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第二十四章 명부판관(冥府判官) (4)
“저 사람?”
“응.”
아걸이 몽설을 쳐다봤다.
아걸 눈길에는 정말 저 사람이 맞냐는 뜻이 담겼다.
몽설은 작은 배에 앉아서 한가롭게 낚시를 하는 중년인을 죽이란다.
중년인에게는 무인의 기도가 읽히지 않는다.
병기도 지니고 있지 않다. 낚싯대를 병기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부류도 아니다.
“정말이야?”
“빨리 끝내. 병기는 이거로.”
몽설이 월도(月刀)를 내줬다.
몽설은 구절곡에 있을 때부터 아걸이 중원 무림에 나가면 사용할 병기를 미리 정해 놨다.
월도는 손잡이가 매우 길다. 두 손으로 잡고 휘둘러야 한다. 도신(刀身)과 손잡이의 길이가 비슷하다.
반철도처럼 숨겨 놓고 다닐 수가 없는 병기다.
검은 허리에 차고 있어도 여간한 보검이 아닌 한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검을 찼구나 하는 정도만 인식된다. 하지만 월도는 단박에 눈에 띈다.
아걸이 월도를 받아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몽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낚시하는 중년인이 여자만 골라서 살인하고 땅에 묻어버린 희대의 살인마라는 사실은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 * *
쉿! 쉿! 퍼억!
“크으윽!”
중년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몽설은 죽이는 방법까지 지시했다.
첫째, 양쪽 어깨의 근맥을 끊는다. 둘째, 두 다리의 근맥을 끊는다. 사지를 못 쓰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월도를 심장에 꽂는다. 일도에 심장을 터트린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나 하수는 심장 부위에 생긴 칼자국만 보게 된다.
고수는 다른 점을 보게 된다.
월도는 세심한 병기가 아니다. 파괴력을 위주로 하는 병기다.
가슴을 뚫고 들어간 칼자국은 분명히 월도 흔적이다. 하지만 심장 안에서 월도는 세검(細劍)으로 변한다. 아주 얇고 가늘어진다. 그래야 심장을 십여 조각으로 갈라낼 수 있다.
가슴을 파헤쳐보면 심장이 조각조각 갈라져 있을 것이다.
몽설은 이런 죽음을 주문했다.
단순히 월도로 죽이는 것이 아니다. 월도에 주입된 진기를 퉁겨내서 심장을 사과 쪼개듯이 쪼개 달라고 한다.
사도진파(死刀震破)!
십팔대 문주의 일홀도다.
피부는 손상시키지 않고 내장만 으스러트리는 격산타우(隔山打牛)와 흡사한 수법이지만, 사도진파가 훨씬 정교하다. 강하게 으스러트리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가닥가닥 잘라낸다.
지난 겨울 동안 수련을 하면서 사도진파를 몇 번 사용했는데, 그때 눈여겨봤던 모양이다.
쿵!
낚시질하던 중년인이 풀썩 쓰러졌다.
그는 자신이 왜 죽는지 이유도 모르고 죽었다. 누구에게 죽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를 죽이는 순간, 아걸은 ‘이놈! 정말 나쁜 놈이구나!’ 하는 점을 와락 깨달았다.
죽는 자가 웃는다. 입술을 비틀면서 조롱한다.
뼛속까지 각인된 악마적인 흉성이 죽는 순간에 부지불식간 튀어나왔다.
악인은 악인을 알아본다.
아걸은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칼로 사람을 베는 사람이 선할 수 없다.
자신의 눈으로 봤을 때, 중년인은 살인마다.
휘릭!
월도에 묻은 피를 강에 뿌렸다.
한낱 낚시꾼을 죽이라고 해서 마음이 찜찜했는데, 중년인의 눈길을 본 순간 찝찝한 마음이 싹 사라졌다.
“집 근처에서 여자 시신이 열아홉 구나 나왔대.”
“사람 착하게 봤는데. 확실히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몰라. 아, 그놈이 그런 짓을 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사람들이 쑥덕거렸다.
관아에서 관군이 나와 시신들을 수습하는 중이다.
낚시꾼이 살던 집은 암매장지다. 땅만 파면 시신이 나온다. 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신도 나왔다.
사인은 교살(絞殺)이다.
오래된 시신도 교살당한 흔적이 뚜렷하다. 얼마나 억세게 목을 졸랐으면, 목뼈가 부러졌다.
“누가 죽였을까? 관군이 슬쩍 말해줬는데, 무인 솜씨래.”
“저놈이 여자를 잘못 건드린 거지 뭐. 하필이면 잡아서 죽였는데 무인 여자였던 거지.”
“어쨌든 이렇게 죽이지 않았으면 아직도 몰랐을 거 아냐? 아! 제길! 어제 저놈이 준 생선 끓여 먹었는데.”
사람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취화원은 살인 청부를 받아들일 때, 명분을 제일 중요시했다.
죽여도 좋은 자인가?
이 물음에 조금이라도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즉시 청부를 되살펴 봤다.
누가 와서 항의해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은 자들의 부모, 형제, 친척들이 찾아와도 이래서 죽였다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치명적인 악행이 있는 자만 죽였다는 말이다.
취화원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그런 자들을 잘 골라낸다. 그런 자들만 골라내는 방법을 안다.
몽설은 구절곡을 떠나기 전에 죽여도 좋은 자들을 추려놓았다.
“시신은 어떻게 찾아낸 거야?”
“어멋! 관군을 무시하네? 관군 중에도 눈썰미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몰라?”
“팔 장로가 관군인가?”
“피이! 눈치챘으면서 왜 물어?”
“뭐라고 대답하나 보려고. 그런데 심장은 왜 조각내 놓으라고 한 거야?”
“그건 오빠의 상징이야.”
“상징?”
“누구나 사람을 죽일 때는 흔적을 남겨놓잖아? 내가 죽였다 하는. 그런 흔적, 상징이야.”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죽여야겠네?”
“아유! 똑똑해.”
몽설이 손을 들어서 아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황급히 도망갔다.
“하!”
아걸은 어처구니없어서 한숨만 토해냈다.
* * *
첫 살인 현장에서 겨우 십여 리를 걸어왔을 때, 몽설이 두 번째 목표를 정해 주었다.
“저 마을에 철필군자(鐵筆君子)라는 자가 살아. 저녁밥 지어놓을게 다녀와.”
“철필군자? 만자필법(卍字筆法)?”
“맞아. 그 철필군자.”
“음!”
아걸은 이번에도 침음했다.
철필군자는 명호에서 알 수 있듯이 정인군자로 유명하다. 그가 창시한 만자필법은 필공(筆功)도 상승 무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무엇보다도 철필군자는 지역 패자(霸者)다.
지금은 은거해서 낙향했지만, 활동 영역은 산동성(山東省)이었고, 산동십강(山東十强)을 거론할 때는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강자 중 강자다.
그런 자가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다?
‘어떤 짓을 저지른 거냐?’
아걸은 몽설을 믿는다. 그래서 철필군자가 어떤 짓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낙향한 철필군자는 소일거리로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무공은 가르치지 않았다.
만자필법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만, 은거한 사람이라며 모두 돌려보냈다.
실제로 그는 애병이었던 철필마저도 버렸다.
그는 철필에 비하면 종이처럼 가벼운 붓을 들고 글씨를 썼다. 석양 노을을 받으면서 힘차게 붓을 놀렸다. 용사비등(龍蛇飛騰)한 글씨가 세상에 태어났다.
“흠!”
철필군자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삐걱!
문이 열렸다. 월도를 든 무인이 들어섰다.
“누군가?”
철필군자는 들어선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여전히 글씨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당신을 죽이러 온 사람.”
“허허! 잘못 왔네. 난 이미 무림에서 은거했네. 모든 은원을 툭툭 털어버렸지. 자네도 무인이니 은분세수(銀盆洗手)가 뭔지 알지 않은가. 돌아가시게.”
철필군자가 차분하게 붓을 내려놓았다.
은거할 때, 무림 동도를 모아놓고 잔치를 벌인다. 은으로 만든 대야에 물을 떠 놓고 손을 씻는다.
무림에서 맺은 은혜를 모두 잊는다. 은혜를 베푼 분들, 감사하다.
원수도 잊는다. 부모를 죽인 철천지원수였다고 해도 잊는다. 나를 원수로 여기는 사람들도 잊어다오. 앞으로는 어디서 보든 간에 서로 모른 척하자.
나는 잊었으니 너도 잊어라.
은분세수는 강호의 은원을 끊어내는 의식이다.
무림은 은분세수를 인정한다. 깔끔하게 손을 털고 나간 사람을 축복해준다.
그러니 어떤 이유가 있던 철필군자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은 강호 예의가 아니다.
저벅! 저벅!
아걸은 묵직하게 걸음을 떼었다. 철필군자를 향해 곧장 걸어가며 말했다.
“난 널 죽인다. 방어하지 않으면 개죽음당한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죽이기만 하면 되니까. 기왕이면 지금, 이 상태로 칼을 맞아주면 깨끗하고 좋지.”
저벅! 저벅!
아걸은 거침없이 걸었다.
철필군자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아걸을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은거했다고는 하지만 그도 고수다. 아걸을 보고 단박에 고수 냄새를 맡았다.
“날 죽이려는 이유는 말해줘야 할 것 아닌가? 어떤 원한이 있어서 이러는지 짐작이 안 되는데.”
“사실은 나도 이유를 몰라.”
“모른다?”
“당신을 죽여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당신이 죽은 다음에 알려질 거야. 내 생각에는 철필군자라는 이름이 땅에 떨어질 것 같은데……. 당신,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야?”
파앗!
철필군자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살수냐?”
“살수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아직도 싸울 생각은 없지?”
스읏!
아걸이 월도를 들어 올렸다.
순간, 철필군자가 훌쩍 뛰어올라 탁자를 밟았다. 방금 그가 쓴 글씨가 발길에 밟혔다. 그리고 재차 도약하여 아걸을 향해 독수리처럼 달려들었다.
쫘아아아악!
두 손에서 검은 철필이 뿜어졌다.
왼손은 좌에서 우로 그어진다. 오른손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두 손이 합쳐져서 만(卍) 자를 그려낸다.
‘속임수.’
아걸은 피식 쓴웃음을 흘렸다.
만자필법이라고 하기에 기대가 컸는데, 겨우 속임수였나?
철필은 매우 짧은 단병이다. 육박전(肉薄戰)에 유용한 병기다. 살상 거리가 검보다 짧다. 당연히 바싹 다가와야 한다. 철필군자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다가서는 것이다.
한데, 이 다가서는 움직임 속에 속임수가 스며 있다.
아걸과 철필군자의 신형이 권각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이 붙었을 때, 만자필법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파파파파팟! 파파파팟!
철필 두 자루에서 비침이 쏟아져 나왔다. 붓통에 달린 세모(細毛)가 철침이 되어서 쏟아져 나왔다.
철필로 만 자를 그려낸 것은 눈속임이다. 모두 만 자를 보게 만든다. 저런 움직임이 어떤 식으로 목숨을 위협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본다.
정작 공격 무기는 초식이 아니라 암기다.
이건 사기다. 무림에서 한평생을 살아왔다는 사람이 사기로 적을 죽여 왔다.
이런 사기술은 반드시 사람을 죽여야 한다. 생존자를 남겨두면 사기가 발각된다. 그러니 상처 입고 나가떨어진 자도 쫓아가서 죽였을 것이다.
촤라라락!
월도가 팽이처럼 팽그르르 돌았다.
삼십오대 문주의 회륜도다. 거세게 휘도는 칼날이 철침들을 떨궈낸다. 사방으로 흩뿌린다. 이어서 십육대 문주의 점촌일도가 툭 터져 나왔다.
퍽! 퍽! 퍽퍽!
어깨 근맥을 잘라내고, 다리 근맥도 절단한다. 월도가 위에서 아래로 순식간에 훑어내린다.
“크아아악!”
철필군자가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푹!
월도가 사정없이 심장을 쑤셨다.
퍼억! 퍽! 퍼퍽!
소리 없는 격타음이 심장에서 터졌다. 월도에 깃든 진기가 칼날로 변해서 심장을 쪼갠다.
쿵!
철필군자가 거칠게 쓰러졌다.
철필군자는 운이 매우 나빴다.
시중들던 하인도, 하녀도 대청 바닥에 지하 밀실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가 죽고…… 대청을 청소하던 하녀가 바닥에서 아주 조그마한 틈새를 찾아냈다.
지하 밀실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다.
하녀는 호기심에 뚜껑을 열었다.
지하 밀실에서 동녀(童女)들의 시신 십여 구가 나왔다. 더욱 끔찍한 일은 살아있는 아이 두 명이 시신 틈에 섞여서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살려…… 주세요.”
하녀를 본 여자아이가 한 첫 마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