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第三十章 삼차살문(三次殺門) (4)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행동이 있다.
아걸은 몽설의 침상만 지키고 있는 게 아니다. 아걸은 두 시진에 한 번씩 단도로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냈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핏물을 몽설의 입안에 흘려 넣었다.
핏속에 녹선마황의 진액이 섞여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피와 녹선마황의 진액과 진기가 버무려져서 어떤 영약보다도 뛰어난 약성을 지닌다.
아걸은 피를 딱 다섯 방울만 흘려 넣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다섯 방울 이상은 과하다.
피를 흘려 넣는데 어떤 근거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의원이 말해준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딱 다섯 방울이 좋다.
피를 복용시킨 후에는 전신 혈도를 주물렀다.
단순한 안마가 아니다. 손가락에 진기를 주입해서 혈을 문지르고, 찌르고, 잡아당겼다.
추궁과혈(推宮過穴)을 정성스럽게 시행했다.
몽설은 죽은 듯이 누워있지만, 경맥은 여전히 활기차다. 활기찬 경맥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추궁과혈을 시작하면 한 시진이 훌쩍 지나갔다.
아걸은 한 사진쯤 쉰 후, 다시 피를 내어서 복용시켰다. 그리고 또 추궁과혈을 한다.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아걸은 진기 손실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오직 몽설만 쳐다본다.
아걸의 집중, 몰안은 몽설에게 집중되었다. 옆에서 전쟁이 터져도 모를 만큼 몽설만 쳐다봤다.
“이렇게 누워있으면 안 돼. 일어나야지. 그만 일어나. 나 힘들어서 죽겠어. 너, 나 괴롭히려고 이러는 거지?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그만 일어나.”
아걸은 몽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몽설이 다친 후부터 무공을 잊어버렸다.
진기가 어떻고, 감각망기가 어떻게…… 모든 것을 다 떠나보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손가락 끝에 진기를 모아서 몽설의 혈도를 문질러주는 것뿐이다.
몽설만 신경 썼다.
내가 이 여자를 이렇게 좋아했나? 이 여자가 없으면 안 되는 거였나? 이 여자가 내 전부였나?
아걸은 몽설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녀를 좋아했지만, 그 마음이 이렇게 깊은 줄은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다.
“이번에 처음 안 게 있어. 너 없으면 안 돼. 네가 떠나면 난 앞으로 그 누구한테도 정을 주지 못할 것 같아. 사람을 만나지 못할 거야. 날 그런 사람으로 만들지 마. 일어나.”
참 많은 말을 했다.
몽설에게 마음에 있는 말을 한 점 남김없이 모두 쏟아냈다.
평소에는 한두 마디도 듣기 힘든 말이 수백, 수천 마디나 흘러나왔다.
단도를 들어 손가락에 댔다.
피를 먹여야 할 시간이다.
열 손가락은 이미 상처투성이다. 성한 손가락이 하나도 없다. 칼을 쓸 곳조차도 없다.
단도를 검지에 댔다. 그때,
“그만.”
몽설이 말했다.
아걸은 몽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단도로 손가락을 그었다.
주룩!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아걸은 손가락을 몽설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몽설이 눈을 뜨고 있지 않은가! 아걸은 깜짝 놀라 멈칫거렸다.
“그만하랬잖아.”
몽설이 애잔한 표정으로 아걸을 쳐다보며 말했다.
“일어났어?”
“어떻게 사람이 볼 때마다 피를 흘리고 있어. 아마 오빠가 흘린 피를 모두 모으면 강물이 되고도 남았을 거야.”
몽설이 힘없이 말했다.
“이왕 상처 낸 거니까.”
아걸이 손가락을 몽설의 입에 댔다.
몽설이 피하지 않고 입을 벌렸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아걸은 다섯 방울을 떨구고 손을 거뒀다.
“잠 안 잤어?”
몽설이 물었다.
“잤어. 나야 푹 잤지.”
“안 잔 얼굴인데?”
“별거 다 걱정한다. 몸 좀 어때? 칼이 정확하게 들어갔어. 미안.”
“훗! 정확하게 맞았으면 죽었지. 정확하게 치지도 못했으면서 뭘 잘 쓴 것처럼 말해?”
몽설이 웃음을 흘리려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깨어났으니 됐어. 한숨 더 자. 더 자고 일어나면 개운할 거야.”
“오빠도.”
“난 괜찮다니까.”
“오빠, 지금 모습 어떤지 알아? 관에서 막 튀어나온 귀신 같아. 나 자고 일어나면 멋진 모습 보여줘. 이런 모습 말고.”
“……알았어. 푹 자.”
아걸이 몽설의 손을 잡았다.
몽설이 살며시 눈을 감았다.
아걸은 몽설이 잠든 후에야 땅이 꺼질 것처럼 큰 숨을 토해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다.
몽설이 깨어나자 전신 기력이 쫙 풀린다. 몸에 힘이 탁 풀리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아걸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때, 잠든 것 같았던 몽설이 눈을 떴다.
그녀는 잠들지 않았다. 아걸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잠든 시늉을 했다.
몽설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 이제 오빠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
몽설은 아걸이 고마웠다.
그녀는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도 주변에서 하는 말을 모두 들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의식은 멀쩡하게 깨어있었다.
그녀는 아걸이 폭풍처럼 쏟아낸 말을 모두 들었다.
수천 마디 말들을 하나 남김없이 들었다.
아걸이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구나!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을 아걸만큼 좋아해 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빠, 인제 그만 좀 다쳐. 왜 맨날 피만 흘려.’
몽설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 좀 침상에 올려줘. 이렇게 재우면 너무 불쌍하잖아.”
“네, 원주!”
취운과 규화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들은 쓰러진 아걸을 들어 몽설의 침상에 눕혔다.
“원주님, 깨어나서 다행이에요. 정말 못 돌아오시는 줄 알았지 뭐예요.”
취운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몽설이 힘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취운이 그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규화도 손을 내밀어 몽설의 손을 잡았다.
그녀들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 * *
아걸과 몽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훌훌 털고 일어섰다.
일어나자마자 목욕부터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몽설은 예쁘게 분까지 발랐다.
“오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아픈 모습은 보이기 싫어.”
아걸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다. 생명이나 다름없는 반철도도 풀어놓았다. 무인이 아니라 글 읽는 유생처럼 보였다.
“나 괜찮아?”
아걸은 몽설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두 사람은 살문에 대한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곡에서 하는 일도 간여하지 않았다.
둘이 같이 산책하고, 같이 밥 먹고 웃고 떠들었다. 대별산에 유람온 사람처럼 즐겁게 지냈다. 상처를 치료할 시간이면 서로 치료해주면서 즐거워했다.
몽설도 아걸도 그때의 일은 입에 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딱 닷새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열흘이 지났을 때, 몽설은 아걸에게 밀지를 건넸다.
아걸이 뭐냐고 묻지도 않고 한참 동안 밀지를 쳐다봤다.
“팔 아파.”
아걸이 그제야 밀지를 받아서 읽었다.
밀지를 읽은 아걸이 눈을 돌려 먼 곳을 쳐다봤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안다.
몽설이 말했다.
“이제 일해야지. 많이 쉬었잖아.”
“쉬는 김에 더 쉬면 안 될까?”
“풋!”
몽설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한다. 서리가헌이 찾아오면 들기 싫어도 칼을 들어야 한다.
그나마 그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나중에 다 끝나고 나면 우리 편하게 쉬자. 나중에.”
아걸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웃지 마. 속상해.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 취화원 살수로 살 걸 그랬나 봐. 그때가 더 편안했던 것 같아. 지금보다 훨씬 마음도 졸이지 않고.”
“그래도 난 지금이 좋아. 네가 옆에 있으니까.”
“어멋!”
몽설이 놀란 듯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누워있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어. 고맙다. 어렸을 때 한 혼인 약조, 지켜줘서.”
“아직 안 지켰어. 마음에 안 들면 지금이라도 돌아설 거야.”
두 사람은 농을 주고받았다.
무공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서리가헌과 싸울 수 있겠느냐, 그를 상대할 수 있겠느냐…… 묻고 싶은 말이 태산만큼 많은데, 모두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고 꺼내지 않았다.
아걸은 숨기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을 다 말해 준다.
아걸이 무엇인가를 얻었다면 당장 말해 주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본인 자신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정말로 무공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냈거나.
* * *
옛날, 사부가 동굴로 데리고 갔다.
당시에는 따뜻한 집을 놔두고 동굴에 처박아둔 것이 못내 섭섭했다. 사부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마는 섭섭한 마음이 뭉클 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밤에는 무척 추웠다.
동굴이라서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워낙 넓고 커서 밤만 되면 오돌오돌 떨었다.
동굴에서 약육강식의 세계를 봤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고, 사마귀가 곤충을 잡아먹고, 박쥐가 나비를 낚아채는 모습들을 관찰했다. 강자가 어떤 무기를 써서 먹잇감을 사냥하는지 유심히 봤다.
그런 부분을 인간이 응용할 수는 없다.
짐승이나 곤충은 무기가 먹잇감에 최적화되어 있다.
뱀은 물면 놓지 않는다. 심장을 압박해서 질식사시킨다. 또는 독니로 물어서 독을 넣은 다음,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
사마귀의 무기는 앞발 두 개다. 앞발이 하나뿐이면 먹이를 잡지 못한다. 꼭 두 개가 있어야 한다. 앞발로 머리와 꼬리를 잡고, 이로 몸통을 갉아 먹는다.
이 수법에 걸려들면 무엇이든 다 당한다.
뱀도 당한다. 사마귀는 뱀도 먹는다. 앞다리로 머리가 꼬리를 잡고 몸통을 갉아 먹는데,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먹이를 꽉 잡고 누르는 두 발의 힘.
이것만 이겨내면 그때부터는 사마귀를 잡아먹을 수 있다.
이 힘을 이기지 못한 말벌은 사마귀 먹이가 된다. 이 힘을 이겨낸 말벌은 사마귀를 먹는다.
모든 건 상대적이다.
이런 이치를 아주 어린 꼬마가 깨달았다.
그런 수련을 지금까지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사부에게 하나씩 차분하게 배웠다면 지금 어떤 칼을 가지고 있을까? 체계적으로 무공을 배웠다면…….
모르긴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칼을 가졌을 것이다.
아걸은 작은 동굴을 찾아냈다.
지난겨울에 곰이 동면을 한 듯 동굴 곳곳에 곰 털이 묻어있다. 땅을 비빈 흔적도 있다.
“딱 좋네.”
아걸은 만족했다.
이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때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사부가 무엇을 전해주려고 했던 것인지 찾아본다.
지금 일홀도는 극강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이 칼,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리형개에게 패배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서리형개에게 패한 것은 빠름에서 뒤진 것이니, 그를 이기려면 빠름을 개선하면 된다.
발도술보다 더 빠른 칼을 가지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분명히 잘못되기는 했는데.
몽설을 공격할 때 일어났던 두 개의 몰안은 어떻게 된 것인가?
모든 게 잘못되었다.
이곳에서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다시 짚어본다.
그는 한 달 먹을 쌀을 가지고 왔다.
한 달 안에 서리가헌이 나타날지 모르겠는데,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한다.
츠읏! 촤르륵!
진기를 끌어올렸다가 풀었다.
대략 보름 만에 다시 진기를 운집한다. 한데 마치 십 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낯설다.
츠읏! 촤라라락!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살핀다.