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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21화 (121/600)

#121화. 第二十五章 위적(圍敵) (1)

“봐 봐. 금강(錦江)에서 시작해서 선을 쭉 그어 봐. 성검문이지?”

“정말이네?”

“그렇다니까. 성검문으로 가고 있다니까.”

“명부판관이 성검문에? 성검문도 무슨 못된 짓을 했나? 아냐. 성검문이 그럴 리 없어. 단순한 비무 아냐?”

“명부판관이 누구와 싸운 적이 있어?”

“그건 그런데…….”

사람들은 둘만 모이면 명부판관 이야기를 했다.

명부판관의 행로가 심상치 않다.

누군가가 지난 두 달 사이에 벌어진 심판을 날짜별로 연결해 봤다. 그랬더니 그 끝에 성검문이 있다.

명부판관이 방향을 틀지 않고 계속 가면 성검문을 지나친다.

이것이 우연인가? 아니면 성검문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해서 가는 것인가?

명부판관이 성검문을 향해서 간다고 말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벌써 성검문에 악인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문주나 소축십검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비중 있는 인물이 못된 짓을 저지르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짐작은 곧 소문이 되어서 번져나갔다.

* * *

“일하고 먹을 거야, 먹고 할 거야?”

“먹고 하자.”

“오늘 점심은 제대로 된 것 좀 먹어야겠어. 저기 가서 사 먹어.”

몽설이 음식점을 가리켰다.

돼지 뼈로 국물을 내고, 잡부위를 고명으로 얹은 탕국이 매우 고소해 보인다.

아걸이 음식점으로 발길을 옮기며 말했다.

“저런 데서 밥이 들어가?”

“어때?”

“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어. 그냥 편하게 먹었으면 하는데…….”

“어차피 편하게 먹을 데는 없어. 이제부터는 쭉 이렇게 살아야 해.”

몽설이 웃었다.

아걸은 세상에 드러났다.

팽북로를 죽일 때부터 사람 눈길이 달라붙었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 계속 따라온다.

몽설이 방갓을 준 이유를 뒤늦게야 알았다.

아걸도 자신에게 이토록 많은 사람이 따라붙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거지들이 힐끔거리면서 따라온다. 개방(丐幫)이다.

낯선 장한들이 서로 인수인계를 하면서 따라붙는다. 하오문(下午門)이다.

까아아악!

까마귀가 날아간다. 전서용으로 까마귀를 쓰는 문파는 혼검문(琿劍門)이다. 혼검문은 성검문의 산하 문파나 다름없으니 성검문 밀각이 달라붙었다.

꾸우욱! 꾸욱!

전서구가 부지런히 오간다.

아걸 주변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많은 사람이 달라붙고, 소식을 주고받는다. 따라붙는 자들끼리 의견도 나눈다.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으면 저들도 일제히 들어선다. 같이 밥을 먹는다. 아걸과 몽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숨소리도 죽인다.

상황이 그런데 밥이 먹히나?

몽설은 무슨 생각인지 저들을 피하지 않는다.

이제 세상 사람은 명부판관이 누군지 안다. 키, 몸무게, 나이, 성격까지 모두 파악했다. 명부판관의 용모와 펼치는 무공과 과거 내력만 알지 못한다.

아걸 곁에 몽설이 있다는 것도 안다.

아걸과 몽설은 부부다. 항상 붙어 다닌다. 잠도 같이 자고, 밥도 같이 먹는다.

아걸이 심판하러 갈 때만 두 사람이 떨어진다.

현재, 이 정도도 모르는 문파는 없다. 쫓아다니는 눈이 몇 개인데 모르겠나.

“우리 저거 먹자. 저게 맛있겠다.”

몽설이 돼지고기 가지볶음을 가리켰다.

“저거하고 만두 하나, 소면 두 그릇.”

“네. 바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저 이거…….”

점원이 찌그러진 엽전 한 닢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어떤 분이 전해드리라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요?”

몽설이 모르겠다는 듯 엽전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하지만 관심 없다는 듯 바닥에 던져버렸다.

엽전은 엽전일 뿐이다.

일 문짜리 엽전인데,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아! 배고파. 오빠는 배 안 고파?”

몽설은 엽전 일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음식 이야기만 했다.

* * *

“길 가는 과객을 유인해서 죽이는 자가 있어. 거의 스무 명 정도 죽인 것 같아. 우리 조사로는.”

“그런데?”

“도망갔어.”

“아까 그 엽전이?”

“도망갔다는 소식이야.”

“일하고 점심 먹을 걸 그랬나?”

“아니. 아침에 도망간 것 같아. 이번에는 장로님께서 좀 늦게 파악했어.”

몽설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쉽게도 이 세상은 모두 같이 어울려 살 수가 없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은 사람도 있다.

취화원 살수로 있으면서 이런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취화원이 원래 인면수심인 자들을 처리하기는 했지만, 엄연히 청부에 의한 살인이었다.

살인자를 제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몽설은 이번 무림행에서 그동안 파악한 사람 중에서 정도가 무척 심한 자들만 추려냈다. 정말로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었으면 좋을 것 같은 자들이다.

그런데 한 명이 도주했다.

명부판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지레 겁을 먹은 것 같다.

명부판관이 꼭 자신을 노리고 오는 것은 아닐 텐데, 자신을 모르는 것이 더 당연한데, 그래도 겁을 먹었다.

“우리 행로가 정직한 이상, 앞으로 이런 자들은 더 많이 나올 거야. 참고해야지 뭐.”

몽설이 피식 웃었다.

“행로를 살짝 바꾸는 건 어때? 예측하지 못하게.”

“그럼 성검문에 대한 경고가 안 돼. 이런 자들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성검문은 뚜렷이 봐야지. 부지런히 가야겠다. 이십 리쯤 가면 또 한 명 있어.”

몽설은 지독한 살인자들을 머리에 꿰어 놓은 것 같다.

아걸이 심판을 내리기 위해 떠나갔다.

그때, 혼자 남은 그녀 앞에 장정 십여 명이 나타났다.

“뭐예요?”

“잠깐 우리와 같이 있어야겠다.”

사내가 위압적으로 말했다.

몽설은 사내들을 훑어봤다.

사내들은 각기 다른 병기를 지녔다. 입고 있는 무복도 각기 다르다. 검을 역수(逆手)로 잡은 자도 있다. 거친 자도 있고, 곱상하게 생긴 자도 있다.

동질의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왜 왔는지는 안다. 아걸을 잡기 위해서 온 자들이다.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지만 아걸을 잡는다는 목적이 같아서 뭉친 것이다.

몽설이 차분하게 말했다.

“명부판관에게 볼 일이 있으신가 봐요? 그럼 직접 추궁하시지.”

“일단 너부터 잡아놓고.”

“절 인질 삼으시게요? 치사하네요.”

“명부판관 계집이라서인지 겁이 없군.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죽이고 싶은데, 간신히 참고 있는 줄 알아!”

“병신들.”

“……!”

“명부판관에게 죽은 놈들이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그런 생각이니까 여기 와서 이러는 거지?”

“하……. 내가 뭐랬어. 그놈이 했던 것처럼 팔다리부터 잘라놓자고 했잖아. 이런 것들은 말이 안 통한다니까.”

스릉!

장정 중 한 명이 검을 뽑아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핫!”

몽설이 소리를 쩌렁 내질렀다.

순간, 그녀에게 다가오던 장정이 움찔거리면서 걸음을 멈췄다.

몽설의 일갈에는 진기가 섞여 있다. 사자후(獅子吼)다. 아주 강한 힘이 허공을 때렸고, 다가오던 사내는 일시 숨이 턱 막히는 충격을 받았다.

몽설이 말했다.

“살인자가 옆에 있는데도 알지 못했다면 스스로 두 눈을 파 버려야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복수를 하겠다고 나선 거야? 그래, 그 검 내가 받아줄게.”

스릉!

몽설이 검을 뽑았다.

장정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의명분이 이래서 중요하다. 취화원과 귀문이 이런 점에서 다르다.

“계집년이 주둥이만 살아서!”

쒜에에엑!

그녀를 향해 다가서던 사내가 쾌속하게 덮쳐왔다. 순간,

스릉!

몽설은 마치 검무를 추듯이 한 발을 들어 학처럼 구부렸다. 검든 손은 힘을 뺀 채 위로 쳐들렸고, 왼손은 얼굴 높이까지 들어 올려 입을 가렸다.

매우 부드럽고 우아한 동작이다.

사내는 매우 크고 힘차게 검을 뻗어냈다. 하지만 검을 쥔 손은 가볍다. 언제든 변초를 일으킬 수 있다. 발도 전진과 후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무당파(武當派) 태극검법(太極劍法)이다.

슈웃!

사내의 검이 밑으로 뚝 떨어지더니 가슴을 향해 맹렬하게 꽂혔다.

따앙! 사아앗!

몽설은 가볍게 검을 퉁겨 올렸다. 그리고 빙글 돌아서면서 하반신을 쓸어냈다.

당연히 사내는 뒤로 훌쩍 물러섰다. 한데,

“큭!”

뒤로 물러서던 사내가 느닷없이 목을 움켜잡더니 숨을 쉬지 못하고 컥컥거렸다.

주루루룩!

사내 목에서 핏물이 샘물처럼 솟구쳤다.

검이 목을 그었다.

몽설의 검은 어깨 위로 올라간 적이 없다. 가슴 부위에서 검을 퉁겨냈고, 이후에는 다리를 공격했다. 한데도 사내는 목이 아주 깊게 베였다.

스륵! 쿵!

사내가 쓰러졌다.

몽설이 피 묻은 검을 들고 그들에게 걸어갔다.

“아녀자 혼자 있다고 장정 십여 명이 우르르 몰려드는 못난 꼴이라니…….”

그녀가 장정들을 쳐다보며 비웃었다.

“태극검법을 이 정도로 쓰다니. 무당파 속가제자 중에서도 오(晤)자 항렬은 될 것 같은데, 젊은 걸 보니 오자 밑의 철(哲)자 항렬이겠네.”

“으음!”

“유엽검객(柳葉劍客) 맞지?”

“너…… 누구냐!”

장정들이 비로소 몽설을 새롭게 봤다.

그녀가 사용한 검초는 매우 비범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검을 썼는지도 보지 못했다.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대다.

몽설이 말했다.

“지금쯤 사람 잘못 건드렸구나 하고 후회가 치밀 텐데, 어쩌지? 검이란 원래 검집에서 나오면 쉽게 들어가지 않는 법이야. 그래서 신중하게 뽑아야 하지.”

스읏!

그녀가 검을 들어 올렸다.

장정들을 곱게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후후후! 어차피 목숨 내놓고 덤빈 것.”

“우선 계집부터 죽입시다. 그러면 놈도 눈이 뒤집히겠지.”

장정들이 일제히 합공 의사를 보였다.

주위에는 지켜보는 눈이 많다. 장정들은 그런 눈을 무시하고 여자를 납치하려고 했다. 인질로 명부판관을 협박할 생각이었다. 그런 일을 시작할 때, 이미 자신들의 명예는 버렸다.

그때다. 장정들의 등 뒤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방금 그 말들, 책임져. 도망가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그러니 만만한 여자와 싸워 봐.”

장정들이 화들짝 놀라서 뒤돌아봤다.

언제 누가 이토록 가까이 다가왔을까? 바로 등 뒤까지 다가왔는데도 전혀 몰랐다니!

그들이 돌아보자, 큰 방갓을 쓰고, 월도를 비켜 든 사내가 서 있었다.

명부판관, 그가 벌써 한 사람을 심판하고 왔다.

사람을 죽여서 독에 집어넣고 뚜껑을 밀봉해 버린 특이한 살인마를 척살하고 오는 길이다.

아걸은 싸움에 가세할 뜻이 없어 보였다.

월도를 땅에 쿡 찔러 넣고, 나무에 등을 기댄 채 구경만 했다.

“어서! 어서 싸워.”

아걸이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안 도와줄 거야?”

몽설이 짐짓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사람들, 네가 만만하다잖아. 어떻게 여자를 인질로 삼을 생각을 했지?”

아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으! 이이익!”

장정 중 한 명이 몽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걸이 나타난 이상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여자라도 베고 본다. 인질로 삼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고. 하지만,

써걱!

어느새 검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몽설의 검은 매우 특이하다. 느리고 부드럽다. 한데도 여지없이 살을 가른다.

“크윽!”

장정이 신음을 흘리면서 쓰러졌다.

* * *

장정들은 몽설에게 별호를 선물했다.

무림에 소문이 퍼졌다.

명부판관만 강자가 아니다. 같이 있는 여인, 다정나찰(多情羅刹)도 강자다.

그녀는 매우 부드럽다. 모든 사람에게 웃는 얼굴로 대한다. 하지만 검을 들면 나찰이 된다. 누가 되었든 용서하지 않는다. 생명을 끊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명부판관에 이어서 다정나찰까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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