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第二十三章 연심(戀心) (3)
쉬잇! 쉬이잇!
어둠 속에서 까만 그림자가 번뜩였다.
무엇인가 어른거리는 것 같아서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움직임은 매우 빠르고 은밀했다.
적막이 흐른다. 풀잎 스치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바람 소리가 휭 지나간다. 순간,
쒜에에엑!
허공에서 검이 떨어졌다.
땅에서도 검이 솟구쳤다. 섬광 한 줄기가 떨어지는 유성을 정확히 마주쳐갔다.
까앙!
허공에서 불똥이 튀었다.
“느려!”
검과 검이 부딪친 후, 일갈이 터졌다.
“하악!”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검이 이 장 앞에서 보였어! 그걸 누가 못 피해! 최소한 일 장까지 당기라고 했잖아!”
“하악! 최선을…… 최선을 다했어요.”
취화원 살수가 숨을 헐떡였다.
암영검을 펼치기 위해서는 숨을 참아야 한다. 기척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은 숨조차 쉬지 않는 것이다. 죽은 듯이 있다가 불쑥 터트릴 수가 강해진다.
취화원 살수는 최대한 숨을 억제했다.
단 일 초! 일 초에 모든 것을 걸자!
하지만 취화원 살수가 터트린 검은 이 장 앞에서 보였다. 공격을 느끼고, 병기를 쥐고, 반격하기에 충분한 거리다. 상대에 따라서는 반격도 할 수 있다.
몽설은 반격하지 않았다.
취화원 살수에게서는 적어도 다섯 군데 이상 허점이 보였다.
허점이 너무 많아서 어디를 칠지 망설여질 정도로 풋내 나는 공격이었다.
이런 검은 무림에 나가면 당장 부러진다.
적당한 사람 정도는 암살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다.
몽설도 이런 검을 가지고 있었다. 치우현 동승에서 강조를 죽일 때, 딱 이런 검이었다. 그러니 활검문 십검을 맞이해서 쩔쩔매지 않았나.
활검문 십검 정도는 가볍게 누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축십검이나 풍도곡 살귀들을 상대할 수 있다.
아니다. 상대하기 위해서 강해지라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 강해지라는 것이다.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면 그것도 문제이지 않나.
몽설은 요즘 들어서 취화원주의 고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검을 무림에 보낼 때, 원주의 마음이 어땠을까? 암살할 자는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목표 옆에는 암영검을 가볍게 꺾을 수 있는 고수가 많다.
암살한 후, 잘 빠져나와야 한다. 암살에 성공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빠져나와라.
취화원주는 그런 마음으로 살수들을 보냈다.
몽설은 그러고 싶지 않다.
취화원 살수들이 아주 강해서 꺾을 수 있는 자가 몇 명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암살에 성공한 후에도 바삐 서두르지 않는다. 유유히 빠져나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생락을 수련해내야 한다.
“다시!”
몽설이 소리쳤다.
* * *
“원주님, 차 한잔하실래요?”
팔 장로가 다반에 차를 가지고 왔다.
“네. 그래요.”
몽설은 밤이 깊었는데도 반갑게 맞이했다.
팔 장로가 늦은 밤에 차를 가지고 올 때는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대충 짐작한다. 살수들을 좀 살살 다루라는 말일 것이다.
또르르륵!
찻잔에 호박색 찻물이 담겼다.
“이놈들은 풍취를 몰라서 차도 좋은 게 없네요. 취화원 같으면 좋은 차를 준비했을 텐데.”
“이런 거라도 마실 수 있는 게 어디에요?”
몽설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원주님께 이런 말 하기는 그런데…… 내일부터 저도 원주님께 가르침을 청할까 해요.”
팔 장로가 뜻밖의 말을 했다.
“네?”
“제 사생락도 형편없어서요.”
“…….”
“사실 저 아이들과 함께 수련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해서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고 했는데, 안 되네요. 아무래도 원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말이었나? 취화원 살수들을 살살 볶으라는 말인 줄 알았는데, 팔 장로도 수련하겠다는 거였나?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에게 배우겠다는 건가?
“잠깐만요. 잠깐만! 조금…… 생각해보고요. 생각할 게 생겼네요. 생각 좀 해봐야겠어요.”
몽설이 찻잔을 입에 댔다.
차는 마시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은 마구 엉켜가는 중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게.
몽설이 잘못 생각한 게 있다.
사생락은 터득한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 고절한 무공이다. 문주에게만 이어지는 비전지공(祕傳之功)이다. 역대 문주도 오 성 이상은 수련하지 않았다.
그런 무공을 수련만 하면 터득할 줄 알았다.
아주 잘못 생각한 것이다.
현재, 팔 장로와 취화원 살수 아홉 명이 사생락을 수련하고 있다.
옆에서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수련한다. 낮이고 밤이고 검을 옆에 끼고 산다. 그런데도 진척이 보이지 않는다. 암영검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다.
이제 알았다. 저들 중에서 사생락을 터득하는 사람은 한두 명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도 운이 좋을 경우이고, 어쩌면 전원 터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상태로 계속 진행하면 실패한다.
몽설은 여기까지 생각했다. 그러면 성공할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아걸이다.
아걸에게는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아걸은 암영검을 모른다. 구결은 들은 적도 없다. 완전히 다른 문파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
사생락은 아걸에게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하지만 아걸에게 묻는다. 아걸에게는 어떤 말을 물어도 창피하지 않다.
* * *
아걸이 물었다.
“취화원에서 사생락을 수련한 사람이 몇이나 되지?”
“일인비전이니까 몇 명 안 된다고 봐야지?”
“현재 상태는?”
“암영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검이 이 장 밖에서 보여. 기습이 아니라 공개된 결전이야.”
“그거야 혈검으로 상대하니까 그렇고.”
“그런 점을 고려해도 안 돼. 이런 검으로는 모두 죽어. 서리형개가 나서자 장로님들 손도 못 써보고 죽었잖아. 그런 경우가 또 생길 거야.”
“흠……. 암영검을 써 봐.”
“오빠에게?”
아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몽설은 즉각 움직였다.
굳이 기습할 필요는 없다. 암영검이 어떤 식으로 운용되는지 보고 싶은 것이니까.
스읏!
몽설이 뒤로 물러섰다. 두 발이 암영보를 밟자, 신형이 두 겹, 세 겹 겹쳐 보였다.
스으읏!
몽설의 신형이 좌측으로 급격하게 비틀렸다.
어둠 속에서 전개하면 한순간,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스읏!
그녀가 좌측으로 눕혀진 신형을 바로 세우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검을 쥐고 있었다면 목을 겨눴을 것이다.
착시를 이용한 속임수, 환법(幻法)이다.
암영검은 벌건 대낮에 탁 트인 평야에서 사용하면 효과가 크지 않다. 어두운 밤에, 좁은 곳에서 기습을 펼칠 때 귀신처럼 불쑥 나타나는 검이 된다.
철컹!
아걸이 반철도를 손에 쥐었다.
“봐.”
그는 몽설이 빤히 지켜보는 가운데, 칼을 휘둘렀다.
휘릭! 휘리리리릭!
칼이 매우 현란하게 움직였다. 좌측에 있던 칼이 느닷없이 우측 옆구리를 베어온다. 위에서 떨어지던 칼이 가슴을 찌르는가 하면, 한순간에 싹 거둬진다.
“굉장해!”
몽설이 탄성을 토해냈다.
아걸은 구대문주의 환도, 십이살환도를 펼쳐 보였다.
암영검은 암영보라는 보법에 중점을 둔 환검이다. 십이살환도와 맞는다.
사생락은 환법의 극치다. 암영보를 죽음의 문턱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몸으로 십이살환도를 전개해야 한다. 아걸이 칼에 변화를 일으켰다면, 사생락은 몸에 변화를 일으킨다.
만류귀원(萬流歸元), 만류귀종(萬流歸宗)이다.
모든 무공은 같은 근원에서 나왔으니,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아걸은 단번에 사생락의 요결을 이해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련 방법도 찾아냈다.
아걸이 말했다.
“모두 동굴로 집어넣어. 몸도 꽤 좋아졌고, 나도 도와줄게.”
“고마워.”
몽설이 환하게 웃었다.
* * *
슛! 퍽!
동굴 속에서 박쥐가 번뜩였다.
소리도 없이 날아온 박쥐가 몸을 거세게 물어뜯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크윽!”
어둠 속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신음은 곧 그쳤다. 신음은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신호일 뿐이다.
죽음과 같은 적막 속에서 적과 대치한다.
적은 모두 열 명이다.
동굴에는 모두 열한 명이 들어왔다.
아걸, 팔 장로, 살아남은 취화원 살수 아홉 명.
몽설만 오지 않았다. 전각에 남아서 귀문을 통솔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열한 명은 동굴 속에서 나 아닌 모든 사람과 싸운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가격한다. 느끼는 대로 때린다. 어설프게 움직이면 다른 열 명에게 몰매 맞을 수도 있다.
병기는 날 없는 검이다.
뭉툭한 쇠붙이에 불과하다고 해서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팔다리에 맞으면 뼈가 부러진다. 머리를 내주면 머리가 깨진다. 즉사할 위험도 있다.
한 명이라도 사생락을 깨우칠 수 있다면!
그런 심정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수련 중에 죽는다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요점은 딱 하나, 어떻게 하면 나를 숨기고 상대를 칠 수 있느냐 하는 거다.
암영검? 필요 없다. 사생락? 쓸 일이 없다.
철저하게 살수로 돌아가서 최대한 은밀하게 숨어있다가 일격을 날린다.
열한 명은 사실 공평하지 않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아걸은 월등하다. 팔 장로는 조금 낫다. 열한 명 중 누군가가 살아남는다면 그들일 것이다. 그러니 때리는 사람도 주로 그들이다.
취화원 살수 아홉 명은 철저하게 최약자, 가장 열등한 입장에서 싸운다.
아니, 숨는다. 감히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숨기에 급급하다.
처음에는 수련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생사를 건 싸움이 되었다.
“후…… 우…… 웁!”
숨 한 모금을 들이쉬는 데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다. 조금이라도 숨소리가 새어나가면 볼 것도 없다. 여지없이 강철 검이 육신을 난타한다.
벌써 사흘째다.
잠도 자지 못했다. 식사도 걸렀다. 무엇보다도 목이 말라서 미칠 지경이다.
습기 머금은 바위가 만져지면 조심스럽게 혀를 내밀어서 핥았다. 그러면 또 강철 검이 후려쳤다. 그러니 맞지 않으려면 온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바위를 핥아야 한다.
쒜에에엑! 쒜에에엑! 쒜에엑! 퍽퍽! 퍽!
가을 논에서 메뚜기가 튀어 오르듯이 한꺼번에 후다닥 소란이 일어났다.
한 사람이 공격했다. 그 소리를 듣고 공격한 사람이 있고, 또 공격하고…… 소리를 흘린 사람은 맞지 않기 위해서 숨고, 다른 사람도 숨고.
공격하고 숨는 행동이 후다닥 일어났다.
동굴 속에 깊은 적막이 흘렀다. 언제 소리가 일어났었냐는 듯이 고요했다.
스읏!
어떤 기미가 느껴졌다.
분명히 움직인 사람은 있는데, 느낌만 전해져올 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움직인다!’
느낌이 일어나는 순간, 강철 검은 이미 터져나갈 준비를 마쳤다.
내 소리가 흘러나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타인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암영검하고는 전혀 상관없다. 사생락과도 거리가 멀다. 이건 생존이다. 사실, 이런 수련이 낯선 것도 아니다. 살수라면 한두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이미 옛날에 경험했던 건데, 원주는 왜 이런 수련을 하라고 한 것일까?
수련이 언제 끝날지는 원주 마음이다.
그녀들만 굶주린 것이 아니다 원주도 굶주리고 있다. 그녀들만 잠들지 못한 게 아니다. 원주도 생눈을 뜨고 수련에 동참했다. 이런 수련을 왜 하는지는 모르지만, 불평불만은 없다.
삿!
누군가가 소리를 냈다. 순간!
타 타 탁! 쒜에에엑! 타 타 타 탁!
한순간, 동굴에서 콩 볶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가 곧 잠잠해졌다. 쥐 죽은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