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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44화 (144/600)

#144화. 第二十九章 이차패배(二次敗北) (4)

“앉아!”

몽설이 눈을 날카롭게 추켜 뜨고 아걸을 노려봤다.

아걸이 앉았다.

“상처는 내가 대충 치료를…… 윽!”

아걸은 말을 하다 말고 어깨를 움츠리며 신음을 흘렸다.

몽설이 배와 어깨에 둘둘 감은 웃옷을 확 잡아 찢었다. 그 바람에 상처가 건드려지면서 극통을 일으켰다.

“이게 치료한 거야?”

몽설이 앙칼지게 말하면서 행낭을 풀었다.

행낭 안에는 상처를 치료할 약과 도구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전쟁터에서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 서너 명은 치료하고도 남을 정도로 많다.

“믿으라며?”

몽설이 덕지덕지 바른 금창약을 살살 긁어내며 말했다.

“죽지는 않았잖아.”

“믿으라는 말이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였구나? 서리형개와 안 싸운다며?”

“그래도 효과는…….”

“입!”

몽설이 ‘입!’이라고 말하며 눈을 치켜떴다.

“사람이 도대체 생각이 없어. 멀쩡한 몸으로도 풍도곡 살귀들을 상대할 수 없는데, 다 죽어가던 몸으로 뭘 어쩌겠다고. 왜 그렇게 죽지 못해서 안달해? 세상이 싫어? 염증 나?”

“그게 아니라 나도 생각이 있어서…….”

“입!”

“……사람이 말을 못 하게 하냐?”

“입! 뭘 잘했다고!”

몽설이 실과 바늘을 꺼내서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

상처에 바늘을 꽂기 전에 죽처럼 묽은 연고를 발랐는데, 마취 효과가 뛰어나다. 바늘을 찔러도 전혀 아프지 않다. 마치 남의 살을 보는 것 같다.

몽설의 치료는 자신처럼 거칠고 투박하지 않다. 매우 섬세해서 기분까지 좋아진다.

“살을 꿰맨 게 엊그제인데, 며칠이나 지났다고 또 꿰매게 만들어. 몸뚱이가 넝마야? 이리 꿰매고 저리 꿰매게. 무슨 남자가 여자에게 살만 꿰매게 만들어.”

아걸은 몽설의 잔소리를 묵묵히 들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변명할 것도 없지?”

“입 다물라며?”

“언제부터 내 말을 그렇게 잘 들었어? 그래서 서리형개하고 싸운 거야? 여길 그냥 콱!”

몽설이 바늘을 콱 찔러버릴 듯이 쳐들었다.

아걸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정말 조심해서 싸울게.”

“그 말을 믿으라고? 흥! 그 말을 믿느니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말을 믿겠다. 이제 오빠는 신용을 잃었어. 도무지 말에 신빙성이 없어. 맨날 거짓말만 해.”

몽설이 눈을 흘겼다.

아걸은 피식 웃었다.

몽설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어떻게 찾아왔는지 할 수 있다.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즉시 뒤쫓아왔다. 서리형개와 싸울 것까지 예상했다. 그래서 다칠 것에 대비해서 많은 약을 싸 들고 쫓아왔다.

몽설은 살을 꿰매고 있지만, 사지가 멀쩡한 것에 안도할 것이다.

“이제 됐어. 옷 입어!”

찰싹!

몽설이 아걸의 등짝을 손자국 나도록 세게 후려쳤다.

* * *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마차가 속력을 내서 질주했다.

아걸은 마차 안에서 두 눈을 감고 서리형개와 벌였던 일전을 떠올렸다.

서리형개와 두 번 싸웠다. 그리고 두 번 다 패했다.

삼도일살이 어떤 칼인지 알고 있는데도 매번 나가떨어진다. 도무지 막을 수가 없다.

서리형개와는 언젠가 또 만난다.

다음에는 어떤 상황일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살수를 펼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살기 위해서 그의 칼을 이겨내야 한다.

서리형개의 칼은 먼젓번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베는 칼이다. 삼도일살이다.

그 칼을 피하려면 간발의 차이가 필요하다.

멀찍이 떼어놓을 정도로 압도적인 속도 차이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니 실낱같은 차이로라도 피해야 한다. 머리카락 한 올 차이가 칼에 맞고 안 맞고를 결정한다.

지금까지는 서리형개의 승리였다. 다음에 또 그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인가?

‘방법은 감각망기술에서 찾아야 해.’

전신의 모든 감각을 떼어내는 감각망기술을 조정해야 한다. 모든 감각을 떨쳐내되, 경맥에서 일으키는 진동만은 감지해야 한다. 그리고 진동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감각을 떨어내면 모든 정신이 두 눈에 집중된다. 심안에 집중된다. 심안은 그의 몸과 칼을 하나로 연결한다. 더 나아가서 칼이 꽂혀야 할 목표까지 일치시킨다. 그리고 일치된 거리를 단숨에 좁힌다. 탁! 하는 한순간이면 끝난다.

그 사이에. 몸에서 다른 일이 일어난다. 진기가 경맥을 강하게 휘도는 탓에 경련 비슷한 현상을 일으킨다.

그 작용이 상대방의 병기를 퉁겨낸다.

그 한순간의 일이 벌써 아걸을 몇 번이나 죽음에서 구해주었다.

아걸은 잠기일력타를 두 번이나 맞고도 살았다. 경련과도 같은 현상이 검을 비켜냈다. 피부 위 일 촌 위치에서 기름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전가성은 잠기일력타에 한계를 느끼고 삼륜축첩공을 수련했다.

그 검도 맞았다. 심장에 맞을 뻔했다. 한데 경맥에서 일어난 반탄력이 검을 비켜주었다.

해답을 여기서 찾아야 한다.

경맥이 떨리는 순간을 의식하고, 서리형개의 검까지 비켜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진기를 일으키고, 감각망기술이 일어나고, 몰안도 펼쳐진다. 도신합일까지 이루어진다.

스읏!

진기를 일으켰다. 한순간에 당장 칼을 쓸 수 있는 몰안 상태가 되었다. 육신은 느껴지지 않고 칼만 남았다.

‘느껴지지 않아.’

아걸은 경맥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다.

감각망기술이 경맥의 흐름마저도 잊게 만든다. 감각망기술을 일으키면 진기의 흐름이 감지되지 않는다. 진기를 일으켰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칼과 하나가 된다.

이게 모순이다. 한편으로는 잊어야 하면서 한편으로는 생각해야 한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도신일체가 된 상태에서 서리형개의 칼을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남은 수는 단 하나, 몰안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서 단 일격에 서리형개를 쓰러트리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칼을 서리형개가 막았다.

서리형개는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묘한 말은 했다. 사대문주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냐고. 이렇게 죽었다고. 즉, 네 칼이 사대문주의 탄궁도이니 내가 죽여 보겠다는 거다.

서리형개는 몰안으로 펼친 일홀도를 정확하게 막았다.

아걸은 당시 서리형개가 펼친 도법을 다시 떠올렸다. 세세한 부분까지 살폈다.

서리형개는 칼을 뽑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서리형개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갔다. 칼과 심장 간의 거리가 한순간에 압축되었다. 칼이 심장에 닿는다. 그 순간, 옆에서 쳐온 칼이 반철도를 퉁겨냈다.

‘발도술!’

아걸이 눈살을 확 찌푸렸다.

서리형개는 칼을 뽑은 상태였지만, 도집에 들어있는 것처럼 칼을 사용했다.

칼이 도집에서 뽑힌다. 칼날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요악하게 웃는다. 그 웃음이 정확하게 반철도와 부딪친다.

분명히 발도술이다.

발도술은 으레 한 동작, 많아야 두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단순히 칼을 뽑는 것이 아니다. 칼을 뽑는 순간, 곧바로 공격 혹은 방어가 이루어진다. 그 형태에 따라서 발도술의 형식이 수백 개로 불어난다.

발도술 자체가 도법이다.

‘발도술! 발검술!’

발도술은 일홀문 무공이 아니다. 성검문 무공이다. 공부 허도기의 무공이 발검술에 녹아있다.

공부가 발검하는 순간 승부가 끝난다.

문득, 아걸은 일홀문과 성검문의 인연이 상당히 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대문주의 탄궁도가 발검술에 당했다면…… 두 문파 간의 인연은 초창기로 넘어간다. 어쩌면 초대 일홀문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탄궁도를 막아낼 수 있을 만큼 빠른 검은 오직 발검술밖에 없다. 초식을 전개하면 늦는다. 검을 뽑는 순간에 공방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탄궁도를 막아낸다.

‘단 한 번의 움직임. 몸이든 손목이든 움직이기만 하면 승부가 결정된다. 이거야말로 쾌검의 정수! 아!’

아걸은 탄식했다.

서리형개는 발검술을 흉내만 냈다. 아걸의 탄궁도를 막기 위해서 남의 무학을 빌려왔다.

사실, 그는 본인의 절기인 삼도일살로도 막을 수 있었다. 한데 굳이 발검술을 응용했다. 아걸에게 허도기의 무공을 간접적으로 알려준 것이다.

아걸은 허도기의 무공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허도기의 무공은 조명십해다. 소축십검의 무공과 똑같다. 다만 깊이가 다르다. 훨씬 깊고 정순하다.

딱 그 정도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칼을 뻗어내자마자 머리가 떨어질 뻔했다.

아걸은 서리형개가 칼을 어떻게 썼는지 다시 생각했다.

순간을 막지 못하면 끝난다.

계속해서…… 계속, 계속, 계속……. 서리형개가 칼을 쓰는 단 한 번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뽑아낸 칼을 떠올렸다.

* * *

“내가 도와줬으니까. 품앗이해.”

몽설이 말했다.

“품앗이는 뭘…… 명령만 하면 받들어 모시는데.”

“풋! 나 받들어 모실 거야?”

“아! 뭔지 모르지만 내가 말실수했다는 느낌이 확 든다. 내가 뭘 잘못 말했지?”

“아니, 잘 말했어.”

몽설이 손을 들어서 아걸의 손등을 사악 쓰다듬었다.

“뭘 해야 하는데?”

“두 개.”

“두 개라…….”

“대별산에 도착할 때까지 완쾌해줘.”

“그거는 최선을 다할 거니 염려 말고. 또?”

“두 번째. 대별산에 도착하면 우리한테 달라붙은 눈을 떼어줘. 아마 다 죽여야 할 것 같아. 보고 들은 게 많아서 살려두면 후환이 생길 거야.”

“음!”

“그들을 모두 죽이는 건 아프지만, 안 그러면 구절곡 같은 일이 또 생겨.”

“그건 해줄 수 있어. 대별산에 가서도 귀문을 다시 만들려고?”

“응. 구절곡 형태를 다시 만들 거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작하는 게 좋지 않아?”

“아니. 언니가 아홉이야. 언니들을 다시 곡주로 쓸 거야. 취화원이 무너지면서 살아남은 마지막 살수니까. 우리 모두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해.”

“살문을 다시 만드는 거구나.”

아걸은 당장 서리형개부터 떠올렸다.

성검문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검문 입김을 받는 모든 문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만히 숨죽이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살문까지 만들어서 휘젓고 다니면 그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모습만 보이면 쳐올 기세이지 않나.

몽설이 아걸을 쳐다보며 말했다.

“응. 오빠만 이해해 주면.”

“내가 이해할 게 있나? 이건 취화원 일인데. 다시 문파를 만든다면…… 취화원이 살문이라서 살문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 테고, 유지를 이으려는 것도 아니고.”

아걸이 몽설을 쳐다봤다.

왜 하필이면 살문이냐? 살수 문파가 결코 좋은 것은 아니지 않나.

몽설이 말했다.

“취화원이 했던 그대로 하려고. 세상에 인면수심이 많아. 그 사람들, 죽어도 어디 내놓고 말도 못 해. 살수에게 살해당했다고 말도 못 하는 사람들이야. 그런 자들에게 당한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겠어. 그러니 취화원에 청부가 끊이지 않았던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해도 될 것 같아.”

“음!”

아걸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동의해 준 거지?”

“그래.”

“오빠가 동의해 주니 한결 마음이 편해. 당분간 살행은 하지 않을 거야. 청부는 일단 받지 않고, 문도를 선별해서 살수를 양성해야지. 지금은 사람이 너무 없어.”

아걸은 피식 웃었다.

몽설은 뭔가를 할 때가 제일 예쁘다.

얼굴에 생기가 돋는다. 눈빛이 반짝거린다.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예쁘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일홀문과 취화원은 가는 길이 너무 다르다.

취화원은 세상 속에서 움직이는 문파다. 일홀문은 오직 칼만 보고 달린다.

어디선가 충돌이 일어날 텐데.

그때,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해봐. 절대적으로 도와줄게.’

아걸은 활기찬 몽설을 보자 마음이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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