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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45화 (145/600)

#145화. 第二十九章 이차패배(二次敗北) (5)

육군 협성림은 진공부(珍公府)라고 적힌 저택으로 들어섰다.

진공부는 저택 일곱 채를 매입해서 허물고 다시 지은 집이다. 땅 크기가 오천 평에 이르고, 독립된 저택이 스물한 채나 있으며, 각 저택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부 구조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서면 길을 잃기가 십상이다.

“충(忠).”

대문에 서 있던 위병(衛兵)을 창을 숙이며 인사했다.

육군은 인사를 무시하고 대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진공부는 요새다. 군사가 거주한다. 저택마다 갑옷 입은 군사들이 득실거린다.

진공부는 황상이 공부 허도기에게 하사했다.

사람들은 성검문과 진공부를 분리해서 생각한다.

진공부는 나라 살림을 하는 곳이고, 성검문은 무림 문파다. 그래서 성검문에는 군병이 얼씬거리지 않고, 진공부에는 무인이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진공부를 출입할 수 있는 무인은 육군과 칠군밖에 없다.

이 두 명은 공부 허도기의 왼팔, 오른팔로 공부를 가까이에서 모신다.

하지만, 무인들은 잘못 보고 있다.

육군과 칠군은 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심부름, 수족, 하인 노릇을 한다. 말 잘 듣는 노예라는 편이 맞을 것이다.

공부에게는 수족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무척 많다.

글쟁이 문사도 있고 장군도 있다. 관직에 있는 사람도 있고, 장사치도 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진공부를 들락거린다.

모두 자신이 공부의 진짜 수족인 줄 안다. 공부와 속내를 말하는 사이라고 착각한다.

공부에게는 호위군이 있다.

이들의 임무는 목숨을 걸고 공부 허도기를 보호하는 것이다. 외출할 때나, 공무를 볼 때, 지방 순시를 할 때도 항상 따라다닌다. 황궁까지 따라 들어간다.

이들은 목에 붉은색 위건(圍巾)을 두르고 이어서 적위군(赤圍軍)이라고 부른다.

인원은 서른 명.

허도기가 황상의 부름을 받을 때부터 옆에 두었던 군병이다. 무공도 매우 뛰어나다. 공부에게서 개별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같이 고수다.

이들이 왼팔이다.

육군과 칠군, 그리고 두 사람의 휘하는 오른팔이다.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공부 허도기의 양축은 실제로 이렇게 구성된다.

무림에 소축십검이 있다면, 진공부에는 적위군이 있다.

육군은 진공부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공부가 머무는 거처까지는 대문을 다섯 개나 거쳐야 한다.

중간중간 사방이 꽉 막인 중정(中庭)이 있다. 보통 저택에서는 심신을 가다듬는 장소로 이용되지만, 진공부에서는 침입자를 섬멸하는 함정으로 사용된다.

중정을 들어서면 모서리에 나무가 심겨 있다.

육군은 마지막 다섯 번째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순간, 많은 눈이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공부를 호위하는 군졸들, 적위군이 질서 있게 서 있었다.

그들은 육군을 보자 일제히 허리를 숙여 읍했다.

보통 왼팔과 오른팔은 서로 경쟁한다. 질투하고, 시기하고, 서로 공을 세우려고 다툰다.

소축과 적위군은 조금 다른 관계다.

육군과 칠군은 적위군에게도 무공을 가르쳤다. 엄밀히 말하면 무공 교두다.

지금도 짬이 생기면 무공을 가르친다.

적위군은 육군, 칠군과 경쟁하지 않는다. 왼팔 역할을 충실히 할 뿐, 오른팔을 넘보지 않는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수고하셨습니다.”

적위군장 사구정(謝九鼎)이 육군을 보자 한달음에 달려와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공부께서는?”

“안에 계십니다. 들어가시죠.”

사구정이 옆으로 비켜섰다.

육군은 집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허도기의 집무실은 상당히 크다. 적위군이 지키고 있는 곳을 지나치고도 이십여 걸음이나 걸어가야 한다.

집무실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

육군은 진공부에 들어설 때마다 꼭 태풍 한가운데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 태풍 속의 고요함이랄까? 언제 팍 터질지 모르는 움직임이 잔잔히 흐른다.

세상 사람들은 공부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공부는 무림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성검문을 비워 놓고 군병들 틈에서 사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나.

공부의 뜻은 무림 제일인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

공부는 황궁을 바라보고 있다.

무림 제일인자가 되었는데 백성까지 아우르는 대륙 제일인자가 되지 못할 까닭이 있나.

역천(逆天)!

공부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낸 적이 없지만, 육군은 공부가 역천에 뜻을 두었다고 본다.

성검문을 뒤집는 일은 불가능했다.

문주가 조명십해에 달통했고, 일홀문주도 옆에 버티고 있으니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그런 것을 뒤집었다.

공부가 지금 바라보는 곳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도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난공불락이라는 말을 또 하게 된다. ‘이건 안 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공부는 노려보고 있다.

“저 협성림입니다.”

육군이 사부의 방문 앞에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검을 쓰지 않았다고?”

공부가 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공부는 세상에 흥미를 잃은 사람처럼 담담하다. 일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웃는 일도 없고,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덤덤하다.

“네. 쓰지 않았습니다.”

“명부판관이 강했나?”

“아닙니다. 서리형개에게 일격을 당해서 칼을 들고 서 있기도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죽이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군.”

“혈검이 나타났습니다.”

순간, 감정 변화라고는 일절 보이지 않던 공부가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다.

이 정도면 대단한 표정 변화다.

혈검경은 허도기의 형수인 현정부인의 무공이다.

혈검경이 보통 무학인가? 아니다. 천하를 오시할 수 있는 검학이다. 그런 무공을 누군가에게 전했다면, 전한 사람이 내 몸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자식이거나 제자이거나.

최소한 이 정도의 관계가 아니라면 혈검경을 전할 리 없다.

혹자는 혈검경의 맥이 끊어지느니 아무에게나 전하는 것도 한 방편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잘못된 생각이다.

무공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정공도 되고 마공도 된다.

무공을 전할 때는 이 사람이 이 무공을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까지 고려한다. 그런 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쓸 것이라고 확신한 후에야 무공을 전한다.

현정부인 같은 경우에는 그런 면이 더 강하다.

차라리 혈검경이 단맥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악인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혈검경은 분명 현정부인이 살아있을 때 전해졌다.

이런 문제 때문에 육군은 아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도 물러섰다. 아걸을 죽이려면 몽설과도 싸워야 하는데, 그녀를 다치게 해도 좋은지 몰라서다.

만약, 몽설이 현정부인의 혈육이거나 제자라면?

혈육은 말도 안 되고, 제자가 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사촌인가? 조카? 어떤 사이인지 몰라도 일단 혈검경을 이은 사람이니 무시할 수 없다.

사부는 몽설이 어떤 존재이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명령을 받기 전에는 함부로 검을 쓰지 못한다. 이건 매우 중요한 혈육 문제다.

공부가 육군을 쳐다보며 물었다.

“방금…… 혈검이라고 했나?”

“네. 혈검이 나왔습니다.”

육군이 자신 있게 말했다.

공부는 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알고 있다.

공부는 성검문 외에도 많은 소식통을 두고 있다. 대략 십여 군데서 정보가 들어오고, 그중 고급 정보만 추려서 허도기에게 보고된다. 진공부에는 이런 일만 따로 하는 자들까지 있다.

공부는 중원에서 중원사를 가장 많이 안다.

공부가 대뜸 말했다.

“몽설이냐?”

역시 공부는 몽설이라는 여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디서 흘러들어온 정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혈검에 대한 단서를 잡고 추적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육군이 대답했다.

“네. 별호는 다정나찰. 취화원 살수이며, 현재 귀문 문주이기도 합니다.”

“혈검이라는 근거는?”

“몽설을 보자 현정부인이 떠올랐습니다. 너무 부드러워서 솜이 움직이는 것 같은 기도. 하지만 솜뭉치 속에 감춰진 칼. 현정부인의 혈검은 딱 한 번 봤지만, 기운이 같았습니다.”

“그런가…….”

공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처럼 육군의 무공을 자세히 아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육군의 판단을 믿는다. 육군은 혈검을 본 적이 있고, 기도로 판단할 만한 안목을 갖췄다.

“형수, 몽설.”

허도기가 중얼거렸다.

형수의 무공이 취화원 살수인 몽설에게서 나타났다.

공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일에는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

성검문이 일홀문과 얽혔다. 일홀문의 안주인이 남서다. 남서는 취화원 살수였다. 취화원 살수 중에 몽설이 있다. 그리고 몽설이 혈검을 사용한다.

형수 현정부인에게서 몽설까지 혈검이 전해진 노선이다.

하나의 선은 그려지는데, 연결점들은 있는데…… 왜 현정부인이 몽설에게 혈검을 전했을까, 어떻게 전했을까, 몽설이 도대체 누군가 하는 점이 미궁이다.

이제 노선이 끊기는 점을 보자.

현정부인은 남서를 모른다. 일홀문주는 알지만, 안주인까지는 모른다. 본적도 없다.

남서는 취화원과 인연을 끊었다. 완전히 끊었다. 일홀문주를 만난 후, 두 번 다시 취화원과 연락하지 않았다. 살수 문파를 완벽하게 빠져나온 사례다.

취화원에는 살수가 많다. 한데 왜 몽설 한 명에게만 혈검경이 전해졌나?

“취화원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나?”

“취화원 잔당이 대별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니, 아니. 어린 것들은 몰라. 조금 나이가 있어야 혈검을 알아. 취화원 잔당 중에 노파 한 명 있지?”

“네.”

“그 노파를 만나 봐. 노파라면 뭔가 좀 알겠지.”

“알겠습니다.”

육군이 대답했다.

육군은 공부에게 무엇이 궁금한지 묻지 않았다. 이미 공부의 마음을 읽었다.

겉으로 드러난 결론은 분명하다. 현정부인이 몽설에게 혈검을 전했다.

공부는 몽설과 현정부인이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어 한다. 혈육인지 아닌지, 현정부인이 혈검을 전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왜 취화원 살수가 되었는지도.

“몽설을 어떻게 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누군지도 모르잖아? 알아도 상관없고. 제거해. 아니, 아니. 넌 움직이지 마. 감시만 해.”

공부가 찻잔을 내려놓고 지필묵을 꺼냈다.

공부는 웬만해서는 군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육군, 칠군, 그리고 그들이 데리고 있는 수하까지도 확실하게 숨겨 두려고 한다. 완벽한 비밀병기로 활용하려는 거다.

무림은 이미 수중에 들어왔는데, 이토록 강한 힘을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역시 역천밖에 없다.

나라를 확 뒤집어엎으려는 것이다. 성검문을 갈아엎은 것처럼.

공부는 일필휘지로 서신 한 통을 쓱 갈겨썼다.

“이거 풍도곡에 전해.”

공부가 서신을 내밀었다.

“풍도곡 이놈들……. 후후! 가서 서신 주면서 말해. 잔머리 그만 쓰고 일하라고. 내가 서신에 직접 명령을 적었어. 서리가헌, 아걸을 죽여라.”

“네.”

육군이 서신을 품에 넣었다.

“내가 원하는 건 부상이 아니라 죽음이지. 주검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너희가 죽어야지. 그것이 일홀문 아닌가. 죽이거나 죽거나. 일홀문도가 되라고 해. 사문에 먹칠하지 말고.’

”네.”

육군은 차분히 대답했다.

이제 서리가헌은 외통에 걸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공부 허도기가 직접 외통으로 밀어 넣었다. 다른 사람 쓰지 말고, 미루지 말고 네가 직접 칼을 써라. 아걸을 죽여라.

아걸을 죽이지 못하면 네가 죽어라.

일홀문도는 오직 칼로 말한다.

칼 앞에는 이유가 없다. 변명도 없다. 약한 자는 죽고 강자는 산다. 딱 그것만 존재한다. 세 번째 방법은 없다. 서신을 무시해도 좋다. 그러면 내 검을 이기면 된다.

이 서신은 육 개월 후에 있을 성검문주와 명부판관의 비무만큼이나 외통이다.

육군은 서신을 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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