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第三十章 삼차살문(三次殺門) (2)
츠읏!
살기가 감지되었다.
사실, 아걸은 상대방이 십 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이미 느낌을 잡아냈다.
상대는 소리 없이 다가왔다. 하지만 일정 거리에 들어서자 더는 접근하지는 않았다. 십 장 정도에서 아걸이 뿜어내는 예기(銳氣)를 감지했다.
상대방이 흘리는 살기를 잡아채는 것, 추기(揪氣)는 모든 무인이 구사한다. 어떤 무인일지라도 동물적인 감각으로 살기, 예기, 둔기 등등 모든 기운을 읽는다.
무공을 닦다 보면 이런 추기가 저절로 생긴다.
또 추기를 자주 접하다 보면 잡히는 기운을 분석하기도 한다. 살기도 다 같지 않다. 혈기까지 품은 진한 살기가 있고, 단지 투기가 변형된 살기도 있다.
하나는 상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이고, 다른 것은 반드시 이기겠다는 것이니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 살기, 굉장히 신기하다.
“……음.”
아걸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기는 분명한데, 살기가 아니다.
널 반드시 죽이겠다는 기운인데, 노루가 낯선 사람을 봤을 때처럼 겁을 먹고 있다.
이 사람의 심리 상태는 뭔가? 죽이겠다는 것인가, 물러서겠다는 뜻인가? 살기로만 판단하면, 아걸이 모른 척하고 길을 비켜주면 상대도 그냥 지나갈 것 같다.
그런데 또 그게 아니다. 살기가 아걸을 향한다.
상대는 십 장에 이를 때까지 전혀 기척을 흘리지 않았다. 아걸 같은 고수의 느낌에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축십검에 버금가는 초고수다.
그런 자가 아걸을 겁낼 리는 없다.
그럼 도대체 이 살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런 무공이 있나?
살기는 누가 흘리든 매우 날카롭고 강렬하다. 어린아이가 살기를 품어도 날카롭기가 송곳 같다.
상대가 풍기는 살기는 뭐랄까? 매우 연하다.
‘이건 뭐지?’
아걸은 진기를 일으키지 않았다.
진기를 일으키면 당장 몰안이 된다. 그 상태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일홀도가 터진다. 상대방이 누군지 알기도 전에 칼부터 심장에 꽂힌다.
나타나라!
상대가 먼저 다가왔으니 답답하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공격할 것 같으면 쳐올 것이고, 그냥 지나치는 길이라면 조용히 지나갈 것이다.
츠읏! 츠으읏! 츠읏!
살기는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 아걸을 향해서 ‘나 여기 있다’하고 존재를 알려왔다.
반 각이 지나도록 상대가 나오지 않는다. 어디 있는지도 아는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않는다. 계속 살기만 흘리고 있다.
아걸은 강침 다섯 개를 꺼내 들었다.
상대를 죽이거나 다치게 할 생각은 없다. 단지 볼일이 있으면 나오라는 정도의 말을 하려고 한다.
쒝! 쒝!
아걸은 살기가 흘러나온 곳으로 강침 두 개를 던졌다.
탁! 푹!
강침이 하나는 나무에, 하나는 땅에 꽂혔다.
상대는 어느새 사라졌다. 굉장히 빠르다. 강침을 피했다고 해서 빠른 게 아니다. 상대방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만큼 빨랐다.
“정말 고수군.”
아걸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중얼거림보다 강침 세 개를 던지는 것이 더 빨랐다.
쒜에엑! 쒜엑! 쒝!
이번 강침으로는 삼도일살을 흉내 내 봤다.
두 개는 빠르게 날아가고 한 개는 약간 쳐져서 날아간다. 강침 사이에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둔다. 앞선 강침에는 강한 진기를 담고, 뒤따르는 강침은 진기를 풀고 힘으로만 던졌다.
상대는 앞에서 날아오는 강침만 본다.
뒤따라오는 강침은 힘이 미약해서 눈여겨보지 않는다. 워낙 강렬한 강침에 눈에 사로잡혀 버린다. 그때 뒤에 있는 강침이 슬며시 다가가 꽂힌다.
탁! 타탁!
강침 세 개가 나무에 틀어박혔다.
상대는 어느새 사라졌다. 강침을 던지는 순간, 상대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흠! 이게 뭐지?’
아걸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가 살짝 간만 보고 빠진 느낌이다. 본격적으로 싸울 생각도 없이 살살 약만 올렸다.
아걸은 상대가 숨었던 자리로 가서 주변을 살폈다.
예상은 했지만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러 공을 들여서 주변 흔적을 말끔히 지운 것처럼 깨끗했다.
츠읏!
아걸은 오체진감을 펼쳐서 땅 울림을 잡았다.
상대가 어디로 도주하고 있는지 땅 울림으로 전해 듣는다. 이번에 일으킨 몰안은 칼이 아니라 두 다리에 집중되었다.
‘어디로 가고 있냐?’
그런데 오체진감으로 전해지는 게 전혀 없다.
상대는 도주하지 않았다. 도주 중이라면 오체진감이 감지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근처에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일어난다. 분명히 근처 어딘가에 있다.
그런데도 발각되지 않는 것은 은신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빠른 자가 아니다. 잘 숨는 자다.
상대는 굉장히 특이한 무공을 구사한다.
대체 이런 종류의 무공이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누가 사용하지? 동영 인술 같기도 하고 살수 무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정종 무공 느낌을 풍긴다. 갑자기 확 사라지는 것을 보면 사공(邪功)인가 싶고, 강렬한 살기를 툭툭 흘려낼 때는 마공(魔功)으로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는 무공이다.
무엇보다도 상대는 아걸의 무공을 잘 알고 있는 듯 모든 공부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아걸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 자, 정말로 소축십검에 버금가는 고수다.
소축십검이 왔나? 아니다. 소축십검은 이런 살기를 발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우 강렬한 살기를 띤다.
“누구야, 도대체……?”
아걸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반철도를 꺼내서 확 달려들 걸 그랬나?
감각망기술은 쥐약이다.
진기만 일으키면 감각이 망기된다.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고 도신일체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자신도 모르게 감각을 놓아버린다.
‘진기만 일으키면 무조건 이 상태가 되니.’
아걸은 인상을 찡그렸다.
거의 매일 같은 운공을 하고 있지만,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마치 사막에서 작은 바늘 하나를 찾는 느낌이다. 절망스럽고, 답답하고, 숨까지 막힌다.
아걸의 고민은 남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죽을힘을 다해도 감각이 떨어지지 않는데, 너무 쉽게 떨어져서 다시 상기시켜야 한다니.
어떻게 하면 감각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고민한 적도 있다.
감각망기술을 수련하기 위해서 죽을 고비를 한두 번 넘긴 게 아니다. 정말 죽을 고생을 했다. 감각은 정신이 분산되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한 곳에 집중한다.
점 하나를 본다. 점을 본다. 본다. 본다!
오직 점만 보다 보면 주변에 다른 것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점만 보인다. 육신도 잊어버린다. 점만 보인다. 보고 있는 눈도 잊어버린다. 점만 본다.
아걸의 몰안은 고도로 정신 집중을 한 결과다.
정신 집중! 정신 집중! 고도의 정신 집중!
그러다 보니 소리가 있어도 들리지 않았다. 고기를 불에 태워도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눈이 있지만, 눈으로 본다는 느낌도 없었다. 오직 처음 집중한 것만 보였다.
이제 그런 일을 잊고자 한다.
처음 목표를 보지만, 냄새도 맡고 소리도 듣고자 한다.
그게 쉽게 되나. 이미 몰안을 이뤘는데, 다시 밑으로 내려가지나?
정신 분산만 이루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 같다.
공격하는 중에 옆을 살필 수 있다. 목표를 향해 일홀도를 펼쳤다가도 중간에 힘을 뺄 수가 있다. 오직 전력을 다한 일격만 쓰는 게 아니라 허초도 날릴 수 있다.
모든 고민이 싹 해결된다.
정신 분산이 이루어진 다음, 도신일체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는 또 정신 집중을 하기 위해서 수련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지금 겪고 있는 정체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때였다.
파앗!
또 살기가 다가왔다.
살기인 듯하면서 살기가 아니다.
이제는 상대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상대방의 살기가 이런 종류다. 난생처음 느끼는 이상야릇한 살기라서 본인에게 직접 어떤 심정인지 물어보고 싶다.
“이제 그만 나오지?”
아걸이 상대가 있음직한 곳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상대는 나오지 않았다. 나올 리가 없다. 강침을 던졌을 때처럼 아걸이 무엇인가를 하면 그때 피할 생각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여기까지 왔을 때는 목적이 있을 거 아냐.”
아걸은 말을 하면서 반철도를 꺼냈다.
이런 고수라면 반철도를 써도 될 것 같다.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은 상대방이니.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파앗! 파파파팟!
상대방의 살기가 급변했다.
이번 살기는 매우 진했다.
널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이 철천지원수!
단지 느낌일 뿐인데, 상대방의 원한이 칼날이 되어서 살을 저미는 듯했다.
‘이건 전혀 다른 살기인데?’
아걸은 진정 이런 종류의 살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완전히 생소하다.
“여기까지 와놓고 굳이 숨어 있을 건 뭐야? 어차피 싸울 거잖아?”
상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살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졌다. 서리형개의 화염도처럼 점점 더 강해졌다.
“이런 살기를 보내면서도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잖아. 나서나 숨어 있으나 매한가지인데.”
상대는 그래도 나오지 않았다.
아걸은 차분히 기다렸다.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얼굴도 보지 못한 자에게 일홀도를 던질 수는 없었다.
대치 상태가 꽤 길어졌다.
반 각, 반 시진, 한 시진…… 서로 숨소리까지 가늠하고 있는데, 공격은 터지지 않았다.
‘그렇군.’
아걸은 상대를 이해했다.
상대방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공격하고 싶은데, 허점을 잡지 못했다. 검을 전개하면 꼭 되치기를 당할 것 같아서 공격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아걸은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상대는 어떤 말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말할 생각이 전혀 없거나, 벙어리이거나.
‘진기가 고요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중원에 이런 고수가…… 누가 있을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한 채 침묵했다.
아걸은 드러난 곳에 있고 상대는 숨어 있다.
“이런 대치는 별로 좋지 않아서 지금 칼을 쓸 생각인데, 괜찮을까?”
상대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상대는 자신이 먼저 공격해 주기를 바랄지도 몰랐다. 공방을 주고받다 보면 없던 허점도 생기니까.
다른 생각도 일어났다.
이자가 발목을 잡고 있다. 공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놓아주지도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은연중에 드러내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견제만 한다.
이 자가 내 발목을 잡는 동안 다른 자들이 용화곡을 공격할 것 같다.
어쩌면 벌써 공격이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모습을 드러내라고 해도 나오지 않고, 게다가 간과하기 어려운 살기를 계속 흘리고 있다.
앞으로 벌어지게 될 모든 일은 상대방 책임이다.
아걸은 칼을 쓰기로 작정했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칼을 쓰는 것은 찜찜하지만 몽설이 염려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츠읏!
아걸은 비로소 진기를 끌어냈다.
일순, 감각망기술, 몰안, 도신일체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니, 진기를 끌어내자마자 당장 아걸은 사라지고 칼만 남았다.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살기로 위치를 잡았다. 상대의 심장을 잡았다.
탁!
팽팽하게 당겨졌던 줄이 뚝 끊어졌다.
순간, 반철도가 쏜살같이 터져나갔다. 칼과 상대방의 심장이 맞닿았다.
슛! 퍽!
칼이 심장에 꽂힌다.
그때! 아걸은 봤다. 상대방이 누군지 파악했다.
몽설! 몽설! 몽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