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第二十七章 구원(舊怨) (5)
취운은 성검문 동향을 파악하던 중 기습 사실을 알았다.
일곡에서 붉은 화탄 다섯 개가 터졌다.
이곡, 삼곡, 사곡 곡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다.
“음!”
취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취화원과 정동 무인은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살 수 없을 만큼 악연이 깊어졌다.
저들이 몽설 뒤를 쫓아와서 형옥을 급습했다. 형옥주와 형옥 무인들은 물론이고 죄수로 감금된 살수까지 모조리 죽였다. 말 그대로 개미 한 마리 안 남기고 싹 죽였다.
취화원은 공식적으로 해산했는데, 해산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사방으로 흩어진 취화원 살수들을 거침없이 배었다. 형제들 대부분이 그때 죽었다.
그 당시에는 이들이 정동 무인인지도 몰랐다. 서리형개의 수족이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취화원은 정동 무인이라면 이가 갈린다.
“곡주님께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철수하기는 했습니다만, 상황이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 곡주님 혼자서 침입자들을 막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일곡에서 빠져나온 문도가 다급하게 보고했다.
취운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월영은 물러서지 않는다.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도 죽을힘을 다해서 막아내고 있을 것이다.
일곡에 설치된 함정은 취운도 잘 안다.
공격이 일어나면 즉시 희뿌연 연기가 골짜기를 타고 흐를 것이다.
연기는 젖은 풀과 짚을 태워서 만든다. 젖은 짚단 밑에 불을 놓으면 서서히 타면서 연기를 피워낸다. 하지만 곧 짚단이 마를 것이고, 그러면 순식간에 타버린다.
예행연습을 해본 결과, 연기를 피워내는 최대 시간은 두 시진이다.
반나절 정도가 지나면 연기는 흩어진다. 골짜기에서 바람이라도 불면 더 빨리 날아간다.
시간이 없다. 연기가 흩어지면 아무리 사생락이라도 견디지 못한다.
정동 무인, 놈들은 무인이 아니다. 사람 죽이는 살인 도구다.
취운은 고민했다.
‘어떻게 할까? 원주님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취운은 몽설을 떠올렸다.
몽설이 편안하게 웃는다. 순둥이처럼 귀엽게 웃으며 말한다.
- 마음대로 해. 지금은 언니가 귀문을 맡았잖아.
취화원에 있을 때, 몽설은 취운을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그때 그 모습의 몽설이 생각났다.
‘그래. 내 마음대로 할게. 나중에 마음에 안 들면 날 벌해. 네가 주는 벌이라면 다 받을 수 있어.’
취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
“구절곡 전체에 전해. 하루를 버틴다. 그리고 내일 술시(戌時), 전원 완전히 철수한다.”
“완전…… 철수입니까?”
“그래. 그렇게 알고 준비하라고 해.”
“넷! 알겠습니다.”
일단 생각을 정리하자 명령이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곡주들은 자신이 맡은 곡만 지키면 된다. 그래서 대응책도 결사 항전밖에 없다.
취운은 몽설을 대신해서 귀문 전체를 살펴야 한다.
취운은 귀문의 효용 가치, 존재 이유가 은밀성에 있다고 판단했다.
구절곡이 발각되지 않았을 때 비로소 귀문도 존재한다. 누군가가 구절곡을 침범하기 시작했다면, 이후 다른 자도 침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구절곡은 살수 문파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그렇다면 미련 없이 철수한다.
정동 무인 스무 명을 상대하려면 구곡 곡주가 전부 동원되어야 한다.
월영은 이, 삼, 사곡 곡주만 불렀다.
네 명이 사력을 다하면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인데, 취운 생각은 다르다. 그 정도로는 곤란하다.
그런 싸움은 곡주도 다칠 수도 있다.
이미 소용이 없어진 귀문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할 필요가 없다. 그럴 바에는 미련 없이 물러서면서 여유 있게 쫓아오는 자들을 치는 것이 낫다.
취운이 명령했다.
“완전철수 방법은 순차 붕괴다. 차질이 없도록 단단히 준비하라고 하고.”
“넷!”
일곡에서 버티다가 이곡으로 물러선다. 물러서면서 일곡을 폭파한다. 일곡 폭발로 정동 무인이 잡히면 좋고, 잡히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다.
저들이 이곡으로 다가올 무렵, 이곡에서는 모든 기관장치가 풀린다.
엄청난 암기 세례가 쏟아질 것이다.
저들이 암기를 뚫고 들어서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때쯤이면 이곡도 텅 빈다. 모두 삼곡으로 후퇴한 이후다. 그리고 곧바로 삼곡도 폭파된다.
그렇게 일곡, 이곡, 삼곡, 사곡이 차례대로 폭파된다.
치열하게 암기를 뚫고 들어왔는데, 주어진 것은 폭발에서 살아남으라는 것이다.
저들은 귀문이 절곡을 폭파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절곡은 귀문의 생존 영역이다. 살아가는 기반이다. 삶의 터전을 무너트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사곡이 무너진 후에는 오곡부터 구곡까지 일시에 붕괴된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하루다.
취운은 내일 저녁 술시 이전까지 일이삼사 곡을 폭파하고, 정확히 술시에는 나머지 오곡을 무너트리겠다고 명령한 것이다.
구절곡을 무너트리면 귀문은 어디로 가나?
준비한 곳이 있다.
호북성(湖北省) 황강현(黃岡縣) 대별산(大别山)!
만일을 위해서 염두에 둔 곳인데 당장 써먹게 됐다.
사실 귀문은 서리형개 것이다. 취화원이 임시로 차지하고 있을 뿐, 서리형개가 지금처럼 마음을 바꾸기라도 하면 당장 살겁을 면치 못할 땅이다.
그러니 오래 머물 곳이 못 된다.
취화원은 귀문을 장악한 후, 귀문 전체를 개조했다.
구절곡을 전멸시킨 후, 문도를 직접 키워냈다. 중원에 있는 간자도 대폭 교체했다.
취화원이 장악한 귀문은 서리형개가 모르는 귀문이다.
새로 건립한 귀문은 예전 귀문과는 완전히 따로 구분해서 움직였다. 예전 귀문이 새 귀문의 정보를 알 수 없게끔 중간에서 정보망 차단도 했다.
귀문 본단에서 귀문의 정보를 차단하기는 쉽다.
서리형개는 귀문을 되찾더라도 껍데기만 남은 귀문을 가질 것이다.
취운이 명령을 이어갔다.
“칠, 팔, 구곡 곡주에게 연락해. 구곡에 은신한 정동 무인 다섯 명을 벤다. 지금 바로 연락해!”
“넷!”
취운의 머릿속에 싸움 장면이 그려졌다.
적화, 소명, 사사라면 정동 무인 다섯 명쯤은 벨 수 있다. 거의 일대일, 많아야 이 대 일이다. 먼저 두 명을 베면 일대일 싸움을 벌일 수 있고, 그러면 이긴다.
그 싸움은 적화, 소명, 사사가 알아서 할 것이다.
* * *
퍼엉!
오곡에서 화탄이 솟구쳤다.
아름다운 무지갯빛 화탄이다. 일곱 가지 색깔이 절묘하게 배합되어서 눈길을 저절로 끌어들인다.
‘완전 철수? 어려운 결단을 내렸네.’
월영은 미간을 살며시 찡그렸다.
취운의 고뇌를 짐작할 수 있다. 몽설이 없는데 귀문을 버려야 하는 심정이 어떻겠는가? 한데, 지금, 이 상황이 귀문을 버릴 만큼 나쁜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월영 개인의 판단은 취운과 다르다.
하지만 취운은 판단은 존중받아야 한다. 여기에 자신의 의견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귀문 전체를 통솔하는 처지에서 내린 명령이니 절대적으로 따라줘야 한다.
‘그렇다면 철수해야지!’
월영은 고개를 정동 무인을 공격하기 위해 들었던 활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형제 세 명만 오면 저들과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스으읏!
월영은 활을 내려놓자마자 슬며시 움직였다.
정동 무인들은 긴장한 상태에서 연기 속으로 헤쳐 와야 한다.
연기는 반 시진 정도 더 번질 것이고…… 연기가 날려 가면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올 테니.
‘반 시진에서 일다경 정도 지나면 도착하겠네.’
월영은 집무실 책상을 두 손으로 힘 있게 밀어냈다.
그르릉!
책상이 밀려나며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겨우 책 서너 권 정도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에는 밧줄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일곡을 폭파할 도화선이다.
일곡이 폭파되면 정동 무인 열다섯 명 중 많으면 서너 명, 못해도 한두 명쯤은 잡을 수 있다.
싸우지 않고 적을 죽인다.
월영은 숨죽인 채 기다렸다.
도화선이 타들어 가는 시간은 일다경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반 시진을 기다렸다가 불을 붙여야 한다. 만약 자신의 계산이 틀렸다면 바로 이곳, 집무실에서 적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 * *
“철수한다!”
소호가 말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이곡 전체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이곡 문도는 완전철수 명령이 떨어졌을 때 취해야 할 행동을 수십 번이나 연습했다.
이곡 무인들은 서두르지 않고 행동 요강에 따라서 척척 움직였다.
길어야 한 시진이면 이곡 전체가 텅 빈다.
모든 기관이 작동 상태로 가동된다. 일곡에서 이곡으로 오는 모든 길에 죽음의 덫이 깔린다.
일곡주는 한 시진 안에 이곡으로 들어서야 한다. 시간을 놓치면 일곡주도 침입자들처럼 함정을 뚫으면서 들어서야 한다. 함정은 적아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곡주는 곡에 담아서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그녀가 언제 불을 붙이느냐에 따라서 이곡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가 결정된다.
귀문은 흔적을 남겨놓지 않는다.
“시간 잘 맞춰야 해. 늦으면 안 돼.”
소호는 일곡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지금은 그녀가 이 말을 중얼거리지만, 곧 삼곡주도 자신을 염려하며 같은 말을 중얼거릴 것이다.
* * *
폭발은 차례로 이어진다. 그리고 일시에 오곡 전체가 와르르 무너진다.
곡주 세 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다.
앞에 있는 사곡이 하루를 버틸 텐데, 그 안에 정동 무인 다섯 명을 죽여야 한다.
사사는 구곡 골짜기를 걸어 내려갔다.
그녀는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병기도 휴대하지 않은 채 태연히 걸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전혀 모르는 철부지 소녀 같다.
산에 나물이라도 캐러 왔나? 먼 길을 가는 사람은 아니다. 산에 일이 있어서 들어선 모습도 아니다. 집이 근처에 있는 사람처럼 옷차림이 가볍다.
그녀는 길을 잘 아는 듯 긴장도 하지 않는다.
“큭큭! 첫 손님이 여자라. 좋네.”
음침한 음성과 함께 산도적처럼 생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거칠고 송곳처럼 날카로운 수염이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키가 작지만, 몸이 뚱뚱해서 작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손에 도끼를 들고 있어서 정말 산도적처럼 보인다.
힘을 바탕으로 강한 부법(斧法)을 사용하는 자다.
사사는 짐짓 놀란 듯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그리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년 죽이기는 되게 아까운데. 오랜만에 재미 좀 봐야겠다. 다들 눈 감아!”
사내가 버럭 고함질렀다.
“하하! 그것도 좋지. 아직 움직이는 놈들이 없으니 당분간 한가할 것 같은데, 우리 천천히 즐기자고. 이렇게 예쁜 여자를 무작정 죽이면 안 되지.”
음충맞은 말을 흘리면서 또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매우 날카롭다. 키가 크면서 눈매가 사납다. 등에 장창을 메고 있지만, 창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야! 내가 먼저 찍었잖아!”
도끼 든 자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먼저 해. 나는 두 번째. 설마 두 번째도 안 주려는 건 아니지? 저거 색기가 잘잘 흐르는 게…… 어휴! 빨리해라. 가까이서 보니 더 미치겠다.”
강퍅한 자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칼 든 자, 전장에서 발정 나면 죽는다.
무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말이다. 정동 무인이라면 한두 번이 아니라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말이다.
그런데 두 명이 음심을 일으켰다.
사사의 살법은 색혼경(色魂經)에 바탕을 둔다. 미인계를 주로 사용하며, 실패한 적이 없다. 표정, 미소, 손짓, 몸짓이 모두 욕정을 자극한다.
사사는 도망가기 위해 재빨리 뒤돌아섰다. 그리고 총총걸음으로 달려갔다.
이 모습 또한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촌 여자로 보인다.
“어딜!”
쉬이익!
키 큰 사내가 신형을 날려 사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때였다. 사사 앞쪽으로 검은 그림자가 피어나더니 장창 든 사내를 덮쳤다. 뒤쪽에서도 그림자가 피어났다. 대부를 든 자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듯했다.
“위험!”
“피햇!”
그림자가 일어나기 전, 숲속에서 거친 소리가 터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장한과 도끼를 든 자는 힘없이 털썩 무너졌다.
정동 무인은 이토록 약하지 않다. 다만 지금은 사사의 색기에 홀려버렸다. 여인을 취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깊어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원래는 적화와 소명이 일장이나 이장 앞쯤 다가섰을 때, 기습을 눈치챘을 자들이다.
잠깐! 찰나의 틈!
그 정도면 사생락이 살수로 바뀌는 데 충분하다.
“이제 삼 대 삼. 공평해졌지? 우리 재미있게 놀아봐.”
스으으읏!
사사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