다.
누군지 모를 자가 머리를 뒤로 젖히고 나가떨어졌다.
아걸은 단숨에 이 장을 뛰어넘어서 반철도를 집어 들었다. 동시에 십이살환도를 떨쳐냈다.
파파팟! 파악! 퍽퍽!
낭아봉(狼牙棒)을 든 자와 귀두도(鬼頭刀)를 든 자가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스읏!
아걸은 반철도를 겨눴다.
공격해 오는 자가 없다. 거의 스무 명가량이 일시에 달려들었는데, 몇 명을 베고 나자 썰물처럼 물러섰다.
‘이놈들 뭐야?’
아걸은 정신을 수습하고 쓰러진 자들을 살펴봤다.
병기가 각기 다르다. 신법도 공격 수법도 각기 달랐다. 같은 문파에서 수련한 자들이 아니다. 군대나 비적처럼 어떤 목적을 위해서 뭉친 자들이다.
그때, 언덕 너머에서 아낙이 나타났다.
“이것들이!”
아걸은 정말로 화가 치솟았다.
* * *
아낙은 길을 잃었다.
관도는 쭉 뻗어있다. 길이 어디 가겠나. 하지만 계속 가야 할지 몰라서 걸음을 멈췄다.
아낙이 뒤돌아봤다.
그를 보낸 자들에게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는 듯했다.
아걸이 사라졌다. 방금까지 아귀가 되어서 무인을 도륙했는데,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뭐야! 어디로 갔어!”
언덕 너머에서 사내 음성이 들려왔다. 순간,
슷! 사악!
아낙 주위에서 칼바람이 일어났다.
물론 아낙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날카로운 칼날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툭!
아낙 몸에서 잘린 심지가 떨어졌다.
“어, 어떻게……?”
아낙은 심지가 잘린 것도 몰랐다. 다만 자신이 계속 가야 하는지, 뒤로 물러서야 하는지, 불붙은 심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을 해달라고 재촉했다.
꽈앙! 꽈아아아앙!
“아악!”
그때, 언덕 너머에서 벼락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대답 대신 비명이 쏟아졌다.
아낙은 주춤주춤 언덕으로 돌아갔다.
“아악!”
“크어억!”
처절한 비명이 계속 터져 나왔다.
아낙은 다급한 마음에 급히 뛰기 시작했다. 언덕 너머에는 자식이 잡혀 있다. 꽁꽁 묶여서 목에 칼이 대여 있다. 자신이 뛰지 않으면 머리가 잘릴 것이다.
“안 돼! 안 돼!”
아낙은 처절한 비명이 꼭 자식이 지르는 것처럼 여겨졌다.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어? 어?”
아낙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 있다. 거의 스무 명에 이르는 무인들이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다. 그리고 한가운데 밧줄에 묶인 사람들과 그녀처럼 인질이 되어서 끌려온 마을 사람들이 넋 잃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 * *
‘지독한 놈들!’
아걸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절사곡!
방금 죽인 자들에게서 얻어낸 말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죽음까지도 공격 도구로 활용했다. 지금처럼 아걸이 역으로 치고 들어왔을 때, 모두 함께 폭사할 수 있도록 앉은 자리에 화약을 매설해 놓았다.
아걸은 심지를 여섯 개나 잘라냈다.
그러고도 혹시 불붙은 심지가 있지 않나 싶어서 오체진감을 끌어올려야 했다.
‘혈도비자라는 별호가 떨어지질 않겠어. 오늘도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할 것 같으니.’
아걸은 반철도를 꽉 움켜잡았다.
그가 다른 절사곡 악귀들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었다. 악귀들이 이미 주위에 늘어섰다.
“지독한 놈이네. 웬만하면 여기서 다 꺼꾸러지는데.”
말을 타고 온 자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 같은 놈을 쓰다니……. 성검문도 다 됐군.”
“우리 같은 놈이 뭐 어때서? 꿩 잡는 게 매라는 말도 못 들었나? 큭큭큭!”
말을 탄 자는 연신 히죽거렸다.
순간, 아걸은 매캐한 냄새를 맡았다.
‘독!’
말로 주의를 끌면서 독을 살포했다.
독성은 굉장히 강했다. 매캐한 냄새를 맡자마자 벌써 현기증이 치밀었다.
이놈들 정파가 아니다. 사파다.
성검문은 사파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아무리 급해도 사파를 동원하지 않는다. 사파와 연수하는 순간, 성검문이 누리는 중원제일문파라는 명성에 흠집이 생긴다.
진평 무림에 동원령을 내렸어도, 이는 정파 무림에 한정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현상금을 노린 것인가? 하지만 현상금도 마찬가지다. 성검문은 사파 무인들에게 현상금을 내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들을 척살한다.
이들이 자신에게 올 이유가 없다.
“이유나 묻자. 왜 날 죽이려는 거냐?”
아걸이 독기를 참느라고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며 물었다.
“이유? 이유야 간단하지. 네가 진평 땅을 먹게 해줬어. 네놈을 죽이고 진평을 쓸어버릴 거야.”
아걸은 피식 웃었다.
진평은 대산방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사곡이 진평에 들어서지 못했다면 그건 대산방 때문이다. 한데 대산방은 사백 오십여 명의 문도를 잃었다. 이제는 절대로 절사곡 악귀들을 상대하지 못한다.
이들은 곧바로 진평을 휩쓸어도 된다.
그런데도 이들은 대산방과 협약을 맺었다. 대산방을 무너트리고 진평을 휩쓸어도 되나, 그런 짓은 삼일천하에 그친다.
이들은 대산방을 앞세우고 계속 진평을 우려먹으려는 거다.
아걸은 앞뒤 정황을 단숨에 읽었다.
그렇구나. 대산방이 이들을 불렀구나. 이렇게 되면 대산방에 짊어졌던 미안함이 싹 가시게 되나? 너무 심하게 몰아쳤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았던 건가?
아걸은 반철도를 냅다 던졌다.
슷! 쒜에엑! 퍼어억!
반철도가 날아가서 독을 살살 풀던 깡마른 자를 격살했다.
한낱 졸개가 유성비도를 막아낼 리 없다.
아걸은 신형을 비틀거렸다. 독에 중독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진기를 끌어냈다. 폭발에 당한 상처도 여전한데, 계속해서 무리하게 움직이고 있다.
“죽엇!”
아걸이 빈손이 되자, 가까이에서 기회를 노리던 자가 냅다 유성추(流星鎚)를 후려쳐왔다.
터엉!
오체진감이 일어난다. 오체진감은 몰안으로 이어지고, 육신과 세상이 하나로 엮인다. 육신을 향해 날아오는 유성추에 맞춰서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쒜엑!
유성추가 가슴 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소축십검이나 사형들의 검은 피하지 못했다. 일홀도를 썼어도 얻어맞았다.
이들 공격쯤은 얼마든지 흘려보낸다.
퍼억!
힘차게 들어 올린 발끝이 상대방의 목을 후려쳤다.
순간,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방의 머리가 옆으로 홱 꺾였다.
아걸은 상대방의 손에서 유성추를 빼앗았다. 그리고 거침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쒜에엑! 퍼억!
유성추가 머리가 깨졌다.
퍽! 빠아악!
일격에 말 다리가 부러져나갔다. 두 번째 공격은 말에서 신형을 날리던 자의 가슴을 뚫고 등 뒤로 삐져나갔다. 철추가 몸통을 뚫고 지나갔다.
아걸은 유성추를 버리고 반철도를 회수했다.
탓!
오체진감이 도주하는 자를 찾아냈다.
아걸은 죽은 자를 발로 찼다.
시신이 붕 날아가더니 도주하던 자의 등을 후려쳤다. 그가 쓰러졌다.
“한 놈도 보내지 않아!”
아걸은 정말로 악귀가 되었다. 혈도비자가 되었다. 두 눈에 새빨간 광망이 이글거렸다.
“이놈, 독에 중독되었다! 겁먹지 말고 쳐!”
누군가가 절사곡 악귀들을 독려했다.
아걸은 또 기분 나쁜 냄새를 맡았다. 매캐한 냄새, 심지 타는 냄새가 난다.
이번에는 쉽게 당하지 않는다. 뒤로 물러서면서 반철도를 휘둘렀다. 점촌일도, 낙화도, 수신도가 연달아 펼쳐졌다. 도권(刀圈), 칼이 뻗어나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자들은 모조리 쓰러졌다.
꽈아앙! 꽈앙!
폭발이 일어났다.
저들은 같은 무리가 뭉쳐 있는 데도 서슴없이 화약을 터트렸다.
아걸은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몸을 납작 엎드렸다.
심지 타는 냄새를 맡았기 때문에 폭발이 어디쯤에서 일어날지도 예측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났다.
“아악! 내 다리! 내 다리!”
“끄으으윽!”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아걸은 살수를 늦추지 않았다. 혈귀가 되어서 저벅저벅 걸었다. 숨이 붙어있는 자에게는 반철도를 선물했다.
푹!
반철도가 쓰러진 자의 심장을 갈랐다.
“오늘, 절사곡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혈도비자가 세상을 향해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