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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34화 (134/600)

#134화. 第二十七章 구원(舊怨) (4)

탁!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던 나무를 병기로 때렸다.

모두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다.

인도부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이런 신호를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무뇌옥 수련을 거치면서 서로에 대해 완벽한 신뢰감을 쌓았다.

누군가가 인기척을 들었거나,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츠읏!

갑자기 눈앞에서 불쑥 검이 튀어나왔다.

인도부는 이미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검이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았다.

스읏! 타앙! 쒜에에엑!

인도부는 거침없이 검을 퉁겨냈다. 그리고 쏜살같이 검을 따라가서 상대방을 후려쳤다.

파앗!

일순, 상대방이 연기처럼 꺼져버렸다.

“암영검!”

방금 일전을 치른 자가 크게 말했다.

모두 들어야 한다. 취화원 살수가 공격을 시작했다. 병기로 나무를 때린 자가 제대로 감지했다.

슛! 츄아아악!

뿌연 연기 속에서 검이 툭 튀어나왔다.

암영검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경계심을 부쩍 높인 상태다.

“어디서!”

인도부는 쏘아오는 검을 튕겨내고, 즉시 몸통을 후려쳤다. 한데 그의 검이 몸을 때리지 못하고 허공을 흘렀다. 분명히 몸이 있었는데, 팟! 사라져버렸다.

“웃!”

그는 깜짝 놀라서 무조건 뒤로 물러섰다. 순간,

츄각!

연기 속에서 툭 튀어나온 검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물러서는 행동이 빨랐기에 이 정도에서 그쳤지, 자칫했으면 가슴이 썰릴 뻔했다.

“뭐야 이거? 상당한 고수네?”

그가 다소 놀란 듯 말했다.

“취화원에 사생락이 있다. 사생락은 무시하지 못해!”

연기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싱겁게 끝날 줄 알았는데, 재미있네. 큿큿!”

“사생락은 원주 절기 아냐? 이놈 저놈 모두 원주 절기를 배운 거야? 아니면 몽설이 돌아왔나?”

“몽설이 벌써 왔을 리는 없고, ‘옜다! 이판사판이다’하고 막 뿌린 거지, 뭐.”

인도부들이 연기 속에서 말을 주고받았다.

사실, 인도부는 일부러 말을 하는 중이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음담패설이라도 상관없다. 아무 이야기든 중얼거리기만 하면 된다.

이야기를 나누면 상대방은 이쪽 위치를 알게 된다. 말하는 자를 잡기 위해서 슬그머니 이동한다. 지금처럼 사방이 안 보일 때는 틀림없이 소리가 울린 쪽으로 다가간다.

물론 인도부도 움직인다.

상대가 말하는 자를 치는 순간, 삼방에서 칼날이 번뜩일 것이다.

“사생락은 깨우치기 힘들다던데, 용케 깨우쳤나 봐?”

“흉내만 낸 거지. 암영검에서 조금 발전한 것에 불과해. 어린애 장난이야.”

인도부가 계속 말을 흘렸다.

* * *

월영은 일곡을 요새로 만들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산이지만, 살수가 보면 천하에 다시없는 요새가 보인다.

일곡을 보려면 나무 위를 봐야 한다.

나뭇가지를 모아서 몸을 숨길 공간을 만들었다. 같은 살수도 찾기 힘든 은신처다.

나무 위에는 병기도 많이 쟁여 놨다.

화살을 비롯한 각종 암기가 나무마다 놓여 있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서 함정도 만들었다. 땅에 함정을 파지 않고 머리 위에 설치했다.

자고로 함정이란 허를 찔러야 하지 않나.

월영은 나무 위에 앉아서 희뿌연 연기를 주시했다.

산속을 휘젓고 다닐 때는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 위에서 보면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보인다. 움직이는 동체를 알아챌 수 있다.

스읏!

월영은 활에 화살을 재웠다.

저들의 발걸음을 묶어 둬야 한다. 다른 곡에 있는 형제가 달려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이런 경우를 참 많이 예상했다.

누군가가 구절곡을 기습한다면 일곡 아니면 구곡에서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구곡이 기습받는다면 사사가 어떻게든 버틸 것이다.

반대로 일곡이 기습을 받으면 자신이 버텨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곡에 피해가 가지 않는다.

탁! 쒜에엑!

화살이 활을 떠났다.

화살은 멀리 동그랗게 표적이 그려진 나무판 정중앙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화살에 맞은 나무판은 뒤로 쑥 들어갔다. 동시에 나무판에 연결된 철사 네 개가 쭉 당겨졌다.

철사는 사방으로 연결되었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뻗어나간 철사에 새끼 철사 열 개가 매달려 있다.

새끼 철사는 각종 암기 발사 장치를 건드렸다.

탁! 탁탁탁! 탁탁탁탁!

나무 위에 설치된 암기가 벌떼처럼 튀어나왔다. 그리고 정중앙, 월영이 화살을 쏜 나무판 쪽을 향해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쒜에에엑! 쒜에에엑!

파공음이 살 떨리게 들린다.

나무판 하나에 연결된 암기는 사십 무더기다. 표창 같은 것은 다섯 개가 일시에 날아간다. 그중에는 비침 한 주머니도 들어있다. 주머니가 탁 터지면서 안에 든 비침이 소낙비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그러니 개수는 헤아릴 수가 없다.

정동 무인들은 습격을 알아챈 순간, 일절 머뭇거리지 않고 뒤로 쑥 물러섰다.

암기가 날아오면 웬만하면 서 있는 자리에서 버티기 마련인데, 정동 무인들은 뒤로 빠졌다. 한두 명만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모두 같은 행동을 취했다.

암기가 날아오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 걸 잘 알면서도 실전으로 부딪치면 어떻게든 서 있는 자리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일단 물러설 시간이 없다. 그리고 암기가 설마 자신에게 날아오랴 싶기도 하다. 설혹 날아오더라도 엄폐물이 좋으면 넉넉히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놈들 단단히 훈련되었어.’

월영은 미간을 찡그렸다.

오늘 싸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 *

“찾았어?”

“아니, 못 찾았어.”

“요것 봐라? 이거 정말 물건인데? 장난삼아서 공격할 자가 아닌데? 잘못하면 당하겠어.”

인도부는 비로소 긴장했다.

서리형개가 스무 명이 가라고 딱 집어서 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무 명이 왔다. 하지만 귀문 찌꺼기를 정리하는 일에 스무 명이나 갈 필요가 있나 하고 구시렁거리면서 왔다.

그런데 귀문…… 대응하는 방법이 사뭇 다르다.

귀문은 이런 싸움에서는 전문가다. 일반적인 싸움이 아니다. 전쟁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부는 살기, 살심, 살병으로 싸운다.

귀문은 철저하게 살수 방식으로 부딪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인도부는 취화원 살법을 연구하지 않았다. 솔직히 잘 모른다.

취화원은 이미 멸문했다.

취화원이 귀문은 장악했다고 했을 때도 아걸의 힘이었지, 취화원 찌꺼기들의 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자들까지 특별히 연구하고 공부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지금 그 찌꺼기가 철저하게 살수 방식으로 맞대응해 온다. 정면 대결을 피하고 최대한 몸을 숨긴 채 암기로 공격한다. 검이 부딪치는 것을 피한다.

무공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살고 죽는 싸움이지 무예를 자랑하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살로 공격을 시작했다. 화살 나는 소리를 들었어.”

“화살이 떨어진 곳은 저기.”

인도부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희뿌연 연기를 가리켰다.

“소리가 시작된 곳을 찾은 사람?”

“대충 짐작은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아.”

“나도 짐작 가는 데는 있어.”

짐작은 오직 자신만 안다.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가는 헷갈릴 수가 있다. 혼자 생각하고 있다가 확신이 들면 서로에게 말하거나, 즉시 행동한다.

“짐작 두 명. 그럼 다음 화살이 날아오면 우리도 움직일 수 있다는 소리군. 둘 중 하나는 비슷하게 알아챘을 테니까. 너희 둘, 귀 바짝 열어.”

“염려 마셔.”

“그런데 우리가 움직이는 걸 어떻게 그렇게 잘 보지. 연기 속이라서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지리가 눈에 익은 거야. 연기 속에서 움직이는 건 직감으로 알아챘을 거고. 그럼 우리도 할 게 있지.”

상대방이 살수 방식으로 싸우고자 한다면 그들도 쓸 수 있는 게 있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촤촥! 촤촤촥!

인도부가 서로 간에 거리를 벌렸다.

그들은 조용히 배를 땅에 붙이고 엎드렸다.

잠시 얼굴을 땅에 묻고 숨을 골랐다.

잠시 후, 두 팔을 쭉 위로 뻗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끌어냈다.

빨리 움직일 생각을 버린다.

서리형개는 귀문을 멸문시키는 데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 무조건 멸문시키라고만 말했다. 그러니 몇 날 며칠이 걸려도 상관없다. 멸절만 시키면 된다.

인도부도 귀문에 맞춰서 움직인다.

지금부터는 인내 싸움이다.

스으읏! 스읏!

몸을 최대한 천천히 움직였다. 배를 땅에 깔고 느릿느릿 기었다.

그들은 기척을 흘릴 정도로 약하지 않다. 뱀이 기어가는 것보다 더 조용하게 기어갈 수 있다. 물론 경각심은 최대한 끌어올린다. 살수가 있는 곳을 파악해야 하니까.

* * *

‘역시!’

월영은 눈살을 깊이 찌푸렸다.

생각했던 대로 정동 무인들은 모습을 감췄다. 아니다. 저들은 다가오고 있다. 확실하다. 지금, 이 순간 연기 속을 천천히 기어 오고 있을 것이다.

다만 어디로 다가오는지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여기 있으면 당한다.’

월영은 위기를 감지했다.

마치 저들이 자신을 포위한 채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준비한 것들이 있다.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야 한다. 이곡, 삼곡, 사곡 곡주들이 달려오려면 적어도 두세 시진은 잡아두어야 한다.

월영은 또 활에 화살을 재웠다.

‘위험한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행동하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밖에 없다.

월영은 차분히 기다렸다.

저들이 기어 오는 속도를 계산한다. 두 팔을 뻗고, 몸을 끌어당기고, 또 두 팔을 뻗고…… 급한 것이 없으니 잠시 쉬기도 한다. 숨을 조용히 고르고 또 움직인다.

저들의 무공을 봤을 때, 대략 일다경에 십 장 거리를 이동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면 저기!’

월영은 저들이 기어 오는 시간과 거리를 찾아냈다.

스으읏! 탁! 쒜에엑!

화살이 활을 떠났다. 조금 전처럼 나무판 한가운데를 격증했다. 나무판이 뒤로 쭉 들어가면서 철사를 잡아당겼다.

쒜에에엑! 쒜에에엑!

암기 수백 개가 화살 꽂힌 부근을 향해 날아갔다. 한데,

슈아아악!

월영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봤다.

누군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냈다.

정동 무인은 즉시 검을 쳐냈다. 땅을 박차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벌써 도약했다. 검초를 펼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검광이 쏘아진다.

월영도 재빨리 사생락을 펼쳤다.

그녀의 신형이 귀신처럼 흐릿해졌다. 순간,

쒜에에엑! 타악!

어느새 날아온 검이 그녀가 서 있던 나뭇가지를 강타했다.

귀신처럼 흐릿하던 신형은 희뿌연 연기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사생락은 연기가 없어도 형체를 분간하기가 힘들다. 하물며 연기까지 자욱하니 더 찾기가 힘들다. 삼척, 사 척만 벗어나도 분간이 안 된다.

그때, 월영은 안도의 숨을 흘리기도 전에 등 뒤가 서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슈우웃!

무엇인가가 등을 찔러온다.

월영은 미처 사생락도 펼치지 못하고 옆에 있는 나무에 몸을 바싹 붙였다.

탁!

검이 월영 대신 나무를 찔렀다.

연기가 없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실수다.

팟!

월영은 즉시 사생락을 펼쳤고, 희뿌연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침묵이다.

월영도 사라졌고 검을 쳐내던 무인 두 명도 사라졌다. 정동 무인들도 기척을 흘리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어디 있는지 모른다.

일곡에 희뿌연 연기만 자욱하게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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