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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11화 (111/600)

#111화. 第二十三章 연심(戀心) (1)

스읏! 철썩! 스으읏! 철썩!

팔 장로가 노를 저었다.

금하에 고기 잡는 배가 떴다.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배가 강물을 따라 서서히 노를 저어간다.

“내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고?”

“그러게? 어떻게 알았을까?”

몽설이 붕대와 금창약을 들고 다가오면서 화난다는 듯 툭 쏘아붙였다.

“위험했어. 앞으로는 그런 짓 하지 마.”

아걸이 누런 강물을 보며 말했다.

“방금 죽을 뻔한 사람 힘들게 구해줬더니 참 예쁘게도 말하네. 옷 벗어.”

아걸이 겉옷을 벗으려고 팔을 움직였다.

팔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백궁일혈 강시에 어깨를 다쳤는데, 이제야 통증이 밀려온다.

“됐어. 가만히나 있어.”

몽설이 단검을 뽑아서 겉옷을 북 찢었다.

“왜 이렇게 거칠어진 거야?”

아걸이 다소 놀란 듯 뒤돌아봤다.

“몰라! 앞이나 봐! 어떻게 된 사람이 이리저리 줘 터지고나 다니고. 화나 죽겠어.”

몽설이 웃옷을 확 찢었다. 순간,

“아!”

그녀는 깜짝 놀라서 낮게 신음을 흘렸다.

몽설이 몹시 놀라자, 노를 젓던 팔 장로가 쳐다봤다.

“휴우!”

팔 장로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걸의 몸은 심한 고문을 받은 듯 엉망진창이었다. 상반신만 드러냈는데, 성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상처를 이어붙여서 사람 몸을 만든 것 같았다.

“정말 이러고 다닐 거야!”

몽설이 빽 소리 질렀다.

아걸이 다시 뒤돌아봤다.

“뭘 봐!”

몽설이 눈꼬리를 상큼 치켜뜨며 소리쳤다.

‘귀엽네.’

아걸은 피식 웃었다.

“왜 웃어! 내 말이 우습지?”

몽설이 다시 트집을 잡았다.

“아니, 누가 생각나서.”

아걸이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몽설이 이런 표정을 지을 때, 어떤 행동이 따라붙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 * *

사부에게 이끌려서 이름도 모를 산으로 들어갔다.

“내 딸이다. 이름은 비야. 오비야. 그냥 비야라고 부르면 돼. 친동생처럼 잘 아껴줘.”

작고 귀엽고 깜찍한 계집애.

여자아이는 붙임성 좋게 오빠오빠 하면서 따라다녔다. 친구가 전혀 없는 산골에서 짐승과 더불어 살다가 또래 아이가 나타나니 무척 좋았던 것 같다.

아걸도 여자애가 싫지 않았다.

아걸도 또래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양부모가 꼭꼭 숨겨 놓고 사는 바람에 친구는 고사하고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낯선 여자애지만 가족처럼 친근하게 찰싹 달라붙는 아이가 싫을 리 없다. 꼬마들이라서 남녀의 구별은 있을 리 없고, 그냥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오비야는 예쁘고 귀여웠다.

오비야가 가까이 다가오면 싱싱한 풀냄새가 풍겼다. 거침없는 활력, 자유, 즐거움이 보였다.

눈을 뜨면 오비야가 잠들어 있는 곳부터 봤다.

아직 자나? 일어났나?

어느 날, 토끼가 덫에 걸렸다.

덫에 발이 걸린 채 도주하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풀어줬다. 덫에서 풀려난 토끼가 쏜살같이 도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다.

그런데 갑자기 앙증맞고 귀엽던 여자애가 발로 엉덩이를 뻥 걷어찼다. 그리고 아주 표독스럽게 소리 질렀다.

“이걸 놓아주면 어떡해! 우리 오늘 저녁 뭐 먹어!”

* * *

화를 내는 몽설을 보자, 그때 그 아이가 생각났다. 잊고 살았던 일인데, 갑자기 불쑥 생각났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실실 웃어?”

“아무것도.”

“아무것도가 아닌데? 분명히 무슨 생각 하는데? 무슨 생각하는지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걸. 금창약 내가 바르고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게 좋을 거야.”

“응?”

꾸욱!

금창약을 바르는 손길이 거칠어졌다. 상처를 꾹 눌러버렸다.

“윽!”

아걸은 짧게 신음했다.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말하라니까. 무슨 생각해?”

몽설이 사근사근 물어왔다.

아걸은 그제야 어떤 호통, 고함, 고문 도구보다도 여자의 사근사근한 말이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끼, 옛날에 토끼를 놓아준 게 기억나서.”

아걸이 급히 말했다. 굳이 숨길 일도 아니고, 몽설이 기억할 일도 없고. 그런데, ‘토끼’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에서 불이 번쩍 튀었다.

찰싹!

“악!”

아걸은 조금 전보다 더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잖아도 상처투성이인 등에 매운 손때가 작렬했으니, 그 고통은 오직 당해본 사람만 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정신을 딴 데 쏟는 거야? 그럴 정신 있으면 운공이나 해. 다리에 금창약이나 바르던가! 이거 나아야 할 거 아냐. 그래야 또 치고받고 싸우지!”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 정혼자라는 사람이 얻어터지고 온 게 일이지!”

말은 표독스럽게 했지만, 금창약을 바르는 손길은 세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몽설의 손길이 솜처럼 부드러웠다.

그녀는 방금 얻은 상처는 물론이고 얼마 전에 입은 상처까지 치료했다.

의원이 약을 잘 발라주었지만, 어느새 땀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다.

몽설은 피땀으로 얼룩진 금창약을 물로 닦아내고 다시 금창약을 말랐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다.

몽설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 귀문을 떠나올 때 봤던 몽설이 아니다. 예전의 그녀는 약간의 예의를 지켰다. 가까운 듯하면서도 일정한 거리감이 있었다.

지금은 거리감이 완전히 무너졌다.

문득, 아주 먼 옛날에 만났던 꼬마 여자애가 생각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몽설의 지금 모습과 옛날 꼬마 모습이 겹친다. 생각할 것도 없이 똑같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더니.’

아걸이 속으로 웃을 때, 몽설이 툭 말했다.

“그때…… 토끼 잡은 날, 어머니 생일이었어. 할 줄 모르지만 요리 같은 거 해드리고 싶었거든. 그걸 오빠가 놓아준 거야. 그러니 화났지.”

“아!”

아걸은 깜짝 놀라며 뒤돌아봤다.

몽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오빠만 기억 잘하는 줄 알아? 나도 머리 좋다고.”

“그걸…… 기억해?”

“오빠는 기억하면서 나는 왜 잊어버렸다고 생각해? 그때 정말 세게 찼는데, 안 아파?”

“훗!”

아걸은 웃었다.

몽설이 설마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때 겨우 대여섯 살 정도에 불과했는데.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몽설이 한 말이 가슴에 박혔다.

“아……. 미안. 사모님 생신인 건 몰랐네.”

“당연히 몰랐지. 그때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고 보니 그게 마지막 생신이셨네. 역시 할 줄 몰라도 요리를 해 드렸어야 해. 한 대 더 맞아.”

몽설이 손을 들어 올렸다.

아걸은 어깨를 찔끔거렸다.

“호호호! 소축십검 검도 몸으로 받아내는 사람이 등짝 한 대 맞기 싫어서 움찔거리는 거야?”

“네 손이 꽤 매워.”

“내 손이? 자주 안 맞아서 그래. 그때부터 자주 맞았으면 지금쯤 괜찮아졌을 텐데.”

아걸이 다시 뒤돌아봤다.

이 여자, 몽설이 맞나? 몽설이 이런 말도 할 줄 아나? 꼬마 여자애라면 하고도 남지만, 몽설은 웬만한 말은 속으로 눌러버리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자, 앞에 발라. 등은 다 했어.”

몽설이 금창약을 넘겨주었다.

아걸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포근함을 느꼈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 이토록 포근한 것인 줄 처음 알았다. 아주 좋다. 아픈 게 싹 잊힌다.

하지만 이 포근함, 무인에게는 독이다.

이 느낌을 겉으로 드러내는 순간부터 몽설은 만천하 모든 무인의 표적이 된다.

아걸은 묵묵히 금창약을 받아들었다.

* * *

삐걱! 삐걱! 철썩!

노를 젓는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운다.

모두 숨죽인 채 금하를 내려간다.

강 한복판이라고 마음 놓고 떠들었다가는 즉시 발각된다. 젊은 남녀가 어선을 탄 것도 이상한데, 웃고 떠들기까지 하면 당장 주목거리가 된다.

“저 굽이만 돌면 진평을 벗어납니다. 진평만 벗어나도 한결 수월할 거예요.”

팔 장로가 말했다.

그때, 숲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까악! 까악! 까아아악!

까마귀가 몹시 극성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일부러 ‘나 여기 있다’하고 말하는 듯했다.

“아무도 없네. 안심해도 돼.”

“저 까마귀가 귀문 거였나?”

아걸이 몽설을 보며 물었다.

“아니, 취화원. 원래는 취화원 연락망이야.”

“취화원 연락망을 사용해?”

“실질적으로 취화원은 망했지만, 망한 사실이 알려지진 않았잖아. 사람들 속에 심어놓은 간자는 아직도 활동해. 우리 연락망 좋지? 까마귀를 이용하면 아무 의심도 받지 않고 간단한 의사 정도는 전할 수 있거든. 지금 같을 때 딱 좋아.”

“만약 경계해야 할 사람이 있었으면 어떻게 알리지?”

“매가 날았을 거야.”

“음. 매.”

숲에 조롱을 든 사람이 있다.

그는 까마귀와 매를 들고 있다. 그러다가 배가 보이면 둘 중 하나를 날린다.

하지만 이런 연락을 취하려면 먼저 주변을 살펴야 한다.

무인이 잠복해 있다는 사실을 무인 아닌 사람이 파악해서 연락을 취한다. 인근 주민 중 누군가가 귀문 사람일 것이다. 아마 조롱을 든 사람일 수도 있다.

취화원 조직은 아직 살아있다.

간자가 일반인 속에 섞여 있을 만큼 치밀하게 움직인다.

살수들이 태반이나 죽었지만, 조직은 살아서 숨 쉰다. 적랑대가 그런 것처럼.

“이제 편하게 쉬어도 돼. 여기서부터 귀문까지는 귀문 사람이 안내할 거야.”

방금 몽설은 놀라운 말을 했다.

전 무림이 혈도비자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편히 갈 수 있단다. 다시 말해서 귀문이 무림 문파의 이목을 따돌릴 수 있다는 거다.

이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려면 각 지역 간 긴밀한 연락망을 유지해야 한다.

귀문도 취화원만큼이나 조직이 크다.

“귀문을 장악했어?”

“장악을 어떻게 해. 한데, 이런 것 정도는 굳이 장악하지 않아도 돼. 위에서 명령만 하면 착착 수행하더라고. 점조직이란 게 취약점이 많아.”

“훗!”

아걸은 몽설을 보면서 웃었다.

몽설에게서 옛날에 보았던 꼬마애의 당참이 엿보인다.

활기찬 움직임, 밝음,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때 맡았던 풀냄새도 풍긴다.

몽설의 무공이 일취월장했다.

몽설이 겉으로 드러내는 자유는 강자가 아니면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호랑이는 늑대가 다가와도 꼼짝하지 않는다.

이빨이나 발톱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포효도 지르지 않는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멀거니 쳐다본다.

네가 날 건드려? 감히? 그럴 배짱도 없는 것이.

절대 강자가 표현하는 여유는 좋지 않은 상황일수록 분명하게 드러난다.

몽설이 그런 여유를 보인다.

‘혈검경을 이해했구나.’

몽설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진척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소축십검의 검을 튕겨낸 것이 천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온전한 무공이다. 혈검경을 이해하지 못해서 수박 겉핥기만 할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아주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연마하는 중일 것이다.

아걸은 강물을 쳐다봤다.

귀문에 도착할 때까지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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