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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23화 (123/600)

#123화. 第二十五章 위적(圍敵) (3)

“명부판관은?”

“원래 이런 자리 별로 안 좋아해요. 산책하러 나갔어요. 여기 사람들은 사는 게 넉넉해 보인다면서.”

“하하하! 성검문이 있는 곳 아닙니까. 넉넉할 수밖에요.”

벽력마권이 호탕하게 웃었다.

네 사람은 저녁 식사를 위해서 별실을 따로 예약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기름진 음식을 차려놓고, 술도 고급으로 준비했다.

한데 정작 주인공인 명부판관이 빠졌으니 다소 맥이 빠진다.

하지만 눈앞에 명부판관 못지않은 고수, 다정나찰이 있다.

다정나찰의 검법도 호기심 거리다. 부드러우면서 굉장히 빠르다. 버드나무가 낭창거리는 것처럼 부드럽다. 빠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검을 쓴 적이 없는데 죽는다.

“소저, 하나만 물어봅시다. 오다가 불청객을 만났다던데, 그때 사용한 검초가 뭡니까?”

네 사람은 진중하다. 절대 무인의 풍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술책이나 권모술수 같은 말과는 거리가 멀다. 평생 무공만 생각한 강골 무인이다.

“절 인질로 삼겠다고 나섰던 사람들 말이죠?”

“그자들을 모두 베었다던데, 검초가 매우 부드러워서 다들 놀랐다고 하더군요.”

쇄벽철장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때, 객잔 안으로 성검문 무인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섰다. 그는 네 사람을 보자 급히 다가왔다.

용풍추보가 밖으로 나가 그를 맞이했다.

무인이 용풍추보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용풍추보의 낯빛이 차게 굳어졌다.

용풍추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성검문 무인이 돌아갔다.

그가 와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명부판관이 그냥 산책하러 나간 게 아닌 것 같군요. 후후! 성검문에 홍첩을 전했다고요?”

“그래요? 전 몰랐어요.”

몽설이 정말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몰랐다. 그럴 수도 있나? 후후!”

용풍추보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몽설은 그런 표정조차도 모른 척했다. 알고 있어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뭐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친다면 할 말도 없지. 일어섭시다. 충고하는데, 명부판관은 혈무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거요. 성검문을 찌질한 놈들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뒤통수요? 누가 무슨 뒤통수를 쳤나요? 우린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것밖에 없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됐수다!”

용풍추보가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일어섰다.

몽설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이들에게 잘 보일 이유도 없다. 할 말도 없다. 이들이 다가온 덕분에 조용히 홍첩을 전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 * *

초도성에 소문이 금방 퍼졌다.

“들었어? 명부판관이 기어이 성검문에 홍첩을 줬대.”

“나도 방금 들었어. 이번 달 월직이 누구지?”

“독안혈검.”

“이구! 하필이면 독안혈검. 그럼 명부판관이 안 되지. 사실, 독안혈검이 많은 심판을 내리기는 했지만, 그중 고수는 없었잖아? 거의 무공을 모르는…….”

“몇 명 있기는 했지. 철필군자라거나.”

“철필군자 정도 되는 무인은 성검문에 쌔고 쌨어.”

“그렇긴 하지. 그런데 명부판관이 아무에게나 칼을 들이대지는 않잖아? 뭔가 있으니까 비무를 했겠지?”

“뭐가 있다면 그 사람을 쳐야지, 왜 비무를 해?”

“다짜고짜 성검문 사람을 죽여 봐. 성검문이 가만있겠나. 당장 복수한다고 할걸? 명부판관이 죽인 놈들을 봐봐. 하나같이 멀쩡했던 놈들이잖아.”

“하기는…….”

“비무는 구실이고 뭔가가 있어.”

“그래도 일단 비무를 신청한 이상 싸우긴 해야 할 텐데?”

“명부판관도 자신 있다는 거겠지. 설마 칼 쓰는 사람이 죽을 자리 골라서 가겠어?”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는 했지만, 말하는 내용은 거의 같았다.

‘이 정도면 됐나?’

팔 장로는 만족했다.

초도성에 소문이 쫙 퍼졌다. 이제는 성검문도 비무를 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성검문에 구린 놈이 있다는 말까지 퍼트렸으니까, 내 할 바는 다 했고…….’

이제는 아걸만 남았다.

다른 사람은 제 할 바를 다했다.

이번 일에 귀문, 취화원, 적랑대가 총동원되었고, 각각 맡은 임무를 완수했다.

살인자를 쉽게 찾아낸 것이 아니다. 살수 문파 세 곳에서 이 잡듯이 뒤진 결과 겨우 몇 명 찾아냈고, 그걸 아걸이 아무렇지도 않게 죽인 것이다.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명부판관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천 명 넘는 사람이 발 벗고 뛰었다.

다정나찰도 괜히 탄생한 것이 아니다.

저들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이 희대의 살인마였다는 데 좋을 리 있나. 그들을 위해서 복수를 해줄 미친놈이 어디 있나? 제정신이면 나서지 못한다.

그걸 부추겼다. 명부판관이 성검문을 목표로 한 것 같은데, 중간에서 차단하면 성검문이 좋아할 것이라고 꼬드겼다. 병기를 들고 나서게 했다.

다정나찰도 만든 것이다.

‘자리는 활짝 펴놨으니까 이제 마음 놓고 춤출 일만 남았나? 하하.’

팔 장로는 키득키득 웃으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초도성에 소문까지 쫙 퍼트렸으니 그녀가 할 일은 완벽하게 수행한 셈이다. 그런데,

‘웃!’

그녀는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 채소 파는 노파로 남았다.

후줄근한 옷을 입고, 길가에 대바구니를 펼치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두 눈은 사람을 보고 있지만, 전신 감각은 살기로 향한다.

누군가가 노리고 있다. 아주 진한 살기를 뿜어낸다. 단순한 원한 표출이 아니다. 진짜로 칼을 쓸 생각이다.

‘어떤 놈이지?’

팔 장로는 차분히 생각했다.

초도성에서 자신을 노릴 사람이 누구인가?

일단 사마외도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초도성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그들은 초도성에는 발길조차 들여놓지 못한다.

그러면 정도인 중에서 찾아야 한다.

아걸이 죽인 자들과 연관 있을까? 없다. 확실하다. 변수가 일어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어서 귀문, 적랑대 민간 간자들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

죽은 자들 주변은 아직 조용하다.

그렇다면 초도성이다.

중원 천하에서 팔 장로가 움직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손꼽는다. 그것도 이쪽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팔 장로가 무림에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그런데 누가 살심을 품나?

“에구구구! 허리야.”

팔 장로는 허리가 아픈 노파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일어섰다. 그리고 허리를 몇 번 툭툭 쳤다. 순간,

쉐에에엑!

느닷없이 살검이 날아들었다.

팔 장로는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자신을 의심하고 떠보는 공격이냐, 아니면 정말 죽이려고 작심하고 날린 검공이냐?

“에구구!”

팔 장로가 공격을 무시하고 대바구니에 담긴 채소를 만지작거렸다.

쒜에에엑!

검이 날아든다. 등을 찔러온다.

‘이것이!’

팔 장로는 검에 담긴 살기를 읽었다.

공격은 후자다. 팔 장로를 죽일 심산이다. 아예 손속에 사정을 담지 않았다.

퍼억!

검이 등을 찔렀다.

검이 등을 찌를 때까지 진기가 전혀 빠지지 않았다. 검에 깃든 살기가 티끌만큼도 가시지 않았다. 처음보다 더 맹렬한 기세로 등을 짓이긴다.

팟!

팔 장로의 신형이 연기처럼 꺼졌다.

“엇! 환술!”

공격한 자가 당황했다. 하지만 환술이 아니다. 환술처럼 보이는 것일 뿐, 팔 장로는 원래 서 있던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두 발을 급하게 비틀어서 빙글 돌아 공격자의 등 뒤에 섰다.

퍼억!

짧은 단도가 공격자의 옆구리를 쑤셨다.

“웬 놈이냐?”

“이익!”

공격자가 이를 바드득 갈면서 신형을 비틀려고 했다.

쭈와아악!

팔 장로의 손이 위로 쭉 쳐들렸다.

손에 든 단도가, 옆구리를 쑤신 칼이 갈비뼈를 자르면서 겨드랑이 밑까지 파고들었다.

“끄아아악!”

공격자가 처절한 비명을 쏟아내며 쓰러졌다.

순간, 팔 장로는 신법을 세 번이나 펼쳤다. 좌로, 우로, 다시 좌로……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쒜에엑! 쒜엑! 쒜에에에엑!

공격이 계속되었다. 지붕 위에서 뚝 떨어져 내린 자들이 다짜고짜 검을 휘둘러왔다.

‘성검문!’

공격자들이 펼친 검공은 조명천검이 아니다. 하지만 성검문 문도가 확실할 것이다. 초도성에서 마음 놓고 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성검문도밖에 없다.

‘상당한 무공!’

팔 장로의 눈빛에 기광이 번뜩였다.

공격자는 모두 세 명이다. 병기는 모두 검이다. 하지만 사용하는 무공은 각기 다르다.

검이 가슴 부위를 삼각 형태로 노린다.

일 초에 유부혈(兪府穴), 신봉혈(神封穴), 신장혈(神臧穴)을 삼각 형태로 찍는다.

봉황삼두(鳳凰三斗)!

봉황문의 검공 봉황검법이다.

다른 자의 검은 더 확실하다. 의심하기도 어렵다. 검이 금빛이다. 검초를 전개하자 금광(金光)이 번쩍거려서 눈이 부시다.

금검(金劍)은 금검문만 사용한다.

다른 자의 검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봉황문과 금검문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들이라면, 짐작 가는 곳이 있다. 성검문 빈객이다. 성검문의 또 다른 힘이다.

슈웃! 퍽!

금검이 어깨를 찍으려는 순간, 팔 장로의 신형이 연기처럼 꺼졌다.

팔 장로가 펼친 사생락은 전임 취화원주의 사생락보다 훨씬 뛰어나다. 이미 칠 성을 넘어서고 있다. 소축십검과도 검을 섞어볼 수 있는 지경이다.

“컥!”

금검을 든 자가 짧은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그는 목덜미에 일격을 당했다. 그가 어깨를 찔렀는데, 오히려 뒤에서 칼을 맞았다.

슈우우우웃!

팔 장로는 금검을 죽이자마자 지붕 위로 신형을 띄워 올렸다.

공격자들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한 명, 그리고 세 명, 금검을 죽이는 동안 두 명이 더 늘어났다. 그리고 공격자는 계속 모이는 중이다.

‘안 좋아!’

쒜에에에엑!

그녀는 전력을 다해서 치달렸다.

성검문 빈객이 왜 공격하는 것일까? 이유는 모르지만 계속 싸우면 좋지 않다는 사실만은 알겠다.

팟! 팟! 팟!

그녀는 계속 어둠 속으로만 달렸다. 사생락도 연속으로 펼쳤다. 사생락을 펼칠 때마다 진기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 * *

성검문에서 무인이 찾아왔다.

무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걸에게 청첩(靑帖)을 내밀었다.

홍첩에 대한 답신이다.

무인은 아걸이 청첩을 받자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고 즉시 뒤돌아섰다.

‘내일 정오.’

청첩에는 비무할 날짜와 시간이 기재되어 있었다.

명부판관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날짜 중에서 가장 이른 날짜가 선택되었다.

시간은 늘 정오였으니 관례대로 한 것 같다.

‘내일.’

아걸은 청첩을 앞에 놓고 묵상에 잠겼다.

그 시간, 몽설도 손님을 맞이했다.

“어떤 분이 이걸 전해 드리라고 해서요.”

낯선 아낙이 몽설에게 서신을 건넸다.

몽설은 서신을 누가 보냈는지 안다. 서신을 가져온 사람이 누구인지도 안다.

팔 장로가 귀문 민간 간자를 통해서 보내온 연락이다.

‘연락은 보내오면 안 되는데, 왜?’

몽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서신을 펼쳐봤다.

“……음!”

서신을 읽자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팔 장로가 기습을 당했다.

살겁 이유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고, 흉수는 성검문 빈객으로 추측.

무사히 피신해서 살겁은 피했다. 문제는 저들이 대낮에 초도성에서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는 거다. 어느 정도 위신 추락은 감수하겠다는 거다.

“성검문도 눈치가 꽤 빠르네.”

몽설이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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