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第二十七章 구원(舊怨) (1)
다각! 다각! 다각!
허름한 마차가 깊은 산길을 느리게 나아갔다.
마차를 모는 마부는 비교적 편안한 표정으로 말을 몰았다. 인적이 완전히 끊긴 깊은 숲길을 헤쳐 나가고 있지만 불안하다는 표정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마차는 특이하게 만들어졌다.
길이는 두 사람이 마주 앉을 정도로 길었지만, 폭은 한 사람이 겨우 앉을 만큼 좁았다.
마차에는 관이 실려 있다.
관은 마차가 움직일 때마다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듯 위태롭게 요동쳤다.
“워! 워!”
마부는 약간 널찍한 공터가 나오자 마차를 세웠다.
그는 마차에서 내려 그늘진 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벌렁 드러누웠다.
“그거 되게 덥네.”
마부가 중얼거리면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마부를 잠이 들었는지 드르릉! 드르릉! 코를 골았다.
* * *
“뱃속도 편하군. 이런 곳에서 잠이 오나?”
한 사내가 잠자는 그를 깨웠다.
온몸이 칼인 자, 웃으면서 말하는데도 살기가 느껴져서 소름을 돋게 만드는 자, 풍도곡 서리형개다.
“으음! 음……!”
잠자던 사내가 잠에서 깨어 눈을 비볐다.
잠에서 깬 사내가 슬쩍 눈을 떠서 서리형개를 본 후, 잠이 완전히 덜 깬 듯 다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통보 보낸 지가 언젠데.”
“모기가 꽤 많을 텐데, 잘 자는군.”
“모기를 잘 안 타는 체질이라서. 뭐, 내 피가 쓰다나 어쨌다나. 아으! 아이구, 피곤해.”
사내가 길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어디서 오는 길인데?”
“고비 사막.”
“사막에는 무슨 일로?”
“무슨 일이긴. 우리가 나설 일이 전쟁밖에 더 있어? 그쪽이 시끄러워서 들렸더니 이번에는 본문에서 난리야. 어휴! 몇 날 며칠을 주구장창 말만 탔더니 피곤해 죽겠어.”
“본문?”
서리형개가 눈을 추켜 떴다.
“모른 척하기는. 이럴 때는 나도 모른 척 말해 줘야 하나? 언제까지 의뭉 떨 거야?”
육군(六軍) 협성림(葉星林)이 말했다.
육군과 칠군 고조시(高潮時)는 공부 허도기를 지척에서 수발한다. 허도기와 같이 출사하여 무공 교두도 하고, 전쟁터에서는 장군 노릇도 한다.
육군과 칠군은 무림보다는 전쟁터가 더 어울린다.
서리형개가 말했다.
“소축십검 일군 전가성이 죽었다는 말은 들었다.”
“들었지? 들을 줄 알았다니까. 다 알면서 모른 척하기는. 명부판관이라는 놈인데, 이런 일을 처리해줄 곳이 여기밖에 더 있나. 그래서 왔지.”
협성림이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명부판관?”
“그냥 명부판관이면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는데. 글쎄, 우선 시신 좀 봐야겠어. 우리가 판단하기로는 아무래도 일홀도인 것 같아서 말이지.”
“일홀도? 아걸 말고 누가 또 있나?”
“그러게. 요즘은 일홀도가 자주 나타나네.”
협성림이 싱긋 웃었다.
서리형개는 마차로 가서 관을 쳐다봤다.
관에서는 방부제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일군의 시신을 살점 한 토막 부패하지 않게 방부 처리했다. 상처를 자세히 보존하려는 것이다.
서리형개는 관 뚜껑을 열었다.
낯익은 얼굴, 일군 전가성이 딱딱한 표정으로 누워있다. 몸도 나무토막처럼 굳었다.
“이렇게 만나는 건 아니지. 우린 좀 다르게 만날 줄 알았더니.”
서리형개가 전가성의 얼굴을 만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애잔한 감정을 떨쳐버리고 전가성의 가슴을 세밀히 훑었다.
심장에 일격을 당했다.
서리형개는 손으로 상처를 벌려서 칼이 들어간 자국을 살폈다.
“병기가 월도라고 들었는데?”
“맞아.”
“깨끗하군.”
“너무 깨끗하지. 정성 들여 찌른 듯 깨끗해서 탈이야.”
협성림이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월도가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일도즉살(一刀卽殺)이다. 너무도 깨끗한 수법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전가성이 일격에 즉사했다면, 정말 피할 수 없는 칼이었던 거다. 비무 중인데도 두 손 두 발 다 풀어놓고 칼을 맞을 만큼 가슴이 텅 비어 있어야 한다.
전가성이 죽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럴 수 있다. 무인은 누구에게든 당할 수 있다. 공부 허도기가 당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죽었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하지만 이 칼은…… 전가성을 압도한다.
명부판관도 크게 다치었다고 들었다. 한 명은 중상, 한 명은 사망이다. 서로 무공이 비등했다는 건데, 그런 관계에서는 이런 칼이 나올 수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줘야겠다.”
서리형개가 전가성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 * *
서리가헌이 전가성의 시신을 살폈다.
“성검문에서는 일홀도라고 보던데.”
“일홀도 맞아.”
서리가헌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건…… 이해할 수 없네?”
서리가헌이 가슴에 새겨진 도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심장을 찔러서 죽이는 칼은 많다. 하지만 그 칼에 전가성이 당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전가성은 절대로 이런 칼을 맞지 않는다.
전가성은 매우 난잡하게 죽을 수 있다. 허리를 베이고, 다리를 썰리고, 어깨를 뚫리고…… 여기저기 온몸이 엉망진창이 되어서 마지막 일격에 숨이 끊어질 수 있다.
전가성 정도 되는 무인이면 그렇게 죽어야 한다.
비무 중에 머리가 베인다거나, 심장이 찔린다거나 하는 상처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이런 죽음은 상대가 전가성보다 두 배 혹은 세 배 정도 강했을 때만 가능하다.
명부판관은 전가성의 칼에 중상을 입었다. 그런 후에 칼을 썼다. 그리고 그 칼에 전가성이 죽었다. 심장이 꿰뚫렸다. 지척에서 독침을 불어도 피할 수 있는 사람인데, 하물며 칼이 날아오는 것을 그대로 맞아? 전가성 정도 되면 당연히 심장을 격타당하지 않기 위해서 몸을 비틀었을 텐데.
“……아!”
서리가헌이 문득 어떤 생각이 치밀었는지 탄성을 토하며 머리를 짚었다.
“뭡니까?”
“이놈, 아걸이야.”
“풋! 나도 아걸을 생각했는데, 칼이 너무 달라요.”
“내가 아걸이라고 하지 않았니? 그럼 믿어야 하지 않겠니?”
서리가헌의 평소 말 습관이 나왔다.
안정을 찾았다. 상대가 누군지 알았다. 확실히 아걸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얼마 전 일인데 기억 안 나니? 소축십검 세 명이 그놈을 공격했던 적이 있지 않니. 그놈들 셋 중 둘이 잠기일력타를 썼는데도 아걸을 잡지 못했잖니.”
“음!”
“놈은 잠기일력타를 흘려보냈어. 전가성은 삼륜축첩공을 썼다고 하지 않니. 필살. 누구도 벗어난 적 없는 필살 검에 적중당한 명부판관. 그쯤이면 상황이 끝났지 않니?”
“삼륜축첩공을 잠기일력타처럼 흘려보냈다? 그리고 역공을 취했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그놈 칼이 변했구먼. 그 짧은 시간에.”
서리가헌이 전가성의 가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흉수는 파악되었고, 성검문에서 사람을 보내온 것은 우리 보고 나서 달라는 말인데, 요청이 왔으니 가기는 가야지? 어떻게 할래? 네가 갈래, 내가 갈까?”
“후후! 그 말은 저보고 가라는 말 아닙니까.”
“눈치가 빨라서 좋아.”
“제가 가죠. 아걸, 그놈. 잘 도망 다녀야 할 텐데 말입니다. 부딪치면 끝장내는 수밖에는 없어요.”
“성검문, 그놈들한테는 명부판관이 아걸이라고 말해줄 필요 없겠지? 아걸 그놈이 만들어낸 대로 명부판관이 딱 좋아. 뒤 조심하고. 육군이 괜히 나왔겠니? 네 뒤를 밟겠다는 뜻이지 않겠니.”
“후후후!”
서리형개는 웃었다.
* * *
“몸 좀 어때?”
몽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많이 나았어. 정말 자고 일어났더니 감쪽같이 나았네.”
아걸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 말만 믿어. 난 거짓말 안 해. 배고프지 않아? 죽 끓여놨는데, 가져와?”
“솥째로. 뱃속에서 밥 달라고 난리야.”
“호호호!”
몽설이 맑게 웃었다.
사실 아걸은 닷새 만에 일어났다. 지난 며칠 동안 극심한 고열에 시달렸다. 열이 팔팔 끓어올라서 물수건을 올려놓아도 금방 미지근해졌다.
아걸은 아주 심하게 앓았는데, 그게 오히려 다행이다.
그는 아플 새도 없었다. 몽설이 마련해 준 풀잎 침상이 너무 편안해서 마음 놓고 아팠다. 적에게 기습받거나, 급히 싸워야 할 일이 없으니 아예 작심하고 아팠다.
몽설은 그런 점이 고마웠다.
자신을 그만큼 믿어주는 게 고마웠고, 살아있는 게 고마웠다.
아걸은 아플 때 헛소리도 했다.
- 몽설, 몽설. 옆에 있어. 가지 마.
몽설은 무뚝뚝한 아걸에게서 칼로 협박해도 듣지 못할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더 고맙다.
몽설이 죽을 가져왔다. 아걸 말대로 솥째 가져와서는 큰 그릇에 하나 가득 담아서 주었다.
“이거 먹기 겁나는데.”
“왜?”
“이거 먹는 동안에 무슨 말인가 할 것 같아서.”
“일단 먹어.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잖아. 죽어도 때깔은 고와야지.”
“이거 먹고 죽으라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럴 수도 있고. 호호!”
아걸은 몽설을 힐끔 쳐다본 후, 흰죽을 떠먹었다.
사실, 입이 써서 죽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 밀어 넣었다. 할배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상처를 정말 많이 얻었다.
많이 싸웠고, 많이 다쳤다.
지금보다 더 크게 다친 적도 많다.
그때도 죽을 먹었다. 입이 써서 들어가지 않는 것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지금도 밀어 넣는다.
“우리 정말 큰 싸움하게 될지 몰라.”
몽설이 불쑥 말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걸이 수저로 죽 그릇을 탕탕 쳤다.
“내가 소축십검이라면 전가성의 시신을 풍도곡에 보냈을 거야. 풍도곡 귀신들을 끌어내기 딱 좋잖아. 전가성을 죽인 칼이 일홀도니까. 일홀도라면 당연히 풍도곡 귀신들이 나서지.”
“맞아. 그럴 거야.”
아걸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에 성검문도 크게 당했어. 그래서 오빠가 끝장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볼 거야. 누군가 싸움을 볼 거라는 거야.”
“누구든 상관없어.”
“상관있어. 오빠는 일단 풍도곡 귀신하고 싸워야 해. 그래서 지면 그걸로 끝이야. 하지만 이기면 성검문 소축십검과 다시 싸워야 해. 어쩌면 소축십검이 한 명이 아닐 수도 있고.”
두 번째 싸움에서는 무조건 죽는다는 말이다.
“일홀도가 뭔지 알아?”
“오빠 칼?”
“아니. 적수를 가리지 않는 칼. 그게 일홀도야. 내 칼, 삼십육 사부들의 칼, 모두 적수를 가리지 않아. 누가 되었든, 나보다 강한 자가 나와도 당당히 싸우는 게 일홀도야. 그리고 난 일홀도의 계승자고. 그러니 누구와 싸운다고 해도 상관없어.”
“어쩌면 칼 귀신 서너 명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싸움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죽 좀 먹자. 꼭 죽 먹을 때 무슨 말인가를 할 것 같더라니.”
아걸이 투덜거렸다.
* * *
몽설이 모르는 게 있다.
풍도곡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지 못한다.
사형들이 자신을 베러 올지, 아니면 등을 떠밀어서 공부 허도기에게 보낼지 예단하지 못한다.
사형은 이미 자신의 칼을 찾아냈을 것이다. 명부판관의 칼이 아니라 아걸의 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칼에 겁을 먹었다면 죽이러 올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일홀도를 얻었다면, 이 정도 칼쯤은 언제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자신을 등 떠밀어서 허도기에게 보낼 것이다.
자신은 성검문만 상대하면 된다.
몽설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풍도곡이 어떻게 움직일지 전혀 몰라서다. 그러니 몽설 말대로 양쪽 모두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
그렇게 되면 풍도곡 귀신에다가 덤으로 소축십검 중 몇 명 정도 달라붙을 것이다.
필패 형국이다.
다른 때 같으면 대책을 마련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싸울지 고민했다.
이제는 고민하지 않는다. 일홀도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