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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24화 (124/600)

#124화. 第二十五章 위적(圍敵) (4)

짹! 째짹! 짹!

새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성검문에서 빌려준 별채는 나무가 많다. 숲처럼 우거져 있어서 새가 많이 깃든다.

아걸은 새소리에 눈을 떴다.

몽설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탁자에 앉아서 불도 켜지 않은 채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어?”

아걸이 몽설을 보며 말했다.

“일어났어? 나 때문에 깬 건 아니지?”

몽설이 의자에서 일어나 침상으로 걸어왔다.

침상으로 다가온 그녀는 살포시 이부자리를 걷고 몸을 눕혔다. 아걸 품에 꼭 안겼다.

“뭘 보고 있었어?”

“귀문 오곡에서 가져온 정보.”

“음, 그런 거 적당히 봐. 너무 머리 쓰면 흰머리 빨리 나.”

“피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정말이야. 사람 말을 왜 못 믿지? 머리는 적당히 써야지, 너무 과하게 쓰면 빨리 늙어. 난 내 색시가 나보다 더 빨리 늙는 거 원하지 않아.”

“빨리 늙으면 버릴 거야?”

“버려? 내가 버려질까 봐 전전긍긍인데, 감히 무슨 생각을 해. 우리 조금만 더 자자. 지금 딱 좋아.”

아걸이 몽설을 꼬옥 안았다.

아걸은 꼼짝도 하지 않고 몽설이 읽던 글을 읽었다.

종이 뭉치는 아주 오래전, 십육 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모아놓은 것이다.

성검문이 마인들에게 유린당한 사건!

아걸이 종이뭉치에서 눈을 뗐다.

새삼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중원 무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과거사다.

몽설이 왜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나?

늘 관심 있는 사건이지만, 비무를 치르는 날 아침에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아걸은 두 번이나 종이뭉치를 살펴봤지만 특이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난 원래 성검문에는 관심이 없었거든. 나와 전혀 상관없는 문파라서. 그런데 오빠에게 이야기를 듣고 관심 두기 시작했어. 성검문의 ‘성’ 자만 들어가도 챙겼는데, 꽤 많지?”

“구절곡에서부터 모은 거야?”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왜?”

“사실 이걸 보다가 명부판관을 생각해 낸 거야. 읽어봐도 모르겠지? 뭐가 이상한지?”

아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걸 읽어보면 그날 주인공은 마인이야. 마인이 급습해서 오빠 가족을 죽여. ……미안. 아픈 이야기 해서.”

“괜찮아. 계속 말해봐.”

아걸이 담담하게 말했다.

솔직히 부모와 형들이 참살당한 이야기지만, 아무런 감정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다. 담담하다. 피붙이가 죽었을 때의 절절함 같은 것은 없다.

“이날 벌어진 사건을 다 뒤져봤는데, 빠진 게 있어. 마인 침투 경로가 안 나와.”

“침투 경로?”

아걸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부분은 아걸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마인이 성검문주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은 허도기가 저질렀다. 그래서 굳이 마인의 움직임을 쫓을 필요가 없었다.

몽설이 말했다.

“마인들은 성검문을 거치지 않았어. 만약 거쳤다면 성검문 무인들이 죄다 바보인 거야. 마인들이 뚫고 들어가도 몰랐으니까, 이런 치욕도 없지.”

“음!”

“마인이 성검문을 거치지 않은 건 분명해. 이 사건이 끝난 후, 경계 실패에 대해서 책임진 사람이 없어. 자세한 내용도 없이 ‘어쩔 수 없이 뚫렸다.’ 정도로 끝나. 사건을 정리할 때 이동된 사람은 있지만 쫓겨나거나 투옥된 사람은 없어.”

몽설이 말을 하면서 종이 뭉치 중에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거 읽어봤지?”

몽설이 내민 종이는 당시 성검문에 침투했다가 공부 허도기에게 추살당한 마인 명단이다.

“다시 한번 봐.”

아걸은 명단을 쭉 훑어봤다.

명단에 있는 자들은 굳이 종이를 보지 않아도 안다. 이미 달달 외우고 있다. 명단이 비밀도 아니다. 사건 직후에 성검문이 만천하에 공개했다. 추살된 시신과 함께.

“이들이 과연 아버님을 벨 수 있겠어?”

‘아버님?’

아걸은 ‘아버님’이라는 말이 무척 생소했다.

몽설은 성검문주 이초결검 허도강을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아걸의 신분 내력을 알아버렸으니 당연한 호칭이다. 한데도 아걸에게는 매우 낯설게 들렸다.

마인들이 성검문주를 벨 수 있냐고?

벨 수 없다. 허도기는 마인들이 독을 썼다고 했는데, 어림도 없다.

할배는 성검문주의 무공이 사부와 비슷한 경지라고 했다. 그러면 천하독보(天下獨步)다.

어머니도 있고, 형들도 있었다.

조명천검을 넘어서 조명십해까지 이해한 귀재들이 아버지 곁에 있었다.

마인들은 절대로 그들을 죽일 수 없다.

할배와 몇 번이고 토론을 한 끝에 결론을 내린 건데, 몽설을 단박 그 점에 주목했나 보다.

몽설이 말했다.

“난 이제 막 혈검경 걸음마를 뗀 상태인데, 이 상태만으로도 마인 열 명은 상대할 수 있어. 어머님은 혈검경의 전인이야. 몇 명이나 상대하셨을까?”

“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네?”

“마인들이 성검문 중지에서 살수를 휘둘렀는데 침투 경로가 없어. 마인들이 강하다고 해도 아버님 무공을 이해하는 고수가 보면 어림없어. 독을 썼다면서도 어떤 독을 어떻게 썼는지 설명하지도 않았지. 한마디로 이 사건, 구린내가 많이 풍겨.”

구린내는 진작부터 풍겼다.

일홀문에서 벌어진 패륜 사건은 성검문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벌어졌다.

제자가 외인과 결탁해서 사부에게 삼인독을 썼다.

사부에게 검을 겨눴다. 외인인 허도기를 불러들였고, 결국 사부 몸에 검을 꽂았다.

몽설은 이 일에 대해서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 자신처럼 사부 죽음을 본 것도 아니고, 당시 사건을 아는 할배가 끌고 다니면서 알려준 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녀 방식으로 이 일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슬쩍 건드려봤어.”

“건드려? 뭘?”

“우리 어제 초도성에 오기 전에 한 사람 죽였잖아.”

“동현 마을 족장.”

“그래. 그 사람.”

“참! 그 사람은 뭘 잘못했지? 홍첩에 신경 쓰느라고 소문을 듣지 못했어.”

“형과 형수를 독살했어. 조카들은 칼로 찔러 죽였고. 그것뿐이면 괜찮은데, 형 일가족은 도둑이 죽였다고 소문낸 거야. 그럼 도둑은 어떻게 됐게?”

“족장이 죽였나?”

“맞아. 족장이 도둑을 죽였다면서 형편없이 짓이겨진 시신을 내놨어. 그리고는 족장 자리를 꿰찼지.”

‘성검문!’

아걸이 눈에 기광을 토해냈다.

“혹시나 해서 성검문을 살짝 찔러본 건데, 어제 장로님이 급습을 당했어.”

“어제? 장로님은 괜찮아?”

“괜찮아. 무사히 피신했어. 사생락이 있잖아.”

소문을 내는 것은 팔 장로가 맡았다.

어제, 팔 장로는 소문을 두 개 냈다.

하나는 동현 마을 족장에 대한 소문 및 증거다. 어떤 증거인지는 소문을 듣지 않아서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인정할 만한 증거인 것은 틀림없다.

또 하나는 명부판관이 성검문에 홍첩을 전한 사실이다.

동현 마을 족장 사건과 성검문 홍첩 사건이 연결된다. 모르는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일이겠지만, 아는 사람은 단단히 화가 났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명부판관이 내민 홍첩을 단순한 비무가 아닌 심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명부판관과 연관된 사람들은 모두 죽이려고 했다.

아걸과 몽설은 환히 드러난 곳에 있으니 직접 공격하지는 못하고, 팔 장로는 음지에 있으니 당장 습격했다. 잡아서 무엇을 물어볼 생각도 아니었다. 다짜고짜 죽이려고 했다.

성검문, 확실히 구린내가 풍긴다.

몽설이 말했다.

“성검문, 이때 사건을 빼면 세상에 거리낄 게 하나도 없어. 뒤를 캐 봤는데 정말 깨끗해. 이때 일만 깨끗하다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정의롭고 대의를 아는 문파야.”

아걸은 몽설이 무슨 말을 할지 짐작했다.

“아마 오늘 오빠도 무사하지 못할걸? 독안혈검, 필살검을 준비했을 거야.”

아걸은 몽설을 빤히 쳐다봤다.

성검문 사건을 모으다가 명부판관을 생각해냈다고 했나? 그럼 구절곡을 떠나기 전이다.

그때, 몽설은 이미 중간에 죽일 사람들을 모두 선별해 두었다.

어제 죽인 동현 마을 족장도 구절곡에 있을 때 이미 파악해 두었을 것이다.

치밀하다.

매우 광범위하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짜임새 있는 계획을 세웠다.

“만약, 성검문이 이 사건에서 깨끗하다면, 정말로 마인이 습격한 사건이었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성검문은 소 닭 쳐다보듯 데면데면 봤을 것 아냐.”

“사실대로 말해?”

“사실대로.”

“그러면 미안하지만…… 오빠에게 복수를 포기하라고 하려 했어.”

“뭐?”

“방금 말했잖아. 성검문, 이 사건만 빼면 정말 깨끗하다고. 그러면 복수는 허도기 한 명에게 국한해야 해. 성검문을 건드리면 안 돼.”

“그렇게 자신 있었던 거야? 동현 마을 족장을 죽이면 성검문이 반응할 거라고?”

“지금 성검문에는 공부 허도기가 없어.”

“…….”

“소축십검 중 제일 귀계에 밝은 사람이 독안혈검 전가성이야. 오죽하면 묘법제일이라고 불릴까. 그래서 전가성의 행적을 쭉 살펴봤는데, 싹을 자르는 데는 선수야. 불길하다 싶은 게 있으면 당장 싹수부터 잘라.”

몽설은 전가성이라는 사람을 분석했다.

일만 계획한 것이 아니다. 사람, 지형, 주변 환경 등등 모든 것을 고려했다.

아걸이 고개를 휘휘 내두르며 말했다.

“나 너 무서워지는데.”

“내가? 왜?”

“너무 똑똑해. 내가 바라던 여자가 아니야.”

“어떤 여자를 바랬는데?”

“딱히 생각한 건 없지만 그래도 좀 순종적이고, 다소곳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나네? 순종적이고, 다소곳하고.”

“……?”

“호호! 이봐요, 아저씨. 내가 충고 하나 할게.”

“아, 아저씨?”

“내가 그런 여자라고 생각하고 살아. 말 조금 들어주면 정말 순종적이다. 아침에 차를 가져다주면 이렇게 정숙한 여자는 또 없지. 이렇게 생각해.”

몽설이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 * *

면구는 팔 장로가 구하기로 했다. 한데 기습을 받아서 피신 중이라 만나지 못했다.

“어떻게 할까?”

아걸이 말했다.

전가성은 아걸을 알아본다. 잡아서 호송하라는 명령까지 있었으니 틀림없이 알아본다.

“복면을 쓰는 건 이상해. 면구를 구해야 했는데…….”

“후후! 그냥 이걸 쓰지. 검만 잘 피하면 얼굴 드러날 일은 없어.”

아걸이 큰 방갓을 집어 들었다.

“분장하자!”

“뭐? 분장? 하하! 관둬. 분장 같은 건 해본 적도 없고…….”

“귀신 분장.”

“……?”

“명부판관이잖아. 명부에서 온 판관 노릇을 해야지. 그럼 판관처럼 분장한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사납게 그리는 거야.”

“분장할 줄 알아?”

“해보지 뭐.”

몽설이 웃었다.

붉은 물감, 푸른 물감, 검은 물감!

온갖 물감이 얼굴에 발라졌다. 입 주변은 새빨간 색을 칠해서 보기만 해도 역겹다.

몽설은 멧돼지 어금니처럼 삐죽 튀어나온 이빨까지 그렸다.

눈은 쭉 찢어지고, 코는 푸른색에 노란 반점이 찍혔다. 목덜미는 흰색을 발랐다.

아걸은 영락없이 귀신 형상이다.

“됐어. 이 정도면 아무도 몰라봐.”

몽설이 자신 있게 말했다.

“넌 싸움 걱정은 안 돼? 상대가 독안혈검이야. 날 죽일 생각으로 살검을 쓸 거라며?”

“오빠는 일홀도잖아. 걱정 전혀 안 해. 하지만…… 다치지 마. 다치면 정말 화낼 거야. 상처 다 나을 때까지 내 눈물 보면서 살 줄 알아. 알지?”

몽설이 품에 안기더니 허리를 꽉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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