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第二十八章 공수전환(攻守轉換) (2)
기껏 일곡 중심부를 치고 들어갔는데, 반기는 건 화약 냄새다. 심지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순간, 몸이 익은 대로 신형을 튕겨냈다.
거의 반사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대체로 산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본능적으로 뛰쳐 내려가게 되어 있다. 바위, 흙, 나무 등등 모든 물체가 위에서 밑으로 떨어진다. 그러니 몸을 덮치기 전에 더 빨리 내려가야 한다.
인도부는 정반대로 산정을 향해 치달렸다.
산정으로 향하는 길에서 무수한 발자국을 찾아냈다.
워낙 급하게 이동하는 바람에 산길 곳곳에 발자국을 찍어 놨다. 풀도 밟았고, 물건을 떨어트리기도 했다.
귀문 무인들이 산정으로 올라갔다.
또 산정으로 올라가면 다음 봉우리로 이동하기가 편하다. 산등성이를 쭉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사실, 이런 점은 귀문을 공격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 단서들이 산정으로 향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무조건 위로 치달렸다.
꽝! 꽈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뒤이어 일어났다.
폭발이 만들어낸 흙먼지가 구절곡 전체를 뒤덮었다. 잘게 부서진 바위가 날아와 얼굴을 때렸다. 딛고 있는 땅도 와르르 무너질 듯 흔들거렸다.
“후후후! 하하하하!”
키 큰 사내가 웃었다. 기가 막혀서 웃었다.
연기 냄새를 냇내라고 하는데, 키 큰 사내는 냇내에 민감하다. 그래서 심지 타는 냄새를 쉽게 알아챘다.
그 덕분에 폭발에 휘말리지 않았다.
“이것들이 집을 무너트려?”
키 큰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귀문이 삶의 터전을 가차 없이 날려버렸다.
그러면 이런 짓을 두 번, 세 번도 할 수 있다. 구절곡 전체를 무너트리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귀문의 행동에는 모순이 있다.
인도부에게 타격을 줄 생각이라면 구절곡 전체를 일시에 무너트렸어야 한다. 그랬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일단 폭발에 휘말릴 것이고,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귀문은 이토록 좋은 계획을 실행하지 않았다.
자기들도 빠져나갈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곡 하나는 무너트렸지만 다른 곡에는 아직도 귀문이 건재하다. 아직 사람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지금부터 앞만 보고 달린다. 최대한 빨리! 지금보다 두 배로 속도를 높인다! 뒤처지는 놈은 따라오지 마!”
그가 소리를 빽 지른 후, 쏜살같이 질주했다.
퍼억! 파파파파팟!
암기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바람에 발밑을 살피지 못했다. 철사 같은 것이 보이면 본능적으로 피했지만, 자세히 살펴본 것이 아니라서 몇 개 정도는 건드렸다.
이번에도 건드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날아오는 암기가 무척 많다. 다른 때에 비해서 두 배는 많다.
“피해!”
키 큰 사내가 고함을 지르며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타타타탁! 타타탁!
암기들이 날아와 고목에 꽂혔다.
암기는 단발성이다.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노방을 건드린 대가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가자!”
사내가 고함을 지르며 신형을 솟구쳤다.
한데, 암기가 가득 꽂힌 산등성이를 지나치다 보니 푹 꼬꾸라져 있는 사람이 보인다.
그는 암기가 수북이 꽂혀서 고슴도치가 되어 있다.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미처 암기를 피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의 주변에는 몸을 피할 만한 곳이 없었다. 하다못해 작은 잡목 한 그루 없었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쒜에에엑!
사내는 그를 흘깃 쳐다봤을 뿐, 신형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자도 마찬가지다. 한 명이 죽은 것은 알지만, 상태를 살피지는 않았다.
보나 마나 죽었다.
인도부는 죽은 자를 쳐다보지 않는다. 동료고 상관이고 상관없다. 죽으면 무조건 버린다.
죽은 자는 그 순간부터 산 자와 다른 처지가 된다.
산 자는 사람이고, 죽은 자는 물체다. 인간이 아니다. 썩어서 흙이 될 존재다.
죽은 자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퍼엉!
구절곡 끝자락에서 흰색 화탄이 솟구쳤다.
“음!”
사내는 인상을 찡그렸다.
취화원이 귀문을 점거한 이후, 귀문 신호 방법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 알던 신호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화탄이 뜻하는 바도 짐작하지 못한다.
흰색 화탄!
구곡에도 귀문을 노리는 맹수가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인가.
사내는 인도부 다섯 명이 몰살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도 사람인 이상 죽을 수는 있다. 정말 재수 없어서 다섯 명 모두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들 모두가 죽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일시에 싹 죽지는 않는다. 그렇게 약한 놈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기분 나쁜 화탄이 솟구쳤다.
“더 빨리!”
사내는 인도부를 재촉했다.
* * *
꾸르르릉! 꽈앙! 꽝! 꽝! 꽈아앙! 쿠르르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이곡이 날아갔다.
일곡이 폭발한 후, 이곡이 폭발할 때까지 한 시진이 소요되었다. 적이 전력을 다해서 달려올 것을 염두에 두었는데,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이제 이곡에서 삼곡까지는 시간이 훨씬 빨라진다.
정동 무인들은 암기와 폭발에 익숙해졌다. 함정을 피하면서 달리는 법도 알아냈고, 삼곡과 사곡이 연속적으로 터질 것도 염두에 두었다.
저들은 경험을 토대로 더 빨리 달려들 것이다.
그러니 삼곡과 사곡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터진다.
삼곡이 터지고 사곡이 폭발할 때까지 대략 반 각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 일곡에서부터 이곡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에서 사분지 삼이 줄어든다.
정동 무인들은 삼곡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곡으로 달린다.
“하악! 학!”
“헉헉!”
월영, 소로, 청란, 규화가 거친 숨을 뿜어냈다.
“사곡은?”
“심지를 넉넉하게 늘여놨어.”
규화가 대답했다.
사곡은 시간차를 계산할 여유가 없다.
반 각이면 정동 무인이 들이칠 것이라서 바로 심지에 불을 붙이고 뛰어왔다.
만약 도화선 중간이 젖어 있거나, 쥐가 썰어놓기라도 했다면 사곡은 폭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큰 의미는 없다.
어차피 저들은 사곡도 머물지 않는다. 오곡이 귀문 중심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곧장 달려온다. 아예 삼곡과 사곡은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만 남은 거야?”
“그래. 우리만 빠져나가면 돼.”
“이거 안 될 줄 알았는데, 용케 되네. 문도를 규합한 지 얼마 안 돼서 힘들 줄 알았거든.”
“목숨이 걸리면 다 하게 되어 있어. 호호!”
그녀들은 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마음은 매우 불편하다. 금방이라도 정동 무인들이 들이닥칠 것 같아서 긴장된다.
긴장? 만약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면 사생락을 제대로 수련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사생락 수련 여부를 알 수 있는 잣대가 된다.
사생락은 삶과 죽음 사이를 가르면서 펼치는 무공이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사람을 어떤 일이 긴장시킬 수 있을까.
곡주들은 전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폈다. 그래서 급한 상황을 앞에 두고도 태연히 차를 마실 수 있고, 웃으면서 농담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우리도 갈까?”
취운이 일어섰다.
꽈아앙! 꽈앙! 꽝꽝꽝!
사곡이 터져나갔다. 산봉 전체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휘유!”
청란이 놀랍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곡주들은 산등성이를 타지 않았다. 산길을 타고 골짜기로 내려왔다. 골짜기에서 곧바로 곡구를 향해 치달린다. 구절곡을 빠져나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이제 잠시 후면 저들이 오곡을 들이친다.
그즈음, 오곡도 폭발할 것이다. 오곡부터 구곡까지, 구절곡 전체가 폭삭 주저앉는다. 구절곡 중 거의 절반이 함몰된다. 이미 폭발을 일으킨 일곡에서부터 사곡까지도 다시 붕괴된다.
구절곡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들썩거리고, 절반 이상이 파괴될 것이다
대폭발이다. 엄청난 화약이 터진다.
귀문 문도가 머물렀던 모든 것이 날아간다. 식량, 병기, 집, 동굴 등등 모든 것들이 묻힌다.
나중에 누군가가 와서 구절곡을 파헤쳐도 무인이 살았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저들 정동 무인들은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매우 궁금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쒜에에엑! 쒜에엑!
곡주들은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 * *
몽설은 밀지를 받았다.
귀문에서 급히 연락을 취해왔다.
전서구에서 전서구로, 그리고 인편으로, 다시 전서구로, 또 인편으로……. 전서구와 인편을 오가며 가장 빠른 길을 택해서 소식이 전달되었다.
툭!
길가는 사람이 마차 안으로 버드나무 한 잎을 떨궜다.
버드나무 잎사귀 하나.
잎사귀에는 아무 글도 쓰여 있지 않다. 조각품 같은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잎사귀일 뿐이다.
“아이구! 길에 버린다는 게 그만…… 죄송합니다. 일부러 장난친 건 아닙니다.”
“네.”
“이리 주시면 제가…….”
“제가 버릴게요.”
몽설은 마차 안으로 흘러든 잎사귀를 주워들고 손끝으로 빙빙 돌렸다.
버드나무 잎은 밀지다.
귀문을 대별산으로 철수시킨다는 취운의 보고다.
버드나무 잎을 마차 안으로 떨군 자도 잎사귀가 지닌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잎사귀에 담긴 뜻은 몽설과 취운만 안다.
‘철수.’
몽설은 버드나무 잎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구절곡이 세상에 드러났다는 뜻이다.
마차는 지금 구절곡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그러니 귀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취운이 철수를 단행했다. 구절곡을 포기할 정도로 대단히 강한 공격을 받았다. 아니면 더는 구절곡에 머물러서는 안 될 정도로 세상에 환히 드러났다.
귀문은 구절곡을 요새로 만들었다.
그러니 방어하는 측면이라면 구절곡처럼 단단한 곳도 없다. 하지만 구절곡에서 버틴다면 향후 활동하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귀문 문도는 구절곡을 나오는 즉시 흩어진다.
두 명, 세 명 삼삼오오 짝을 맞춰서 흩어졌다가 대별산 임시 장소에서 다시 모인다.
취화원은 이미 해산할 때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
잘못 흩어지면 얼마나 손쉬운 사냥감이 되는지, 과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과거, 취화원 살수들이 그렇게 당했다.
뼈저린 경험이 있는데 또다시 같은 일을 당할까. 바보도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귀문은 흩어지고 모이는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추격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철저하게 사람들 틈에 섞여서 조용히 이동하는 것이다.
절대 무인이라는 티를 내지 않는다.
은밀히 이동하는 것은 좋지 않다. 움직이는 속도가 늦더라도 일반인들과 함께 움직인다. 상단에 섞이기도 하고, 유람객 속에 끼어들기도 한다.
그래도 개중에는 정동 무인에게 잡히는 자가 나올 수 있다. 고문을 당할 것이고, 대별산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비록 임시거처이지만, 모이는 방법까지 말하게 된다.
그때를 대비해서 이중, 삼중으로 감시망을 펼쳐놨다.
“마차를 틀어야겠어요.”
몽설이 말했다.
팔 장로가 몽설을 쳐다봤다.
팔 장로도 버드나무 잎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마차 방향을 틀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안다. 지금 귀문으로 가고 있는데 방향을 틀라고 하면 한 군데밖에 더 있나.
“모두 무사하답니까?”
팔 장로가 속삭이듯 물어왔다.
“아직 몰라요.”
“쯧!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무사할 거예요. 언니들, 강해요. 쉽게 안 쓰러져요.”
몽설이 버드나무 잎을 창밖으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