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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12화 (112/600)

#112화. 第二十三章 연심(戀心) (2)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무공 수련을 해야겠어.”

“얼마나?”

“글쎄? 두어 달?”

“두어 달?”

몽설이 되물으면서 아걸을 쳐다봤다.

두어 달 만에 마칠 수 있는 무공수련은 없다.

병석에 누웠던 환자가 완쾌되어 일어나고, 싸우기 위해서 근육을 일깨우는 기간이라고 생각해도 부족하다.

사실이 그렇다.

아걸 몸 상태를 보면 두어 달 동안 푹 쉬기만 해도 부족하다. 뼈가 아물고, 근육을 만들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까지는 적어도 반년 이상 걸린다.

“뭘 수련하는데 두어 달밖에 안 걸려?”

“뭘 배우려는 게 아냐. 정리만 좀 하려고.”

“연공실이 필요해?”

“아냐. 이 방이면 충분해.”

아걸은 자신이 머무는 방을 쓱 휘둘러보며 생각했다.

일홀도 완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칼을 완성한다는 것은 오만이다. 칼은 절대로 완성되지 않는다. 상대에 맞춰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다듬는다는 편이 맞는 말이다.

아걸이 조준한 상대는 서리가헌이다.

서리가헌의 일홀도가 몸에 새겨져 있다. 그러니 그를 넘어설 만큼 칼을 다듬어야 한다.

‘일홀도를 제어할 수 없나? 이건 펼쳤다 하면 끝장을 보니…….’

당장 아걸은 두 가지를 교정하려고 한다.

하나는 통제다. 일홀도를 통제해야 한다. 지금은 펼치기만 하면 끝장을 본다. 상대가 죽거나 내가 당해야 한다. 칼을 언제까지고 필살(必殺)로 남겨둘 수는 없다.

두 번째는 통제보다도 더 급하다.

적이 합공을 펼치면 대응하지 못한다. 소축십검 정도 되는 고수가 합공을 펼치면 한 사람만 노릴 수 없다.

만약, 그때…… 몽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죽었다.

소축십검이 자존심, 명예, 긍지를 버리고 합공을 선택했다.

소축십검은 허울 같은 건 미련 없이 던져버린다. 승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한다.

소축십검은 명예나 권위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검을 수련하고 있는 무인이다. 마흔이 훌쩍 넘은 중년인들이지만 아직도 발전하고 있다.

합공과 부딪쳤을 때도 일홀도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오체진감부터 일으키고…….’

그의 일홀도는 칼이 필요 없다. 두 손, 수도(手刀)로 칼 역할을 대신한다.

오체진감에서 몰안까지는 순식간에 도달한다.

사실, 몰안은 중요하지 않다. 몰안까지 이르게 만드는 도구가 오체진감이다.

오체진감을 주목해야 한다.

오체진감을 얻기 위해서는 육신의 감각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걸은 오체진감을 얻기 위해서 십팔지옥을 차례차례 건너왔다.

제일 먼저 적랑대의 오대 고문을 경험했다.

고문을 받으면서 감각을 잃는 것과 얻는 것을 경험했다.

미친 소가 달려드는 매우 급한 상황에서 눈을 감고 오직 감각에 의존해 피하다가 들이받힌 적도 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만약 할배가 억지로 시켰다면 중도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아걸 스스로 오체진감을 얻기 위해서 극한의 고행을 선택했다.

오체진감에서부터 몰안까지 하나도 허투루 얻은 게 없다.

덕분에 아걸의 집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진기를 일으키면 곧장 몰안으로 연결된다.

그런 상태에서 칼을 뻗어내면 일홀도가 터진다.

선대 문주들의 일홀도를 정확하게 재현해 낸 것도 오로지 극한의 집중력 때문이다.

그의 일홀도가 칼, 몸, 상대방이라는 삼합에서 일어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오체진감을 수련하는 순간부터 일홀도가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합공을 상대하려면 시야를 넓게 봐야 하는데, 일홀도를 펼치면 점 하나만 남아. 다른 것은 모두 사라져. 이게 문제야. 점은 점대로 남기고, 나머지도 봐야 하는데.’

스읏!

손을 뻗어냈다. 하지만 역시 일홀도를 전개하면 목표만 남고 나머지는 사라진다.

스읏! 스읏!

아걸은 한시도 쉬지 않고 손을 뻗어냈다.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 오직 정신만 집중시키는 일이라서 몸 상태와는 상관없이 펼칠 수 있었다.

* * *

“저녁.”

몽설이 소반을 들고 들어섰다.

“또……?”

아걸이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몽설을 쳐다봤다.

“빨리 나아야지. 그러니까 주는 대로 먹어.”

몽설이 아갈 앞에 소반을 놓았다.

소반 위에는 밥도 반찬도 없이 딱 고깃국 한 그릇만 놓여있다. 고기를 요리한 국이 아니다. 각종 약재를 넣고 오랫동안 푹 고아낸 보양탕이다.

“이건 무슨 고기인데?”

“양.”

“양. 양. 양…… 휴우!”

아침에는 닭, 점심에는 돼지, 저녁에는 양.

배 속이 니글거린다. 점심때 먹은 약재 냄새가 아직도 속에서 올라온다.

“먹어.”

몽설이 소반 앞에 앉아서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렇게 빤히 보고 있으면 어떻게 먹나. 나가 있으면 다 먹고 내가 치울게.”

“그 몸으로 뭘 움직이려고. 그냥 먹기나 해.”

아걸은 저금을 들었다.

몽설은 고집이 무척 세다. 먹으라면 먹어야 하고, 자라면 자야 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들을 때까지 물끄러미 지켜본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뭐가?”

아걸은 탕을 먹다가 잘 됐다 싶어서 저금을 놓았다.

그러자 몽설이 눈짓으로 탕을 가리켰다. 먹으면서 대답하라는 뜻이다.

아걸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저금을 다시 들었다.

고기가 무척 연하다. 몇 시간 동안 푹 고아서 죽처럼 흐물흐물해졌다.

“어떻게 그런 상처를 입고도 견뎌?”

“……?”

아걸이 몽설을 쳐다봤다.

“보통 사람 같으면 몸에 새겨진 상처 중 하나만 걸려도 살기 힘들었을 거야. 검이 등까지 삐져나온 게 몇 개야? 배하고 옆구리는 아예 넝마를 붙여놓았잖아. 어떻게 산 거야?”

“어떻게 살기는. 사니까 산 거지.”

그런 검을 맞고도 어떻게 사느냐? 결정타를 피하면 된다.

상대방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을 공격한다. 그러니 상대가 노린 곳만이라도 맞지 말아야 한다. 안 맞는 게 아니라 잘 맞아야 한다.

한 마디로 칼 맞는 법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 칼 맞는 법…… 배우기가 어렵다. 무작정 피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피하는 동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공격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다.

그래서는 잘 피할 수 없다.

잘 맞으려면 오히려 공격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공격을 보고 내줄 곳을 선택한다. 육신은 어느 곳이나 칼 맞아서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어떤 곳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잘 지켜보고 잘 내줘야 한다.

아걸은 이런 수련을 어려서부터 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칼을 맞아왔다는 말이다.

혼자 산속에서 수련하다가 불쑥 무림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목숨 걸고 배웠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피 튀기는 싸움을 하면서 한 수씩 배워왔다.

지금 자신이 사용하는 일홀도는 모두 그런 식으로 수련했다.

서른여섯 문주의 일홀도를 배우기 위해서 적어도 백 번 넘게 사선을 밟아야만 했다.

그런 삶은 말하자면 인생이 너무 불쌍해 보인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다. 몽설에게 죽을 것 같았던 과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칼 들고 싸우는 사람한테 다치지 말라고 말하면 헛소리지?”

“난 다치고 싶지 않은데, 막무가내로 베더라고.”

“그런 농담 하나도 재미없어. 앞으로 또 이렇게 다치면 칼 뺏어버릴 거야.”

“몽설, 내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그건…….”

“오빠, 할 말 많은데 지금은 참아. 나중에 자격 되면 말할게. 난들 내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지 않겠어? 알아도 소용없으니까 참아. 오빠, 내게 해줄 말 남아 있잖아. 오빠 몸은 오빠 것이 아니야. 내 것이기도 해. 그래서 신경 쓰는 거야. 다 먹고 그릇 밖에 내놔.”

몽설이 일어섰다.

* * *

몽설이 물과 금창약을 들고 들어왔다.

“옷 벗어.”

“뭐?”

“오빠는 내 알몸도 봐 놓고는 뭘 그래? 옷 벗어. 상처 치료해야 해. 자칫하면 고름 생겨.”

아걸은 웃옷을 벗었다.

“밑에도 벗어. 허벅지 뒤쪽 혼자서 못 바르잖아. 오빠, 내 옷 벗길 때는 목석같더니, 자기 옷은 왜 이렇게 못 벗어?”

“야, 너 그 옷 벗으라는 말 좀…….”

“벗겨줘?”

“하아!”

아걸은 기가 막혀서 말문을 닫았다.

어떤 계기로든 여자가 변하면 상황도 변한다. 여자가 영원히 말 잘 듣는 병아리라고 생각하면 아주 큰 오산이다. 하루아침에 살쾡이로 변하기도 한다.

“녹선마황은 못 구해?”

“여기선 못 구해.”

“그게 있으면 딱 좋은데. 다 나으면 제일 먼저 그것부터 구해놔. 워낙 많이 다치니까.”

몽설은 아침저녁으로 상처를 씻고, 금창약을 바르고, 새 붕대로 묶어주었다.

밤이 깊었다.

세상 만물이 모두 잠든 시각이다. 밤에 활동하는 부엉이만 요란하게 울어댄다.

아걸은 창문을 통해 달을 쳐다봤다.

달빛에 몽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두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쪼그린 채 잠들어 있는 몽설이 보인다.

‘잠이나 편히 자지.’

아걸은 찡그려진 미간을 펴지 못했다.

몽설은 문밖에서 잔다. 귀문에 도착한 날부터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루에 몇 번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다.

식사를 가져올 때, 그리고 상처를 치료할 때.

그 외에는 절대로 들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곁을 떠나지도 않는다. 회랑 돌바닥에 얇은 이불 하나 깔아놓고 노숙자처럼 쪼그린 채 잠을 청한다.

저 여자를 어떻게 하나?

어느 순간부터 몽설의 마음이 급속도로 기울어지고 있다. 그런 마음을 느낀다.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이 다르다. 오빠를 보는 눈길이 아니다. 연인을 보는 눈이다.

몽설의 마음을 접게 만들려면 지금 이대로 떠나면 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몽설을 만나지 않으면 된다. 몽설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럴 수 있나?

몽설은 결국 부모의 원수를 알아낼 것이다. 그 후는 생각할 것도 없다. 자신이 하는 것처럼 풍도곡, 성검문 가리지 않고 무턱대고 살검을 휘두를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눈에 보이지 않나.

그러면 계속 이대로 곁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몽설의 저 마음은 점점 깊어진다.

몽설은 아주 지독한 독(毒)이다.

찬바람만 휭휭 불 것 같던 마음에 그녀가 자리 잡았다. 따뜻한 바람을 불어낸다.

몽설은 자신에게나, 그녀에게나 치명적인 독이다. 그러므로 어중간한 인연은 오히려 좋지 않다. 아주 깊게 들어가거나, 완전히 끊어야 한다.

‘사부.’

아걸은 사부를 잊지 않고 있다. 사부와도 잠시 만난 게 고작이지만, 동굴 속에서 서른여섯 가지 일홀도를 펼쳐 보이던 사부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오비야, 제가 맡아도 되겠습니까?’

사부에게 물어봤다.

‘제가 비야를 맡으면 평생 눈물 마를 날이 없을 겁니다. 어쩌면 지옥 속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사모에게 물어봤다.

스읏!

아걸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 할까? 문을 열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물이 엎질러진다. 그때,

덜컹!

문이 열렸다. 그리고 몽설이 그를 쳐다봤다.

“내가 열었어. 문. 오빠는 안 열 것 같아서.”

“몽설.”

“나, 오빠 곁에 있고 싶어.”

몽설이 살포시 안겨 왔다.

아걸은 몽설을 밀쳐내지 않았다. 안겨 오는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사부, 사모.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비야, 제가 맡겠습니다.“

아걸은 하얀 달빛 속에서 사부님과 사모님의 얼굴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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