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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09화 (109/600)

#109화. 第二十二章 정마(正魔) 구분(區分) (4)

슷! 쫘아악!

아걸이 밖으로 나가자 무인들이 썰물처럼 갈라졌다.

아걸을 피하는 것은 아니다. 무인들은 싸우러 왔다. 병기를 겨누고 틈을 노린다.

‘대산방!’

아걸은 무인들이 어느 문파 사람인지 안다.

이들이 입고 있는 무복이 낯익다. 아니, 무인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익숙하다.

스읏!

아걸은 골목을 봤다. 담장을 보고 지붕 위도 봤다.

까마귀 떼가 앉아있는 것 같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노려보고 있다.

“너희,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진평에서 간판 내려야 할걸?”

아걸이 차분히 말했다.

“악귀 같은 놈!”

날카로운 청강장검을 들고 있는 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말을 잘못했어. 악귀 같은 놈이 아니라 악귀야. 혈도비자라고 부르면서 악귀 타령은 뭐야?”

스읏!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이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몇 마디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칼을 쓰게 된다.

죽이던가, 죽는다.

자신이 죽거나 진평 땅을 훌쩍 떠나지 않는 한, 이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진평을 벗어나도 곧 다른 곳에 있는 무인들이 공격해 올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파가 새로운 방식으로 공격해 온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혈도비자라는 악명을 내세우고 그들을 죽일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력 손실이 극심한 진평에 남아 있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걸은 진평 무림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떠나려고 한다. 손해는 복구할 수 있지만, 나락으로 떨어지면 다시 올라서지 못한다.

대산방이 절사곡 악귀들을 불러 모았던 것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작이다. 지금은 절사곡 악귀지만, 곧 이름도 모를 사마외도가 진평 땅에 득실거릴 것이다.

혈도비자를 죽일 수 있는 자라면 누구든 환영한다.

이런 순간이 오면 진평 무림은 혈도비자와 다를 게 없어진다. 악의 땅이 되는 것이다.

저벅! 저벅!

무인들 사이를 걸었다.

그를 향해 몸을 날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무인들은 차분히 기다린다.

슷!

골목 어귀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기골이 장대한 노인이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큰 키에 근육도 우람하다. 하얀 수염은 가슴까지 늘어졌지만 늙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는 손에 활을 들고, 등에는 전통(箭筒)을 맸다.

‘백궁일혈(白弓一血) 탁수민(卓洙旻)!’

아걸이 눈빛을 반짝 빛냈다.

상대가 누군지 안다.

진평 땅에 들어서면 대산방은 몰라도 되지만 백궁일혈 탁수민은 알아야 한다.

그는 명실공히 진평 최강자다.

하얀 활이 번뜩이면 핏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화살이 심장을 관통하고 지나가기 때문에 동그란 점 하나만 생긴다.

대산방 무인들은 이 사람을 기다렸다.

아걸은 두 손 모아 읍했다.

“선배를 뵙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궁일혈은 포권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는 암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계략도 쓰지 않는다. 세력도 키우지 않는다.

탁수민에게는 백궁과 강시 스무 시만 있다.

“……하나만 묻지.”

백궁 탁수민이 걸걸한 음성으로 물어왔다.

“말씀하십시오.”

“일홀도. 맞나?”

탁수민의 입에서 일홀도라는 말이 나왔다.

“일홀도를 아십니까?”

“후후! 맞나 보군. 고맙군.”

“…….”

“죽기 전에 꼭 일홀도를 만나고 싶었네. 이렇게 만나서 다행이야.”

스읏!

백궁일혈 탁수민이 활에 화살을 재웠다.

‘일홀도를 아는 사람!’

아걸은 감히 방심하지 못했다.

무림에서 일홀도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다수 무인은 일홀도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른다. 절정에 이른 몇몇 무인만 안다.

사부가 무림에 나서지 않은 게 거의 이십 년이었다. 그리고 또 십오 년이 흘렀다. 대략 사십 년 동안 일홀도는 숨소리 한 올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홀도를 안다.

누가 일홀도를 말해 주었을 리는 없다. 탁수민 스스로 죽은 자들을 살핀 후에 일홀도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일홀도를 알면서도 활을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무공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팟!

오체진감이 켜졌다.

백궁일혈의 숨소리가 들린다. 시위를 당기는 힘이 느껴진다. 손가락, 손목, 어깨에 들어간 힘이 만져진다. 진기가 손으로 만진 듯 뚜렷하게 전해져 온다.

예전보다 오체진감이 한층 예민해졌다.

최소한 서리가헌과 싸울 때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시작하지.”

백궁일혈이 예고를 해왔다.

신선하다. 싸우기 전에 시작을 말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목숨이 걸린 싸움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말해준다. 마치 비무를 하는 듯하다.

“좋습니다.”

아걸도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쉿! 팟!

화살이 날아왔다. 아니, 벌써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큭!”

와아아아!

‘탁! 피융!’하고 화살이 떠난 소리와 아걸이 쏟아낸 비명이 동시에 들렸다.

소리보다 화살이 먼저 도착했다.

강시는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단지 스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살을 한 움큼 뜯어냈다.

그러자 구경하던 대산방 무인들이 격하게 함성을 내질렀다.

“심장을 노렸는데 옆구리에 맞다니, 빠르군.”

“후웁!”

아걸은 대답 대신 큰 숨을 들이켰다.

즉시 오체진감에 정신을 집중했다. 나를 잊고 두 눈만 살리는 몰안을 일으켰다.

화살을 봐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보면 늦는다. 눈으로 보는 순간, 이미 화살이 몸을 뚫는다.

아걸은 이토록 빠른 공격을 본 적이 없다.

화살이 떠나는 순간을 느껴야겠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판단이다. 그때도 늦는다. 화살이 시위는 떠난 것과 육신에 꽂히는 것이 거의 같은 순간이다.

공간을 날아오는 과정이 생략된다.

그렇다. 딱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백궁일혈 탁수민이 ‘시위를 놔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을 감지해야 한다. 의도를 알아야 막을 수 있다.

스읏!

백궁일혈이 시위를 잡아당겼다.

쉿! 팟!

이번에는 화살이 확실히 빗나갔다.

역시 심장을 노렸을 텐데, 의복 앞가슴을 쭉 찢으면서 지나갔다.

와아아아아!

함성이 또 터졌다.

아걸이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즐거운가 보다. 더욱이 백궁일혈에게는 화살이 열여덟 대나 더 남아 있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슷!

백궁일혈이 화살을 재웠다. 순간,

타타타타탁! 타타탁!

아걸이 치달리기 시작했다. 화살을 조준하지 못하게 좌우로 몸을 비틀면서 뛰었다.

쉿! 팟! 패애애앵!

화살이 살점을 뭉텅 뜯어내고 지나간 후에 파공음이 터졌다.

아걸은 이번에도 배를 내줬다. 목을 노릴 때는 어깨를, 심장을 노릴 때는 옆구리나 배를 내준다. 완전히 피할 수 있는데도 몸을 내줄 바보는 없다. 당할 수밖에 없을 때, 살짝 몸을 비트는 정도밖에 할 것이 없을 때 내주는 것이다.

‘봤다!’

타타타탁!

아걸은 살이 쓸려나가는 중에도 치달렸다.

슷! 슷! 슷! 팟! 팟! 팟!

화살 세 대가 연속으로 쏘아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걸도 봤다. 오체진감의 의도를 읽어냈다. 백궁일혈이 화살을 놓는 순간, 아걸은 즉시 몸을 돌렸다. 그러면 어김없이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패애애앵!

아걸은 지나가는 화살을 봤다.

스스스슷!

백궁일혈이 화살 다섯 대를 일시에 재웠다. 그리고 아걸을 향해 겨눴다.

‘늦었다!’

왜 그럴까? 의도를 읽었는데, 늦었다는 느낌이 든다. 순간!

퍼억!

화살 한 대가 허벅지에 꽂혔다.

타앙! 타앙! 쒜에엑! 퍽!

두 대는 반철도로 쳐냈다.

한 대는 신법으로 간신히 피해냈고, 다른 한 대가 심장과 어깨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즉시 분질렀다. 그리고 허벅지 뒤쪽으로 쭉 뽑아냈다.

뚝! 푸왁!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함성이 땅을 뒤흔들었다. 진평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가슴에서 우러나는 함성을 내질렀다.

타 타 타 탁!

아걸은 오직 백궁일혈만 노려보며 달려갔다.

그는 아직도 오체진감을 풀지 않았다. 몰안이 작동하고 있다. 몸은 잊고, 눈만 남았다. 아니, 눈도 사라졌다. 검과 ‘보는 것’만 남아서 달려간다.

슷!

백궁일혈이 화살 한 대를 재웠다.

이번에는 빨리 날리지 않는다. 활을 겨눈 채 진득하게 기다린다. 아걸을 쳐다본다.

“타앗!”

아걸은 고함을 지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순간, 화살이 날아왔다. 몸이 허공에 떠 있을 때, 더는 변수를 일으킬 수 없을 때를 정확하게 노렸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아걸도 기다렸다.

지금까지는 반철도와 육신이 하나였다. 백궁일혈이 화살을 쏘는 순간, 화살도 하나가 되었다. 반철도, 육신, 그리고 날아오는 화살이 하나가 되어서 움직인다.

스읏!

화살이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지나간 것은 버린다. 다음으로 합쳐질 것은 백궁일혈이다. 반철도, 아걸, 백궁일혈이 하나가 된다. 도신일체가 백궁일혈과 만난다. 거세게 부딪친다.

퍼억!

반철도가 백궁일혈의 가슴을 뚫었다.

드디어 하나가 됐다. 반철도가 백궁일혈과 한 몸이 되었다.

삼십칠대 일홀문도 아걸, 서리흔의 일홀도다.

* * *

‘진평에 이런 고수가!’

할배는 늘 세상에는 고수가 너무 많아서 탈이라고 했다.

요놈만 이기면 천하제일이 될 것 같은데, 고놈을 이기고 난 후에 돌아보면 그런 놈이 천지에 쌔고 쌨단다. 한 마디로 헛지랄 한 것이니, 천하제일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알려진 고수보다 알려지지 않은 고수가 훨씬 많다.

아걸은 쓰러진 백궁일혈에게 포권을 취했다.

백궁일혈은 즉사했다.

아걸은 아직 일홀도를 조절하지 못한다. 펴내기는 했지만, 중간에 거두지 못한다. 일단 터져나가면 상대를 죽이지 않는 한, 거둬지지 않는다.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

백궁일혈은 나서지 않아도 됐는데, 이미 전후 사정을 짐작하고 있을 텐데 왜 나섰을까?

백궁일혈은 무인으로 나섰다.

그는 혈도비자와 싸운 게 아니다. 일홀도와 싸운 것이다.

만약 아걸이 일홀도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갑니다. 한 수 잘 배웠습니다.”

아걸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악인은 악인에게 맞는, 무인은 무인에게 맞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나.

아걸은 포권을 마친 후, 재빨리 신형을 퉁겨냈다.

쒜에에엑!

그가 일으킨 바람 소리가 폭풍처럼 거세게 피어났다.

백궁일혈과 싸우면서 적잖은 상처를 또 입었다. 절사곡 악인들과 싸우면서 입은 상처도 낫지 않았는데.

대산방은 아걸이 당하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망설이면 공격해 올 것이다. 그러면 또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

‘오지 마라!’

아걸은 신형을 날리면서도 대산방이 움직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대산방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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