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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28화 (128/600)

#128화. 第二十六章 퇴로(退路) (3)

아걸이 비무대를 내려서자, 몽설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걸이 인파에 파묻히니 잘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도 까치발을 디딘 후에야 간신히 머리 끝자락 정도만 볼 수 있었다.

‘됐어. 됐어.’

몽설은 가슴을 크게 쓸어내렸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도와주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아걸에게 치료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초도성에서 치료하지 못하면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

세간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켜야 한다.

하루나 이틀, 길어 봤자 사나흘에 불과하겠지만 그만한 시간이라도 주어야 한다.

이 점은 아걸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틀림없이 반대할 것이다. 이러려고 따라왔냐고 화낼지도 모른다.

여자라고 무조건 보호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여자도 남자를 보호할 수 있다. 여자가 남자를 보호하겠다고 작심하면 웬만한 사내는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다.

‘잘 치료하고 있어.’

몽설은 비틀거리면서 걷고 있는 아걸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걸이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걸음을 멈췄다.

그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정말 말을 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내 말을 들었어!’

몽설은 환하게 웃었다.

아걸은 곧 골목길을 돌아서 사라졌다.

몽설은 아걸이 완전히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보다가 슬그머니 움직였다.

* * *

몽설의 계획이 틀어졌다.

‘팔 장로가…….’

팔 장로가 오지 않는다. 자신이 오기 전에 객잔에 당도해 있어야 하는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무심히 시간이 흘렀다.

팔 장로와 함께 성검문 이목을 끌어낼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어긋났다.

아니, 계획보다도 팔 장로가 걱정된다.

‘습격을 받았다더니…… 당한 건 아니겠지?’

죽지 않았다고 믿는다. 사생락이 칠성을 넘어섰으니 쉽게 당할 리 없다. 그렇다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상처를 입었을 것 같다.

누구를 보살펴야 하나? 누구에게 달려가야 하나? 아걸인가, 팔 장로인가.

아걸은 무사할 방법이 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곳에 있으면 습격을 당하지 않는다. 반면에 팔 장로는 시장 한복판에 있어도 습격당한다.

몽설은 생각을 굳혔다.

일단 팔 장로를 구한다!

몽설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지금은 그녀에게도 감시가 붙었다.

일군을 죽이기 전과 죽인 후는 완전히 다르다. 일군을 죽이기 전에는 설득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한 적이다. 더욱이 아걸이 성검문주와 무예를 겨루겠다며 공판으로 만천하에 공표했다.

이제 이 비무는 누구도 깰 수 없는, 한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치명적인 대결이 되어버렸다.

그녀를 감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몽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움직였다.

책을 읽었다. 가끔은 정원을 거닐며 풀을 만졌다. 연못에 있는 물고기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녀는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어둠이 짙게 깔렸다.

밤은 살수들의 세계다. 살수들처럼 밤을 잘 이용하는 사람도 없다.

스읏!

몽설은 지붕 위로 올라섰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지붕 위로 뛰어오른 게 아니다. 그랬다면 벌써 발각되었다. 방 안에서 대들보 위로 올라서고, 대들보를 밟고 서서 기와를 걷어냈다. 그리고 슬그머니 밖으로 몸을 빼냈다.

그녀를 본 사람은 없다.

그녀는 몸을 지붕에 찰싹 붙인 채, 주위를 살폈다.

오랜만에 살수행을 한다.

요즘은 밤이슬을 맞을 일이 없는데, 예상에 없던 밤이슬을 적시게 되었다.

스르르륵!

그녀는 영사신법을 펼쳐서 지붕 위를 미끄러지듯이 기어갔다.

드디어 지붕 끝자락에 도착해 잠시 주위를 살폈다.

지켜보는 눈들이 어디쯤 있는지 살피고, 건너편 지붕과의 거리도 계산하고, 도약 시점도 살폈다.

타앗!

그녀는 지붕을 박차고 반대편 지붕으로 날아가 박쥐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주위는 여전히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진기를 끌어올려서 주변을 살폈다.

사람이 움직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떤 움직임도 달라붙지 않았다.

‘그래도 신중히 처리해야겠지?’

몽설은 잠시 기다렸다.

* * *

“다정나찰은?”

“안에 있습니다.”

“안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네. 아직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명부판관이 다쳤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아? 다정나찰은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도 없나?”

“그런 것 같습니다. 누가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건 뭐야? 명부판관이 당연히 돌아오리라 생각하는 거야? 배짱 한번 두둑하군.”

“치고 들어갈까요?”

“아니, 기다려. 아직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어.”

“넷!”

“정신 차리고 지켜봐! 졸지 말고!”

“걱정하지 마십쇼!”

은밀한 소리가 들렸다.

‘됐어.’

몽설은 원하는 말을 들었다.

살수들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바깥 정황을 알지 못한다. 그럴 때는 한 자리에 눌어붙어서 묵묵히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감시자들 스스로 상황을 말해주기도 한다.

말 몇 마디면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감시자들이 아직도 객잔을 쳐다보고 있다. 자신이 빠져나온 것을 알지 못한다.

아걸은 의원을 찾아가서 치료받고 있다.

감시자들이 나누는 말 중에 그런 내용은 없었지만, 정황상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움직여도 무방하다.

몽설은 성벽을 타고 초도성을 빠져나왔다.

팔 장로는 성 밖에 있다.

안으로 파고들지 못할 상황이라면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들어설 필요가 없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성 밖에 약속 장소를 정해놓았다.

취화원 살수들은 넓은 들판을 좋아한다.

들판 한가운데 땅을 파고 들어가서 위장포를 덮어씌우면 감쪽같이 숨을 수 있다.

들판에서는 사방을 경계하기가 쉬울뿐더러 키 큰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어서 숨기도 쉽다.

위장포는 비바람을 막아준다. 뱀이나 쥐 같은 동물들의 습격도 물리쳐준다. 비상식량만 넉넉하다면 눈비 걱정 없이 몇 날 며칠이고 버틸 수 있다.

스으으으읏!

몽설은 들판으로 들어선 다음에도 영사신법을 전개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지만 그래도 지켜보는 자를 경계해야 한다. 초도성 부근에서는 어느 곳 하나 안전하지 않다. 최대한 엎드려서 들판 한가운데로 기어간다.

초도성 성 밖에 들판이 많다.

이럴 경우, 취화원 살수들은 미리 숨을 들판을 정해 놓는다.

만일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대피 장소 혹은 집합 장소로 이용하기 위해서다.

몽설과 팔장로도 들판을 정해 놨다.

초도성 동쪽 성문을 나서면 습지가 있다.

그곳은 비록 들판은 아니지만, 사방이 넓고 억센 풀이 많이 자라서 숨기가 적당하다.

몽설은 습지를 기어갔다.

젖은 진흙이 옷 사이로 스며들어서 엉망이다. 분명히 온몸이 흙투성이일 것이다.

몽설은 돌멩이 두 개를 들어서 마주쳐 소리를 냈다.

탁! 탁탁!

주위는 적막하다.

풀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몽설은 다시 십여 장을 기어갔다.

탁! 탁탁!

똑같은 소리를 냈다.

탁! 탁! 탁탁!

이번에는 응답 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 두 번에 한 번, 한 번, 두 번 소리가 났다.

맞다. 약속한 응답 소리다.

스으으읏!

몽설은 영사신법을 펼쳐서 소리가 울린 곳으로 갔다.

취화원 위장포는 매우 은밀하다. 하지만 취화원 살수라면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스륵!

몽설은 습지 깊은 곳에 펼쳐져 있는 위장포 속으로 빨려들 듯 스며들었다.

안에는 짐작대로 팔 장로가 숨어있었다.

“몸은 어때요? 다치지 않았어요?”

몽설은 제일 먼저 안부부터 물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비무는 어떻게 됐어요?”

“비무도 보지 못한 거예요? 그러면 대체 언제부터 여기 숨어있었던 거예요?”

“어제부터 있었죠. 성검문 빈객들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비무는 어떻게 됐어요?”

“일군 독안혈검 전가성이 나왔는데, 오빠가 이겼어요. 일군이 죽었어요.”

“아! 큭큭! 성검문, 이제 난리 났겠네.”

“난리 났죠. 더군다나 성검문주 허도기한테 홍첩까지 던졌으니 기가 막혔을 거예요.”

“그걸 못 보다니 참 애석합니다. 그런데 어디 다친 데는 없고요?”

“웬걸요. 다치지 않으면 오빠가 아니잖아요. 이번에도 아주 크게 뚫렸어요.”

“몸?”

“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비무에 관한 이야기는 간단히 끝났고, 어떻게 하면 성검문의 이목을 끌어낼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팔 장로가 무사하니 원래 계획을 진행할 생각이다. 그런데,

컹! 컹컹! 컹!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울렸다.

한두 마리가 짖는 게 아니다. 수십 마리가 일시에 짖어댄다. 그것도 맹견이 짖는다.

팔 장로가 몽설을 쳐다봤다.

몽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팔 장로가 오는 동안 꼬리 잡혔냐고 물었고, 몽설은 아니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동하면서 주위를 세심히 살폈다.

분명히 따라붙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왔지?

“뒤져!”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컹컹 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우리를 찾고 있는 것 맞죠?”

“네.”

“음……!”

몽설은 침음했다.

성검문 같은 큰 방파는 취화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놓고 있다. 취화원 살수들이 어떤 식으로 침입하고 빠져나가는지 낱낱이 알고 있다.

취화원 살수가 어딘가에 숨어있다면 지금처럼 개를 동원해서 들판을 뒤지는 것이 가장 수월하다.

“우리가 취화원 살수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몽설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개를 동원해서 들판이나 습지를 뒤지는 것은 숨은 사람이 취화원 살수라고 확신한다는 말이다. 다른 문파, 혹은 다른 살수들은 이런 식으로 숨지 않는다. 오직 취화원 살수만이 들판에 숨는다. 취화원만의 위장포 덕분이다.

“아!”

팔 장로가 경악성을 토해냈다.

그는 금검문도와의 싸움을 생각해냈다. 금전일광을 사생락으로 피하고 역공한 일을.

팔장로는 그때 일을 급히 말했다.

“그러면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가야겠어요.”

“저 때문에…….”

“취화원 존재가 드러난 건 좋지 않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저들을 끌어낼 수 있잖아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거죠. 달릴 준비 됐어요?”

“네. 두 다리 튼튼합니다.”

“가요!”

두 사람은 즉시 위장포를 걷어내고 신법을 전개했다.

쒜에엑! 쒜에에에엑!

두 사람이 바람을 가르며 질주했다.

“저기 있다! 쫓아!”

컹컹! 컹컹컹!

곧 사방에서 함성이 터지고, 곧이어 맹견들이 쫓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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