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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16화 (116/600)

#116화. 第二十四章 명부판관(冥府判官) (1)

몽설은 서열이나 나이순으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오직 성격만 보고 일을 맡겼다.

월영, 소호, 청란, 규화는 맡은 일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다.

책임감이 무척 강하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끝까지 청부를 완수한다.

화요는 세심하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성격이라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면 전광석화처럼 움직인다.

육곡, 청부를 맡는 일에 적합하다.

적화는 셈이 밝다. 취화원에 있을 때도 화원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곤 했다.

소명과 사사는 살수라기보다는 여인에 가깝다.

지금이라도 검을 놓고 일반인으로 돌아가라면 망설이지 않고 돌아갈 것이다. 사실, 취화원이 해체되었을 때 홀가분하다는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팔곡과 구곡에 맞다.

그러면 몽설은 왜 자신에게 오곡을 맡겼을까? 오곡은 정보를 담당한다. 중원 전역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항상 지켜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야 한다.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나?

취운은 오곡으로 들어섰다.

오곡은 염라전이 있는 육곡 옆에 있다. 천천히 걸어도 반 시진밖에 걸리지 않는다.

스으읏!

취운은 나무 사이를 헤집고 오곡 깊숙이 파고들었다.

사람이 느껴진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데, 상당히 거친 숨소리가 감지된다.

눈에 띄지 않게 숨은 것은 고절한 수법이다. 하지만 거친 숨소리는 하수다. 하수가 고절한 수법을 사용했다. 도구나 지형을 이용했다는 말이다.

매복자, 땅에 굴을 파고 들어가서 감시하고 있다.

스으읏!

취운은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숨소리가 들리는 곳까지 다가갔다. 그러자 수림 사이로 살짝 두더지 구멍이 보인다.

‘이런 식이면 뚫리게 되어 있어.’

사아아앗!

취운은 구멍을 피해서 은밀히 움직였다.

취운은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굴을 파고 숨어있는 오곡 문도들이 형편없다고만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매복에도 쩔쩔맸을 것이다.

지금은 매우 빠르게 신형을 쏘아낸다. 형편없는 매복을 피하는 데 힘을 쓸 이유가 없다.

취운은 그만큼 강해졌다.

덜컹! 턱! 턱!

취운이 문을 여는 것과 안에 있던 사람이 병기를 움켜쥐는 행동이 동시에 일어났다.

저벅! 차앙!

취운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내 두 명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상당한 고수다.

발걸음 소리를 죽이면서 다가왔는데, 기척을 알아챘다.

취운은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이런 자는 굴복하지 않아!’

쉬이이잇!

판단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신형을 쏘아냈다. 이야기는 나눠볼 필요도 없다는 듯 가차 없이 검을 쳐냈다.

“어떤!”

쉐에엑!

얼굴에 검상 있는 자가 맹렬하게 야태도(野太刀 : 묘도)를 휘둘러왔다.

야태도법은 쌍수도(雙手刀)다. 얇고 날카로운 칼에서 바람 소리가 세차게 울린다. 왼 칼, 오른 칼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떨어진다. 왼 칼 먼저 받고, 오른 칼을 받으라고 한다.

‘흥! 사기!’

본능적으로 일어난 생각이다.

사생락의 요점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수비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고 무학이다.

취화원은 사생락을 공격에 사용했으나, 실은 방어 초식이다.

하지만 사생락은 자연스럽게 공격으로 전환된다. 병기가 몸에 닿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의 무공을 오래 지켜볼 수 있다는 뜻이다.

급히 피하는 게 아니라 끈기 있게 지켜보면서 기다린다.

당연히 반격 초식도 단박에 생각난다. 공격하면서 드러낸 허점이 파악된다.

눈에 보이는 허점을 공격하면 백중백 성공한다.

수비 후에 공격한다.

지금은 취운이 선제공격까지 감행했다. 먼저 검을 썼기 때문에 상대방을 급히 막아왔다. 취운을 공격하는 칼이 아니라 검을 막는 칼이다.

왼 칼을 먼저 받으라고? 왼 칼을 검을 살짝만 건드린다. 달려드는 속도만 억제한다. 그런 후에 오른손에 든 칼로 검이 없는 곳을 후려친다.

취운에게는 이런 수법이 단박에 보였다.

예전 같으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생락을 수련한 후부터 다른 사람이 매우 느리게 보인다.

취화원 살수들과 비무할 때는 느리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녀들은 전력을 다해야만 간신히 검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고 강했다.

그런 검을 보다가 귀문 무인들을 보니 매우 느려서 굼벵이를 보는 것 같다.

사생락 덕분이다.

취화원 살수들은 사생락을 수련하면서 무척 빨라졌다.

쒜에엑!

검이 왼 칼을 쳤다. 대신 살짝 튕기려는 힘을 밀어내고 더 깊이 밀어 넣었다.

퍽!

검이 살을 찢었다.

왼 칼을 밀고 들어간 검이 상대방의 머리를 찍었다. 오른손에 든 칼이 텅 빈 허공을 찌른다. 목표가 없어진 공간을 허수아비 허우적거리듯 휘젓는다.

쿵!

야태도를 든 자가 쓰러졌다.

스읏!

취운은 즉시 염소수염을 한 자에게 돌아섰다.

그런데…… 그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 명을 죽이면서 취운의 등이 비었었는데, 검초를 쓰지 않았다.

오곡주가 작은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말했다.

“염라전에서 왔지?”

“……?”

“어쩐지. 염라전이 수상쩍더라니. 분위기가 싸했어. 예전 분위기가 아니었거든.”

오곡주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먼저 온 호신육위라는 놈도 너무 강했고. 날 치러 온 걸 보니 다른 쪽도 엉망이겠는데. 동시에 친 거야, 아니면 여기 치고 다른 데도 가봐야 해?”

“너만 치면 돼.”

“날 친다? 그런 명령을 도대체 어떤 돌머리가 내린 거야? 여긴 다른 곳과 달라서 마구잡이로 때려죽이면 안 될 텐데? 여기 정보들, 필요 없어?”

오곡주가 유들유들 웃으면서 말했다.

“응. 필요 없어. 다 죽이고 새로 시작하려고. 너희도 처음부터 정보를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잖아? 장소만 뺏으면 돼. 정보 같은 건 다 가지고 가.”

“킥킥! 헛소리는.”

오곡주는 취운을 경계하지 않았다. 그는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취운을 쳐다봤다.

“서로 긴말은 필요 없을 테고, 간단히 하지. 조건은 하나. 진짜 귀문 문주 마구영께서 이곳 정보를 원하실 때, 정보를 내준다. 서로 같이 먹고살자는 거지. 내 조건은 이거 하나야. 어때?”

“싫다면?”

“건방 떨지 마. 마구영이 누군지 알고 있잖아.”

순간, 오곡주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취운을 탐색한다.

무공은 이미 파악했다. 어떤 무공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곡주를 일 검에 죽일 정도로 강자라는 사실은 알았다. 승산을 점칠 수 없다. 그래서 검을 거두고 말을 한다.

그는 취운이 귀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취운의 눈에는 오곡주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는지 환히 보였다.

‘이래서 날 여기로 보낸 거네.’

취운은 몽설이 왜 자신에게 오곡을 맡겼는지 이제야 알았다.

사람을 읽을 줄 아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다. 오곡주를 맡기에 최적이다.

오곡주가 말한 귀문 문주가 누구인지 안다.

마구영은 허구의 인물이고, 실제로는 서리형개다.

서리형개가 귀문을 만들었나? 그것은 아니다. 서리형개가 문주인 것은 맞지만, 그가 직접 귀문을 만든 것은 아니다.

서리형개는 정동이란 곳에 사병을 숨겨 놓았다.

사병? 비밀 무인 집단이라고 해야 하나? 세상이 모르는 존재들이 정동에 숨겨져 있다.

그들이 귀문을 만들었다.

귀문을 만든 목적은 당연히 청부 살인이다. 청부를 받고 살인을 해주는 동안 많은 사람을 알게 된다. 그들의 약점을 잡게 된다. 언젠가는 이용할 수 있는.

살수 문파의 목적은 은자를 벌어들이는 것인데, 귀문은 수입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귀문은 정동의 하부 조직이다.

취화원을 몰살시킨 자들이 정동에서 왔다. 그러니 엄연히 말하면 귀문도 원수다.

아걸이 이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직도 누가 어떤 이유로 취화원 식솔을 죽였는지 몰랐을 것이다.

오곡주는 취운이 제안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거절은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넌 정보가 필요해!

오곡주의 눈이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안심하고 무엇을 더 알고 있는지 찔러보는 것이다.

취운이 검을 내리며 말했다.

“그 말을 들어주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지. 달라는 정보가 있으면 즉각 내주겠다는 거지.”

“난 내가 직접 오곡을 운영하고 싶은데?”

“하고 싶으면 해. 마침 부곡주도 죽었으니 내가 부곡주가 되지 뭐. 자, 그럼 합의가 된 건가?”

“너무 쉬워.”

“쉬우면 좋지 뭘. 이것도 최대한 협조하라는 지시가 있어서 순순히 응해주는 거야. 네가 잘나서 이런 제안을 하는 것 같아? 아! 무공 하나는 좋군. 인정해. 묘도탈명(苗刀奪命)은 무림에서도 꽤 알아주는 놈인데 한 방에 갔네.”

염소수염이 죽은 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자가 묘도탈명?’

취운도 죽은 자를 쳐다봤다.

묘도탈명이라는 무명을 한두 번쯤 들어본 것 같다. 칼이 무척 빠른 살인귀라고 들었다.

묘도탈명이 귀문에서 부곡주로 있었구나.

스읏!

취운은 사생락을 펼쳤다.

그녀의 신형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는 희끗희끗한 잔영만 남았다.

“웃!”

오곡주가 위험을 감지하고 즉각 일어섰다. 하지만 그는 앉아있었다.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고 해도, 검 든 사람을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았다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슷! 푸욱!

검이 오곡주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갔다.

“큭! 왜……?”

오곡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목적은 독식이야.”

오곡주의 신형이 팽그르르 무너졌다.

그는 이미 절명했다. 정확하게 심장을 관통당했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취운이 오곡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적은 정동이야. 그런데 정동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휴우!”

취운은 마지막에 한숨을 토해냈다.

몽설에게 미안하다.

오곡주를 설득했어야 했는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정동에 대한 복수심이 검을 쓰게 만들었다. 정동과 계속 소통하겠다는 말에 분기가 치솟았다.

일이 이렇게 된 것, 아무래도 오곡을 싹 쓸어버려야 할 것 같다.

곡주와 부곡주를 죽였으니 남은 자들이 협조할 리 없다. 설혹 협조한다고 해도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 아니, 이쪽에서 먼저 싹 쓸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곡 무인 중 정동과 연관된 자가 누군지 모른다.

사곡 곡주만 정동 무공을 사용하는지 알았는데, 오곡주도 정동을 알고 있었다.

이럴 바에는 귀문, 아예 없는 게 낫다.

취운은 판단은 이런데, 몽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앗차!”

취운은 불현듯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서! 정보!

오곡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문서를 소장해 놓은 문서각이다.

그곳에 있는 자들이 변괴를 눈치챘다면 당장 문서부터 불살라버릴 것이다.

사람은 죽여도 문서는 남겨야 한다.

쉬이이익!

취운은 즉시 신형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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