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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20화 (120/600)

#120화. 第二十四章 명부판관(冥府判官) (5)

명부판관(冥府判官)이 사람을 데려간다.

하루에 한 명, 혹은 두 명씩 어김없이 낚아챈다.

평범했던 일반인에서부터 무인, 상인, 천석지기 지주까지 가리지 않고 죽인다.

죽이는 방법은 모두 똑같다.

일단 사지를 무력화시킨다.

죽이지 않아도 움직일 수 없는 처지를 만든다. 팔도 쓸 수 없고, 다리도 움직이지 못한다. 근맥을 완전히 잘라버려서 천하제일 의원이라도 이을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 심장에 마지막 일격을 꽂는다.

병기는 월도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어떤 병기일까 궁금했는데, 시신을 본 무인들이 한결같이 칼이라고 말했다. 끝은 뾰족하고, 날이 부드럽게 휘어졌으며, 폭이 넓다.

죽인 자가 한 명뿐이라면 병기를 추정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여러 명이 죽었다. 같은 병기, 같은 수법에 죽었다.

살인 병기는 월도다.

명부판관은 대단한 고수다. 끔찍할 정도로 강하다.

월도로 단순히 심장을 갈라낸 것이 아니다. 심장을 십여 조각으로 쪼개 놨다.

이런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려졌다.

명부판관의 살해 수법은 일부 무인들에게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어깨에서부터 다리까지, 좌우 양쪽을 일시에 들이치는 도법!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칠 정도로 빠르다. 상처를 하나씩 만든 것이 아니다. 상처를 보면 도법의 흐름이 보인다. 일 초에 네 군데를 연이어 베었다.

어떤 도법이 이렇게 빠를까?

도법에 흥미를 느낀 무인들이 상처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러다가 심장이 쪼개진 것도 찾아냈다.

월도로 심장을 찌른 다음, 진동을 일으켰다.

방출된 진기가 일시에 심장을 터트렸다. 면도로 쪼개듯이 일시에 갈라 쳤다.

굉장한 칼이다.

웬만큼 강한 칼을 보면 호승심이 일어나는데, 이 칼은 호승심마저도 잘라버린다.

흉수를 알아내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달려들었던 무인들이 심장 쪼개진 것을 보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그리고 이 죽음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했다.

무림에 명부판관이라는 무인이 탄생했다.

월도를 사용하며, 악인을 징벌한다. 숨어서 악행을 저질렀던 자들만 골라서 징계한다.

명부판관은 저들의 악행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쨌든 그가 죽인 자들은 하나같이 흉악하다.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잔악하다.

* * *

“이거 영 불편한데.”

아걸이 투덜거렸다.

“불편해?”

“불편하지. 이거 버리면 안 되나?”

아걸이 월도를 만지작거리며 연신 투덜댔다.

명부판관이 등장한 이후, 월도를 사용하는 모든 무인이 주목 대상이 되었다.

당신이 명부판관?

월도 든 무인을 쳐다보는 눈길에 그런 물음이 담겨 있다.

명부판관은 정의를 결행하고 있다. 그러니 나쁜 사람은 아니다. 정의로운 사람이다.

그렇다고 친근한 무인은 아니다.

수법이 너무 무섭다. 옆에 있어도 말을 걸지 못하겠다. 궁금한 점이 많은데, 어떤 것도 묻지 못하겠다. 무엇보다도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신비로운 사람은 무섭다.

월도를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본다.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늘 따가운 시선이 따라붙는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명부판관인가?”

“글쎄. 너무 젊지 않아? 명부판관은 굉장한 고수라던데, 저놈들 괜히 시선 받고 싶어서 월도 들고 다니는 거 아냐? 밥이라도 공짜로 얻어먹으려고.”

참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실제로 월도를 들고 다니면서 위세를 부리는 자들도 나타났다.

자신이 명부판관이라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는 용돈까지 챙기는 사기꾼들이 횡행한다.

아걸도 사기꾼으로 오인하기 딱 좋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도, 숙소를 잡을 때도 늘 돈부터 먼저 셈한다.

월도는 매우 불편하다.

사실, 아걸은 굳이 월도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는 반철도가 더 편하다. 몽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데, 이제 목적을 달성했으니 월도를 버려도 좋지 않을까?

“밥 먹고, 요 앞에 개울에서 쉬고 있을게.”

아걸에게 어디를 다녀오라는 소리다.

아걸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몽설이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팽가(彭家) 가주(家主) 팽북로(彭北爐).

지금까지 아걸이 죽였던 사람들처럼 팽북로 역시 인망 좋기로 널리 알려졌다.

인근 사람치고 팽북로를 욕하는 사람이 없다.

가뭄이 들면 곡식을 내어주고, 홍수가 일어나면 하인들을 풀어서 수로를 정비한다.

몇 해 전에는 길에서 얼어 죽을 뻔한 거지를 집에 데리고 가서 손수 보살피기까지 했다. 목욕을 깨끗하게 씻기고, 죽을 쑤어 먹이고, 은자까지 얹어서 보냈다.

인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일화다.

‘이것 참…….’

아걸은 몽설에게서 살인 명부를 받을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몽설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명부를 받아들면 ‘정말?’이라는 의문이 생긴다.

‘……가만? 지금?’

아걸은 무심히 종이에 적힌 대로 걷다가 우뚝 멈춰 섰다.

다른 자들과 달리 팽가 가주 팽북로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산다. 항상 주변에 사람이 있다.

저녁에 암살하는 것은 문제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점심 무렵이지 않나.

팽북로는 항상 사람들과 어울려서 식사한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각에 가서 죽이려면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살수를 펼쳐야 한다.

“무슨 생각이야?”

아걸이 무심히 중얼거렸다.

기껏 공들여서 명부판관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놓고, 다시 혈도비자를 만들 셈인가?

“누구……?”

“비켜.”

문지기는 짧은 말에 얼어붙었다.

문지기는 엉겁결에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월도를 든 사내가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멀거니 지켜봤다.

“워, 월도!”

문지기의 입에서 뒤늦게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팽북로는 뜻밖에도 담담했다.

지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던 중이었는데, 아걸이 들어서자 수저를 놓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너 죽이려고 왔다.”

팽북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불청객이 오셔서.”

팽북로와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나서 총총히 사라졌다.

그들도 월도를 봤다.

월도는 절대 숨겨지지 않는다.

크기가 사람 키에 해당하기 때문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을 준다.

“누구 청부로 왔나?”

팽북로가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죽을 짓을 한 것은 알겠는데,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어. 무슨 짓을 했는데?”

“젊었을 때 실수한 게 있지. 그것 때문인 것 같은데…….”

아걸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 월도를 사용하면서 알게 된 건데, 이 칼에 죽은 놈들은 더 일찍 죽었어야 한다는 거야. 옛날에도 했고, 지금도 하는 중이고, 내일도 할 놈이거든. 그것만은 확실해.”

악행은 진행 중이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계속해서 사람이 죽는다.

몽설이 죽이라는 자들은 모두 그랬다. 빨리 죽이면 죽일수록 피해자가 줄어든다.

“얼마를 받고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청부금의 열 배를 주지. 그걸 받고 물러가든가, 아니면…….”

스읏!

팽북로가 품에서 소검을 꺼내 자신의 목에 겨눴다.

“명부판관은 사지 근맥을 자르고, 심장을 으깬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해. 목 그은 시신만 보게 될 거야. 네 이름에 흠집이 난다는 거지.”

“기껏 한다는 게 네 목숨으로 위협하는 거야? 널 죽이겠다는 사람 앞에서?”

“어차피 죽을 거면 네 뜻대로 죽어주지 않는다는 거지. 마지막 제안이다. 스무 배에 처녀 다섯 명. 너도 보면 눈이 회까닥 뒤집힐 정도로 미인들이지. 큿큿!”

몽설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아무리 대담한 자도 아걸 앞에서는 본색을 드러낸다. 아걸이 풍기는 살기는 진짜다. 죽음이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그러니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슷!

아걸이 월도를 들어 올렸다.

“네가 아무리 빨라도 내 손이 더 빨라. 그러니 흥정을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악!”

팽북로가 비명을 내질렀다.

칼 든 손이 밑으로 축 떨어졌다. 벌써 근맥이 잘려나갔다.

퍽! 퍽! 퍽!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으로 칼이 흐른다. 월도가 밑으로 뚝 떨어져 왼쪽 다리를 치고, 다시 오른쪽으로 건너간다. 다리 근맥을 확실하게 잘라낸다.

“끄아아아악!”

팽북로가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물러났던 지인들은 오도 가도 못한 채 서 있기만 했고, 가족들은 지인들에게 붙잡혀서 들어서지 못했다.

“사, 살려줘. 서른 배. 서른 배 줄게!”

푹!

월도가 심장에 박혔다.

팽북로의 눈이 매우 심하게 흔들렸다.

원망? 저주? 좌절? 온갖 감정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져서 튀어나왔다.

툭!

팽북로가 고개를 떨궜다.

* * *

아무도 아걸을 막지 않았다.

아걸이 흉포한 무인이라서 막지 못했나?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명부판관이 월도로 심판을 내렸기 때문에 막지 못했다.

명부판관이 월도를 사용했다. 처형했다.

팽북로가 왜 처형을 당했을까? 죄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 아니다. 명부판관이 월도를 휘두른 순간, 팽북로는 인면수심(人面獸心),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된다.

사람들은 팽북로를 쳐다보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무슨 짓을 한 거야? 틀림없이 하늘이 노할 못 된 짓일 거야. 그러니 명부판관이 찾아왔지.

명부판관이 월도를 드는 순간, 성인도 악인이 된다.

세상 사람들은 어느덧 명부판관의 월도를 하늘의 심판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뒤, 뒤져보시죠? 무엇인가 나올 겁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저놈이 살인자예요! 뭐 해! 살인자 잡아!”

“형수님! 잠깐, 잠깐만요. 지금 심판이…… 뭐 해! 빨리 집안을 뒤져봐! 구해야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잖아! 늦기 전에 찾아! 빨리빨리 움직여!”

팽북로의 부인이 아걸을 잡아달라고 말했다.

그 말은 무시당했다.

지인이 집안을 뒤져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변에 늘어서 있던 하인, 하녀들이 사방을 흩어졌다.

뒷산, 가산(家山)에서 밀실이 발견되었다.

그곳에는 인근 마을에서 실종되었던 처자 이십여 명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갇혀 있었다.

여자들 모두 몸에 멍 자국이 가득했다. 채찍으로 맞은 자국과 불로 지진 상처도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사람을 태우는 화로도 설치되어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방금 사람을 태웠는지 아직 수습하지 않은 유골이 남아 있었다는 거다.

“이러니 명부판관이 찾아오지…….”

사람들은 여인들을 구하면서 놀라지 않았다.

명부판관이 찾아왔다는 말은 이 정도의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었다는 말이 되니까.

* * *

“자.”

몽설이 큼지막한 방갓을 줬다.

“이거 쓰라고? 귀찮은데.”

“이제 얼굴을 가려야지. 지금까지는 보는 사람이 적었으니까 이런 걸 안 써도 괜찮았지만, 지금부터는 상당히 피곤할 거야. 그러니 얼굴을 가려.”

“내 얼굴을 가리고, 넌 안 가려도 되고?”

“이제 성검문으로 갈 거거든.”

“성검문?”

“명부판관으로 찾아가는 거야. 가서 정당하게 비무해. 성검문에서는 소축십검이 나올 텐데, 그 정도는 괜찮지?”

“명부판관이 성검문을 찾아간다. 이런 거 언제 다 생각한 거야? 아주 치밀해.”

“오빠 여자가 되기 전에 말했잖아. 준비 끝났다고. 무공은 많이 약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아. 차분히, 아래부터 무너트리는 거야. 그러면 성검문도 쓰러져. 문제는 풍도곡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무공이 준비 안 돼.”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마.”

“아는데…… 상황이 급해지니까 나도 모르게 서두르게 돼. 뭐, 내게는 오빠가 있으니까. 나 살려줄 거지?”

“하하!”

아걸은 크게 웃었다.

몽설이 예쁘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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