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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43화 (143/600)

#143화. 第二十九章 이차패배(二次敗北) (3)

아걸은 전력을 다해서 뛰었다.

배와 가슴에 난 상처에서 붉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내렸다.

‘이대로 가면 과다출혈로 죽는다. 죽지는 않더라고 기력이 탈진해서 쓰러질 거야.’

안전한 곳을 골라서 지혈부터 해야 한다.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안전한 장소는 어떤 사람에게 쫓기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지금은 그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

서리형개는 쫓아오지 않는다.

풍도곡은 근본적으로 아걸이 허도기와 싸울 때까지는 건드리지 않는다.

성검문에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서 나오기는 했지만, 이 정도 칼을 맞아줬으면 할 만큼 했다. 성검문에 할 말이 생겼으니 더는 쫓아오지 않는다.

더불어서 자신과 한 약속도 지킬 것이다.

더는 취화원 살수를 건드리지 않는다. 사문을 배신하고 공부와 함께 사부를 죽인 악독한 사형이지만, 그래도 무인이다. 이 정도는 믿어도 될 것이었다.

허나, 다른 자가 쫓아오고 있다.

타타타탁! 타타탁!

뒤쫓아오는 발걸음이 매우 가볍다.

오체진감이 땅 울림을 받아들였다. 쫓아오는 자의 무게가 충분히 가늠된다.

적어도 소축십검에 버금가는 고수다.

이런 자가 쫓아온다면 안전한 장소는 없다고 봐야 한다.

“후욱!”

아걸은 개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이 없다면, 편한 곳에서 멈춰야 한다.

개울가는 사람도 없고, 맑은 물도 흐르고, 싸우기 좋을 정도로 평평하기도 한다.

괜찮은 장소다.

아걸은 상의를 벗어서 쏟아져 내리는 피를 닦았다.

‘지혈부터…….’

손가락에 진기를 돋워서 장문혈(章門穴)부터 신궐혈(神闕穴)까지 촘촘하게 눌렀다. 가슴도 눌렀다.

찢어진 상처는 꿰매는 것이 최선이지만, 우선 당장 급한 대로 쏟아지는 피부터 멈추게 한다.

타타탁! 타타타탁!

땅이 계속 울린다.

이럴 때는 오체진감을 풀어버리고 싶다. 땅 울림을 느끼지 않는다면 쫓기는 자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아걸은 서둘러서 금창약을 발랐다.

서리형개를 만나러 올 때부터 한칼 정도는 맞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금창약을 넉넉히 챙겼다.

밀가루 반죽 바르듯이 상처에 끈적끈적한 연고를 듬뿍 처발랐다.

그런 후, 웃옷을 찢어서 갈라진 상처를 꽉 묶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로도 힘껏 묶었다.

상처를 치료하면서 다시 느낀 것인데, 아무리 봐도 서리형개의 칼은 일절(一節)이다.

‘일홀도를 펼쳤는데도 당했어.’

같은 생각이 몇 번이고 일어났다.

삼도일살이 터지기 직전 몰안만 남기고 육신을 잊었다.

그 순간, 아걸은 오직 서리형개의 심장만 봤다. 심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데 몸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난다. 몰안만 남고 육신을 잊을 때, 경맥 전체가 강한 진동을 일으킨다. 몸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매우 강렬한 진동이 생긴다.

그 진동이 상대방의 병기를 일 촌 앞에서 옆으로 밀어낸다.

전가성은 그 힘에 떠밀려서 심장을 찌르지 못했다. 배를 찔렀다.

서리형개의 칼도 찌르는 칼이었다면 심장을 가격하지 못하고 밀려났을 것이다. 전가성처럼 배까지는 내려가지 않는다고 해도 목표를 정확하게 찌르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이런 진동은 환각처럼 보일 수도 있다.

목표를 정확하게 노리고 병기를 뻗었는데, 애병이 스르륵 미끄러져서 다른 곳을 친다면 사술로 여기지 않겠나.

불행하게도 서리형개의 칼은 찌르는 칼이 아니라 베는 칼이었다. 그래서 진동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 칼이 살갗 일 촌 위에서 미끄러지기는 했지만, 베는 데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걸은 개울물로 반철도에 묻은 피를 닦았다.

타타탁! 스으으읏! 타탁!

상대방이 신형을 늦췄다.

자신을 발견하고 차분히 다가온다.

생각했던 대로 고수다. 오체진감으로 느끼는 진동이 매우 정밀하다. 투박하지 않다. 걸음걸이가 일정하다. 걸음을 걸을 때는 몸의 균형이 매우 좋다.

‘지금 상태로 싸우면 피곤한데.’

아걸은 반철도를 씻으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몸이 매우 안 좋지만 그래도 한칼 정도는 더 쓸 수 있다. 전가성을 찔렀던 칼을 뻗어낼 수 있다.

상대가 그 칼에 당하면 자신이 사는 것이고, 피하면 죽는다.

일홀도를 두 번 이상 뻗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서리형개의 칼이 너무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을 생각한다.

전가성과 싸웠을 때처럼 일검을 맞는다.

몰안이 일 촌 앞에서 상대방의 검을 밀어낼 것이니, 치명적인 일격만은 피할 수 있다.

그때, 자신이 쓸 수 있는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상당한 부담이다. 지금 몸 상태에서 다시 일격을 맞는다면 움직이기 힘들다. 어쩌면 죽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그만큼 서리형개의 칼이 정확했다.

스읏! 슷!

반철도를 물로 닦았다.

쉬잇!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면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사내는 잘생겼다. 눈이 여인처럼 크고, 코가 오뚝하다. 입술도 도톰하다. 굵직한 사내 얼굴은 아니다. 오히려 섬세하고 조각 같은 용모다.

하지만 사내에게서는 굳센 기운이 물씬 풍긴다.

사내에게 ‘아름답다’라는 말을 쓰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사내가 맹수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아걸은 사내에게서 거친 야수의 냄새를 맡았다.

매우 이상하다. 사내는 소축십검 같지 않다. 좋은 환경 속에서 체계적으로 무공을 수련한 것이 아니라 들판을 뛰어다니면서 먹이를 잡아먹으며 생존한 맹수처럼 보인다.

사내는 소축십검보다는 풍도곡 살귀가 더 어울린다.

야생마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 아니라 황야를 뛰어다니는 활개 치는 맹수다.

소축십검 중에 이런 자가 있었나?

“명부판관이 이렇게 젊었나? 난 좀 나이가 있는 줄 알았지.”

사내가 아걸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는 이미 아걸의 몸 상태를 파악했다. 정상적인 몸이 아니라는 것을 읽었다.

“누구야?”

아걸이 반철도를 들고 일어서며 물렀다.

“육군. 이름은 협성림.”

“황궁에 있다는?”

“들어보긴 한 모양이네? 맞아. 황궁에서 잘 놀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불려왔잖아. 오랜만에 강호라는 데를 돌아다니니까 이것도 재미있네. 또 다른 맛이야.”

철컥!

육군이 검을 만졌다.

싸우려는 것이다. 아걸을 죽일 생각이다.

“참 대단해. 대사형에게 칼을 맞고 숨이 간당간당할 줄 알았는데, 벌써 회복했어? 아니, 그런 몸으로 서리형개를 찾아가?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미친놈 맞아.”

휘익!

아걸이 반철도를 휘둘러서 칼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너 아걸이란 놈이지? 또 다른 별호는 혈도비자. 네 칼은 일홀도고. 중원에 일홀도만이 일홀도와 싸울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조명천검 주인이 듣기에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지만. 서리형개와 싸울 때 일홀도라는 느낌이 오더라고.”

육군은 아직 아걸에 대해서 잘 몰랐다.

아걸은 비무 사건 이후, 몽설과 함께 마차를 타고 이동한 게 전부였다.

서리형개가 귀문을 공격했지만, 아걸과 몽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귀문과의 연관성도 파악하지 못했고, 몽설이 보고를 받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아걸이 서리형개를 찾아간 것은 서리형개가 쫓아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협성림은 아걸이 추격 사실을 알고 역으로 치고 들어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서리형개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을 바꿨다.

아걸의 칼은 중원 무공의 상식을 벗어난다. 초식이 매우 이상하다. 아니, 너무 실전적이다. 중원 무공이라기보다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살귀 모습이다.

일홀도라는 느낌이 확! 치밀었다.

또 한 가지, 아걸의 칼을 보면 명부판관이라는 별호보다는 혈도비자라는 별호가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물어봤다.

“그게 뭐 상관있나?”

“상관없지. 후후! 혈도비자라. 대충 짐작은 했는데 역시 놀라운 일이군. 그러나저러나 상처가 꽤 심한데, 그런 몸으로 싸울 수나 있겠어?”

육군이 아걸의 상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보고도 몰라? 칼을 쓸 수 없는 상태면 그냥 물러서 주게?”

“아니. 그냥 해본 말이지. 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어떡하나? 사람 민망하게.”

“그럼 나는 진심으로 말하지. 그 검 뽑으면 너, 죽는다.”

아걸이 싸늘하게 말했다.

아걸의 눈빛은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눈이 감정 없는 눈이다. 살기를 띤 눈보다 살기조차 사라진 눈이 더 무섭다.

“아아! 서로 알 만한 사람끼리 공갈 협박은 하지 말자고. 그런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

스릉!

육군이 검을 뽑았다. 하지만 곧바로 아걸을 향해 달려들지는 못했다. 그는 검을 뽑자마자 무엇을 느낀 듯 옆쪽으로 일 장이나 쭉 비켜섰다.

육군의 뒤를 돌아봤다.

스읏!

멀리 십여 장쯤 떨어진 곳에서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신법은 너무 가벼워서 나무에서 뛰어내렸는데도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그녀가 걸어오며 말했다.

“우리 오빠 말이 맞아. 그 검 뽑으면 당신 죽어.”

나타난 여인은 몽설이다. 몽설이 방실방실 웃으면서 말했다.

육군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 여자가 다정나찰? 그런데 이 여자…… 나 못지않게 강하다!’

육군은 나타난 여인을 보고 매우 놀랐다.

사내도 아니고 여인이 소축십검과 비등한 검을 가지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나. 하지만 여인을 보자마자 퍼뜩 강하다는 생각부터 치미는 것을 어쩌랴.

여인은 아걸과는 전혀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다. 일단 매우 부드럽다. 살살 불어오는 미풍에도 날아갈 것처럼 하늘거린다. 그런 가벼움 속에서 날카로움이 툭 튀어나온다.

바람만 불면 훅 날아가는 민들레 꽃씨 같다. 하지만 툭! 한 소절 꺾으면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칼이 된다.

이런 무공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어디서…… 아! 현정부인!

육군은 사박사박 걸어오는 여인에게서 전대 성검문주의 부인인 현정부인의 모습을 봤다.

소축 생활을 할 때, 현정부인의 무공을 봤다.

비록 수련할 때 잠깐 본 것이지만 너무 가벼워서 놀랐다.

가볍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부드럽다. 아주 부드럽다. 춤을 추듯이 매우 느리게 날아올랐다가 퍼뜩 사라진다. 툭 치고는 스르륵 소멸한다.

혈검경이다!

혈검경이 중원 사대 검경 중 하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조명천검과 너무 달라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육군이 몽설에게 물었다.

“현정부인을 아나?”

“성검문 전대 문주 부인이잖아.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 내가 다치지 말라 그랬지!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했지! 뭐? 믿으라고? 이런 짓을 하는데 어떻게 믿어!”

몽설이 소리를 빽 질렀다.

나중 말은 물론 아걸에게 한 말이다.

“……죽지는 않았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

“나 힘들어. 칼 맞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칼 맞은 게 자랑이야!”

몽설이 말할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은 육군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자기들 말만 했다.

“자랑은 아니고. 지금 힘들다는 거지.”

“이렇게 될 줄 모르고 풍도곡 귀신을 만난 거야! 만나지 않는다며? 도대체가 무슨 사람이 말만 하면 거짓말이야! 혹시 전생에 사기꾼 아니었어?”

“하……!”

아걸이 기가 막히는지 들고 있던 반철도까지 축 늘어트렸다.

싸움은 끝났다.

아걸은 육군에게서 투기가 사라져 가는 것을 감지했다.

솔직히 지금 상황은 육군이 불리하다.

육군은 몽설과 싸우면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걸이 버티고 있다. 아걸이 중상을 입었지만, 한칼은 던질 수 있다. 이 대 일의 싸움이 되면 승산이 없다.

아니, 육군은 그런 점은 신경 쓰지 않는다. 상황이 아무리 불리해도 검을 뽑을 자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급격하게 투지를 거뒀다. 싸울 생각을 버렸다.

육군이 차분하게 말했다.

“소저, 소저 무공……. 혈검인가?”

“검을 섞어보면 쉽게 알 수 있잖아. 나도 검 뽑아?”

육군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소저의 무공을 시험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사부님일 것 같으니까. 하하하! 나중에 보지. 하하하, 하하하하!”

육군이 앙천광소를 흘리며 떠나갔다.

아걸과 몽설은 그가 남긴 말에서 뜨거운 피 냄새를 물씬 맡았다.

몽설의 무공을 공부 허도기가 시험해 본다. 혈검을 확인한다? 그다음은? 죽이기밖에 더 하겠나.

죽음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이제는 정말로 공부 허도기와 가까워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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