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第二十八章 공수전환(攻守轉換) (3)
구절곡으로 보낸 인도부가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다.
스무 명 모두 행방불명이다. 산이 붕괴하였고, 아마도 붕괴할 때 휘말린 것으로 추측된다.
구절곡 전체 지형이 변해버렸다.
인도부뿐만이 아니라 귀문도 깨끗이 사라졌다.
구절곡에 치밀하게 설치해 놨던 수로며 각종 연락 기관들이 모두 매몰되었다.
“후후후!”
서리형개는 웃었다.
입은 웃는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독사보다도 더 날카롭게 번뜩거렸다.
파아앗! 팟!
눈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벌써 서너 명쯤 죽이고도 남았다.
“잠깐 한눈판 사이에 많이 컸구나. 많이 영악해졌어. 제법 물 줄도 알고. 후후후!”
인도부 스무 명이 행방불명된 것, 귀문이 조용히 철수한 것하고는 상관없이 이번 공격은 목적을 달성했다.
귀문을 정리해서 아걸의 눈과 귀를 닫을 생각이었다.
현재, 귀문은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느 구석에선가 암약할 수는 있지만, 예전처럼 활발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
몽설이 만든 신규 조직은 앞으로 보름 사이에 싹 정리해 버린다.
물론 몽설은 자신들이 잘 숨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두고 보면 안다. 얼마나 환히 노출되었는지.
몽설이 잘못 생각했거나, 자신이 잘못 알고 있거나.
어쨌든 이제는 아걸과 몽설만 남았다.
이들은 뿌리 없는 부평초다. 물 위에 떠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떠내려가야 한다.
자신은 아걸을 살살 허도기에게 밀어붙이면 된다.
그러나저러나 만사 제쳐놓고, 인도부 스무 명이 사라진 일은 대단한 충격이다.
취화원이 상당히 컸다.
예전 같으면 인도부 한두 명만 나서도 취화원 살수쯤은 초토화했는데, 이번에는 반항을 제대로 했다. 싸우지도 못하고 져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자신이 잘못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취화원은 궁지에 몰린 쥐였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쥐새끼를 정리하려고 고양이를 보냈는데, 오히려 꽉 물렸다. 취화원이 너무 궁지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궁지에 몰린 것도 모자라서 발목에 족쇄까지 채워졌으니 이를 악물고 덤비는 것은 당연하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는데 어쩌겠나. 무엇이라도 해야지.
“구절곡에서 빠져나온 귀문 잔당을 추격하고 있습니다만, 놈들이 사람들 틈에 섞이는 바람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드러내놓고 수색을 할 수도 없어서.”
“귀문이라고 하지 마라!”
“……!”
“귀문은 내 거야. 어디서 감히 귀문 잔당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 취화원 쓰레기라고 해!”
“넷!”
“아걸은?”
“마차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차로 이동하며 치료 중인 것으로…….”
“후후후!”
서리형개는 또 웃었다.
인도부는 일홀 무인을 모른다.
전가성에게 당한 일격은 매우 크다. 중상이 틀림없다. 생명이 오락가락할 수 있다. 하지만 고비만 넘기면 그 후부터는 회복이 무척 빠르다.
일반인보다 두 배, 세 배 빠르게 회복한다.
이것이 일홀 무인이다. 혹독한 수련이 체질까지 완전히 바꿔버린 경우다.
아걸은 이미 완쾌되었다.
그가 마차에서 내리지 않는 것은 안에서 무공을 참오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새로운 절기를 깨우치고 있거나. 일군과 싸우면서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을 알았을 테니까.
“천천히 따라가자. 급할 것 없어.”
서리형개는 귀문이 이 정도로 정리된 것에 대해서 만족했다.
* * *
저벅! 저벅!
나그네가 길을 걸었다.
그는 먼 길을 걸어온 듯 먼지를 수북이 뒤집어썼다. 얼굴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며칠 동안 씻지 않았는지 뿌연 먼지가 얼굴에 달라붙어 있다.
그는 피곤한 기색으로 넓은 관도를 걸었다.
당연히 발길이 무겁다. 다루나 객잔 같은 게 나타나면 당장 쉬어 갈 태세다.
그때, 앞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뭐야?’
나그네는 긴장했다.
앞에서 걸어오는 자는 한눈에 봐도 무인이다. 굉장히 사나운 기운이 물씬 풍긴다.
무인은 평상시 기도를 가라앉히려고 애쓴다. 사납고 날카로운 기운은 눌러 앉히고, 편안하고 자상한 모습이 일어나도록 노력한다. 그래야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걸어오는 자는 자신의 기도를 전혀 숨기지 않는다.
사람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날카로운 기운을 마음껏 드러낸다.
‘괜히 시비라도 걸리면 피곤해.’
나그네는 어깨라도 부딪칠까 봐 길옆으로 비켜섰다.
사내가 지나가고 나면 그제야 걸어갈 생각이다. 그런데!
‘응?’
나그네는 뒤쪽에서도 누군가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길옆에 앉아있던 무인도 일어섰다.
모두 세 명이다.
앞에서 하나, 뒤에서 하나, 옆에서 하나.
그들이 자신을 향해 걸어온다.
나그네는 자신이 점 찍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놈들. 뭐야?’
나그네는 재빨리 다가오는 자들을 쓸어봤다. 관도에서 강도나 비적질을 할 리는 없고.
‘서리형개!’
나그네는 슬그머니 진기를 끌어냈다.
자신이 먼저 움직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시비를 걸어오면 최선을 다해서 발악해야 한다. 안 그러면 당한다. 이 자들은 사람 죽이는 살귀들이다.
세 명이 나그네를 에워쌌다.
“왜 따라와?”
다짜고짜 한 말이다.
“따라오다니, 그게 무슨……?”
나그네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왜 따라오냐고!”
“따, 따라오다니? 난 내 갈 길만 가는데 무슨……?”
“왜 잡놈이 따라붙고 지랄이야! 너 같은 놈이 따라붙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피곤한 거 아니야.”
앞에서 다가온 무인이 말을 하면서 검을 잡았다.
나그네도 그냥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단검을 쥐었다. 그 순간,
푹!
“악!”
나그네는 등 뒤에 일결을 맞고 비명을 질렀다.
언제 단검을 뽑았는지 모르겠다. 칼이 들어온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푸욱! 푹푹! 푹!
등을 찌른 자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계속 찔러댔다.
나그네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옆에서 다가온 자가 두 손을 꽉 잡고 있다. 손아귀 힘이 너무 억세서 마치 수갑이 채워진 듯한 느낌이다. 전혀 움직일 수 없다.
“흐흐흐! 조금 뜨겁지?”
스릉! 푸욱!
앞을 막아선 자도 장검을 뽑더니 배를 찔렀다.
나그네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는 바르르 떨면서 길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구경하고 있다. 그 누구도 나서서 개입하지 않는다.
누가 흉신악살 같은 자들에게 말이라도 걸 수 있을까. 사람을 죽이고 있는데 끼어들면 죽기밖에 더 하나. 그러니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
나그네를 죽인 사내들은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뿔뿔이 흩어졌다.
나그네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길가 도랑으로 흘러들었다.
* * *
전쟁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그중에 가장 어처구니없는 변수가 오직 한 사람에 의해서 전쟁의 승패가 좌우될 때이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밀어붙여서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는데 한 사람이 툭 튀어나와서 전세를 역전시킨다.
그 영웅이 살고 죽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가 뛰어나와서 질 수밖에 없었던 자들이 죽을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덤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군대에는 늘 이렇게 싸움의 주축이 되는 자들이 있다.
아귀처럼 싸우고, 잘 죽지도 않고, 본인이 지닌 능력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강한 능력을 끌어내는 독종.
육군은 그런 자들을 모았다.
애국심이나 아니면 사명감, 동료애 등으로 무장된 군병이 아니다. 오직 싸움질 하나로 열 명, 백 명, 천 명 몫을 해낼 수 있는 자들만 추려냈다.
그런 자들을 휘하에 두고 적면대(赤面隊)라고 했다.
적면대 백 명은 육군의 호위대다. 늘 육군 곁에 머문다. 전쟁터에 서면 늘 얼굴에 피칠을 하고 나타나기 때문에 적면대라고 불린다. 당연히 싸움에는 이골이 났다.
적면대가 전쟁터에 나서면 적군은 사색이 되었다.
적면대는 그야말로 무적 부대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비서(飛鼠)가 당했습니다.”
“비서가?”
“네.”
“……음!”
육군 협성립은 침음했다.
비서는 발 빠르고 눈치 빠른 첨병(尖兵)이다.
군(軍)에 있을 때 눈 여겨봐 두었다가 중원에 나오며 데리고 왔다.
적면대는 아니다. 싸움을 시키기 위해서 데려온 자가 아니라 정탐을 잘해서 데려왔다.
“비서라면 눈치채지 않게 추격했을 텐데. 못나도 풍도곡이란 말인가? 후후! 비서가 어떻게 당했나?”
“웬 놈들이 몸을 난자했습니다. 단검에 찔린 자리가 스무 군데가 넘습니다. 장검에 찔린 곳도 네 군데나 됩니다. 죽이는 게 아니라 아예 넝마를 만들어놨습니다.”
“……경고군. 내게 보내는.”
육군은 눈살을 가늘게 좁혔다.
정동 무인은 비서를 일부러 잔인하게 죽였다.
뒤따라오지 말라는 경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죽인 건 너무하잖아? 짐승 새끼들도 아니고.”
짐승, 맞다. 인도부는 하나같이 잔인하다. 칼만 잔인한 게 아니다. 성품도 잔인하다. 풍도곡 일홀도에게 배워서 그런지 칼에 자비라는 게 없다.
만약 사부, 공부 허도기가 풍도곡 귀신들을 짓누르지 않았다면 세상은 벌써 피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사부가 놈들을 짓눌러서 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풍도곡이라는 우리에서 끄집어냈다. 저놈들은 칼 쓸 일만 남았다.
하물며 칼 쓰기 딱 좋은 핑곗거리를 내주었으니 당장 칼을 쓰지.
비서를 서두로 서리형개에게 붙여놓은 첨병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놈에게 몇 명이나 붙었냐?”
“네 명입니다.”
“인도부는?”
“대략 서른 명쯤 기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놈들이 사방 십 리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더 쫓지 마.”
“……!”
“쫓으면 가차 없이 죽일 놈들이야.”
“네! 알겠습니다!”
육군은 추격을 중단시켰다.
서리형개를 쫓아야 하는데, 수하들로는 역부족이다. 자신이 직접 따라붙어야 한다.
‘사람 참 귀찮게 하는데 재주가 있어. 옛날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꼭 탈을 내.’
육군은 웃으면서 일어섰다.
그와 칠군은 다른 소축십검과 기질이 다르다.
육군과 칠군은 전쟁터를 내 집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공부에게 배운 조명천검으로 적군을 쓸어버리면서 살았다. 말을 타고 질주하며 피를 뒤집어썼다.
밀실에 앉아서 무공수련을 한 사형, 사제들과는 검이 아주 다르다.
그는 성검문보다는 차라리 풍도국 귀신들과 마음이 더 잘 맞는다.
그래서 저들을 이해할 수 있다.
저들이 어떤 마음으로 비사를 죽였는지 알겠다.
그래서 자신도 마음 놓고 저들을 죽일 수 있다.
맹수와 맹수의 싸움은 탈이 안 난다. 약하면 죽고, 강하면 죽인다. 매우 단순한 이치다.
“비서를 죽인 것만은 용서하지 못하지. 내 눈이나 마찬가지인 놈이었는데. 모두 명이 있을 때까지 대기해.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완벽하게 몸을 숨기고 있어.”
육군이 군에서 데려온 싸움 귀신들, 적면대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