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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39화 (139/600)

#139화. 第二十八章 공수전환(攻守轉換) (4)

- 십칠로(十七路) 사군(四群) 시신 발견.

- 이십육로(二十六路) 칠군(七群) 시신 발견.

- 오로(五路) 구군(九群) 시신 발견

대별산으로 움직이고 있는 귀문 문도들이 속속 습격당하고 있다.

도착 날짜에 구애받지 마라.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 안전만 생각해서 움직여라.

매우 간단한 명령이다.

대별산으로 움직이기 곤란하면 굳이 무리해서 올 필요 없다는 말까지 했다.

모두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했다. 먼 길을 빙 돌아서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배를 타고 가는 사람, 말을 이용한 사람…… 움직이는데 필요한 자금은 넉넉히 주었다.

그런데도 습격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귀문의 정보망이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네요.”

몽설이 근심 깊은 얼굴로 말했다.

“모두 잘할 겁니다. 모든 수련 중에 제일 중점을 둔 부분이 피신, 도피 아닙니까.”

팔 장로가 말했다.

몽설은 취화원처럼 일방적으로 도륙당하는 일은 두 번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문도에게 도피하는 법을 가르쳤다. 숨는 법, 평범하게 보이는 법,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드는 법을 수련시켰다.

더불어서 서리형개의 귀문은 철저히 차단했다.

그들은 포섭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차단한 상태에서 움직였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몽설이 만든 조직은 갓 심은 풀이다. 서리형개의 귀문은 깊이 박힌 뿌리다.

뿌리를 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몽설은 차단한다고 했지만, 땅 위에 올라온 풀만 누른 것에 불과했다. 뿌리는 여전히 숨죽인 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 터지는 것이다.

몽설의 귀문은 구조상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공격이 있을 거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어요.”

“성검문을 노리고 만든 조직이에요. 이 정도는 약과라고 생각하세요. 피해가 크기는 않을 거예요.”

팔 장로가 몽설을 안심시켰다.

* * *

‘이건 아냐!’

몽설은 밀지를 펼치자마자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 구로(九路) 육군(六群) 시신 발견.

밀지에는 딱 한 줄만 적혀 있었다.

구로로 움직이던 여섯 번째 무리가 죽었다는 말이니 반가운 소식 아닌가. 문도들이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어제와 비교하면 피해가 확 줄어들었지 않나.

한데 몽설은 이게 오히려 더 나쁘다고 봤다.

그렇다. 이건 매우 나쁜 징조다.

구절곡을 탈출한 문도만 죽는 게 아니다. 중원에 깔아놓은 눈과 귀도 죽고 있다.

실제로 귀문 문도가 안 죽은 것이 아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까지 죽어서 밀지 자체가 차단되고 있다.

틀림없이 고정 간자들의 신상에 탈이 생겼다.

‘어떡하지? 이렇게 되면 취화원 꼴을 면치 못해. 또 몰살당하는 거야? 그렇게 조심했는데.’

몽설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나쁜 소식?”

아걸이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몽설은 밀지를 내밀었다.

아걸이 밀지를 받아서 읽었다. 적힌 내용이라고는 한 줄 뿐이어서 쓱 훑어보는 것으로 족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해. 나도 문도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지 못해. 이러니 뭘 할 수 있다고. 일단 대별산에서 만나야 해. 그래야 뭐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대별산에 모이는 것도 문제다. 지금 같아서는 문도들이 대별산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대별산에서 모인다고 해도 그곳 역시 안전하지 않을 것 같다.

“도와줄까?”

아걸이 말했다.

“정말?”

몽설이 반색했다.

사실, 아걸에게 도움을 청하면 안 된다. 지금은 귀문 일에 끼어드는 모든 사람이 위험하다. 정동 무인들이 물귀신처럼 다 끌고 지옥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너무 답답해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반색했다.

“훗!”

아걸이 몽설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방법이 있겠지.”

아걸이 몽설의 어깨를 툭툭 치고 걸어갔다.

마차가 객잔 앞에서 멈췄다.

오늘은 객잔에서 쉬어 갈 생각이다.

아걸은 마차가 멈추기 무섭게 고양이가 그려진 황색 깃발을 객잔 대문에 꽂았다.

무인들이 흔히 취하는 연락 방법이다.

무인은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하고자 할 때, 객잔이나 주루, 다루 등 잠자리를 만든 곳에 깃발을 꽂는다. 서로 약속된 말을 전하는 것인데, 어떤 말인지는 오직 소통 당사자들만 안다.

아걸이 깃발을 꽂는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아걸을 아는 사람이 보면 매우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무림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데, 누구에게 연락을 취하는 거지? 아는 사람이 있었나?

아는 사람이 있다.

아걸은 적랑대에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귀문 문도 대신에 적랑대가 눈과 귀가 되어 달라는 전언이다.

“미안해.”

몽설이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뭐가?”

“괜히 적랑대까지 위험에 빠트려서.”

“이번 일은 나 때문에 시작됐으니까 미안할 것 없어. 문도를 죽이는 사람이 일홀문도이니 오히려 내가 미안해야 하고. 지금은 취화원도 내 식구야. 내 식구가 죽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몽설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나중에 취화원이 자리 잡으면 적랑대도 도와줘. 그 사람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알았어. 잊지 않을게.”

몽설이 다짐하듯 말했다.

사실, 적랑대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적랑대를 귀문 무인을 알지 못한다. 누가 어디로 도피하는지 전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아걸이 적랑대를 움직이기는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못한다. 다만 지금은 누구라도 움직여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효과가 있던 없든 귀문 무인들을 살펴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몽설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 이로(二路) 팔군(八群) 시신 발견

시신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 한두 개씩 들어온다.

보고가 시간이 지날수록 적어지고, 늦어진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

몽설은 잠을 설쳤다. 잠을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니 날이 밝아왔다.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문도가 걱정되어서 잠이 안 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곡주들에게 끌고 가라고 할걸.’

후회도 치밀었다.

곡주가 앞장서서 문도를 이끌었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몰살된다. 일단 곡주와 같이 움직이면 즉각 표적이 된다. 집중적으로 공격을 당할 것이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딱 죽기 십상이다.

곡주들은 무적이 아니다.

중원에는 곡주를 능가하는 무인이 많다. 그리고 곡주는 마음 놓고 검을 쓸 만큼 사생락이 뛰어나지 않다.

곡주들의 사생락은 급습에 아주 효과적이다. 하지만 풍도곡이나 성검문 상대로는 얼굴도 비치지 못한다. 아직 사생락이 그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뿔뿔이 흩어지는 걸 택했는데, 희생자가 의외로 많다.

‘어떻게 하지?’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몽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펄럭!

그녀가 문을 열자 문틈에 끼워져 있던 종이가 펄럭이며 날아갔다.

몽설은 재빨리 종이를 낚아챘다.

역시 밀지다! 귀문 문도들의 안위를 말해주는 밀지, 하지만 취화원 작성 방식과는 아주 다르다.

- 십구관도(十九官道) 일곱 명 습격. 다섯 명 사망, 두 명 포로.

- 황하수로(黃河水路) 만선호(滿船號) 네 명 습격. 두 명 사망, 두 명 포로.

밀지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던 사실이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포로!

귀문 고정 간자도 포로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만 지켜봤다.

그렇다면 이 보고는 정동 무인 주변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정동 무인 속으로 스며 들어간 누군가가 실제로 벌어진 일을 적어주었다.

적랑대 간자다!

적랑대는 서리형개 바로 옆까지 바짝 파고들었다.

아걸이 객잔 기둥에 깃발을 걸자 신분이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이런 행동은 목숨을 내놓아야만 할 수 있다.

적랑대의 결집력이 매우 강하다.

멸문해버린 적랑대 따위는 등지고도 살 수 있으련만, 아직도 적랑대를 일으키고자 발버둥 친다.

‘우리 취화원도 반드시 일어서야 해.’

몽설은 밀지를 품에 넣었다.

밀지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밀지에 담긴 정신은 두고두고 몽설에게 가르침을 줄 것 같았다.

몽설은 아침 길을 걸었다.

산책 삼아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사로잡힌 사람들이 꽤 많다. 다시 말해서 대별산 임시거처가 이미 노출되었다.

여기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 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버릴 수도 없다. 아걸 말마따나 내 식구들 아닌가. 하지만 문도를 모두 살릴 방법이 없다.

일단 대별산에서 모두 모여야 하는데, 바로 그 자리가 함정이다.

몽설은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걸었다.

방법이 없다.

“하아!”

몽설은 답답함을 떨치려는 듯 큰 숨을 토해냈다.

“나 다 나았어.”

아걸이 아침밥을 먹으며 말했다.

“아냐, 아직 안 나았어. 더 있어야 해.”

“다 나았다고.”

“그래. 다 낫다고 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몽설이 아걸을 쳐다봤다.

“다 나았으면 움직여야지.”

“무슨 말이야? 뭘 움직이겠다고…….”

몽설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손이 부르르 떨렸다.

아걸이 또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한다. 아걸이 뭔가를 할 때마다 그의 몸에 칼자국이 생긴다.

이번에는 또 어디를 다치려고 그러나? 매번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나. 몸이 나았다고? 아직 잘 걷지도 못하면서 뭐가 나았다고 그래!

아걸이 밥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지금 문도들이 걱정되잖아.”

“그래서?”

“뭘 어렵게 생각해. 문도를 구하면 되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좀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싹 거둬들여. 대별산에 닿기 전에 거둬들여서 다른 곳으로 가.”

“풋! 그게 쉬운 것처럼 말하네?”

“어려울 것도 없어.”

몽설은 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불길한 생각이 심하게 일어난다.

“설마……?”

“내가 저놈들 주의를 끌어당길게.”

“안 돼!”

몽설은 아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소리쳤다.

저들에게는 서리형개가 있다. 지금 서리형개와 부딪치겠다는 소린가? 죽으려고?

“너무 걱정할 거 없어. 지금 문도를 공격하는 자는 정동 무인이야. 그자들을 처리하면 돼. 그사이에 너는 문도를 규합해서 안전한 장소로 피신해. 이대로 가면 문도들아 모두 죽을 수도 있어.”

“저들과 싸우면 오빠도 죽어!”

“풋! 둘째 사형만 피하면 난 괜찮아. 정동 무인들은 날 죽이지 못해. 나 믿지? 어디로 가는지 알려줘. 거기로 찾아갈게.”

“안 돼! 이런 거 말고 방법이 있을 거야.”

나 믿지? 아걸도 안 믿는다. 전에는 믿었는데, 이제는 못 믿는다. 믿으라고 해놓고 맨날 칼만 맞고 돌아온다. 아걸이 믿으라며 한 말 중에 정상적인 말이 하나도 없다. 무조건 안 되는 것을 하면서 믿기만 하란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문도를 살리려면 누군가 정동 무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놔야 한다.

몽설의 마음을 아는지 아걸이 손을 뻗어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믿게 해 줄게. 정말 안전하게 움직일게.”

“……미안해. 말리고 싶은데 못 말리겠어.”

“내가 얘기했잖아. 취화원도 내 식구라고. 다 같이 식구 살리자는 건데 뭐가 미안해. 가서 살려. 자! 밥 먹자. 한동안 못 보는데 밥이라도 따뜻하게 먹어야지.”

아걸이 나물을 집어서 그녀의 밥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자신도 맛있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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