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第二十二章 정마(正魔) 구분(區分) (5)
남곡으로 간다.
그곳에는 금하(金河)가 흐른다. 상류에 황토가 많아서 강이 흙을 끌고 내려온다. 그래서 강물 색깔이 누런 황톳빛인데, 멀리서 보면 꼭 금맥이 흐르는 것 같다.
금하는 큰 강이다. 폭이 짧은 곳은 오십 장, 넓은 곳은 이백 장에 이른다.
금하에서 배를 타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
금하는 물귀신이라는 수룡방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지 못한다. 물속에 들어가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일단 추격자는 안심해도 좋다.
슈우우웃!
아걸은 신형을 빠르게 쏘아냈다.
달리는 데도 일홀도를 사용한다.
신법을 펼칠 때 사용하는 병기는 두 다리다. 땅과 다리와 몸을 하나로 연결한다.
세 개가 삼합(三合)을 이루어서 쭉쭉 뻗어나간다.
땅이 두 다리를, 두 다리가 몸을 끌어당긴다. 일부러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끄는 대로 끌려간다.
일홀도를 펼치자 백궁일혈에게 당한 상처가 잊혔다.
허벅지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근육이 찢어졌으니 말 못 할 통증이 일어나겠지만, 마치 마취라도 된 듯 깨끗이 잊혔다. 대신 땅의 감촉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이런 현상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육신이 무척 힘들어하는데, 정신은 힘든 줄을 모른다. 그렇다고 계속 시전하면 결국은 육신이 혹사당한다. 어느 한순간, 픽 꼬꾸라지는 수가 있다.
일홀도는 중간에 통제하는 장치가 없는 만큼 본인 스스로 알아서 정리해야 한다.
‘그만 쉴까?’
아걸은 걸음을 멈췄다.
다행히 쫓아오는 무인은 없다.
하기는 진평 제일 무인인 백궁일혈이 쓰러졌는데, 쫓아올 마음이 생기겠나.
“후우!”
아걸은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표정은 편하지 못했다. 쉬려고 마음먹을 때는 편했지만, 걸음을 멈춘 후에는 잔뜩 일그러졌다.
미리 와서 길목을 막아선 자들이 있다.
스읏! 슷! 슷!
한 사람은 나무에서 등을 뗐다. 한 사람은 작은 바위를 깔고 앉아있다가 일어섰다. 다른 한 명은 아예 길게 드러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목숨이 질기군.”
진개가 말했다.
“내 목숨이 좀 질기지. 잘 입고 잘 먹지도 못했는데, 목숨마저 질기지 않으면 억울하잖아.”
“곧 죽을 텐데, 너무 억울해하지 마.”
“내가 억울할 건 없고. 억울할 사람은 따로 있지.”
“누구를 말하는 거야?”
“대산방주. 아무리 급해도 절사곡을 끌어들이면 안 되지. 방주가 독약인 줄 모르고 먹었어. 이번 일, 너희는 발뺌할 게 뻔하잖아. 대가를 치를 사람은 대산방주고. 이 정도면 억울하지 않나?”
“넌 괜찮고? 혈도비자.”
“나야 어차피 몇 놈 죽이면 세상에서 사라져도 그만인 사람이니까. 혈도비자든 뭐든 마음대로 부르라고 해.”
아걸이 고개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 순간, 양쪽 모두 팽팽하게 긴장했다.
소축십검은 아걸을 경시하지 못했다. 잠기일력타를 두 번이나 맞고도 멀쩡하게 걸어 다닌다. 반년 이상 누워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멀쩡하다.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도창이 죽었을 때처럼, 곧 살검이 터질 것이다.
아걸도 긴장했다. 말은 편하게 하고 있지만, 소축십검이 빠르다는 것은 이미 겪어봐서 안다.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면 이미 퇴로도 막아놨을 게 분명해. 승부를 내는 수밖에…….’
소축십검 세 명을 상대로 승부를 결행할 바보가 있나? 있다. 아걸이 그래야 한다.
스스스스스!
반철도가 서서히 움직였다.
오체진감이 일어난다.
모든 감각이 소축십검에게 향한다. 세 사람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한다.
양쪽 모두 물러설 곳이 없다.
아걸에게 물러선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소축십검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육신이 죽고 혼이 빠져나가는 것까지 지켜볼 것이다.
소축십검이 물러서면 성검문 치욕으로 기록된다.
혈도비자라고 명명한 살인귀조차 죽이지 못하고 물러섰다는 오명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
물러서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여자가 어디 있는지 말해주면 이번만 길을 열어줄 수 있어. 어때? 넌 다리까지 불편하잖아?”
호금연이 말했다.
“여자? 무슨 여자?”
“시치미 떼지 말고.”
“여자가 워낙 많아서. 어떤 여자를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럴 줄 알았어. 순순히 말해줄 리가 없지. 좋아! 네게서 듣는 건 포기한다.”
스릉!
초가평이 검을 뽑았다.
진개와 호금연도 일시에 뽑았다.
그들은 매우 신중하다. 잠기일력타를 벗어난 게 단순히 운이 좋아서라고는 보지 않는다. 아걸에게 절초를 피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본다.
상황은 절대적으로 세 사람에게 유리하다.
아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몸뚱이가 한시도 피가 마를 날이 없다. 상처가 생겼으면 나을 틈을 주어야 하는데, 계속 찢기만 한다.
“독에도 중독되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은가 보지?”
절사곡 악귀는 독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했다. 동료가 휘말리건 말건, 화약과 마찬가지로 사용하는 걸 꺼려하지 않았다.
당연히 중독될 수밖에 없다.
그때, 천라심요대법이 일어났다.
숨 한 가닥만 붙어있으면 목숨을 구한다는 일홀문 내상 치료법이 저절로 전개되었다.
중독에 내상 치료법?
얼핏 보면 연결이 되지 않는데, 천라심요대법이 일어나자 독기가 스르륵 밀려 나갔다.
그래서 의원을 찾았을 때 금창약만 부탁한 것이다.
아걸이 칼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친구도 아닌데, 물을 걸 물어야지. 내 창자가 녹았으면 녹았다고 말해줄까.”
“하기는…….”
호금연이 검을 들고 옆으로 걸어왔다.
아걸을 가운데 두고 삼방(三方)에서 협공을 취할 생각인 것 같다.
쒯!
제일격은 초가평이 시작했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검이다.
전에는 검초에서 필살의 의지가 읽혔는데, 지금은 굉장히 정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쒝! 쒝!
앞과 뒤에서 동시에 검풍이 일어났다.
진개와 호금연이 초가평의 검에 맞춰서 검을 쳐낸다. 독자적인 검이 아니다. 서로 합일된 검, 아귀 맞추듯이 절묘하게 짜인 검, 검진(劍陣)이다.
성검문에 검진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조명천검이 워낙 강력한 검법이라서 검진을 펼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쒜에엑! 쫘아아악!
초가평의 검이 세 개로 늘어났다.
검초가 쾌검(快劍)으로 바뀌었다. 검신이 세 개로 불어났다고 해서 환검(幻劍)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 개 모두 실초다. 어느 검이라도 맞으면 죽는다. 검을 전개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세 개로 보일 뿐이다.
촥! 촤르르르! 촥! 촤르르르!
진개와 호금연의 검도 세 개로 불어났다.
상대해야 할 검이 모두 아홉 개다. 어느 것 하나도 무시할 수 없다. 그것도 번갯불처럼 빠르게 다가온다. 눈을 깜짝일 틈조차 주지 않고 몰아친다.
“하악! 학!”
아걸은 빠르게 지쳐갔다.
마치 소축십검 아홉 명과 싸우는 것 같다.
이들의 검초는 매우 절묘하게 배합되었다. 한쪽이 다리를 치면, 다른 쪽은 퇴로를 막고, 또 다른 쪽은 머리를 친다. 결국, 어느 쪽도 물러설 곳이 없다.
피윳! 피유유웃!
검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일홀도를 펼치려면 반철도와 육신과 상대를 연결해야 한다.
한데, 연결할 상대가 너무 많다. 하나를 연결하면 다른 여덟 개가 몰아친다.
아직 일홀도는 완성되지 않았다.
아걸은 수신도를 펼쳐서 간신히 검을 퉁겨냈다.
창창창창! 탕탕탕! 창! 탕!
너무 쉴 새 없이 들이닥친다. 검 아홉 자루를 모두 막지 못해서 찍히는 횟수가 점점 늘어갔다.
소축십검은 승기를 잡아놓고도 서두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욕심을 낼 만한데 전혀 서두르지 않는다. 차분하게, 질서 있게, 약속한 검초를 펼쳐낸다.
화라라라락!
초가평의 검이 다섯 개로 쭉 늘어났다.
검초를 펼치는 초가평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터져 나왔다.
그 역시 힘들어한다. 진기를 잔뜩 끌어 모아서 전력을 다해 펼치는 중이다.
화라라라락! 화라락!
진개와 호금연이 즉시 검을 늘였다.
이제는 막을 수 없다.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혼자서 세 명과 싸운다는 게 무리였다.
이들이 예전처럼 흩어져서 싸웠다면 일홀도를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진을 펼치니 속수무책이다. 어떤 검을 어떤 식으로 막아야 할지 모르겠다.
파앗! 팍! 퍽!
검이 몸을 긋는다. 목을 스쳐 간 검도 있다. 목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슴도 긋고 지나가고, 다리도 긋는다. 성한 구석이 없다.
‘이대로 버티면 당한다!’
아걸은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쒜엑!
진개가 검초를 뻗어왔다.
다른 검은 보지 않는다. 초가평과 호금연의 검을 무시한다. 베고 싶으면 마음대로 베라! 오직 진개의 검만 따라간다. 검 다섯 개를 노려본다.
“타앗!”
그는 득달같이 진개를 향해 쏘아갔다. 그러자,
퍽! 퍼억!
그가 신형을 띄우자마자 검 두 개가 몸에 틀어박혔다.
이 짧은 순간, 아걸은 일홀도를 펼쳤다. 오직 진개의 검만 쳐다보자 일홀도가 일어났다.
두 검이 노린 곳을 치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굉장히 심한 상처를 입혔지만 죽음으로 몰아넣기에는 약간 부족하다. 한 치나 두 치쯤 더 위로 쳤어야 한다. 그 순간,
꽈직! 퍼억!
반철도가 진개의 검을 두 동강 냈다. 그리고 어깨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제이대 문주의 목도일참이다. 어떤 싸움에서든 단 일 초만 사용했다는 분의 검초다. 그 중 직참도를 사용했으며, 자신의 일홀도도 가미했다.
“크윽!”
진개가 신음을 흘리며 물러섰다.
그때! 그들이 싸우는 곳을 향해 화탄 대여섯 개가 쑥 날아왔다.
“요망한!”
호금연이 재빨리 검을 들어서 화탄을 쳐냈다.
한데 화탄은 폭발을 일으키지 않았다. 검에 닿자마자 피시식 소리를 내더니 화악! 연기를 일으켰다.
연무탄(煙霧彈)이다. 살수들이 신형을 감출 때 사용하는 구명줄이기도 하다.
“살수!”
호금연이 기척을 감지했다.
누군가가 싸움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아걸을 낚아챘다.
호금연은 비조복개를, 초가평은 비연폭강을 터트렸다. 연무탄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지만, 누가 되었든 빠져나가게 할 수 없다. 소축십검 자존심 문제다. 한데,
까앙! 깡!
그토록 빠르게 쳐낸 검이 도로 튕겨 나왔다.
상대 역시 빠르다. 굉장히 빠르다. 두 사람의 검을 튕겨낼 정도로 빠르다.
“누구냐!”
진개가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상대는 이미 빠져나갔다. 소축십검이 눈앞에서 사람을 빼앗겼다.
도대체 어떤 자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풍도곡인가?”
호금연이 중얼거렸다.
“아냐. 풍도곡이면 우린 벌써 죽었어. 풍도곡은 아냐.”
“그럼 누가 우리 검을 받아냈다는 거야? 아무리 연무탄에 능하다고 해도…….”
그들을 할 말을 잃었다.
연무탄은 곧 가셨다.
연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약간 뿌예졌을 때, 아걸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짐작한 대로 누군가가 그를 채갔다. 그들 눈앞에서.
“음!”
세 사람은 신음만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