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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29화 (129/600)

#129화. 第二十六章 퇴로(退路) (4)

쫓아오는 자들은 성검문 무인들이 아니다.

초도성에는 성검문밖에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지문(支門)이 두 개나 있다.

동룡문(東龍門)과 서호문(西虎門)이다.

일반인이 성검문에 투신하기는 쉽지 않다.

매년 정기적으로 문도를 모집하는데, 자질, 성격, 인성, 가문 등등 심사가 매우 까다롭다. 오죽하면 성검문 문도가 되는 것이 과거에 급제하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왔을까.

성검문도 문턱이 높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세상과 소통한다는 측면에서 동룡문과 서호문을 만들었다.

두 지문은 아무나 입문할 수 있다.

무공에 대한 자질이 없어도 괜찮다. 가난해서 수련 비용을 내지 못하는 사람도 받아준다.

먹여주고, 재워 주면서 무공까지 가르쳐준다.

본격적으로 정통 무공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성검문 무공의 맛만 보게 해준다.

그 정도만 해도 일반인은 만족한다.

멀리서 온 사람들은 한 달, 두 달, 길게는 반년 정도 무공을 수련한 후 돌아간다. 초도성 사람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찾아가서 운동하듯이 수련하기도 한다.

동룡문주와 서호문주는 성검문 당주다.

이 두 지문의 문도는 엄밀히 말하면 성검문 문도가 아니다. 하지만 본인들은 성검문 문도라고 생각한다.

겨우 성검문 문턱에서 기둥만 만지다가 돌아왔을 뿐이지만, 성검문 일이라면 앞장서서 발 벗고 돕는다. 후원도 하고, 성검문의 눈과 귀 역할도 한다.

객사를 감시하던 무인도 두 지문 문도다.

성검문 무인이 감시했다면, 감시하는 도중에 대화를 나누는 어처구니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

지금 개를 끌고 오는 저들도 두 지문 무인이다.

상대하기가 수월하다.

솔직히 말하면 적수가 안 된다. 인원만 많지 손만 뻗어도 쓰러지는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몽설과 팔 장로가 굳이 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저들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성검문 빈객들이 따라붙었다.

그들은 가볍게 보지 못한다. 하나같이 고절한 무공을 지니고 있고, 지금까지 성검문에서 후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도 강하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서 달려들 것이다.

특히, 팔장로가 금검팔황을 죽였기 때문에 더 악착같이 달려들 것으로 생각된다.

저들과 뒤섞이면 상당히 피곤한 싸움이 된다.

쒜에에엑! 쎄에엑!

몽설과 팔장로는 빠르게 질주했다.

지문 무인들이 맹견을 앞세우고 쫓아오지만, 몽설과 팔장로를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대로 가면 놓친다.

“이거 너무 약한데요?”

팔 장로가 말했다.

“그럼 기다려줘야지.”

몽설이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은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저들을 공격하면 초도성 시민들의 눈은 자신들에게 쏠린다.

그만한 시간이면 아걸이 빠져나오기에는 충분하다.

아걸도 성검문 무인들의 감시망쯤은 쉽게 따돌릴 수 있다. 하지만 누가 감시하는지 감시자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움직이기가 힘들다.

아걸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매우 위중하다. 솔직히 소축십검 중 아무나 나서도 아걸을 죽일 수 있다.

이런 점을 아걸도 알고 소축십검도 안다.

하지만 소축십검에게는 제약이 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는 아걸을 공격하지 못한다. 문주와 무예를 겨루기로 약조까지 했으니 더더욱 건드리지 못한다.

아걸도 제약이 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한 몸을 피할 수 없다. 어디로 피하든 소축십검 귀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이르면 당장 소축십검이 나타날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또 감시하기도 한다.

“같이 칠까요, 나눠서 칠까요?”

“나눠서 쳐요. 제가 오른쪽으로 갈게요.”

“그럼 난 왼쪽.”

쒜에에엑!

몽설과 팔 장로가 신형을 띄웠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쏘아갔다. 지금까지 도주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지문 무인들을 향해 쏘아갔다. 몽설은 오른쪽으로, 팔 장로는 왼쪽으로.

쒜에엑! 파파파팟!

몽설은 그야말로 나찰이라도 된 듯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일단 맹견들을 죽인다.

지문 맹견은 추격을 시작하면 무조건 목표를 물어뜯도록 훈련되어 있다.

맹견과 맞닥트렸다면 죽이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죽여야 한다면 가장 잔인하게 죽인다. ‘가장 깨끗하게’ 혹은 ‘가장 빠르게’가 아니다. 누가 보더라도 일단은 몸서리를 치도록 잔인한 살육 현장을 만든다.

몽설은 매우 사납게 검을 휘둘렀다.

목 바로 밑에 검을 쑤셔 넣고 심장까지 부욱 그어 내린다. 하면 맹견은 피를 콸콸콸 내뿜는다. 붉디붉은 피가 이렇게 많이 들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콸콸 쏟아진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이 와서 싸움 현장을 볼 것이다.

그때 ‘아! 굉장히 잔인했구나’, ‘굉장히 처절했구나’하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문 무인들이 공격하는 사람은 여인 두 명이다.

겨우 여인 두 명이 이토록 처절하게 싸워야 할 정도라면 공격이 얼마나 사나웠나.

이런 느낌이 들어야 한다.

실제로 지문 무인들의 공격은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굉장히 위협적으로 보인다.

쒜에엑! 퍼억! 쒜에에엑! 푹!

맹견들이 사정없이 죽어 나갔다.

몽설은 지문 무인도 가차 없이 베었다.

일부러 쫓아가서 죽이지는 않았지만, 병기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자는 용서하지 않았다.

지문 무인들을 베는 검에는 성검문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분노를 터트리면서도 사람을 벨 때는 마음을 차분하게 내려놓고 절제된 검을 휘둘렀다.

사람은 잔인하게 죽이면 안 된다.

사람이 죽은 모습은 즉각 반향을 일으킨다. 잔인한 주검은 오히려 두 여자가 악독한 여자로 보인다.

피는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흘러나와야 한다. 안에서는 오장육부가 터지더라도 겉모습은 멀쩡한 게 좋다. 표정도 일그러져 있으면 곤란하다. 되도록 고통이 읽혀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굉장히 빠른 쾌검을 구사해야 한다.

검에 맞아 죽으면서도 죽는 사실을 몰라야 한다. 검에 맞자마자 풀썩 쓰러진다.

‘사혈만 친다!’

몽설은 배꼽 밑 기해혈(氣海穴)과 명치 중정혈(中庭穴)만 쳤다.

이 두 곳을 정확하게 격타하면 검을 찔러넣자마자 다리가 꺾이며 푹 쓰러진다.

맹견을 치는 검과 사람을 베는 검이 완전히 다르다.

“아악!”

지문 무인이 중정혈에 검을 맞고 비명을 토해냈다.

그는 비명을 질렀지만, 사실은 비명을 토해내기도 전에 절명했다. 쓰러지면서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토해낸 것뿐이다. 사혈은 곧장 죽음과 연결된다.

맹견은 잔인하게, 사람은 깨끗하게.

이런 수법은 사람들에게서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두 여인이 철저한 약자가 된다. 지문 무인들, 즉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는 싸움이 되는 것이다.

몽설은 개 피를 뒤집어썼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몸에 묻혔다.

그녀의 몸은 영사신법을 사용하느라 온통 진흙투성이다. 거기에 피까지 뒤집어써서 그야말로 야차가 따로 없다. 살검을 휘두르는 여자 악마다.

날이 밝을 무렵, 맹견을 몰살시켰다. 더는 사납게 컹컹 짖어대는 개가 없다.

지문 무인도 상당수가 죽었다.

원래는 지문 무인도 몰살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빈객이 섞여 있어서 간신히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또 빈객이 섞여 있지 않다고 해도 몰살시키지는 않았다. 그때는 몽설의 검이 조금 더 약해졌을 것이다.

몽설과 팔 장로는 초도성 성문 앞에서 만났다.

“후욱! 훅!”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어깨를 들썩이면서 숨을 쉬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더욱이 검을 들고 있을 힘도 없는지, 손발이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아이고! 이거 나이 먹어서 할 일이 못 되네요. 이제 좀 편한 일만 하렵니다.”

팔 장로가 말랬다.

“장로님, 전혀 안 늙었어요.”

“언제까지 부려 먹으려고요?”

“글쎄요? 앞으로 한 이십 년은 더 도와주셔야죠.”

“아이고, 끔찍해라.”

두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다가서는 지문 무인들을 노려보면서 농을 주고받았다. 그때,

터엉! 터엉! 터엉! 둥둥둥둥!

성문 위에서 대북 소리와 고동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성문을 연다는 신호다.

사실 성문이 열리기도 전에 싸움터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성 밖에서 초도성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넓게 원을 치고 구경하는 중이다.

원래 싸운 구경처럼 재밌는 것은 없지 않나. 무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쒸이이익!

창이 찔러왔다.

몽설은 검을 들고 창대를 후려쳤다.

타악! 탁!

창대는 검에 막혔다. 하지만 창수가 다시 검을 고쳐 잡고 후려쳤다.

몽설은 간신히 검을 들어서 막았다.

몽설의 움직임은 매우 유약해 보였다. 창을 막고 있기는 하지만 굉장히 힘들게 검을 뻗어내는 것 같다.

파아앗!

팔 장로를 노리고 대감도가 후려쳐왔다.

팔 장로는 사 성 정도만 남기고 진기를 풀었다. 사생락을 둔화시켰다. 그러자 신법을 전개했는데도 대감도를 깨끗하게 피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녀가 금방이라도 검에 맞을 듯 위태로웠다.

간신히 신법으로 피해내고 있지만 당장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악! 학!”

몽설이 거친 숨을 쏟아냈다.

그녀가 터트리는 숨소리가 사람들 귀에 똑똑히 들렸다.

“뭐야? 싸움이다!”

“싸움이다! 지문 무인들이 싸우고 있어!”

초도성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웅성웅성 소리쳤다. 이미 바깥에서 자리를 잡고 구경하는 사람들 틈에 섞이는 바람에 다소 소란도 일었다.

“안 보여! 비켜!”

“아, 조금씩 양보합시다!”

순식간에 거의 오륙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이 넓은 원을 그리면서 지켜본다.

쒜에엑! 쒜엑!

팔 장로가 발악하듯이 거칠게 검을 휘두르며 물러섰다.

“이 정도면 됐지?”

“네. 됐어요. 이제 빠져나가요. 타앗!”

몽설이 거칠게 고함을 내지르며 지문 무인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지문 무인과 성검문 빈객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빈객을 피하고 철저히 지문 무인하고만 싸웠다.

지금도 지문 무인에게 달려들었다.

“엇!”

몽설을 마주한 무인이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몽설은 그를 죽일 수 있었다. 손목만 움직여도 검초가 변화할 것이고, 사내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몽설을 살수를 펼치지 않았다.

무인이 물러섰다. 그럼 됐다. 틈이 벌어진 것으로 만족한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다. 물러서지 않고 맞서면 어쩔 뻔했나. 도망칠 구멍도 없지 않나.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활짝 열린 탈출구로 몸을 빼냈다.

사람들 눈에는 간신히 몸을 피하면서 우연히 뻗어낸 검이 무인을 뒤로 물린 것처럼 보인다.

“정말 운이 좋네!”

그런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쒜에에엑! 쒜에엑!

두 사람이 지문 무인을 뚫고 달려 나갔다.

“엇! 도망친다! 잡앗!”

“저것들 도망가게 내버려 두면 안 돼!”

사방에서 지문 무인들이 소리쳤다.

“헉헉! 헉! 비켯!”

몽설이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소리쳤다.

두 여인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너무도 뚜렷하게 들린다. 진흙과 땀과 피로 얼룩진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사력을 다해서 도망치려고 한다.

“아우! 깜짝이야!”

구경하던 사람이 길을 비켜주었다.

두 여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문 무인들은 두 사람을 쫓지 못했다.

맹견도 없고, 빈객이 나서지 않는 한은 사실상 따라잡는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들은 닭 쫓던 개마냥 두 사람이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보기만 했다.

“왜 나서지 않은 겁니까?”

지문 무인이 빈객에게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물음을 받은 빈객은 철필낙서(鐵筆落書)다.

병기는 철필이며, 그림 그리듯이 사람을 죽이는 초식으로 유명하다.

철필낙서는 눈빛만 반짝일 뿐, 말하지 않았다.

‘우리까지 나서면 저 여자들, 몰매 당한 개 꼴이 되어서 사람들 사이를 기어갔을 것…… 거기에 살수까지 가하면 성검문 위신은 땅에 떨어진다. 함정이야. 명부판관에게서 눈을 돌리려는 성동격서.’

철필낙서는 몽설의 계획을 읽었다.

그뿐만이 아니고 많은 빈객이 눈치챘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못했다.

달려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두 여자는 잡을 수 있지만, 성검문 입지는 완전히 망가진다.

철필낙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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