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第三十章 삼차살문(三次殺門) (1)
취화원은 화원이다.
꽃들이 만발했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들락거렸다. 꽃을 사 가기도 하고 화원을 구경하기도 했다.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고……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귀문은 취화원과는 정반대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숨었다.
구절곡 깊은 곳에 함정을 파고 기관을 설치하고, 더는 은밀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숨었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멸문했다.
취화원도 공격당했고, 귀문도 마찬가지였다.
살문은 누군가가 작심하고 들이친다면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성(漢城)으로 갈 거야.”
몽설이 말했다.
“한성?”
아홉 곡주가 무슨 소리냐는 듯 몽설을 쳐다봤다.
한성은 대별산에서 하루거리에 있는 대도읍이다. 인구가 이만 명이 넘고 상업이 발달했으며, 물자가 풍부해서 대문파의 분타(分舵)도 존재한다.
살문이 한성에 자리 잡는 것은 나 여기 있으니 빨리 와서 공격하라 하고 선전하는 것과 같다.
“원주님, 한성에 간다는 이유가…… 설마 문파를 한성에 세운다는 말은 아니죠?”
취운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몽설이 취운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내가 원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언니야. 그래서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말하는 건데, 우리 모두 다 살아야 해. 우리 중 더는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해.”
“무슨 말을 하려고…… 겁나요, 원주님.”
소호가 놀리듯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원주로서의 명령이야. 언니들 목숨은 내가 책임져. 내가 살릴 거야. 그러니 무조건 따라와 줘. 난 문파를 한성에 둘 거야.”
몽설이 단호하게 말했다.
“…….”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몽설을 쳐다봤다.
몽설이 취화원 살수였을 적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그런 살수였다. 무공도 강하지 못했고, 살법도 뛰어나지 않았다. 살수가 된 게 용할 지경이었다.
취화원 대살겁이 벌어진 후, 몽설은 완전히 변했다.
그녀의 무공은 압도적이다. 구곡주가 연수하여 공격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몽설은 재지가 밝다.
상황을 빨리 읽고, 판단이 뛰어나며, 결단도 빠르다. 구절곡을 접수하면서 보여준 공략 방법은 너무 뛰어났다. 덕분에 공격하는 사람이 매우 편했다.
“알았어요. 우리 무조건 복종할 테니까, 마음껏 해봐요. 우리 목숨, 원주님께 맡겨요.”
취운이 몽설을 보며 환히 웃었다.
“돈 얼마나 있어?”
몽설이 적화를 보며 말했다.
“상당히 많아요. 한성에 들어가서 대궐 같은 집 서너 채 정도 살 돈은 돼요.”
적화가 대답했다.
칠곡은 귀문의 재화를 관리했다. 귀문이 벌어들였던 많은 돈이 고스란히 넘겨졌다.
“한성 중심부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주변 땅을 모두 매입해. 그리고 거기 칠층이나 팔층 정도 되는 루(樓)를 세워.”
“갑자기 칠층 누각은 왜요?”
“누각을 세워서 사람들에게 주는 거야.”
“칠층이면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그걸 줘요?”
적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줘. 그러니까 봉양이라거나 충효 그런 거로 내용을 꾸미고…… 우린 누각 꼭대기를 이용할 거야.”
“아!”
구곡주는 그제야 몽설의 말을 이해했다.
칠층 누각을 세우면 한성 도읍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사방을 관찰하기가 쉽다.
칠층 누각을 세울 때, 비밀리에 한 층 더 만든다.
칠층 위에 팔층을 만들고, 팔층에는 살수 두어 명을 배치한다.
한성을 낮이고 밤이고 상시 감시할 수 있다.
행동이 이상하거나 관찰이 필요한 자는 성문 안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점찍을 수 있다.
몽설이 말했다.
“일단 거기를 우리 감시초소로 하고……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살문은 이래.”
몽설이 새로 탄생할 살문을 말했다.
한성 도읍 한복판에 숨는다.
살수들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숨는다. 각기 직업도 갖는다. 몽설은 서점을 할 생각이다.
한성 전체에 널리 퍼져 있지만, 살문은 서로를 안다. 흩어져 있는 가운데 서로를 지킨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다.
두 번째부터는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시간도 꽤 걸린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는다.
주변 사람을 살문으로 끌어들인다.
한 명, 한 명…… 차분히 영역을 넓히다 보면 언젠가는 한성 전체가 살문과 협조하는 관계가 된다.
한성 사람들이 살문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관계를 만들려면 한성에 스며든 살수는 철저히 살기를 감춰야 한다.
살기를 드러낸 살수를 반기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대별산으로 왔다. 살기를 숨기지 못하는 미숙한 살수는 대별산에서 수련한다.
살수는 겉모습부터가 사납다. 멀리서 봐도 살기가 뚝뚝 떨어진다. 사람을 죽여 본 자는 기도부터가 사납다. 그래서 취화원에서는 꽃을 가꾸게 해서 살심을 안으로 잠재웠다.
수련 장소는 대별산, 수련이 끝난 살수는 한성으로 스며드는 이중 거처를 마련한다.
살문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도와주었을 때, 그때에서야 비로소 살문이 완성된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소명이 물었다.
“사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고…… 지금 적랑대가 이런 식으로 살고 있어.”
“아!”
“우리가 적랑대 뒤를 밟을 필요는 없지만, 살수라고 우리끼리만 살 수는 없잖아. 같이 어울려 살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거야. 이것도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새로 살문을 만든다면 이런 방식이 좋을 거로 생각해.”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살수 문파에 거부감을 가진다.
“우리 실체가 밝혀졌을 때 한성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인데, 그만큼 우리가 잘해야지.”
“좋아요. 그렇게 해요. 그럼 뭐부터 할까요? 누각을 세우고. 우리가 스며들 거처를 몇 개나 준비하죠?”
“일단 스무 개 정도?”
“돈이 될까 모르겠네요. 아까는 돈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이면…… 모자랄까?”
적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은 모두 대별산에 남는다.
지금 상태에서 한성 도읍에 섞일 만큼 살기를 누그러트린 사람은 거의 없다.
한성에 들어섰을 때, 모두 무심히 지나칠 정도로 평범해져야 한다.
대별산에 용화골이 있다. 구절곡처럼 깊고 은밀한 곳이다. 너무 깊어서 사람 발길도 뜸하다.
그곳을 임시거처로 삼는다.
그동안 일곡주부터 사곡주까지는 살수를 양성하고, 오곡주부터 구곡주까지는 문도를 평범하게 다듬는다. 어디에 내놔도 보통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우리 계획은 문도들에게 말하지 마. 용화골이 본문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 우리 중에도 귀문과 연락하는 사람이 있거든. 여기 있는 동안 그들을 솎아내야 해.”
구곡주의 눈빛이 빛났다.
살수 문파는 가끔 간자들을 솎아낸다.
간자는 외부와 연락을 취한다. 이런 속성을 이용하면 물 위에 뜬 기름을 걷어내듯이 추려낼 수 있다.
구곡주는 문도들이 움직이게끔 끊임없이 불을 피우면 된다. 메뚜기는 불길을 피하려고 펄쩍 뛸 것이고, 뛰어오른 메뚜기는 아걸이 잡는다.
대별산에 온 후, 아걸이 보이지 않는다.
몽설과 아걸이 언제 떨어진 적이 있나?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면 대별산 어느 구석에선가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아걸은 벌써 사냥을 시작했다.
“자! 시작!”
몽설이 구곡주를 격려했다.
* * *
아걸은 진기를 끌어올렸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집중과 이완을 반복한다. 몰안으로 들어섰다가 풀어내기를 수없이 행한다. 몰안이 되면 칼이 되고, 몰안에서 벗어나면 새 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홀도를 연구한다.
푸드드득!
전서구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대별산에서는 보기 힘든 비둘기다. 아마도 한성에서 들여온 비둘기일 것이다.
아걸은 손가락 길이의 강침을 꺼내서 하늘로 던졌다.
끼악!
전서구가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툭 꺾었다. 그리고 힘없이 떨어졌다.
전서구는 살펴보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안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안다.
구곡주가 오늘은 아걸이 반쯤 미친 것 같다고 불을 피웠다. 몽설 목을 잡고 흔들었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면서 아걸을 쫓아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다.
보고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을 은밀히 주고받는다. 문도가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그래도 귀를 쫑긋 세우고 무슨 말이든 들으려고 하는 간자의 귀에는 똑똑히 들릴 것이다.
전서구를 날린 자는 덜컥 겁이 났는지 전력으로 뛰어갔다.
아걸은 강침을 꺼내 손에 쥐었다.
도주하는 간자에게도 일홀도를 쳐낸다. 강침을 칼로 생각하고 던진다. 도신일체, 감각을 떨치고 칼이 되었다. 강침이 도주하는 자를 주시한다.
쒜엑!
병기와 사람의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졌다.
턱! 퍼억!
도주하던 자는 달리던 모습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강침에 숨골을 맞아서 즉사했다.
이 싸움은 매우 불공평하다.
무공 차이가 워낙 현격히 나서 싸움이라도 할 수도 없다. 일방적인 도살이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숨을 끊으려고 하지만, 그것조차도 오만이다.
강자끼리 혹은 약자끼리 만나는 싸움도 잦지만, 불공평한 싸움도 잦다.
무인은 어떤 경우든 이겨내야 한다.
아걸은 죽은 자를 위해서 묵념했다.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죽일 수밖에 없다. 몽설 말이 맞는다. 이 자를 살려주면 구절곡 참사가 재현된다. 조만간 정동 무인들이 들이친다.
새로 만드는 살문이라고 배신자가 안 생길까. 생길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시작하는 것이니 최선을 다해본다.
아걸은 죽은 자를 땅에 묻었다.
* * *
‘이걸 어쩐다?’
몽설은 밀지를 읽은 후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소축십검 중 육군으로 판단되는 자가 풍도곡을 방문했다.
몽설은 육군의 방문이 공부가 어떤 지시를 내렸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공부가 손도 안 대고 코를 풀려고 한다. 풍도곡을 이용해서 목적을 이룰 생각이다.
공주의 목적이 뭔지는 듣지 않아도 안다.
천하제일인이나 되었는데, 귀찮은 비무에 끌려 다니기 싫은 것이다. 아니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거나.
서리형개는 지금 풍도곡에 없다. 정동에 있다. 그것을 모르고 풍도곡을 방문했을 육군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 방문 목적은 서리가헌을 만나는 데 있다.
‘이번에는 서리가헌이 나올 거야. 반드시 오빠를 죽이라고 할 거고. 이번 칼은 너무 위험해.’
몽설은 밀지만 읽고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그녀가 무림에 심어놓는 귀문 간자는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서리형개가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풍도곡을 관찰했다. 육군이 방문하는 모습을 봤고, 대별산에 있는 그녀에게 소식을 전해왔다.
사실, 이 보고가 귀문 간자의 농간일 수도 있다.
또는 간자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정보를 보내왔을 수도 있다.
몽설은 이런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보를 읽는다.
하지만 이번에 온 밀지는 정말 중요하다.
‘안 돼. 오빠는 상대가 안 돼. 어떻게 하지? 서리가헌이 나오면 정말 죽어.’
몽설은 생각을 거듭했다.
아걸이 일홀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서 진기를 끌어올렸다 놓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만약에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서리가헌과 승부가 가능할까?
몽설 판단은 ‘아니요’다.
아걸이 무엇인가를 얻어도 서리가헌은 상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서리가헌을 본 적은 없지만, 서리형개만 봐도 알 수 있다. 가헌은 터무니없이 강하다.
“휴우!”
몽설은 한숨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