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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42화 (142/600)

#142화. 第二十九章 이차패배(二次敗北) (2)

이른 아침, 아걸과 서리형개는 서로 칼을 맞댔다.

오늘 이런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걸이 불쑥 찾아왔기 때문에 서리형개 입장에서는 반격을 당한 격이 되었다.

아직은 아걸이 서리형개보다 밑이다. 아걸이 약하다. 이것이 냉정하게 판단한 객관적 평가다. 아걸도, 서리형개도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두 사람의 차이라는 것은 머리카락 한 올 정도에 불과하다.

누가 이길지는 칼을 맞대봐야 안다.

스읏!

아걸이 반철도를 겨눴다.

감각망기술이 일어났다. 몰안이 형성되었다.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떨쳐버리고 서리형개의 심장을 노린다.

파앗!

도신일체가 이루어졌다.

아걸은 사라지고 칼만 남았다.

“네 칼은 사대문주의 탄궁도를 많이 흉내 냈어. 심신일체(心身一體), 도신합일(刀身合一), 신멸도존(身滅刀存), 직선박흉(直線迫胸). 아닌가?”

“맞아.”

아걸은 순순히 시인했다.

자신이 펼치는 도법은 일초무적도라고 알려진 사대문주의 탄궁도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합치고, 일치된 정령을 칼과 결합한다. 몸은 사라지고 칼만 남으며, 칼과 가슴을 잇는 최단 거리를 확보한 후 일직선으로 가슴을 공격한다.

분명히 사대문주의 탄궁도다.

하지만 탄궁도가 아니다. 탄궁도의 형태를 빌려왔지만, 칼에 집중되는 힘은 전혀 다르다.

사대문주는 진기로 탄궁도를 이끌었다.

예전의 자신도 진기를 활용해서 탄궁도를 사용했다.

지금은 진기까지 잊어버린다.

몰안을 일으키면 진기가 저절로 끌어내진다. 심신일체, 도신합일, 신멸도존까지 단숨에 치닫는다.

진기로 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칼을 쓴다.

이런 차이는 직선박흉에서 명확하게 구분된다.

탄궁도는 가슴을 치는 것으로 끝난다. 일격에 가슴을 뚫어버리니 더 할 것도 없다.

아걸의 일홀도는 직선박흉을 펼친 후에도 이어진다. 계속 몰안이 유지된다. 도신일체가 가슴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상대가 직선박흉을 피하면, 곧 따라붙는다. 가슴을 꿰뚫리면 그제야 비로소 먹이를 놓아준다.

그러니 서리형개가 하는 말에 ‘맞다’라고 답한다.

“탄궁도를 사용한다면 사대문주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도 알겠군.”

“…….”

“몰라? 역대 문주들의 무공은 줄줄이 꿰고 있으면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모르는 거야? 설마 제 명줄 다 채우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부가 삼십육 문주의 무공을 보여주어서 안다. 기억한다. 수련까지 해냈다. 하지만 일홀문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무림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사대 문주는 말이야, 이런 식으로 죽었어.”

파앙!

서리형개가 쾌속하게 덮쳐왔다.

덮쳐온다? 덮친다는 말은 잘못되었다. 살짝 움직인다 싶었는데 어느새 칼이 떨어졌다.

파아앗!

칼 세 개가 떨어진다.

좌우에 두 칼은 거의 동시에 떨어지고, 가운데 칼은 조금 늦게 떨어진다.

서리형개가 삼도일살을 제대로 쳐냈다.

‘훗!’

아걸은 가는 헛바람을 토해냈다.

서리형개의 칼이 옛날보다 훨씬 빠르다. 그때도 육신을 난자당했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섬광이다.

삼도 중 어느 것이 진검이고, 어느 것이 허초인가.

옛날에도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삼 도를 모두 맞았다.

왜 삼도일살만 보면 실초와 허초를 구분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저절로 그런 생각이 치민다.

아마도 삼도일살이 생각을 유도해내는 것일 거다.

가가각! 가각! 가가가각!

서리형개의 칼과 반철도가 얽혔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데 쇳덩이가 철판을 긁으면서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두 칼이 너무 빨리 부딪쳤다.

두 사람은 가만히 서 있고, 오직 칼만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탕! 탕!

두 사람은 거칠게 칼을 부딪친 후, 두 걸음씩 물러섰다.

“후욱!”

아걸은 거리를 벌리자마자 묵은 숨을 토해냈다.

서리형개와 칼을 부딪치는 동안에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호흡이 막혔다. 어떤 식으로든 호흡에 신경을 쓰면 칼을 맞을 수 있는 처지였다.

“후후후!”

서리형개가 웃었다.

서리형개의 칼은 그가 말한 대로 화염도다. 칼에 화기가 담긴다. 울분과 열기가 담긴다. 난폭한 성정이 고스란히 담겨서 초수를 거듭할수록 강렬해진다.

스읏!

아걸은 본격적으로 일홀도를 일으켰다.

감각망기술에서 몰안으로, 그리고 육신은 떨구고 검만 남은 단계에서 서리형개의 심장을 겨눴다.

칼과 심장 간의 최단 거리가 잡혔다.

진기로 간파한 거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대문주의 탄궁도다. 아걸은 몰안으로 잡았다. 통각, 후각, 청각 등등 육신의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오직 눈만 남았다. 얼굴에 달린 두 눈이 아니다. 마음의 눈, 감각의 눈이 거리를 붙들었다.

서리형개는 칼에 분노, 울화를 담았다. 칼과 몸이 하나가 된다. 다른 것은 모두 잊는다.

화염도는 초수를 거듭할수록 강해진다. 방금 부딪혔을 때보다 이번이 더 강할 것이다.

타탓!

아걸이 먼저 솟구쳤다.

몰안이 잡은 거리를 반철도가 쑤시고 들어간다. 칼과 서리형개의 심장 사이에 존재하던 공기가 사라진다. 거리가 팍! 압축된다. 그리고 칼이 심장을 쑤셨다.

타앙!

살을 쑤시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쇳날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서리형개가 반철도를 막아냈다. 전가성의 가슴도 뚫은 칼인데, 서리형개는 간단히 막았다. 그리고 그의 칼이 반철도 도신을 따라서 밑으로 쭉 미끄러졌다.

타악!

화염도가 반철도를 위로 쳐올렸다.

순간, 아걸은 상반신이 환히 노출되었다.

옛날, 서리형개는 사부에게 배가 갈렸다. 그 후부터 그는 오직 배부터 공격한다. 다른 부위는 첫 칼 다음에 친다. 처음 칼은 무조건 배를 갈라낸다.

쒜에에엑!

화염도가 셋으로 갈라졌다.

분검(分劍)은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놀라운 쾌검이다. 검을 두 개만 갈라내도 천하제일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리형개는 무려 세 개가 쪼개낸다.

이런 칼을 가지고도 무림에 우뚝 서지 못하니 정말 억울할 것이다.

칼이 아걸의 배를 갈랐다.

가슴, 가슴, 복부! 세 군데가 동시에 쓸린다.

타앙! 탕탕!

아걸은 무의식중에 삼도를 뻗어냈다.

자신도 어떻게 칼을 썼는지 모른다. 거의 습관처럼 칼을 뻗어냈다. 그리고 뒤로 훌쩍 물러섰다.

“응?”

서리형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아걸이 삼도일살을 막아내자 다소 놀란 듯했다.

“후우!”

아걸은 또 묵은 숨을 쏟아냈다.

탄궁도 같았으면 당했다. 탄궁도는 공격 초식만 있지 수비 식이 없다.

수도(守刀) 중 가장 좋은 칼은 이십오대 문주의 수신도다. 수신도는 전문적으로 수비에 치중한다. 하지만 삼도일살은 수신도를 펼칠 기회조차 빼앗는다.

삼십육 문주의 칼로 상대했다면 저번처럼 또 당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몰안이다. 몰안은 일격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항상 상대방의 심장을 잡아챈다.

서리형개의 심장이 터지지 않고 움직였다.

몰안도 심장이 움직이는 대로 방향을 바꿨다. 서리형개가 삼도일살을 터트리자, 몰안도 마주쳐갔다.

무의식이 의식이고, 의식이 무의식이다. 자신도 모르게 칼을 뻗어냈다는 말은 모순이다. 몸에 붙어있는 습관대로 칼이 뻗어졌다. 서리형개의 칼을 정확하게 보고 막았다.

“후후후! 많이 늘었군.”

서리형개가 칼을 들어 허공에 휘휘 휘돌렸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의 칼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진다. 화가 날수록 난폭해진다.

‘다음에는 당한다!’

아걸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방금 부딪쳤던 일전이 아걸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칼도 한계다. 그 이상 더 빠르게 쳐내지 못한다.

지금보다 더 빨라지려면 도약이 필요하다.

충격? 깨달음? 기연? 무엇이 되었든지 노력 이상의 것이 도와주어야 한다.

아걸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칼이 아주 느려졌어. 전 같았으면 벌써 몇 군데 얻어맞았을 텐데, 멀쩡하잖아.”

“그런데 이번 칼에는 널 썰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도 같은 생각이지? 어디를 썰어줄까? 저번처럼 가슴을 쭉 갈라줄까? 가슴에서 등까지 한 바퀴 돌아줘?”

스읏!

서리형개가 칼을 들어 올렸다.

서리형개의 기수식은 늘 똑같다. 어떤 상대, 어떤 병기를 만나도 같은 기수식이다.

그렇다고 칼도 같지는 않다. 삼도일살이 터지는 것은 같지만 칼을 쳐내는 방향과 위력은 시시때때로 달라진다.

그는 상대를 벨 수 있는 칼만 쓴다.

‘마지막 일격이라면……!’

스읏!

아걸은 오체진감을 일으켰다.

감각망기술로 감각부터 죽이는 것이 아니다. 청각으로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고자 한다. 땅을 딛고 있는 두 발을 통해서 땅의 울림을 듣는다.

그런 상태에서 몰안으로 들어갔다.

몰안은 칼이 아닌 발에 집중되었다. 도신일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지만, 서리형개의 심장을 찾지 않는다. 몰안을 쫓아서 두 발과 땅을 주시한다.

쒜에에엑!

서리형개가 공격해 왔다.

역시 삼도일살이다.

삼도일살은 검초를 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칼이 아니다. 사슴이 호랑이의 습격 방법을 몰라서 당하나? 알면서도 당한다. 워낙 빠르고 강하기 때문에 당한다.

쿵쿵쿵쿵!

아걸은 땅의 울림을 들었다.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지만, 그는 뚜렷하게 들었다.

‘지금!’

아걸은 본능적으로 칼을 써야 할 순간을 잡아챘다. 그리고 느낌이 오자마자 칼을 떨쳐냈다.

쒜에에엑! 까앙!

반철도가 화염도를 막았다. 한데,

푹! 써걱! 쓰아아악!

서리형개의 칼이 배를 갈랐다. 곧이어 휘돌려진 칼이 예전처럼 가슴을 가로로 가르며 지나갔다.

“크으윽!”

아걸은 신음을 쏟으며 물러섰다.

“겨우 이거밖에 안 되나?”

서리형개가 웃었다.

“으으음!”

아걸은 손가락에 진기를 돋워 배와 가슴을 꾹꾹 눌렀다.

지혈됐는지 피가 잠시 멈췄다. 그래봤자 몸을 움직이면 다시 터질 테지만.

‘역시 안 돼.’

아걸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끌어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썼다. 그런데도 한 칼밖에 막지 못했다. 두 칼이 피 맛을 보고 지나갔다.

스읏!

서리형개가 끝장내겠다는 듯 칼을 들었다.

아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 기억력이 왜 이래? 내가 한 칼만 맞아준다고 했지, 두 칼까지 맞는다고 했어?”

“네 기억력이야말로 엉망인 걸 몰라? 내 칼을 맞고 싶지 않으면 날 죽이라고 했지. 날 죽이면 돼. 다른 말은 필요 없어. 죽이던가, 죽던가.”

“이런 것도 있지.”

스읏!

아걸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천천히 물러섰다. 반철도를 들어 올리면서. 그러던 한순간,

슈와왁!

아걸이 신형을 뒤로 뺐다.

오체진감으로 땅의 울림을 듣는다. 땅을 딛고 있는 두 발을 통해서 땅의 말을 듣는다.

몰안이 발에 집중된다.

아걸은 지금 그가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른 몸놀림으로 신형을 빼내는 중이다.

쒜에에에엑!

그는 어떤 신법을 전개한 것보다 더 빠르게 치달렸다. 서리형개를 노리고 덮쳐간 것이 아니다. 전장을 떠나 멀리 도주하고 있다. 몸을 빼내고 있다.

“어? 하, 하하! 하하하하!”

처음, 서리형개는 깜짝 놀라서 쫓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큰 웃음을 터트렸다.

아걸이 중상이다.

숨통을 마저 끊어놓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풍도곡 사람이 할 만큼 한 것이다.

서리형개가 인도부에게 말했다.

“성검문 놈에게 전해.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하라고. 저런 놈도 못 잡으면 병신이지. 누굴 탓해. 하하하!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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